검은 언덕 3
박 주사가 교육청에서 가져온 공문을 결재하며 분교장이 말한다.
“최 선생은 섭섭하시겠어. 모교가 폐교된다고 하니….”
그는 제법 언짢아하며 관자놀이에 붙어 있는 안경테를 어루만진다. 그러나 그건 위장술인 것 같다. 버스가 두 시간마다 들어오는 이곳 산골에서 나가려고 얼마나 안달했던가. 그건 차라리 절규에 가까워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견하고 신통했다. 그는 작년까지 하급반 애들을 2년 연속 가르쳤다. 상급반을 담당했던 교사가 올해 초 전근 가고 신규인 내가 들어오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상급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규직은 될 수 있으면 고학년을 맡지 말라는 교육부의 방침이 제도화되기까지 했으니까. 그의 수업은 너무 성의가 없었다. 한번은 분필이 없어서 상급반 교실 문을 똑똑! 노크하고 블라인드 유리창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니까 그는 교탁에 엎드려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침까지 흘리며 곤히 자는 그의 모습에서 분교장이라는 하나의 무책임한 직책을 나는 보았다. 따지고 보면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위가 탐이 나고 권위를 추종하는 교사들은 도서벽지 학교 분교장으로 자원해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교장이나 장학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교감이나 분교장의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력의 한계 연수를 3년이라고 봤을 때 그는 올해로 그 기간을 전부 채운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진장 기쁠 것이었다. 나는 별 반응 없이 교육청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는 그와, 히터를 손질하며 다가올 한파 준비에 부산한 박 주사에게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 앞에 군내버스가 정차해 경적을 울리고 있다. 네 바퀴는 황토로 범벅이 되어 있다. 면 소재지에서 이곳까지 2킬로 흙길을 툴툴거리며 달려왔을 바퀴가 제법 측은하고 대견스럽다. 승객은 한 명도 없고, 곧 출발하겠다는 듯 기사의 손이 핸들에 가 있다.
나는 집을 향해 걷다가 검은 언덕에 시선을 던진다. 그녀 아버지가 언덕에 불을 질러 손해 봤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른 나이에 애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남았더라면 또 모르겠다. 좌판에 늘어놓은 옷을 팔기 위해 골라골라골라골라,를 일 초만에 내뱉곤 한다면 그녀의 행동거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녀는 이 시간에도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양동시장 한 모퉁이에서 옷을 팔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식충이처럼 밥을 빌어먹기 위한 구차한 수단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꿩 대신 닭이라고, 큰아들 다음으로 기대를 모았던 막내딸인 그녀의 무한한 꿈마저도 그때 한 줌의 티끌이 되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 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녀는 잡지책을 뒤지는 일 말고도, 당시 문방구에서 팔았던 블론드 인형에 디자이너처럼 그림 옷을 번갈아 입혀주며 키워온 제 꿈을 무산시켰고,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혀준 까닭에 캔디처럼 아름답게 변신한 모델도 되지 못했으니까.
친구와 통화할 때면 느닷없이 그녀 얘기를 하는 것도 생명을 상실해 버린 언덕배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는 연구하는 것조차 편두통이 일 것 같은 아득한 옛날,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의 지층처럼 굳어 버린 언덕이지만 이십 년 전 그곳에 그녀의 꿈이, 패션모델의 화려함이 동공처럼 콱 박혀 있었는지 모른다.
겨울철 방문을 열면, 대도시의 상가건물 하나 건너 피시방과 미용실이 있듯 하루걸러 거기 언덕에 퍼내도 퍼내도 솟아 나오는 우물물처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온종일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누비면서 때론 뒹굴기도 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자란 개구쟁이를 둔 탓에 고목의 매미처럼 천장에 달라붙은 삼십 촉짜리 희미한 백열전구 불빛에 의지하며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스웨터 단추와 호주머니 안쪽이 미어진 점퍼를 꿰매는 엄마의 정성을 천장에서 아늑하게 쏟아져 내리는 불빛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느끼고 부스스 눈을 떴다. 엄마가 식혜를 만들기 위해 전날 밤 엿기름가루로 우린 물을 되직한 이밥이나 찰밥에 부어서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전기밥통에 담가놓더니 찰밥 덩어리가 제법 물 위로 둥둥 뜨는 시각이었다. 설탕을 쳐서 한 그릇 후룩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으나 뒤끝은 생맥주를 마신 것처럼 한 시간도 못 돼 분수처럼 분출할 것만 같은 소변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동틀 무렵 방문을 열면 거기 눈밭에서 그녀가 비료 포대에 엉덩이를 깔고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오줌을 누고 옷을 두껍게 껴입고 비료 포대를 찾아서 그곳으로 가보면 그녀의 집을 향해 찍혀 있는 눈 발자국이 저 언덕, 저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갈 것 같은 철도 레일처럼 아득하게 보이곤 했다. 그녀는 언덕에서 미끄럼 타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번은 그녀의 언니와 같이 타다 가속도가 붙어 급정거를 못하고 언덕 밑에 있는 막사 뒤뜰로 두 몸들이 처박혀 들어갔다. 막사에는 고독이 밴 듯한 어둠 때문에 긴 겨울밤 내내 시름에 빠져 있다가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든 중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말뚝에 매어진 끈을 풀고 막사 밖으로 뛰쳐나갈 만큼 쿵! 하며 처박힌 소리가 충격적이었다. 다시는 언덕에 가지 마라,는 충고를 꼬맹이 엄마에게서 들었을 법도 한데, 단전 호흡과 함께 최면에 빠져들어 망아의 경지에 접어든 사람처럼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눈 내리는 아침이면 잣껍질처럼 거기 완강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동안 그 집 식구들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작은 오빠는 그래도 남자라고 서울 큰아버지네로 옮겨가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두 딸은 꼬맹이 엄마와 광주 송정리에서 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녀만이 숨바꼭질하듯 종적을 감춰 내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혹시 그녀가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해보았다. 밤무대 가수처럼 매스컴을 탈 수 없어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과 얼굴을 가진 모델도 얼마나 많을 것인가. 모델로 데뷔했다는 자부심에 도취하여 후속인기야 어찌 됐건 그걸 성공이라 여기고 지난날들이 이유 없이 부끄러워 그 시절의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발버둥 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의 우려는 하루아침에 깨어지고 만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 재고품을 싼값으로 가져와 광대처럼 옷을 파는 모습 또한 그녀의 차지가 될 수 없다. 어쩌면 작은방에 앉아 현란한 잡지를 가위로 오려 벽에 붙이고, 대설원을 달리는 스키광처럼 흰 눈 위에서 뛰어놀던 그 모습이 뻐꾹새 우는 소리처럼 순수하다고 해도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접어둘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인지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았을 테고, 또 추억은 추억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