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강으로 3년 수강하고, 올해 충남 사립에 합격한 ○○○○입니다.
저는 21년, 22년, 23년 3번의 시험을 응시했고, 실제 올인으로 공부했던 기간은 21년과 23년입니다.
22년에는 일병행과 육아로 인해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 점수가 공립 합격점에서 많이 부족한 점수인지라 1차 공부 방법에 대해 드릴 말씀은 많이 없을 것 같고, 사립 2차 준비 위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공부할 때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여 합격하신 분들의 사례를 보고 동기부여가 되었던 만큼, 공부할 시간이 확보하기 어려운 맘시생분들께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들어가며
스스로 인성이 선생님이 되기엔 부족하다 생각하여 사범대를 지원하지 않았고, 역사를 좋아해 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막연히 학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대학 졸업 후 다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일과 적성이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교원자격증 취득을 위한 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엔 대학원도 일종의 보험 같은 느낌이었을 뿐 임용고시를 쳐서 교사가 된다는 꿈은 너무 막연해 보였고,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직업도 없는 저와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을 만나 나이 27세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10년 전인데 그때는 물가와 금리, 집 값 등이 지금과 상당히 달라 외벌이로 결혼생활을 꿈꾸기도 했었네요. 사실 그때도 맞벌이가 많긴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에도 교사의 꿈이 간절했다면 아이를 낳기 전에 대학원 5학기와 임용고시 수험기간을 버텨내야 했는데 그때는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느라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고, 육아 중 겨우 대학원은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 후에도 임용고시는 생각하지 않았고, 교원자격증을 받은 후 기간제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과 생활이 재밌었고, ‘나와 잘 맞는 일이겠다’ 생각하여 21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2. 임용고시 시작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가졌음에도 저와 신랑이 약속한 기간은 딱 1년이었습니다. 역사 임용고시에 대해 잘 모를 때기도 했고, 전업주부였던 제가 육아와 살림을 장시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양가 부모님이 멀리에 사시고 바쁘셔서 육아의 도움을 구할 수 없었고, 남편도 새벽 5시에 출근 버스를 타기 때문에 육아는 오롯이 제 몫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7세 때는 유치원의 도움이 가능하여 아이가 학교 입학하기 전 나에게도 마지막 1년이라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 공부 계획 세우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인터넷 강의, 1타 강사를 맹신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김구전공역사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시리즈와 각종 기본서를 구매하고 합격 수기를 읽으면서 공부의 방향성과 큰 틀에서의 스터디 계획을 세웠습니다. 1~4월에는 전공 강의를 듣고, 문제내기 스터디를 통해 서개, 한위중, 한국사통론을 매일 할당 분량을 읽어나갔고, 기본 내용을 숙지하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시간이었습니다.(공부를 한 지 10년 넘었기 때문에 공부 초반에는 엉덩이 붙이고 오랜 시간 앉아있는게 어려워서 1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알람 울리기 전에 절대 일어나지 않기 등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동양사와 서양사는 기본서라는 것도 정해져 있는 편이어서 공부 계획을 세우는데 어렵지 않았지만 한국사는 무엇을 볼지 고민이었습니다. 책을 다양하게 본다해도 제 능력상 다 소화시키지 못할게 뻔해서 최소의 책을 보고자 한국사 기본서로는 한국사통론(전근대), 교과서(근현대)를 주로 보았고, 사학사의 경우는 다찾우를 참고하였습니다. 21년도에는 강의에서 한국사 길잡이, 한국사 특강을 다뤄주셨지만 정말로 다뤄주시는 부분만 발췌독 했습니다.
2) 교육학의 패착
교육학은 권지수 선생님의 1~2, 3~4월 강의를 들었고, 7~8월 강의도 들으면서 지속적으로 인출하는 스터디를 했습니다. 모든게 생소한 개념이고 이론이었기 때문에 개념과 이론을 외우는데만 급급한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1학년도 교육학이 오픈형으로 나오면서 적용력이 떨어지는 저는 이 공부방법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고, 교육학이 너무 원망스러운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고 이듬해에 공부가 부족했음에도 18점을 맞았는데 이렇게 기반을 다져놓은 덕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교육학 마지막 9~11월 파이널을 안들었는데, 그 이유는 같은 임고생이었던 저보다 장수생인 동생이 절대 들을 필요가 없다고, 문제만 구해서 풀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제 신랑은 도대체 합격자 말도 아닌, 장수생의 말을 왜 들은거냐 당연히 인강을 수강해야되는거 아니냐라고 하더라구요. 그때는 모든 요소가 다 아쉬우니까 아 맞는 말인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른 분들의 말을 참고하시되 왠만하면 합격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3) 역교론의 패착
비사범대 출신이라 역사교육론이 거의 난생처음 듣는 과목이었는데 수업을 들을 때는 끄덕여졌지만 개론서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다 보니 후반으로 갈수록 적용 문제가 어려웠고, 사실 적용이 잘 안된다는 것도 모른채 시험장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한 예로 21년에는 역교론에서 평가 문항이 어렵게 나오면서 와르르 틀려버렸고, 이러한 실패를 통해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수업상황에 맞게 적용 가능한 정답을 작성하도록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기출분석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4) 초수생을 마치며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6월부터 약 두 달간 3명의 선생님과 교과서 분석(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을 했던 것입니다. 한 과목이 다 끝나면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는 방식이었고, 기준이 되는 교과서를 하나 정하고 (한국사 경우에는 지학사로 했음) 3개 출판사를 선정한 후 한 사람당 한 종류의 교과서를 맡아서 지학사에 없는 내용을 사진으로 첨부하여 올리면 참고해서 각자 지학사 교과서에 다시 정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교과서가 대충보면 너무 쉬운 내용같지만 샅샅이 살펴보다보면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교과서 분석을 강제성을 부여해서 하다보니 더욱 꼼꼼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6월 강의를 들으면서는 강의 내용 복습 문제 만들기를 했었는데, 개론서나 프린트를 참고하여 문제를 만드는 간단한 것이지만 이 시험이 처음이었던 저는 매 스터디가 부담이었습니다. 제가 중요도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낸 문제는 왠지 허접(?)해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제가 개론서 회독에 더해 이런 트레이닝을 거쳐서 전공 지식에 대한 기본기를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시험이 끝난 지금 시점에 생각해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만이 전공 내용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한 점은 많지만 가장 큰 오류는 기출분석을 소홀히 한 점, 교육학과 역사교육론의 시험 스타일에 스며들지 못해 적절한 공부 방법을 찾지 못한 점 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면 너무 부족한 점수인데 ‘무조건 합격할 수 있다’라는 패기로 1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수가 무섭다는 말을 첫 탈락 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열정은 이 21년에만 반짝 빛을 보이고 사라졌거든요. 그 이후로는 패배주의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22년에는 심지어 공부를 접게되었습니다.
1차 탈락 후, 임용고시를 1년 만에 붙을 거라는 계획이 무모한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1년을 더 한다고 붙을 수 있을거라는 자신도 없었고, 돌볼 아이와 가정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공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2년에는 운이 좋게도 집 근처에서 기간제를 하게 되었고, 육아로 인한 돌발상황에서도 많이 배려해주시는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재계약 과정에서 육아가 발목을 잡더라구요. 양쪽 부모님이 멀리에 사셔서 아이가 갑자기 아픈 돌발상황에서도 제가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학교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고, ‘역시 기간제는 기간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시험 준비를 많이 못하고 얼떨결에 치른 2022년도 시험에서는 사립 최종에서 탈락하는 경험까지 하게되었습니다. 공부를 안했으니 탈락한 것도 별로 아쉽지는 않았는데, 저를 제치고 합격하신 분이 학교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분이라는 소식을 아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안했기에 망정이지 절대 사립은 1지망으로 응시할 곳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지금 사립 합격 수기를 쓰고있네요.
이런 쓰디쓴 경험을 한 후, 저도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고, 남편도 제가 불쌍했는지 ‘마지막으로 1년만 더 공부해보라’ 라고 하더라구요. 공부를 하고 말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아이 엄마의 도전은 안타깝게도 남편의 전적인 서포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작년 한 해 동안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 삼수의 시작
기간제 생활로 번 돈으로 김구전공역사 1년 패키지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교육학도 설보연 선생님 텐션에 반해서 설보연 선생님으로 변경했습니다. 두 번째로 응시한 22년에는 교육학 시험이 평이하여 점수가 잘 나오긴 했지만 초수때와 같이 오픈형으로 나올 때를 대비하여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점수는 잘 안나왔지만 설보연 선생님 강의를 듣는 시간이 제 수험 생활의 활력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내용도 임팩트 있게 전달해주시고 어떻게 머릿속에 쏙쏙 이해되게 설명하시는지 그리고 너무 재밌으셔서 교육학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제가 작년에 참고했던 수험서입니다
서양사에서 ‘사료로 읽는 서양사’를 봐야한다고 생각했지만 5권으로 양이 상당해서 제가 다 흡수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격상 발췌독만 하면 공부를 안했다고 생각하는 완벽하지도 않은데 완벽주의 같은 경향이 있어서 애초에 시작을 안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찝찝했습니다. 오히려 시민의 한국사는 잘 안봤어도 찝찝함이 덜했는데 서양사 부분은 유독 그렇더라구요. 시험 후 느낀점은 꼭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사는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책이 너무 많이 열어봐서 겉면이 다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는데 이번 동양사 시험에서 거의 출제가 되지 않아 슬픔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렇게 개론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한 이유는 21년, 22년 시험을 경험해본 결과 개론서를 완벽히 숙지하면 붙을 수 있는 시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서양사
서양사개론 공부했던 방법은 김태규 선생님이 알려주신대로 문단을 끊어서 주제를 적으려고했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5개년 기출은 노란 스티커(다시 출제되기 어렵다고 생각해 스티커 크기도 작음), 2010년대 기출은 초록색 스티커로 표시하였고, 모의고사반에서 다뤄주신 내용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은색 스티커로 표시하였습니다. 마지막 파이널 정리해주신 부분에서는 이제 다시는 안볼 책이라고 생각하여 진한색으로 씹어 먹으라고 하신 부분에서는 씹어 먹자... 라고 써놓기도 했습니다..
서양사강좌도 꼭 보고자 노력했는데, 같은 시기를 다루어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명이나 조약명 등 서개에 빠져있는 내용이 제법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서개를 읽고 서강좌를 읽으면 김태규선생님 말씀처럼 뭔가 머릿속 퍼즐 조각이 조금 더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 동양사
초수 때 당고의 금과 관련한 환관 내용 작성에 대해서 후한 시대와 명 대의 환관 내용을 짬뽕해서 쓰는 기염을 토했던 아픔이 있어서 동양사개론과 한위중을 굉장히 철저하게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초수때와 같은 횡설수설이 많이 극복된 것 같았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새로운 타격을 당하는 바람에 공부 방법과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구영모 선생님이 매번 나눠주신 프린트 덕에 시대를 헷갈려 했던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 현대사 부분은 봐도봐도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한 챕터를 하루에 본다고 한다면 중국현대사 부분은 한 챕터를 이틀에 걸쳐서 보거나 한번 보고 또 한번 보는 방식으로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노력했습니다.(그렇지만 계속 까먹어서 진짜 당황스러웠습니다 ㅠㅠ...)
3) 한국사
한국사는 정말 양이 방대하여 더 과감히 볼 것만 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기본으로 삼은 책은 선위한과 구영모 선생님이 매 수업때 나눠주시는 프린트였습니다. 한국사는 맥락없이 외워야하는 부분도 많아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은 지면에 많은 내용을 정리한 선위한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론서를 따로 안보는 대신 매번 나눠주시는 프린트 내용은 완벽히 숙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많이들 하시는 프린트 내용에 대한 복습 스터디도 4월부터는 지속적으로 해서 강의를 듣는 것 외에 복습에도 강제성을 부여하여 한 번 더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21년에 구매한 선위한을 기본 교재로 삼았는데, 사실 23년 버전으로 새로운 책을 샀지만 일단 필기를 옮겨적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를 했고, 책을 사진찍듯이 기억하고 있는 느낌도 있어서 옛날 책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대신 새 버전 책에 정리해두신 내용 중 가시적으로 학습하는데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잘라서 붙여 눈에 익히도록 했습니다. 또, 교과서 중에 지도 부분도 가차없이 잘라서 붙여놨습니다
4) 역교론
역교론은 1년을 공부했지만 정말 무지몽매한 상태였기 때문에 쇄신이 필요했습니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봤던 책을 더 열심히 보는 것이 제 방식이었지만 이것은 쇄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의 개선방안을 찾아본 결과 역교론은 기출을 분석해야 한다는 점과 첫걸음, 평가책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임용을 공부하면서 공부를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봐도 본 것 같지 않은 게 바로 교과서와 기출 분석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공부 방법을 모른다는 거겠죠. ㅠㅠ 기출의 방식은 스터디원 4명이 매주 1회년도의 분량을 한국사 -> 서양사 -> 동양사 -> 역교론 매주 저 순서로 돌아가면서 기출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 예시인데 사실 맞게 분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역교론의 경우에는 저 한 문제만 분석하더라도 유사 기출 사례나 관련 내용을 샅샅이 찾아보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김태규 선생님도 기출을 여러 번 다뤄주시기 때문에 역교론은 이런 과정을 거쳐 기출의 가닥(?)을 좀 잡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초수때 시험 전날과 이번 시험 전날 역교론을 받아들이는 제 자세나 느낌이 달라진 걸로 봐서 일 년 동안 역교론에 시간을 투자한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5) 슬럼프 극복
초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슬럼프가 꽤 많았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못해 숨이 잘 안쉬어지는 상태가 계속되기도 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힘들지 않은 걷기 운동이라도 여름 전까지 주2회 정도는 꾸준히 하려고 했고, 그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보다 더 값진 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20대의 체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에 부침을 느꼈습니다. 남편도 힘들면 그만해라. 부모님도 왜 그걸 굳이 하려고 하니. 아이마저도 엄마 아프니까 그만해. 또 떨어지면 울거잖아. 라며 포기를 권했고, 저만 조용히 포기하면 겉으로는 다시 평화로운 가정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순간마다 뭔가 이대로 포기하기엔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합격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이에게도 불합격한 엄마보다 포기한 엄마가 더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니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험 막판에는 피부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었는데 피부과 의사 선생님 마저도 무슨 공부를 준비하는지 모르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은거면 그만두는게 어떠냐고 본인의 생사를 오갔던 경험담을 말씀해주시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이도 있고, 몸도 안 따라주는 제가 고집부릴 일인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갔고, 결국 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본인의 진로를 찾아 땀 흘리던 젊은 시절에 치열한 고민없이 가볍게 선택해왔던 나의 숱한 포기가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이번에 실패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의미가 있을거다. 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 같습니다. 젊을 때 쉽게 포기하면 이렇게 30대 중반이 넘어서도 다시 똑같은, 어쩌면 더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힘을 내려고 노력해서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6) 스터디 & 공부계획
7월부터 너무 좋은 스터디원 선생님을 만나 짝 스터디를 했었는데 7-8월 동안은 프린트를 복습하는 스터디와 함께 선위 시리즈도 범위를 정해 매 스터디마다 문제를 내는 방식으로 함께 회독하였습니다. 너무 꼼꼼하게 정리를 잘하시는 선생님이어서 제가 정리한 내용 말고 짝스터디 선생님이 정리하신 내용으로 다시 한번 복습해야 개운하게 해당 단원이 마무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9-11월 같은 선생님과 짝스터디를 진행했는데 이 때에도 프린트를 주요 스터디 내용으로 하되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교를 분량을 정해 본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리하기 스터디를 했습니다. 문제만 있는 파일, 문제와 답이 함께 있는 파일로 작성해서 상대방이 정리한 것을 각자 풀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밑에 그림이 제가 정리한 파일 예시입니다.
4월 무렵부터 9월까지는 대부분 아래 ‘9월스터디’ 표 대로 모든 과목을 1달에 1회독을 목표로 했습니다. 주말에는 빠진 내용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삼거나, 아이와 하루 오후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해야했기 때문에 빠듯하게 짜지는 않았습니다. 또 성격상 할당된 분량을 하루 내에 못 채우면 기분이 매우 찝찝했기 때문에 애초에 많은 양을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월부터는 밑에 표처럼 회독 기간을 10일정도로 압축했습니다. 이 계획은 많이들 하시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공무원 수험강사이신 ‘전효진의 8421공부전략’을 참고했습니다. 마지막에는 2일에 1회독, 1일에 1회독 이런 방식인데 2일에 1회독 까지는 어떻게 따라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모의고사는 작년 것을 7월부터 매주 1회씩 풀어봤는데 줌으로 화면 켜고 시간을 재서 푸는 스터디를 구했습니다. 작년 문제도 양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감있게 풀어보고 싶었고, 혼자 푸는 것보다 강제성이 있어서 밀리지 않고 좋은 스터디였습니다.
이렇게 공부 계획을 세웠지만 11월 18일, 시험을 딱 1주일 앞둔 날 아침에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말로는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저희 신랑을 키워주시고 제 아이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해주시던 할머니셨기 때문에 정말 슬펐고, 잘 보내드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사실 조금 암담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3일장 치르고 산소에 모시고 돌아와서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할머니가 도와주시겠지’ 생각했고, 시험을 보고나서는 너무 예상밖으로 시험을 치르고 왔어서 그 3일이 나에게 주어졌대도 더 좋은 점수는 받지못할 것임에 확신했습니다.ㅋㅋ 그런데 이렇게 비루한 점수에도 불구하고 행운의 결과를 갖게 된 것은 정말 할머니께서 마지막 선물을 주시고 떠나신 것 같습니다..
4. 2차 시험 준비
1) 발표 전
시험을 완전 망했고, 어차피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간 쌓아온 프린트도 시험을 보고 온 날 오후 빈 상자 2박스에 가차없이 채워서 다 버렸습니다. 저 스스로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와 남편이 엄마 없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왔고, 이제 합격을 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생활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망한 마당에 2차 준비도 안해도 될 것 같았지만 이번 시험이 인생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그냥 할 몫은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스터디를 구했습니다. 제가 지방에 살고 아이가 있어서 서울로 이동이 어려웠는데 다행스럽게도 좋은 선생님 두 분을 만나 집 근처에서 12월 내내 수업실연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수업실연’ 책으로 정했고, 동아시아사가 나올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져서 동아시아사부터 세계사, 한국사, 순으로 수업 연습을 했습니다.
스터디원 선생님 중에 2차 경험이 있으신 분도 계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2차 준비는 두 번째라 처음보다는 나았지만, 실연 문제를 받고 20분 동안 구상을 하는 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내용도 훨씬 풍성해졌고, 비언어적인 요소들도 많이 교정되었습니다. 확실히 다른 분들 눈으로 봐주시니 녹화를 해도 스스로 캐치하지 못했던 단점들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3회(?) 진행되었던 양왕경 선생님의 면접특강도 들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매번 가서 들어야했으나 그것마저 안 하면 면접 준비는 더 안 할 것 같았고, 제가 면접에는 취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충남으로 응시했기 때문에 면접도 충남 평가원 스타일에 맞춰서 준비했습니다. 면접에 대해 거의 전혀 몰랐던 사람으로서 양왕경 선생님의 면접특강은 짧지만 임팩트있게 말해야 할 것만 딱딱 말해주시는 깔끔한 강의였습니다. 어떻게 답변을 하는지 틀과 관련한 것 부터 면접에서 공부할 내용의 중요도까지 체계적으로 심플하게 알려주셔서 그대로 복습하기가 수월했습니다.
실제 면접장에서도 알려주신 면접 틀을 써서 답변이 그나마 깔끔하게 들렸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저 같은 사람은 사교육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면면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2) 발표 후
사립 최종에서 탈락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사립은 생각도 안했고, 공립 탈락으로 깔끔하게 종료될 줄 알았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2지망에 쓴 사립 1차에 합격했습니다.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쓴 학교였고, 쓴 이유는 2명을 선발하는 학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립은 내정자다 뭐다 말이 많은데 2명을 뽑는다면 내정자가 있다 해도 1명이겠지 싶어서 지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일단 사립에 대한 불신이 많았던 저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들러리만 서다 오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응시한 학교의 2차 시험 공고 내용에 실연 15분, 면접은 평가원 유형으로 구상형과 즉답형으로 출제된다고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었습니다. 스터디는 줌으로 면접 스터디만 구했을 뿐 수업 실연 스터디는 따로 구하지 않고 집 앞 스터디 카페 스터디룸에서 몇 번 연습해봤습니다. 무엇보다 12월에 스터디를 지속적으로 했지만 다른 스터디원들이 주신 피드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고, 김태규 선생님이 수업실연 특강을 해주신 내용 중에 활용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내용도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서 이 두 가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따로 스터디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립의 경우에는 스터디는 물론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사립은 조건도 공립과 다르고 학교별로도 다르기 때문에 연습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스터디를 하는 것 보다 차라리 관련분야의 다양한 분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은 수업지도안 1시간 작성에 실연 15분이었는데, 공고문 자체에 수업지도안에 대한 점수는 기재가 되어있지 않고, 수업실연 50점, 면접 50점으로 되어있어서 지도안을 특별히 연습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또한 작년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 작년에도 수업 실연 때 지도안을 작성하라고 되어있었지만 막상 당일에는 지도안은 걷지 않을테니 자유롭게 작성하라고 하셨어서 이번에도 유사할 것이라 생각했고, 수업지도안에 대한 점수가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도안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저는 지도안에 거의 판서 내용만 썼고, 다른 지원자 중에는 한 장을 넘어 두 장도 쓰신 분이 계셨는데 지도안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라 아무래도 고등학교 한국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고,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를 모두 살펴보고 갔지만 실제로도 고등학교 한국사가 출제되었습니다.
수업보다 걱정이었던 것은 면접이었습니다. 작년 사립의 경우 면접이 존경하는 인물부터 개인정보에 관한 내용까지 종잡을 수 없는 질문들을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구상형과 즉답형이라는 평가원 스타일이 좀 더 공정하게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작년과 같은 질문이 돌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해당 학교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창업자의 이력, 해당 학교의 교육 활동 내용, 특화된 스포츠 부서나 행사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조사하였고 이는 혹시 모를 질문에 대비하는 용도였습니다.
평가원 스타일의 면접이라면 실제로 공부할 내용이 있는 것이고, 순발력이 없는 저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했습니다. 면접특강에서 들은 순서대로 면접레시피를 샅샅이 뜯어보며 교직관과 관련된 질문과 대답을 정리하고, 최근 화두가 되고있는 ai나 디지털 기반 교육 이슈, 시행 중인 혹은 시행을 앞두고 있는 교육정책을 정리하였습니다. 줌으로 평가원 면접 준비하시는 분과 함께 일주일에 3번씩 면접 연습을 하였습니다.
순발력이 없는 편이어서 몇 번 연습해본 수업 실연보다 면접이 더 막막했고, 두려웠지만 면접래시피를 보면서 나만의 모범답안을 만들고 실제 입 밖으로 내뱉어보는 연습을 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면접은 면접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떨리더라구요.
5. 2차 시험
1) 수업실연
마실 물도 준비해오라고 사전에 문자가 왔었고, 수업 실연과 면접 대기실에는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1시부터 시험이 시작되어 12시 40분까지 응시생 6명이 모여 순서를 뽑았습니다. (3배수, 2명 선발) 한 번도 마지막 번호를 뽑은 적이 없는 저인데 마지막 번호 6번을 뽑았습니다. 한 교실에서 6명이 1시간 동안 수업지도안을 작성하는 것이었고, 배부받은 수업주제는 고등학교 한국사 동학농민운동(약 5~6페이지)이었습니다. 일단, 고등 한국사 동학농민운동의 내용이 너무 세세하고 설명해야 할 내용이 많은데 15분이라는 수업실연 시간 동안 어떻게 수업을 핵심적으로 설명할지 생각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공고문에 수업지도안은 점수가 안들어간다고 써있어서 실연할 때 적을 판서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적는 정도로만 지도안을 작성했습니다. 수업지도안 작성 시간이 끝나고 1번분부터 15분씩 수업 실연을 시작했고, 실연 전에 5분정도 다시 지도안을 보여주시고 구상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총 20분(5명)×5=100분 정도 기다린 후 제 차례가 되었고, 수업실연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업의 조건은 평가원보다는 다소 단조로웠는데,
강의식(전개, 결과를 시연할 것) 2. 판서를 활용할 것 3. 순회지도 할 것
4. 학생활동 5. 사료학습활동 할 것 으로 기억합니다.
수업은 녹화가 되었고, 심사위원은 나이가 많으신 분부터, 젊은 선생님까지 골고루 3분이 계셨습니다.
수업에서 도입 부분을 시연하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주제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야 스스로 수업이 부드럽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동학이 창시된 시대적 배경과 동학의 기본 이념 등을 연계해서 하층민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게되었다는 내용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면서 먼저 종교적 성격, 정치적 성격으로 양상이 변화함을 구분하면서 시작하였고, 고부민란-1차봉기-2차봉기의 순서대로 설명하였습니다. 1차 봉기 이후 다시 봉기를 일으키게 된 원인을 외세의 침략과 연관시켜 이전차시의 갑신정변에서 배운 톈진조약을 상기시키며 일본의 경복궁 습격, 청·일전쟁을 강조해서 설명하였고, 이와 같은 내용을 판서하였습니다.
수업실연 시간이 짧고, 설명할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학생활동은 사료학습을 함께하는 것으로 상정하였고, 사료학습 중 순회지도를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퉁쳐서 구상하였습니다. 사료학습에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내용이 나왔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OO모둠의 2명의 학생이 ‘박은식이 동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인물이다, 아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인물이다’ 라는 상반된 주장을 하는 상황을 상정하였고, ‘00모둠은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지고 있나요?’ 라며 순회지도를 통해 유학자인 박은식이 동학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였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덧붙여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모둠에서 태블릿으로 검색해본다면 좀 더 발전적인 사료학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마무리했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시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ㅠㅠ 그래서 중간에 끊겠거니 하고 수업을 했는데, 끝날때까지 수업을 중간에 끊지는 않으시더라구요. 그래서 결론은 제 수업이 몇분이나 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15분을 안넘었으니 중간에 컷을 안했겠거니. 할 뿐 이었습니다.
2) 면접
수업실연을 끝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니 나머지 응시생 분들이 있었고, 다시 1번부터 순서대로 면접을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5분이 끝날때까지 기다렸고, 면접은 아까 5분 대기 하던 곳에서 구상형 2문제를 10분 구상하고 들어갔습니다. 면접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면접이 약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더 떨리고 연습때보다 지문도 길었던 것 같습니다.
구상형 1번 문제는 미래사회의 진로와 관련한 내용을 주고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3가지와 이를 교육에 구현할 수 있는 방안 3가지를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역량만 3가지 말하는 것도 힘든데 구현까지.. 저는 역량과 구현방안을 함께 말하는 방식으로 답변했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교사가 미래의 산업의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를 진로체험박람회, 산업박람회 체험등과 연계시켜서 구현할 수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두 번째는 진로를 상담하려면 학생들과 래포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감을 바탕으로한 의사소통 역량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를 구현하는 방법으로는 학생 관찰일지 작성을 통해 장점 파악하고 칭찬해주기를 할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세 번째는 디지털리터러시역량으로 답변했는데, 제시문에서 ‘미래사회가 기술의 변화로 인한 교육의 변화가 빠르게 나타난다’ 이런 느낌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상형 2번 제시문은 카톡채팅방에 미성년 학생도 쉽게 접촉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문제상황이 발생한 학생 A,B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문제 상황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2가지씩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해결방안은 학생 대상 온라인 성범죄 사례를 뉴스나 동영상으로 보여주어 경각심 일깨우기, 처벌규정을 명확하게 인지시키고 위험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안내하기,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윤리교육 하기(?) 등을 대답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면접 스터디 때 유사하게 다루어봤던 주제여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상형이 끝나면 앞에 있는 문제를 펼쳐보게되는데, 즉답형 3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현정권의 수능 킬러문항 없애기에 대한 본인의 의견말하기였습니다. 이것은 제 의견을 정리해본적은 없었지만 교육학 수강할 때 설보연 선생님께서 킬러문항에 관한 내용, 25학년도부터 바뀌는 고교내신평가방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서 쉽게 답변할 수 있었습니다. 킬러문항이 없어졌다고 해도 올해 수능에서 만점자도 적었고, 수험생들의 체감난이도도 높았기 때문에 그다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이라는 시험제도가 존재하는 한 변별력이 있는 문항들이 출제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와 유사하게 답변하였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디지털리터러시의 뜻과 교육과정과 연계한 사례였습니다. 이것은 <면접레시피>에서도 작년에도 올해도 내용으로 다루고 있고, 현재 교육계에서 많이 강조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정리해봤던 내용이었습니다. 답변으로는 <2022 역사과 교육과정에서 역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방식중 온라인 전시를 적극 시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디지털 리터러시와 연계한 것은 온라인 박물관이나 각종 디지털 아카이브에 수록된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고교학점제 운영 자체가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고 학점을 획득할 수도 있는 제도이며,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소통과 협력의 역량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도 교육과정과 디지털리터러시가 연계된 사례이다.(?)> 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202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중·고등학교 교육정책이었습니다. 2가지를 말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일단 중학교와 관련해서는 책임교육학년제가 시행된다는 것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어서 그것을 답변했고, 다른 한 가지 답변은 기억이 나지 않아 202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25학년도부터 고교내신평가가 성취수준에 따라 5등급으로 절대평가로 시행된다. 이는 내신 경쟁 과열을 방지하는데 효과가 있을것이지만 내신경쟁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학군지로 쏠림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우려가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것도 설보연 선생님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이기는 합니다. 일단 24학년도와 관련된 내용을 말하라고 했지만 제 머릿속에는 한 개 밖에 아는 내용이 없었고, 24학년도에 시행되는 내용은 아니어서 답변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무 말도 안하는 것 보다는 25학년도 고교내신평가 내용을 말하자 싶어서 말을 했는데 제일 끝쪽에 계신 젊은 평가위원께서 고개를 갸우뚱 하셨습니다. ㅋㅋ 그래서 아 망했나? 생각이 들어서 멘탈이 잠깐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냥 하던 말을 마무리 하기는 했습니다.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제가 6시가 거의 다 되어 응시자중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왔고, 끝났다는 마음에 홀가분하긴 했지만 정말 제가 붙을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6. 마치며
중등 역사 임용의 현실을 모르고 당돌하게 임용 공부를 시작하고, 2번의 좌절 끝에도 마침내 끝은 내야한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제 과거 모습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독서실에서 밤을 지새웠던 학창시절, 역사를 시작한 대학교 4년, 교육대학원을 5학기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냥 주부로 살 거였으면 왜 10년을 넘게 공부를 한다고 했던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창피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게 젊은 날의 제 선택이었으니 선택에 대한 후회였겠지요. 또, 시험에 계속 떨어질 때는 ‘내가 역사를 선택해서 이 고생을 한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 역사는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과학책만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지만 미워하기도 한 역사인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더니 역사책을 보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었네요.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도 좋지 않고, 나이도 많고 여러모로 상황이 어려웠던 저도 작은 성과는 이루었으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꼭 더 큰 결과를 이루실 겁니다. 합격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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