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종교다원주의, 자유주의신학, 개혁주의신학
혼합종교: WCC란 무엇인가?
종교 통합을 이룬 카톨릭 교황
세계교회협의회(WCC : Worid Council df Churches)
<종교다원주의>
WCC는 카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 증산도, 기타 등등 모든 종교의 통합을 주장하는 WCC의 다신론 사상인 종교다원주의
WCC 현황: 현재 7대륙에 걸쳐 110여 개국, 349개 교단, 5억 8천만명의 신자.
아프리카 28%, 유럽 23%, 아시아 21%순.
장로교 28%, 루터교 16%, 감리교 11%, 오순절 9% 순.
주요교단 : 동방정교회, 성공회, 동양정교회, 루터교회세계연맹, 개혁교회세계연맹, 감리교회, 침례교회, 독립교회연합교회 등
한국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가입교단들, 즉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정교회한국대교구 등 8개 교단 중 6개 교단이 가입함.
WCC의 탄생
1937년 7. 8-10, 영국 웨스트필드(Westfield)대학에서 생활봉사(LW)위원회와 신앙직제(FO)위원회의 위원 35명이 모여 양대 기구를 통합키로 결의.
WCC 창립총회개최 : 1948년 8.22-9.4, 화란 암스테르담
본부 : 제네바
지역사무소 : U.N, 미국 뉴욕, 예루살렘
<WCC의 성경관>
WCC는 신구약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신앙과 행위에 대해 유일의 법칙으로 고백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증언하고 경험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성경은 단지 전통의 산물로서 문학서와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오류 있는 인간의 책으로 본다.
1963년 몬트리올보고서는 성경과 동시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였으며, 1967년 브리스톨 문서에서는 노골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방법을 천명하였고, 1971년의 루뱅문서에서는 칼바르트에서 비롯된 신정통주의 성경관과 자유주의 성경관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신론>
WCC는 각 종교의 배후에 궁극적 실재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각 종교의 궁극적 실재를 동일시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지만 이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활동이 어느 특정 대륙이나 민족과 종교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종교다원성 안에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말한다.
또 WCC는 하나님의 영과 피조물의 영, 악한 영을 똑같은 영으로 보는 종교혼합주의를 공공연하게 밝힌다. 모든 종교는 같은 신적 실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동등한 가치의 종교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성령을 인격이 아닌 온 우주에 생명을 부여하는 에너지로 이해한다. 온 인류와 종교를 하나로 묶는 에너지로 본다.
<기독론>
WCC는 예수만이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는다. 각 시대 각 백성에게 해당하는 그리스도가 있다는 상대적 그리스도관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단지 2000년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찾아온 구주라고 말한다. 1990년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만든 '바아르선언문'은 종교의 다원성을 전제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구원활동이 기독교 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을 비추었다.
WCC는 예수만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과 로고스는 다양한 종교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라이문도 파니카의 ‘보편적 그리스도론’과 예수는 단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폴 니터의 ‘신중심주의 그리스도론’을 채택했다.
<구원론>
WCC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타종교들의 진리와 선함을 해석할 수 있고 다른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영역에 속한다고 대답했다. 즉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정당하고 유익하다고 주장한다(1990년 바아르 선언문).
타 종교인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전체에게 진리와 사랑을 공평하게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힘을 사용하여 강제로 구원하지 않으며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성령을 타종교의 영적 현상들과 혼동한다.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 힘, 생명, 정령 활동 등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각 지역의 토속적 미신, 샤머니즘, 또한 죽은 영들을 부르는 초혼제(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7차 총회, 한국 정현경 교수) 등도 받아들인다. 즉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에너지와 영적인 힘을 회복하여 인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려는 범신론적인 신관을 갖고 있다.
WCC는 개인의 죄와 비참함을 부정하고 사회적인 부조리, 가난, 질병, 정치적 억압, 남녀불평등을 죄의 본질로 취급한다. 전통적인 죄의 개념을 부정하고 죄의 본질을 사회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구원의 본질도 죄와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경제적인 번영과 치료, 정치적인 자유, 전쟁으로부터의 평화, 남녀평등의 사회적 회복으로 주장한다.
<교회론>
WCC는 교회의 신앙고백적 본질보다 외형적 특징을 강조하고 조직 중심의 가시적 교회일치주의를 표방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에큐메니칼의 본질이다. 물론 WCC는 1951년 토론토선언 등을 통해 자신들은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WCC 산하의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이루어 ‘거룩한 하나의 교회’(Una Sancta)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교회를 국적, 인종, 사회, 언어를 초월하는 공간적 지리적 통계학적 양적 개념의 집합과 동일시한다. WCC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기구주의 교회관과 일치한다.
입으로는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하면서도 교황과 주교들로 구성된 계급주의적 교회론을 펼치는 카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회론을 비판 없이 수용한다. 영혼 구원을 위한 교회의 영적인 본질을 도외시하고 사회구원을 치열하게 주장한다.
교회의 역할은 개인의 구원을 위해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회를 변혁시키는 역할과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사회해방을 위한 투쟁과 봉사 단체일 뿐이다.
<WCC와 동성애 문제>
WCC 제5차 총회(1975, 케냐 나이로비) 회원들은 성(性)에 대한 신학적 연구를 요구하였다. 이에 WCC는 교회들로 하여금 각 개인들의 각기 다른 생활을 따라(in different life style) (성생활을) 선택하는 것을 지지하도록 결의하였다.
그리고 2005년 WCC 중앙위원회는 각 지역의 상황, 문화, 생활양식 등을 따른 인간의 성(性) 생활(human sexuality)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도록 권장하였다. 이로 인해 WCC 산하 교회들에서 음성적으로 만연되어 오던 동성 간의 결혼과 동성 부부를 목사로 안수하는 일들이 공인되어 현재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문란한 일들이 성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
WCC는 전 세계교회의 에큐메니탈운동을 자처하며 출범한 단체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에큐메니칼은 성경의 원리와 기독교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 교회의 영적인 본질보다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일치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성경을 다르게 믿고 증언한다.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 아니라고 한다. WCC는 창조주 하나님이 기독교 안에서만 자신의 창조활동을 펼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WCC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은 맞지만 예수만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모든 나라와 민족과 여러 다양한 문화적 형태 안에 그리스도가 현현한다고 말한다. WCC는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종교는 각자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WCC의 모든 주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존재치 아니하고 성경의 원칙과 범주를 벗어난 주장들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WCC는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적 그리스도의 사상이다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 참가교단과 참가한 목회자 명단 (가입 교회 및 목사)
준비위원회 128명의 상임위원 명단
상임고문 11명
강문규 전 WCC의장, 김선도 광림, 김성수 성공회대, 김장환 수원중앙침례, 림인식 노량진교회, 방지일 영등포교회, 박형규 서울제일, 박상증 아름다운재단, 박종순 충신, 신경하 아현감리, 조용기 여의도순복음
상임대회장단 13명
김삼환 대표대회장 명성교회, 박종화 준비위원장 경동, 이영훈 준비위원장 여의도순복음,
김근상 주교 평화와통일 성공회, 장 상 여성 이화여대, 손달익 교회협력 서문, 김정훈 교회와미래 월곡, 나홍균 나눔과 섬김 대천, 손인웅 일치와 연합 덕수, 이정익 선교와 대화 신촌성결, 장종현 언론 백석학원, 허원구 부산준비위원장 산성, 이봉관 장로 재무
WCC총회의 역사 (제7차~9차) 7차때 정현경 초혼문 낭독
제7차 WCC총회: 1991 캔버라 (Canberra, Australia)
호주 캔버라에서 모인 제7차 WCC총회는 그 주제가 "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창조를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 - Renew the whole creation)"였는 데 이방 종교를 본격적으로 포용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4,000여명의 참가자 가운데에는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의 세계 15개 종교
대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회식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전통종교의식을 진행되었다.
호주 원주민 마법사들(Witchdoctors)이 젖은 고무나무 잎새를 태우면서 짙은 검은 연기를
하늘로 올리고 참가자들은 조상들의 영들로부터 축복받기 위하여 그 연기 사이로 걸으라고 요청받기도 했다(JS Malan).
이때 한국의 여성 신학자 정현경 교수(teaches at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New York)는 주제 강연에서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창호지에 쓴 초혼문을 가지고 나와서 낭독하며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고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 . 다윗 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우리야의 영이여 오소서 . . . . 나치에 죽음 당한 영이여, 2차 대전 중 창녀로 끌려간 한국 여인의 영이여, 십자가의 고통으로 죽은 우리의 형제 예수의 영이여 오소서 . . ." 라고 읽은 다음 그 종이를 불에 태워 공중에 날렸다.
레위기 20장 6절과 27절을 보면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불순종에 대한 형벌. 특별히 몰렉 우상을 섬기는 것과 신접한 자나(신들린무당) 박수무당을 쫓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거의 대부분의 죄악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여호와는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따르는자'(6절)에게 똑같은 형벌을 내리실 것. 삼상28:7~8에 의하면 사울 왕은 신접한 여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는 극악한 죄를 범한다.
삼상 28:7~8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여기서 신접한 여인은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낸다.
하나님은 접신한 자나 박수무당을 따르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끊어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접신한 자나 박수무당을 돌로 치라고 명령하신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려고 시도하거나 또는 죽은 사람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하는 신접한자나 박수무당도 반드시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제8차 WCC총회: 1998 하라레 (Harare, Zimbabwe)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제8차 WCC총회는 그 주제가 "하나님을 바라라.소망 가운데 기뻐하라(Turn to God ? Rejoice in Hope)”이었다.
이 총회의 특징은 WCC가 창설 된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 아프리카와 결속을 다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총회에서는 처음부터 WCC와 함께 하던 동방 정교회의 여러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응답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특별 담당부서(Special Commission)를 창설하였다.
이는 WCC의 회원 교회의 지경이 크게 넓혀진 것을 의미한다.
제8차 WCC 총회에 참석한 한국의 정현경 교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한복음 14:6의 내용으로 "그리스도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대답하기를 "예수님이 실수한 것입니다(Jesus was mistaken)"라고 말하였다 (Ralph G. Colas).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오늘날 WCC의 종교 간의 연합운동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 지금의 한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유주의신학>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에 유행했던 합리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하며 또한 교조적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신학적 조류를 말한다. 대체로 '정통주의 신학'에 대립해 사용하는 용어로, 성경이나 교회의 교리를 객관적으로 주장하는 데서 발생하는 강제 또는 억압에 대해 인간의 주체적인 활동의 의의와 여지를 인정하려는 신학을 말한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에 있어서 성경과 그리스도와 신앙의 이해는, 필연적으로 비판정신과 과학적인 역사연구 및 종교적 경험과 신앙의 실존적인 파악 등과 결부된다.
급진적인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신 존재 자체를 과감히 부인하거나 기독교의 본질을 사회참여에 두는 신학적 조류들이다. 여기에는 소위 '사신신학', '세속화신학', '상황윤리', '해방신학', '토착화신학' 등이 있다. 한국교회에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대체로 보수주의(근본주의, 정통주의) 신학과 대립각을 이루는 신학으로 이해되어 왔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1. 신학의 토대를 인간의 경험에 두었다. 성경이나 신조를 신학의 출발점이나 궁극적 규범으로 삼지 않았다.
2.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선재성,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에 대한 전통적인 교리를 포기하거나 거부했다.
3.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 신앙과 이성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했다. 그와 함께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 하여 종교적 관용의 태도를 취했다.
4. 낙관주의적 인간관을 지녔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6. 기독교의 윤리적,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7. 현대 과학과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훈을 중재하려고 시도했다. 즉, 인간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여 과학의 업적뿐 아니라 진리에 대한 접근 수단으로 과학적 탐구 방법을 수용했다.
해방 이전부터 꾸준히 자유주의 신학이 조선 예수교 장로회를 괴롭혔다. 해방 이전에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친일파였다. 해방 이후 친일파의 득세로 점차적으로 보수 신학이 무너져갔다.
1960년대 합동 측과 통합 측의 분열의 역사는 누구의 잘못을 떠나서 친일파 세력이 주동이 되어서 일어난 분열이다.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신학을 가진 고 박형용을 떼어내고 장로교회 모든 세력을 가져갔다. 그리고 1960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되었다. 그때에 분열의 축은 통합 측이었다. 합동측은 분파였다. 그 시대 미국 주류 장로교회가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 주류 장로교회는 1967년에 헌법을 전명 개정할 만큼 모든 신학적 입장이 전적으로 몰락했다. 미국 주류 장로교회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의 교리적 입장이 더욱 친밀하다. 그러나 미국 주류 장로교회 몰락은 매우 오래된 역사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이제 자유주의 신학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정통 신학은 없어져가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이 이유이다. 진리는 시대에 따라서 시류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진리를 버릴 것인가? 지금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교단적으로 신학적으로 표시하고 들어오지 않는다. 보수 교단 내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은 자연스럽게 오염된 신학적 입장을 가진 교수들을 통하여서 유입되고 있다. 막을 수 가 없다.
정교한 이론적 바탕을 가진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동성연애 문제 등도 모두 자유주의 신학과 무관하지 않다. WCC 문제도 자유주의 신학과 관련되어 있다. 이렇게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전반에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보수 신학을 표방해도 장로교 신학을 따르지 않으면 서서히 몰락 할 수밖에 없다.
<개혁주의 신학>
대체로 개혁주의 신학은 16 세기의 개신교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모든 신앙 체계를 포함한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신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그들의 교리의 근거를 성경에 두고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은 새로운 신앙 체계가 아니라, 사도들의 교리를 따라 추구하는 신앙 체계이다.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 그리고 전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때로 개혁주의 신학이 언약신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온 새 언약 (누가복음 22:20)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음과 실천의 모든 문제에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주권>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가지고 통치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분은 모든 사건을 예정하셨으며, 따라서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주권은 피조물의 의지를 제한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죄의 저자로 만들지도 않는다.
<은혜에 의한 구원>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와 자비에 따라 한 백성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고 구속하기로 택하셨다고 가르친다. 개혁주의 구원의 교리는 특정 단어인 TULIP (칼빈주의의 다섯 가지 포인트라고도 알려져 있음)에 의해 자주 소개된다.
T –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사람은 자신의 죄된 상태에서 완전히 무력하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전적 타락은 또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 전까지 인간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6:5; 예레미야 17:9, 로마서 3:10-18).
U - 무조건적인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영원한 과거로부터 하나님은 아무도 셀 수 없는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셨다 (로마서 8:29-30, 9:11; 에베소서 1:4-6,11-12).
L – 제한속죄 limited atonement: "특별한 구속"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친히 담당하시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셨다. 다시 말해, 그분은 단지 구원을 “가능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택하셨던 자들을 위해 실제로 구원을 얻어 내셨다 (마태복음 1:21; 요한복음 10:11, 17:9; 사도행전 20:28; 로마서 8:32; 에베소서 5:25).
I – 불가항력적인 은혜 irresistible grace: 사람은 타락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마음 속에 역사하여, 그가 이전에 거부했던 것을 원하게 만드신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택자들을 구원하는 일을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요한복음 6: 37, 44, 10:16).
P –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 하나님은 그분의 성도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신다. 따라서 구원은 영원하다 (요한복음 10: 27-29; 로마서 8:29-30; 에베소서 1:3-14).
이 세상에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신학이 있음에도 우리는 왜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가?
오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아무 오류도 없는 절대적인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의 이성이 부패해졌고 이러한 이성으로 수행하는 신학 작업에 오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경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신학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진리 체계이며 성경 이외에 모든 것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신학이다. 문제는 "무엇이 가장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가장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났던 시대는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와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였다. 교회 역사상 이 시대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났던 시대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희미했던 몇몇 계시의 말씀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들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종교 개혁자들이 이루어 놓은 신학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들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면 성경과 개혁주의 전통을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훌륭한 신학과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개혁교회라는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 신학은 한낱 이론에 불과하다. 개혁교회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별나고 이상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아니다. 개혁교회는 가장 보편적인 교회로써 오순절날 성령충만을 받았던 백성들로 이루어진 초대교회,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 가장 개혁되어진 교회이다.
<개혁주의 신학을 이루는 요소들>
첫째,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 안에서 성경과 더불어 성경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규범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한 이오타도 묵과하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성경의 기록은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을 따라 함부로 범하지 말아야 하는 침묵의 경계선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개혁주의 신학의 현저한 특징은 기독교의 가장 바른 전통을 가장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 자체가 신학의 새로운 발명이나 생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셋째, 개혁주의 신학은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 자신만을 높이며 하나님이 전부인 신학이길 원한다. 성경의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고, 그런 계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고, 구원을 얻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신학도 이러한 성경의 목적에 부응하여 하나님만 높이며 하나님만 드러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넷째, 개혁주의 신학은 "다섯 가지 오직"으로 표현될 수 있다.
1) 오직성경만이 신앙의 삶의 최종적인 척도라는 의미에서의 오직성경
2)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요 주님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자체라는 의믜의 오직 그리스도
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과 성화 가능함으로 오직은혜
4) 오직 믿음
5)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섯번 째, 교회의 정치에 관련된 것으로서 개혁주의 신학은 천국의 열쇠권이 베드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교회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는 칼빈을 따라 열쇠권이 독재적, 독자적, 주권적 통치가 아니라 "섬김"과 관계하며 "영적이고 도덕적인 권세"라고 했다.
여섯번째,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와 세속정치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세상의 정치와 구별되는 교회의 고유성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의 유일한 왕이시며 머리라는 점에 있다.
칼빈은 성도들의 자유가 하나님을 향한 자유이며 세상의 정권과 상전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순수한 양심, 즉 "모든 죄악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고발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양심"을 요구하고 있다.
칼빈이 보기에 교회 안에서의 저항은 "성경의 순수한 교리"가 순수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모든 그릇된 교리들의 모호한 속임수"에 대한 저항이다. 이러한 진리에 핍박의 칼을 겨누는 세속권력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저항이라 여긴다.
구원을 위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기복신앙과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형교회나 큰 교단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리더로 선한목자교회에서 은퇴한 유기성 목사와 그와 연합한 여러 목회자들이 함께 할것이고, WCC를 중심으로 연합한 교단과 총회들이 함께 할것으로 보인다.
유기성 목사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신학파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같이 연합화해서 앞으로 한국 교회에 지금보다 더 깊이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주의 신학의 거대한 세력앞에 개혁주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한없이 작아질것이다. 그러나 걱정말자 중요한것은 규모가 크고 작은게 아니라 누가 함께하는가이다 개혁주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것을 잊지말자.
결론입니다. 개혁주의 목회자들은 주님의 종들로 오직 하나님,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넓은길이 아닌 좁은길로 언제라도 자기십자가를 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할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서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