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샘 330호 - 1, 2면 (행복한 선물)
인생의 절망이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라!
그녀 앞에 남은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파키스탄 동부 펀잡 주의 사트라 마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31살 청년과 결혼한 17살의 딸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결혼을 축복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부모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혼에 대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 부부는 가족들에 의해 밧줄로 묶인 후 아버지에게 남편과 함께 목이 잘려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찮은 종족 출신과는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가문의 명예를 더렵혔다”며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고 있는 명예 살인.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2013년 한해만 869건의 “명예 살인”이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은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적절한 여자의 처신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죽음밖에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윤리와 전통적인 관습을 중요시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 여인의 죄명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혔다는 것입니다.
다짜고짜 이 여자가 죽어야 할 이유를 들이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답변을 기다립니다.“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런데 그 선생은 이렇게 말하는 무리들의 감추어진 동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잘못을 통해 자신들의 의(義)를 드러내고, 자신들이 시기하던 선생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고발의 조건을 찾기 위함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선생은 가만히 앉은 채 땅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답을 재촉하면 물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제서야 비로소 그 선생은 일어나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런데 이것이 왠일입니까?
돌을 들고 당장이라고 죽일 것처럼 살기 등등하던 그 사람들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 둘씩 돌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그 여자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 선생과 여자만 남아있는 적막한 현장, 그 선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인생의 절망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그 만남...
굳이 안 믿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어느 엘리트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의 삶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과장되거나 틀렸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그 사람들과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면성,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고, 단점과 장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듯 했습니다.
나 자신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그 청년에게 교회와 기독교인의 안타까운 모습에 대해 대신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몇가지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았나요?”
그 청년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죄를 한번 지어도 죄인, 천번 만번 지어도 죄인...맞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 죄 문제 때문에 결코 원하지 않는 저주와 재앙이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리고 그것을 가져다주는 본질적인 흑암 존재가 있다면 어떻게 이길 건가요?”
“더군다나 당신은 하나님입니까? 만일 피조물이라면 당신을 만드신 창조주는 어떻게 만나야 합니까?”
당황한 듯 그 청년은 저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성경은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만일 성경에서 당신이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 저주와 재앙의 문제, 사탄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의 문제를 해결할 다른 길이 없다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을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때로 우리는 자신의 일보다 남의 일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고, 아무렇지도 않게 판단하고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1961년 그런 미국 시민의 모습을 보며 케네디는 이렇게 취임연설을 했습니다.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마시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정말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필요한 것에 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4: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8: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접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오셔서 영원히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 자녀의 매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누리도록 성령 충만함을 주옵소서.
나의 가정과 현장과 가는 걸음마다 복음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모든 사단의 세력을 권세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여 주옵소서.
어떤 일, 어떤 문제든지 해결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을 발견하며,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증거되게 하시고, 나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깊은샘 330호- 3면 (The Leader's Time)
인생을 승리케 하는 비밀 - 참된 정체성
우울증 환자와 자살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공통적으로 나온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자존감이 낮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실패 앞에서도 쉽게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존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정체성에서 나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삶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 자긍심이 따라오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속에 빠지게 된 것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때문입니다. 어느 청소년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아니? 네가 왜 소중한지 아니? 네가 뭘 잘하고 못해서 소중한 게 아니야. 네가 진짜 소중한 이유는 하나님이 너를 택하고 불렀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너를 택하고 불렀기 때문에 네 수준, 상황, 조건과 상관없이 너는 소중하단다.”
나의 정체성이 영원한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나의 인생도 영원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이 완전한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나의 인생도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정체성을 아는 사람은 삶의 이유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청소년은 형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갔는데도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가 붙잡은 이유대로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유를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 앞에 쉽게 포기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줘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신분, 권세, 비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젼을 찾아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그 비젼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아야 하는지, 달란트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신분이 분명하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세상을 향한 비젼을 이루는 일에 내 인생이 가장 가치있게 쓰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신분과 권세와 비젼이 분명하다면 요셉처럼 그 비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게 주어진 일에 승부를 걸게 됩니다. 혹시 내가 뭘 해야 될지 모른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더 잘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다른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속에서 나오는 나의 소중함을 안다면 멋진 인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에서 참 성공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정체성이 확실했는지 그 위기상황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죽음까지도 흔들 수 없는 뿌리, 그 정체성.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정체성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한 정체성.
지금 내가 붙잡은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41:10)
깊은샘 330호- 4면 (깊은샘 Story)
내 인생의 마중물
외출하려는데 보니까 싱크대에 버려지지 않은 개숫물이 그냥 있다. 그것은 맑게 보이므로 마지막 그릇을 씻은 것이거나 아니면 새롭게 받아놓은 물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가정에서 연세 많이 드신 할머니가 계신 곳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현상인데 이것은 샤워 룸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르신들은 물이 나오는 곳에 세수대야나 아니면 빈 그릇에 반드시 물을 채워 놓는 습관이다. 아이들은 그것이 때로 귀찮아 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왜 할머니들은 그런 수고를 핀잔을 들어가시면서 지속적으로 반복하실까 궁금하다.
그것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습관에서 연유한다. 수도시설이 충분치 않던 시절에 멀리 우물가에 가서 머리에 양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와 그것으로 밥도 하고 세수도 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발명품이 나타났는데 바로 펌프였다. 멀리 우물가에 가지 않아도 집 앞 마당에서 펌프질을 하면 신기하게도 물이 솟구쳤다. 그 곳에서 채소도 씻고 빨래도 하고 등목도 하는 좋은 샘이었다. 그런데 저녁에 신나게 물을 사용하고 아침에 펌프질을 하려 하면 퍽퍽 소리만 나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 고장이 났나 보다 싶지만 사실은 고장이 아니라 사용 부주의로 생긴 결과이다. 깊은데서 끌어올리는 물은 펌프의 수압을 이용해 올라오는 것이다. 그것은 펌프 안에 물이 있을 때만 수압의 관계 속에서 물이 나오는 원리이다. 저녁에 계속 사용 중 일 때는 물이 나오지만 밤새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아침에 물을 구하면 펌프의 물이 말라 곧 물이 지하에 깊숙이 내려가서 펌프에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펌프가에는 반드시 마중물이 있다.
이 마중물은 마른 펌프에 일시에 물을 넣고 펌프질을 하므로 수압을 이용해 내려간 물을 급히 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급하다고 마중물을 사용해 버리면 그다음에는 펌프에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물을 마중한다는 의미로 마중물이라고 지혜롭게 사용하셨나보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가로 분류되어 있으므로 물을 아껴 써야 하는데 당장은 여기저기 물이 잘 나오므로 아이들은 이런 내용을 잘 모른다. 그러나 노인들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삶의 경험을 통해 지금 편안하고 좋지만 어려운 시대가 올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신다. 그래서 수돗가에 불편하지만 물을 대기시키는 것은 바로 물이 안 나올 때를 대비한 마중물의 경험 때문이다. 노인들이야 말로 우리 집의 방공요원이요, 미래지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집안에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어르신들의 위기를 대처하는 지혜로 알고 감사해야 한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희망이고 힘이다. 그러나 잘 나갈 때는 그 힘으로 산다고 하여도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상존하고 피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찾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수양을 힘쓴다. 그것으로도 피해지지 않는 위기가 인생에는 너무 많아 안전한 삶을 위한 노력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펌프가의 마중물처럼 단번에 영원한 그런 해답은 없는 것일까? 있다. 진리는 짧게 답하나 거짓은 길게 변론한다. 복음이 바로 인생의 마중물이다. 그래서 좋은 소식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보다 길게 말하는 것은 거짓인줄 알면 된다.
정현국(복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