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조선왕릉 탐방 [남양주 홍릉과 유릉/사릉] 후기 <2>
<2023년 5월 13일>
1편 홍릉과 유릉]에 이어 [영원 회인원 덕혜옹주묘 의친왕묘] 탐방 기록입니다.
홍릉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 재입장 때는 홍유릉 입장권이 필요하다.
황제릉의 담장, 옆은 영원과 회인원 구역이다.
영원(英園)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 - 이방자)의 원이며, 1970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20년 일본 왕족 이방자와 정략결혼, 두 아들(이진, 이구)을 두었으나 이진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영친왕비는 1963년 귀국 낙선재에서 덕혜옹주를 보살피며 사회사업을 하다가 1989년 덕혜옹주 보다 9일 늦게 세상을 떠났다.
회인원(懷仁園)은 황세손 이구의 원이다. 2005년 일본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 1963년 귀국 후 낙선재에서 지내며 서울대와 연세대에 출강하기도 했다.
산책로 쉼터에서 휴식, 휴식에는 간식을 나누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병꽃나무 꽃이 탐스럽다.
영원 회인원 탐방.
영원 재실
어 ~~~!, 회인원이 여태껏 봉분만 달랑 있었는데 ~~~, 20여일 전이었나, 그때는 봉분 공사 중이더니 곧 면모 일신할 듯.
이 좁은 공간에 이런 석물들이 다 놓여질까.
20여일 전, 관람 때의 사진.
영원의 능침 공간
산책로를 따라 덕혜옹주와 의친왕 묘로 ~~~. 벌써 몇 년 전부터 전시 중인데, 다행히 관리는 잘 하나 보다. 깨끗하네.
1대 태조부터 ~~~, 차분히 살펴보면서 걷자. 북한에 있는 정종의 후릉도 사진으로나마 살펴보고 ~~~.
여기서 단종의 장릉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
언제나 온몸으로 슬피 울고 있는 이 문석인의 얼굴 때문에 ~~~.
군(연산군, 광해군)의 묘까지 전시.
다른 사진들까지 상당 부분을 골라 담아본다.
이때는 이미 깊어진 조현증에 실어증까지 ~~~, 1963년 귀국하여 낙선재에서 함께 지내게 되는 영친왕비의 보살핌으로
1989년 4월 21일 한많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참으로 고달픈 삶을 ~~~. 가슴이 아린다. 대마도 여행 추억까지 소환하며 ~~~.
*** 오죽하면 11년 연상인 이방자 여사의 기도제목이, '덕혜옹주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을까. 차마 덕혜옹주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기에 ~~~, 소망대로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 영친왕비는 9일 후인 4월 30일 눈을 감는다.
의친왕 이강(1877 ~ 1955)은 의친왕비와 결혼하였지만 자녀는 없다.
1905년 미국유학 후 귀국하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 조국의 광복을 위해독립운동을 지원하다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 묘와 의친왕 묘.
의친왕과 왕비의 합장 묘
덕혜옹주 묘
*** 숭어가 보내 온 사진, 고맙습니다.
다시 홍릉으로 ~~~.
2편에 이어 점심 식사 및 남양주 사릉 탐방 기록은 3편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원과묘, 왕릉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그리고 불행했던 왕족들의 스토리들을 다시 되새겨보았던 시간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여기가 젤 흥미로웠습니다
왕이나 황제보다, 결국 왕릉보다 원이나 묘가 거리감이 덜해서 일까.
아무래도 20세기를 함께한 사람들이가도 하구요.
고종이 예순에 얻은 막내딸, 1989년 낙선재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덕혜옹주, 그 뒤틀리고 꼬여버린 기구한 삶 ~~~.
마지막 황세손 이구, 2005년 도쿄 도심의 한 호텔에서 타계할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서울은 이틀 뒤에야 타계 소식을 접하다니 ~~~.
존귀한 황태자, 황세손, 옹주이었지만, 몰락한 제국의 황손!!!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