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깊이를 가늠하는 시
김영춘(시인)
느릿느릿 휘적휘적
며칠 뒤에 다시 만날 사람이라서 술 한 잔을 잠깐 나눈 후에 헤어졌는데도 그 마음이 예사롭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각별히 아꼈던 정양 선생님과 함께 있다가 헤어지는 자리라면 어쩌겠는가? 그런 날은 다른 날보다 더 특별하게 하룻밤의 잠을 설치고 만다. 그 자리에서 나눴던 몇 마디 말들이 그 밤을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이나 어슴푸레 어두워져 오는 무채색의 무늬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이러저런 생각의 속도는 몹시 느리기까지 해서 결국 하룻밤을 새울 수밖에 없게 된다.
몇 해 전에 선생님은 전주를 떠나 용인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는데 선생님 없는 전주가 허전해질 때마다 이 느리게 번져가는 속도와 빛깔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으로 그 허기를 달래보곤 했다. 아마도 나는 선생님을 만나서 살아오는 동안에 벌겋게 타오르는 전라도 쪽의 노을이나 어두워오는 저녁 어스름의 빛깔을, 선생님의 시와 인생을 둘러싼 배경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하근이는
허리 좀 펴고 살라고 잔소릴 했고,
굽은 게 허리 아닌 등짝이라고
번번이 일러두어도 하근이는 번번이
허릴 펴라고 되씹곤 했다
내 구부정한 모습 유리창에
얼핏얼핏 비칠 때마다
무슨 대단한 짐이라도
짊어지고 살아온 것 같아
이 세상에 얼핏 민망하기도 하거니와
고집스럽던 하근이 모습
얼핏얼핏 되살아나
유리창 앞 발길 멈추고 서서
오가는 세월 우두커니 곱씹어본다
「유리창에 얼핏얼핏」 전문
평론을 하셨던 오하근 선생님과 생전에 서로 주고받았던 조각 말들이 시를 이루었다. 화자는 여전히 굽은 등을 펴지 못한 채 유리창 옆을 스쳐가고 있다. 떠나간 친구와 함께 지나쳐 왔던 세월을 곱씹어 보는 화자의 눈길이 읽는 사람의 어딘가를 저릿하게 하고 있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오가는 세월’이나 ‘저릿함’ 대신에 ‘굽은 등’으로 몸을 숙인 채 휘적휘적 걸어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나 떠올려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선생님은 원래 몸이 크다. 크지 않은 곳이 없다. 손이며 발이며 머리며 눈 코 입 모두가 크고 길쭉길쭉하다. 목소리까지 낮으면서도 우렁우렁하다. 그 덕에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선생님을 알아볼 수가 있다. 모두가 한 눈에 알아보는 이 커다란 키를 데리고서 한 생애를 지내오셨다. 하지만 살아온 날 어디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싶은 하늘이 있었겠는가? 머리를 항상 떨구고서 걷는다. 그래서 나 또한 ‘굽은 게 허리가 아닌 등짝’이라는 이 시 구절이 맞는 말씀이라고 맞장구를 쳐본다. 몸이 앞으로 넘어올 듯 말 듯 등을 숙인 채 두 발은 땅바닥을 끌다시피 걸음을 내딛는다. 영추니 잘 있어 잉~ 이것은 선생님이 우리와 헤어질 때 보여주는 뒷모습이다. 느릿느릿 휘적휘적. 벌건 노을 같은 빛깔을 등 뒤로 늘어뜨리고서는 전주에 잠깐 들렀다가 용인으로 가신다. 이래서 정양 선생님과의 작별은 그때마다 오래 걸린다.
민화(民話)로 되살아난 시
정양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직접 오신 게 아니라 단지 원고만 보내오셨다. 한 번 읽어들 봐아~. 넘기는 시편마다 김제군 공덕면의 마재라고도 부르는 마현리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가득이다. 원래 김제에서 태어나셨지만 1949년 무렵에 종가가 있는 마재로 와서 살게 되었다고 하니 한국전쟁을 앞뒤로 한 삶의 흔적일 것이다. 그 헐벗고 가난한 시절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이렇게 각각으로 빛나는 인간의 모습일 수 있다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소박하고 솔직한 생활의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잘 갈무리된 마재마을의 민화를 발견하고 만다. 전쟁 직후의 고통과 절망이 시인의 붓끝에서 마재 민화로 되살아나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몰려다니고,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어른들은 호통을 치다가도 아이들을 끌어안는다. 시적 긴장을 위한 시적 장치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선생님에게는 시를 이루기 위한 시적 장치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게다.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아니면 또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가치에 관한 관념들을 이렇게 단순화하여 사람만을 향하게 할 수 있다니. 시를 읽는 내내 재미있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1942년 태어났을 무렵에서 해방공간과 전쟁이라는 근현대사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야 했던 한 시인이 드디어 민화 속 화폭으로 피어나서 김제 만경 들판을 건너 오시나보다. 저기 저 먼 하늘 쪽 지평선을 행해 훌훌 풀어놓으시나보다. 시로 이루어진 마재 민화의 화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나는 그동안 나의 시 공부를 통해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커다란 후련함을 맛보게 된다.
육백 년 묵은 은행나무 아래
일백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들판 끝 야산자락 마재마을에는
이런저런 쟁이들이 살고 있었다
통쟁이 땜쟁이 사진쟁이 갓쟁이
점쟁이 대목쟁이 허풍쟁이 야꼽쟁이
아편쟁이 소리쟁이 개구쟁이 방귀쟁이에
바람쟁이도 끼어 한몫 거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분
이 시집에는 통쟁이, 땜쟁이, 사진쟁이, 갓쟁이, 점쟁이, 대목쟁이, 허풍쟁이, 야꼽쟁이, 아편쟁이, 소리쟁이, 개구쟁이, 방귀쟁이, 바람쟁이 같은 무슨 무슨 쟁이들 말고도 다른 수많은 마재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 시절 삶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난한 시절의 나그네처럼 동네 고샅을 어슬렁거리던, 나그네치고는 목청이 좋고 흥이 넘치던 ‘땜쟁이’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간다.
구녁 난 냄비 때워유
솥단지 금간 디 때워유
내오가느 금간 디도
소문 안 나게 감쪽가치 때워드려유
풀무 화덕 어깨에 메고
이 마을 저 고을 드나든다고
괴얀스레 의심허지 마러유
들락날락 들락날락험시나
밀고 땡기고 밀고 땡기는
풀무지레는 이골나씨유 벌거케
화덕 달구는 디도 이골나씨유
바람난 여편네 바람 구녁도
다시는 바람 안 나게
야무지게 때워드려유
엉겁겨레 빵꾸 난 숫처녀도
암시랑도앙케 때워드려유
엿장수한티 헐갑세 넘기지 마러유
냄비 구녁 바람 구녁
줄줄줄 새는 건 다 때워유
가마솥도 금슬도 금간 건 다 때워유
풀무지레 이골나씨유
화덕 달구는 디도 이골나씨유
「땜쟁이 노래」 전문
전쟁 이후로도 20~30년이 넘게 물자가 형편없이 부족했으니 아끼는 방법만이 살길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금간 디를 때워’야 하고 ‘구녁난 디도 때워’야 하는데 때를 맞춰서 땜쟁이가 ‘땜쟁이 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누빈다. ‘감쪽가치 때워드리’겠다고 ‘암시랑토앙케 때워드리’겠다고. 나는 이런 일에 ‘이골나씨유’라고 외치고 다닌다. 심지어는 “바람난 여편네 바람구녁도 / 다시는 바람 안 나게 / 야무지게 때워”드리겠다며 사람들의 웃음통을 흔들어 놓는다. 마치 가난의 축제를 보고 있는 듯하다. 전쟁 직후의 고단한 삶을 한바탕 웃음으로 이겨나가는 모습이 시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탯말과 어우러지며 이 세상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노래로 피어나고 있다.
특히나, “이 마을 저 고을 드나든다고 / 괴얀스레 의심허지 마러유 / 들락날락 들락날락험시나 / 밀고 땡기고 밀고 땡기는 / 풀무지레는 이골나씨유 벌거케 / 화덕 달구는 디도 이골나씨유”에서 보는 것처럼 원래부터 그렇게 써왔다는 듯이 전라도의 탯말을 소리 나는 대로 이어 적어 나간다. 어떤 때는 솔직하게 또 어떤 때는 의뭉스럽게. 역시 말속에 숨어있는 깊은 정서를 우러나게 하는 데에는 우리들의 입과 몸에 익숙한 말보다 더 대단한 언어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사실 오늘 우리는 전쟁 직후의 삶을 떠올리며 ‘땜쟁이 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늘 실패와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끌고 다니는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이 좀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금가고 구멍나는 곳이 왜 없겠는가. 그 시절 마재 고샅을 떠돌던 땜쟁이가 살아 돌아와 내가 사는 곳에 들러서 나를 좀 때워주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옛날 세상과 요즘 세상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었지만 도둑놈과 도둑질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나 평판에 관해서 만큼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마재 시편에는 우리에게 어쩌면 잊혔을지도 모르는 도둑질에 관한 특별한 시 세 편이 재미나게 숨어있다. 두 사람의 주인공인 ‘여산댁’과 ‘도둑놈’이 어찌 되려나? 조마조마하다가 ‘이젠 괜찮겠구만’하고 안심하는 순간, 도둑놈과 도둑질을 넘어서는 훈훈한 사람의 마음이 시 행간을 넘어 우리에게 온다.
외동딸 시집보내고 혼자 사는
여산댁 외딴집에 도둑이 들었다
안방문 소리없이 따고 들어온
어두운 붉은 손전등 불빛이 안방 벽장문
문고리 어름에 어른거릴 때
아까부터 숨죽여 지켜보던 여산댁이
“도독이야 도독이야”
연거퍼 큰 소리로 내질렀다
“하따, 간 떠러지거따 이녀나”
저도 모르게 손전등을 떨어뜨린 도둑이
손바닥으로 여산댁 입부터 막으려 한다
“어따대고 년짜냐 이 도동노마 너 멧살 처머건냐?”
“이 판국에 나이가 무슨 개뼉다구냐 이녀나”
야무진 몸으로 여산댁을 짓누르며 목을 조르려 든다
“확 쥑여뻐리는 수도 이씅게 꼼짝마러 이녀나”
“그려 확 쥑여뻐려라 쥑여뻐려 이 도동노마”
옥신각신 짓누르는 덩치를 손발로 밀쳐내다가
얼핏설핏 도둑의 거시기가 손에 닿기도 한다
“아니, 이년이 환장현능개비네 거그가 시방 어디라고
더듬능 거시여 더듬기를”
“오매 환장허건네 더듬기는 누가 더듬어 이 도동놈아
지꺼시 뻐뻣혀징게 자꾸 소네 단능구만‥‥‥”
말 마치기도 전에 부르르 떨던 여산댁 몸이
한꺼번에 허물어진다 도둑도 말없이
여산댁 허물어진 몸을 속속들이 챙긴다
거친 숨 섞인 허물어진 몸소리들 잦아들고
입지도 벗지도 않은 채 맞붙은 몸들이
버려져 뒹구는 손전등 불빛에 얼비친다
숨가쁘던 방이 한동안 고요에 잠긴다
“나 오널 도독질은 그만둘란다”
년짜 빠진 도둑의 말투가 사뭇 부드럽다
“씹도독질은 도독질 아니냐? 이 도동노마”
도동노마를 달긴 했어도 여산댁 말투에도
허물어지던 몸소리가 아직 묻어 있다
“도독질 당헐라고 잔뜩 지둘려떵만 뭔 딴소리여?”
“그려, 사내맛 본 지 오래 되야따 이 날도동노마”
“암만혀도 그 도독질 한 번 더 혀야 쓰거따”
몸 허물어지는 소리들이 한바탕 더
외딴집 새벽을 휩쓸고 지나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도둑이
그림자처럼 싸립문을 빠져나가고
다 알고 있다는 듯 닭장에서 훼를 치며
유난히 길게 목청을 뽑는 첫닭이 운다
아직껏 입지도 벗지도 않은 여산댁이
도둑이 사라진 싸립문을 건너다보며 중얼거린다
“오너른 내가 나 아닌 건만 가트다 아니
오너른 내가 참말로 나 가트다 이 도동노마”
「도둑질」전문
도둑질을 하러 여산댁의 담을 넘은 도둑놈의 입에서 ”나 오널 도독질은 그만둘란다“는 힘빠진 소리가 흘러나온다. 인간은 힘이 빠져야만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이제 도둑놈은 도둑놈이 아니라 안 보면 기다려지는 괜찮은 사내가 된다. 신혼부부의 첫날밤처럼 닭이 목청을 뽑아 울어 올 때쯤 도둑놈은 사립문 밖으로 사라지지만 “오너른 내가 나 아닌 것만 가트다 아니 / 오너른 내가 참말로 나 가트다 이 도동노마”를 여산댁이 한숨지어 뇌까릴 때 도둑놈의 이야기가 여기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아니나 다를까? 여산댁과 도둑놈은 궂은비 오는 늦가을에 다시 만나는데 이번에는 “여산댁이 도둑 알몸에 홑이불을 덮어준다”(「다시 만나는데」).
여기서 우리는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끼리, 지지리도 외로운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다가 함께 눕는 데서 생겨나는 훈훈한 살냄새를 맡는다. 이럴 때는 도둑질은 무엇인지 도둑놈은 누구인지에 대한 부질없는 생각도 스쳐 간다.
하지만 마재 시편에서의 ‘도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여산댁의 집에 짚벼눌을 훔치러 왔던 점쟁이 할머니로 이어지는 길고 긴 서사구조를 갖는다. 점쟁이 할머니가 짚벼눌을 훔치러 왔던 그 밤이 하필이면 꼭 도둑질의 그 밤이었으니 이 일을 어쩌랴. “우리 둘만 알고 입 딱 다물자고 손가락 걸며 약속한 마을 아낙들이”(「짚 한 다발」) 하룻밤 사이에 다섯 명을 넘게 되었으니 어쩌랴. 시인의 입을 통해 드디어 우리들의 귀에까지 들어오고 말았으니 어쩌랴. 아무리 죽겠어도 여기저기서 익살과 멋스러움을 남겨놓고 마는 이런 서사구조는 젊은 날에 임방울의 소리에 취한 날이 있었다는 선생님의 판소리 공부에 그 뿌리가 있었으리라.
서울효제국민학교에서
김제공덕국민학교로 전학 왔던
육이오 한 해 전 3학년 때
공덕학교 아이들은 모두 맨발로 학교에 다녔다
내 하늘색 운동화를 아이들은 베신이라 했고
나를 베신 신은 놈이라 부르기도 했다
맨발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처음엔 이상하게 여기다가 며칠 뒤부터
길가 다박솔 밑에 신을 감추고
나도 맨발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발바닥이 따끔거려서
건중건중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맨발에 익숙해져서
다박솔 밑 신발을 몰래 꺼내어
그걸 신고 집에 오는 발길이
오히려 어색하고 무거웠다
나만 안다고 믿던 그 다박솔 아래
누가 보나 안 보나 주위를 살피며
신발 꺼내려는 내 손에
뭉클하니 차디찬 것이 쥐어졌다
깜짝 놀라 신발 속 죽은 뱀들을
황급히 내버리는 나를 보고
저만큼 무덤 뒤에서 복철이가
깔깔거리며 달아났다
“너 거기 안 설래?”
잡히면 쥐어 패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소리소리 지르며 뒤쫓았지만 실은
달아나는 복철이가 고맙기도 했다
복철이는 나보다 세 살 위였고
뜀박질도 쌈박질도 내 몇 수 위였다
어느 날 그 다박솔 아래 베신이 없어졌다
훔친 놈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내 손으로 당장 쥑여뻐린다면서
복철이가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나는 베신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앓던 이 빠진 것처럼 개운하기만 했다
「베신」 전문
몇 년 전에 선생님의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가 나왔을 때다. 전북작가회의에서 고향을 떠나 있는 선생님을 모셔다가 출판기념도 할 겸해서 문학기행을 기획했었다. 장소가 김제 공덕면 마현리(마재)였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갔던 모든 이들에게 오랜만에 의미 있는 하루였는데 그중에서도 선생님의 선영에 들렀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는 본명은 정판갑이었으나 정을로 개명한 분의 초혼묘가 자리잡고 있었다. 1920년 무렵에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집단 학살을 목격하고 돌아온 뒤에 청년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고 한다.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르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죽음도 확인할 수가 없고 몸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초혼묘가 된 것이다. 바로 정양 시인의 아버님이다.
「베신」 또한 시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적어 나간 마재 시편 중 하나다. 복철이가 운동화 속에 넣어놓은 뱀장난질을 읽으면서 얼마든지 깔깔거려도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 서울에서 전학 오는 3학년 때가 전쟁 한 해 전이라고 했으니 아버지는 아직도 수감 중이거나 수배 중이었을 것이고 이런 정치 사회적인 상황은 끊임없이 집안을 옥죄어 왔으리라. 시 「베신」에서 친구들은 가질 수 없는 운동화를 나 홀로 가진 채 드러나고 싶지 않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화자를 바라보면서 독립운동가였거나 사회운동가였을 그분을 생각한다. 이미 그 시절에 갑의 착취와 을이 흘리는 눈물의 구조를 확인하였으니 이름을 ‘정을’로 바꾸지 않았겠는가. 시 속의 어린 화자는 ‘어느 날 다박솔 아래 베신이 없어졌을 때’ “나는 베신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개운하기만 했다”고 회상하고 있는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못 만나고 산다한들 서로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3. 김제 만경 들판을 건너오는 시
대학 시절이 끝나갈 무렵에 와서야 나는 처음으로 선생님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전라도의 농경언어에 담긴 애환을 모아보고 싶었다는 『3인 시집』을 통해서였다. 동진강의 정렬, 금강의 이병훈, 만경강의 정양으로 이름 붙인 시집의 작은 표제를 보면서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이는 나이였다. 금강, 동진강, 만경강이라니! 40년도 더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오르며 김제 만경 들판을 건너오는 선생님의 시를 맞으러 이제 나는 나선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빛난다. 재미있게 웃는다.
남준이 전화가 왔다
전주냐고 물었더니
하동 집 근처 주막이라며
노래나 한 자락 들으란다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전화통을
그의 노래가 가득 채운다
“사아라앙허넌 나아예
고오오오히야아아앙얼
하한 버언 떠어나안
이이이이후우우에”
그의 노래는 늘 느려 터져서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하다
이 가을밤 그의 노래는 가뜩이나 더 느리다
목이 메이는지 뭐가 사무치는지 건너뛰더니
“자아나 깨나 너어에 새앵가악”까지 해놓고
남은 부분은 날더러 불러달란다
노래라는 걸 불러본 지가 실로
얼마 만이냐 나는 서둘러 노래를 잇는다
“이이즈을 수우가아 어업꾸우나
나 언지나 사랑허어넌 내 고향으
다시 갈까 아 내 고향 그리워라”
목에 가래가 끼어 내 귀에도 내 노래는
남준이보다 더 목이 메이는 것 같다
한참이나 넋 놓고
전화통을 들고 있는데
남준이가 젖은 목소리로
성니미 먼저 전화를 끄라고 한다
엉겁결에 전화를 껐다 그리고
전화 끈 걸 깜박 까먹은 채
“가수들은 2절까지 부르더라
나도 가수답게 2절까지 부르마
가을바메 나라오오넌
저 기러기 떼에더라아아아”
가래 끼어 목메이는 내 노래를
꺼진 전화통이 더 목메어 듣는다
「가을밤」 전문
“가을바메 나라오오넌 / 저 기러기 떼에더라아아아” 남준이는 이미 들어갔는데 전화통으로 2절까지 노래를 부르셨으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다.
아침 저녁은
그냥 지나가던데
밤은 왜 꼭 깊어지는지
가을 겨울이여
뉘우침이여 외로움이여
당연한 듯 속절없이
깊어지는 것들이여
가을은 이미 깊이 잠겼고
더 깊어진 겨울 다가와
쓸쓸함도 병처럼 깊어
그 깊이 가늠하느라
밤 깊은 캄캄한 세상
허옇게 허옇게 눈이 쌓인다
「눈오는 밤」 전문
김제 광활 쯤 너른 벌판에 행여 주막집이 남아 있다면, 가끔씩 창을 열어놓은 채 쏟아지는 눈을 지켜보다가 선생님께 다시 읽어드리고 싶은 시다. 이 시집을 읽는 모든 분에게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