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과 선자령을 거닐다
(2015. 6. 21.일)
瓦也 정유순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번져 외부 출입을 꺼리게 하는 새벽에 영동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려 옛 대관령휴게소에 당도한다. 역시 메르스 영향인지 발 디딜 틈도 없던 휴게소 주차장에는 의외로 주차공간이 매우 넓다.
대관령(大關嶺 832m)은 백두대간의 중심고개로 이곳을 기준하여 동쪽은 영동(또는 관동) 서쪽은 영서(또는 관서)로 구분된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대관령 길을 넘어 다녀야 했다. 오죽헌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도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함께 넘었을 것이고, 관동별곡을 쓴 송강 정철도 이 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물류의 주역인 보부상(褓負商)들도 대관령 옛길을 넘나들며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북쪽의 선자령(仙子嶺 1157m)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이곳 특종인 ‘제비동자꽃’ 안내판이 나온다. 제비동자꽃은 7∼8월에 짙은 홍색으로 피뢰침 모양의 꽃잎이 피는 희귀식물로 대관령 이북에서만 자생하는 특별 보호대상 종(種)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세상의 온갖 근심을 털어버리고 조용히 나를 더듬어 본다.
숲길의 끝에서 부터는 대관령 고지대에 형성된 ‘고원목장’이 펼쳐진다. 다른 짐승들은 이른 시간인지 아직 보이지 않고, 남서쪽 산자락 조금 먼 초원에는 양떼들이 아침을 한가로이 즐긴다. 안개구름은 낮게 깔리며 선자령 길을 연막소독 하듯 쓸고 지나가고, 이웃의 산들이 안개의 모양에 따라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 한다.
기후온난화로 화석연료 사용을 절감하고 녹색에너지 개발 차원에서 고개를 넘나드는 바람을 이용하려는지 풍력발전기가 백두대간 정상능선을 따라 길게 도열해 있고, 풍차와 풍차를 이어주는 도로가 함께 늘어선다. 가축들이 뛰어노는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발전용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광경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보기 좋은 것은 틀림없으나, 백두대간이 단절되고 동∙식물들의 이동통로가 끊어지는 사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더 좋은 것을 망각하는 것은 아닌가?
선자령은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형으로 볼 때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았을 때는 누구든 이곳에 오면 신선이 될 것 같다. 정상에는 ‘백두대간선자령’ 표지석이 우뚝 서 있고, 뒷면에는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가 우리나라 지도에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남쪽으로는 대관령 건너 발왕산, 서쪽으로는 개방산, 북쪽으로 황병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동쪽으로는 동해바다와 함께 강릉이 보인다고 하는데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옆에는 기상관측 장비도 설치되어 있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숲속이다. 봄에 화사하게 피었던 꽃자리에는 싸리 꽃이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약초로 소문난 자색 빛 ‘토종 엉겅퀴’가 집 나간 피붙이를 만난 양 반갑다. 못생겨서 더 사랑 받는 나무의 가지 사이는 손때가 반들거린다. 반정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안개도 사라져 강릉으로 가는 길 ‘아흔 아홉 구비’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바다와 함께 보인다.
대관령 구름이 처음 걷히니(大嶺雲初捲 대령운초권)
꼭대기의 눈이 아직도 남아 있네(危顚雪未消 위전설미소)
양장처럼 산길은 험난도 한데(羊腸山路險 양장산로험)
조도 같은 역정은 멀기도 하네(鳥道驛程遙 조도역정요)
늙은 나무 신당을 에워싸고(老樹圍神廟 노수위신묘)
맑은 안개 바다 산에 접했구나(晴烟接海嶠 청연접해교)
높이 올라 글을 지으니(登高㻣作賦 등고감작부)
풍경이 사람의 흥을 돋우네(風景使人遼 풍경사인요)
반정(半程)으로 오는 길목에 서 있는 ‘매월당 김시습’의 시가 대관령을 잘 대변한다.
두부를 만들 때 소금 대신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여 만든 초당순두부로 점심요기를 하고 이웃의 허난설헌 생가 등을 둘러본다. 초당순두부는 초당 허엽(草堂 許曄)이 원조다. 조선조 때 동인의 영수였고, 청백리였던 초당은 허성 허봉 허균과 허난설헌 등 4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시문에 능하여 수재(秀才) 집안으로 불리었고 중국과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시문학에 소질이 뛰어났던 허균이나 누이 허난설헌 등은 시절을 잘못 만나 불우한 생을 살았던 것 같다. 허균은 자신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국을 꿈꾸다가 역적으로 몰려 사지가 잘리는 거열형을 당했고, 누이 허난설헌은 8세부터 시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15세에 결혼하였으나 고된 시집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27세 꽃다운 나이에 능력을 채 피우기 전에 요절하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경포해변에는 성급한 피서객이 눈에 띠지만 아직은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경포호는 제일강산(第一江山)답게 자태를 자랑한다. 화진포호와 송지호, 영랑호 등과 함께 경포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호(潟湖)이다. 석호는 만(灣)형의 바다가 모래의 퇴적으로 인하여 형성된 호수로 해수와 민물이 소통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경포대에서만 보인다는 보름달의 수를 헤아리며 더딘 고속도로를 달린다.
첫댓글 덥고 메르스 공포도 떠 다니는데 요즘도 다니시나요?
그래도 김시습의 시로 더위를 씻어가며
보람도 있으시겠습니다^^
ㅎㅎ 아마 겁 없는 자에게는 메르스도 비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