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07 중대가 GPR-6 색터에 도착해서 본 상황은……개판이라고 말하는게 적절할 것 같군.
정확하게 그정도 상황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참호는 뭉개지고, 벙커들은 하나같이 다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거나 엄폐물 구실도 못할 정도로 박살나 있는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되지?
그나마 우리 중대보다 일찍 도착해서 참호를 파는 1018 케스티게이션 연대와 당장이라도 지쳐 쓰러질듯이 사방을 뛰어다니는 위생병들과 공병들, 그리고 사방에 흩어진 탄약과 무기를 주워 재정비하는 병사들의 상황으로 보아, 그리 늦지는 않았다는게 다행이랄까.
여단 본부 건물과 주위의 파이어 베이스(Fire Base)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군.
"휘유……. 저격 전차를 대대 이상 단위로 운용했나? 아니면 여단장이라는 작자가 병신같이 지휘해서 개피본거냐?"
믹의 말처럼, 아무리 상대가 저격 전차를 운용한다고 쳐도 이건 좀 심하군.
아무리 상대가 산악 구동 전차에 저격 전차를 이용해 게릴라를 펼친다고 해도, 외곽에 있는 벙커와 참호만 박살났다는 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지. 그리고, 게릴라들의 0순위 공격 지점이라면 당연히 여단 본부 건물과 파이어 베이스를 공격해야 하는데……뭔가 구려.
우선, 상황부터 알아야겠지.
"밀러. 향수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1018 연대랑 통신 연결해."
밀러는 자신이 향수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그 꼴은 못보지.
여튼 밀러는 대답도 않고 얀센을 통해 1018 연대와 체널을 연결했다. 근데, 인상을 보니 마음에 안든단 말이야.
"107 그림 해머 중대 도착했다. 우리는 한가한데, 그쪽은 많이 바쁜 모양이지?"
[이게 누구신가? 엔시아 기사단장에게 수류탄 던지고 전차장으로 30년 더 썩기로 예정된 빌라흐 크루커잖아!]
이 목졸린 황소 우는듯한 기괴한 목소리는 분명…….
"헤이건, 이 개자식! 수류탄 준건 네놈이잖아! 일부러 불발나게 만든거지?"
[당연하지. 그 아줌씨가 죽으면 나도 연루되잖아.]
"네놈이 그러고도 친구라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이 망할 자식아!"
[그렇게 따지면 나도 할 말 많지. 네놈 덕에 난 50년이 복무 연장 기간에 추가로 붙었다고. 근데, 통신은 왜 했냐?]
음, 그러고보니 내가 통신을 한 이유가…….
"지금 803 여단장 어떤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야?
[아아, 여기 여단장이라. 여단장. 그래, 여단장 말이지. 음, 계는 뒈졌다더라. 여단 지휘관들이 전부 지휘 차량 타고 도망치다가 저격 전차한테 한 20회인가? 포격맞고 걸레가 됬다고 하더라고. 결론은 전멸했지.]
잘 뒈졌군. 살아있어도 사형이니까.
그런데, 지휘부가 전멸이면……이쪽에 남은 애들은 어떻게 저렇게 일사분란하지?
"헤이건. 근데, 803 여단 애들이 지휘부 전멸했는데도 잘 버티는 축 같은데?"
[연대 지휘관들은 개새끼들인데, 장교 한놈이 물건이더라. 맥워트 대위라고, 여단 지휘관들 뒈지고 나서 뭣빠지게 뛰어다니면서 지휘했다고 하네. 여기 803 여단 애들 주둔할때부터 병사들이 따랐던 유일한 장료라던가? 여튼 여기 하사관들하고 사병들이 그렇게 말하더라.]
이 할짓 못되는 브리드하이츠 연방의 군인들 중에서 그런 재량을 지닌 군인이 있었다니. 이거, 렘 제국의 A.I-Ry가 사실은 레즈비언이었다는 있지도 않은 개소리보다 더 황당한걸?
이번 출장에서 그놈이나 건져가볼까?
"그런데, 게릴라들은 어디로 사라졌냐?"
[글쎄, 모르겠다. 우리 연대도 올적에 소드 스파이더 몇 대 빌려와서 정찰용으로 쓰고 있는데, 적어도 그림 해머 주포 이름이……뭐였지?]
"아포칼립스 캐논."
[그래. 그 아포칼립스 캐논 사정권에서는 벗어난 모양이다.]
"일단 19km 근방에는 없다는 소리군. 그런데, 우리 중대나 네녀석이 끌고온 연대쪽 하나만 있어도 방어는 확실하잖아. 그리고 왜 첩보 위성으로 안찾고 소드 스파이더 끌고 왔냐?"
[이 동네가 좀 지저분한 곳이라서 말이야. 행성 전체가 숲이 대부분이라서 찾기가 어렵댄다.]
음, 그건 문제군.
하지만…….
"다 때려부수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
[힘들걸. 그럴거면 차라리 네놈 대신 레이지 클러(Rage Claw)에서 블러드페더가 지원왔을거다.]
납득가는군. 불지르기라면 블러드페더만한 차량이 없으니까.
"그럼 왜 우리가 여기 지원온거냐?"
[아, 넌 모를수도 있겠다. 너, 트리미르 시드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
트리미르 시드? 그 '아즈라엘' 트리미르 시드?
"아아, 알긴 알지. 그 검은 장례복 입고다닌다는 현상금 사냥꾼 말이냐?"
[그래, 그 자 말이야. 그 자가 게릴라들의 지하 기지와 은신처의 위치, 보급 장비와 인원, 여튼 숟가락 갯수 빼고는 죄다 표시된 지도를 팔더군. 좀 비싸긴 했지만, 그 자의 자료는 신뢰도가 100%에 가까우니 가치는 있다고.]
그거, 뭔가 아주 어이없는 일인데? 어떻게 그런 기밀급 자료를 빼 올 수 있지?
"헤이건, 그 트리미르 시드라는 작자가 어떻게 그런 자료를 빼올 수 있지?"
[나도 모르지. 본인 입에서는 한 3일인가 걸렸다고 말하던데. 안그래도 연방 정보부에 한번 물어봤는데, 그쪽에서 되묻더라. 그게 3일만에 구할 법한 자료가 아니라던가? 여튼 워프 트루퍼에 온갖 수색 장비를 동원해도 그정도 덩치의 게릴라 집단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한 자료 구하기도 힘들고,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2주 이상이라고 하던데?]
헤이건의 말투로 보아 그런 특급 자료를 넘겨받은 자기도 어이없는 모양이군.
그런데, 우리 중대는 왜 온거지?
"그런 지도 있으면 네놈만 오면 되지, 왜 나까지 여기 온거냐?"
솔직히, 짜증난다. 그림 해머 중대 부임한 이후로 10시간 이상 잔 기억이 없다고.
[상대방 저격 전차와 산악 구동 전차를 상대해야지. 지반이 단단하면서도 어지간한 전차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숲이 빡빡한 곳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전차가 그림 해머밖에 없더라고.]
"그림 해머 이야기 말고, 왜 우리 중대냐고 질문했는데. 똑바로 대답하지 그래?"
이쯤되면 나올법한 이야기가…….
[당연히 네놈이 편하게 있는 걸 못보는 사람이 여기 왔잖아.]
아아, 납득간다. 저놈과 나는 원래부터 서로 남 잘되는 건 못보는 성격이었지.
"아아, 그렇군. 그럼, 이만 통신 끊도록 하지. 필요하면 연락해라."
[그러지. 지도는 파일 형태로 전송해주마.]
"그래, 그래."
[아, 잠깐. 혹시나 싶어서 소드 스파이더 정찰 보내면서 트랩 비콘(Trap Beacon)¹ 을 곳곳에 설치했는데, 인증 코드 필요하냐?]
저녀석이 언제부터 저렇게 꼼꼼한 인간이 된 거지?
"그것도 같이 보내주면 좋고."
[그럼, 그것까지 전송하라고 지시해두지. 통신은 이만 끊도록. 띠딕――.]
특유의 통신 종료음과 함께 서브 스크린(Sub Screen)²이 꺼진다.
하아――. 결론은 같이 고생하자는 거구만. 개자식이 따로없다니까.
"크루커 전차장님과 헤이건 대령님이 친구라는건 신기하지 않아요. 역시 성격 안좋은 사람이 이리 많다니, 세상은 아직도 지옥이군요. 아아,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란."
밀러. 네놈이 날 지옥의 마귀로 보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헤이건하고 동급으로 보다니.
"밀러, 넌 닥치고 전송된 지도 파악하고, 트랩 비콘 인식 시스템에 접속해."
"예이, 예이."
저런놈이 어떻게 A.I와 전자 장비 담당으로 왔지? 돌아가면 총사령관 각하께 한번 따져야겠어.
[크루커 대령님. 803 여단의 임시 여단장인 맥워트 대위로부터의 통신 요청입니다. 연결하시겠습니까?]
음? 맥워트 대위라. 안그래도 연락하려던 차에, 먼저 통신을 보내오다니. 흥미로운데?
"좋아, 연결해."
전차의 좌측 모니터로부터 맥워트 대위의 모습이 보인다.
누더기가 되어버린 컴뱃 슈트, 곳곳에 총알 구멍이 뚫린 장교모, 움푹 패인 뺨과 피로에 절은 눈에 피부가 보랏빛을 띌 정도로 수척한 모습이 인상적이랄까?
[803 여단 소속 웰릿 맥워트 대위입니다!]
"107 그림 해머 중대 수석 전차장 겸 중대장 빌라흐 크루커 대령이네. 무슨 일인가?"
[게릴라들에 관한 이야깁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데리고 간다는 말, 취소다. 이런 녀석은 전차 안에 넣어두면 잠오거든.
"아아, 당연히 들어봐야지. 계속하게."
[예, 최근 한달 동안 게릴라들이 보인 기습 형태와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게릴라들은 03시를 기점으로, 매 4시간 간격으로 공격해왔으며, 저격전차와 돌격전차의 포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공격 횟수는 하루 평균 총 4회, 연대 본부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이동 포격후에 보병들의 견제 사격이 있었고, 그 뒤 퇴각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이동 사격이라면……MOTT 시리즈에서 파생된 전차류군.
그런데, 어떻게 상대 패턴에 대해 알면서 그렇게 당했느냐가 문제인데…….
"그런 사실을 알고도 이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을수 있나?"
[그것이……. 제가 파악한 게릴라들의 행동 패턴을 여단장님께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여단장님은 위관 장교 주제에 뭘 아느냐며 듣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다른 상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前) 지휘부는 게릴라들의 기습에 겁먹은 나머지 여단의 전 병력을 여단 본부 외곽에 배치시켰습니다.]
뭐? 뒈져버린 지휘부 놈들, 갈갈이 찢어죽일 놈들이었구만? 왜 외곽이 초토화되었나 했다.
"고생했구먼. 803 여단에 남은 병력들이 얼마인가?"
[……여단에 속한 포병대와 기갑 대대는 전멸했고, 보병들만 한개 연대 병력 정도입니다.]
착실히도 말아 먹었구만. 방금 전송받은 지도에 나온 자료 보니, 게릴라들은 고작 한개 기갑 대대와 다섯 개 독립 보병 중대밖에 안되던데.
여단 병력을 그냥 들이부어도 그정도 피해는 안나왔겠구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맥워트 대위의 시체같은 몰골이 이해가 된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네. 남은 병력들 전부 여단 본부에 들어가서 쉬게 하도록. 나머지는 107 중대와 1018 연대가 맡지."
내 지시에 맥워트 대위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군. 그 멍청이들 때문에 한달동안 잠도 제대로 못잤겠지.
[803 여단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즉시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통신 끊도록 하지."
띠딕――. 거리는 통신 종료음이 들리고, 그림 해머 내부는 침묵이 감돈다.
그 통신 내용부터가 어이없긴 했지. 황당한 이유로 자기 병사들을 제물로 바친 놈들 이야기는 그만큼 어이없는 일이다.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올 정도로.
손목 시계를 보니, 14시 50분.
10분 뒤 적의 공격이 시작될 차례군.
"얀센, 중대 체널 개방해."
[채널 개방중입니다.]
"107 중대 전원, 체널에 귀를 기울여라. 명령을 하달한다."
[스네이크 2, 명령 대기중.]
[스네이크 3, 명령 대기중입니다.]
[스네이크 4, 명령 내리시면 얼마든지 이해하겠습니다.]
테일러, 본대로 복귀하면 그때 보자고.
"적의 공격 예상 시간은 지금부터 9분 30초 뒤. 트랩 비콘에 적이 포착됨과 동시에 스네이크 레드와 스네이크 2가 1번 팀이 되어 초탄을 발사하고, 스네이크 3과 스네이크 4가 2번 팀이 되어 포격한다. 1번 팀과 2번 팀의 포격 간격은 6초로 잡고, 지금 당장 2열 횡대로 진을 구축한다. 적이 10km 내로 들어오면 각개 전투에 들어간다. 우리 107 중대 전원을 트랩 비콘 인식 시스템에 접속 시켰으니, 적이 접근하는데로 포격을 시작한다. 이상."
[스네이크 2, 명령 수신 완료.]
[스네이크 3, 명령 하달받았습니다.]
[스네이크 4,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페렌스, 밀러. 포착 잘해라. 포탄값 때문에 라세티르 영감한테 맨날 욕먹는다고."
밀러는 별 반응도 없고, 페렌스는 주포용 로켓 추진탄과 배틀 캐논용 철갑탄 수량 확인하느라 바쁜지 고개만 까딱인다.
이제, 슬슬 '쳐들어오는 놈들 한번 막은 다음에 쳐들어가서 은신처 다 때려부수고 집에 간다.' 수순만 남은건가.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간다.
초조함 따위는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개념없는 게릴라들의 엉덩이를 호되게 걷어차는 것으로 훈계를 끝내고 싶을 뿐이다.
대충 예상 시간으로부터 40초 전.
"전차장님, 현 위치에서 서쪽으로 19.5 km 지점에서 다수의 적성 물체 포착되었습니다."
밀러의 말이 아니더라도, 트랩 비콘에 의해 전면 메인 스크린에 표시되는 붉은 점은 아주 자~알 보인다.
개자식들, 40초나 일찍 오다니! 엉덩이 걷어차는 것으론 끝내기가 싫어졌잖아!
"세번째 트랩 비콘에서 포착되면 그때부터 발포하도록 하지. MOTT 시리즈의 저격전차 사거리는 9km니까, 13km부터 포격하면 충분할 것 같군."
헤이건 녀석, 3km 간격으로 띠 두르듯 트랩 비콘을 설치할 생각을 할 정도로 똑똑한 녀석은 못되는데……. 분명 다른 사람 생각이군.
"19km, 18.7km, 18.5km, 18. 4km, 적성 물체들이 비콘의 탐색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다시 위치 잡겠습니다."
놈들, 조심한답시고 천천히 전진하는 모양인데.
두번째 구간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는군.
나름대로 연구를 좀 한 모양이지만……조금 있으면 자신들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겠지.
놈들은 처음 포착되었을 때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두번째 구간에서 사라졌다.
이제…….
"페렌스, 아포칼립스 캐논과 배틀 캐논 장전하고, 믹과 후스터는 전투 기동에 대비해서 나머지 포탑 대기시켜 놔."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합죠, 네."
"지시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사격 준비는 완료되었고.
"케이지, 백터! 초탄 사격 이후 지형 좌표 지속적으로 부르고, 찰리와 오웬스는 포격 지점 재조정 및 예측 사격 지역 파악하도록."
[오퍼레이터 팀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니까요!]
[무시하지 마시죠!]
뭐, 말은 건방져도 실력은 있으니 믿을 수는 있는데……. 역시 건방져, 부하란 것들이.
"얀센, 체널은 항상 개방되어 있지?"
[물론입니다. 대령님.]
"107 중대원들, 체널 상태 보고하도록."
[스네이크 2. 5-5(Five by Five.) 완벽합니다.
[스네이크 3. 5-5 깨끗합니다. 대령님.]
[스네이크 4. 5-3으로 약간 잡음이 들립니다.]
4번 팀, 문제가 좀 있군. 이걸로 본대로 돌아가서 트집잡을 거리가 생겼군.
"좋아, 세번째 구간에 포착됨과 동시에 놈들을 죽도록 두들겨 패면 된다. 나머지는 잔당은 각개 전투시에 씨를 말리거나 1018 연대에 인도한다."
[라져.]
[예, 써!]
[좋습니다.]
명령 내리기가 무섭게 보이는 빨간 점들.
주저할 것 없지.
"발포 개시!!"
[스네이크 2, 발포 개시!]
발포 명령과 동시에 거대한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엄청난 발포음과 함께 600mm 포신과 220mm 2연장 배틀 캐논 두 문이 불꽃을 뿜어내었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발포음을 내며 날아간 포탄들은 트랩 비콘이 적성 물체를 표시하는 지점으로 날아가, 현실의 것 같지가 않은 폭발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메인 스크린에 수백개의 붉은 점중 20%-25% 정도가 사라졌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초탄 맞고 나서, 놈들이 속력을 높여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확실히 판단력은 있군!
[초탄이 떨어진 지역 좌표는 X 8112, Y 105, Z 20058 입니다! 포격 오차 154m!]
[다음 사격 지점은 X 7226, Y 507, Z 19331 이 가장 좋은 지점입니다! 다음 포격 이후의 예측 사격 지점 파악중!]
"들었냐, 페렌스!"
"잘 들립니다!! 지금 주포 및 부포 재조정중!"
뒤에서 600mm 주포와 220mm 부포 쏘는 소리가 들린다.
2번 팀에서도 포격을 하기 시작했군.
"발포!"
[발포!]
이미 놈들을 세번째 구간을 지나치기는 했지만, 이미 예측 좌표를 보며 핀포인트(Pinpoint)³ 포격을 개시한 이상 놈들은 처절한 실패만을 맛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포탄이 예측 좌표에 정확히 떨어지고, 메인 스크린에 비추어진 폭발에서 부서진 전차의 파편같은 것들이 함께 튀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번 것은 제대로 맞았군.
터엉-
터엉-
그림 해머가 약간 흔들린다.
게릴라 놈들도 저격 전차로 응사하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애시당초에 그림해머가 고작 MOTT 시리즈의 120mm 저격포로 어찌해 볼 물건이 아닌바에야.
적들도 뭣빠지게 달려오는 모양이니 이제 전면전 돌입 시간이다!
"전 중대원, 전투 기동 개시! 몽땅 쓸어버리자!"
[스네이크 2, 각개 전투 기동 개시!]
[스네이크 3, 각개 전투를 실행합니다.]
[스네이크 4, 쇼다운 시작합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땅이 흔들리고, 그림 해머가 움직이고, 1018 연대가 그 뒤를 따른다.
사방에 거대한 고목들이 화염 방사기와 전면 포탑의 산탄포에 의해 불타고 박살나고 으깨진다.
어느새 나무 사이로 재빠르게 다가오는 IFV⁴와 기동 장갑 보병들이 보이지만, 수백발의 로켓과 수천, 수만발의 총알에 걸레짝이 되어버리고, 플라즈마 블라스터와 PPC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우연찮게 접근에 성공한 놈들은 1018 연대의 병사들이 휘두르는 디멘셔널 액스에 찢겨나가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채 화염방사기에 구워진다.
대전차 미사일을 든 병사들이 그림 해머를 노리고 공격하지만, 장갑판에 흠집도 나지 않음에 경악하다 산탄포에 맞고 으깨진다.
사방에서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고통에 찬 비병이 1700mm 장갑판을 뚫고 들어온다. 적군이 흘린 피가 그림 해머 전차의 검은색을 붉은 색으로 물들인다.
매번 그림 해머를 타고 전장을 누비지만 이런 일방적인 전장은 현실감이 없다.
적군은 병사로서 싸우다 전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무자비한 폭력의 화신들에 의해 찢겨나가고, 불타죽고, 형상조차 남지않고 소멸하고 있다.
병사들의 생각과 감정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쇳조각과 고깃덩어리만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존재조차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저 용감하지만 무모하기만 한 불쌍한 병사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약탈이다.
물질적 약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약탈을 동시에 행하는 것이다.
전투는 정확하게 16시 13분에 끝났다.
아니, 이것을 전투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단지 학살이었다. 마치 숙련된 병사가 아이를 칼로 찢어죽이는 것처럼 쉬우면서도 잔인한 그런 류의 학살.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가.
[대령님. 1018 연대로부터의 통신입니다.]
"연결해."
띠딕- 거리는 특유의 통신 연결음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여어, 빌라흐. 뭐하냐?]
서브 스크린에 보이는 헤이건은 피칠갑을 한 채, 사방에 흩뿌려진 육편을 화염 방사기로 태우고 있었다.
"아아, 잠시 뭣 좀 생각하느라. 전투 성과 보고는 했냐?"
[아까 고철들 치우면서 했지. 이제 시체 조각만 소거하면 정리는 대충 끝나. 그런데…….]
헤이건이 말꼬리를 흐린다?
"끊지 말고 말해봐."
[젠장할! 내가 수많은 전장을 돌아왔지만, 이런 꼴은 처음 본다! 단지 이정도의 게릴라를 '학살'하러 온거냐!? 장난도 아니고!!]
후우……. 동감이다.
"나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 아무리 여단 본부가 그만큼 털렸어도, 그림 해머 1개 중대와 케스티게이션 1개 연대를 투입할 정도는 아니야. 107 중대와 1018 연대의 연합 부대라면 두개 혼성 사단도 박살낼 수 있는 전력인데……. 많아봐야 3개 대대 정도 되는 게릴라, 게릴라 부대로는 좀 대규모이긴 하지만서도 이런 무의미한 학살을 자행할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아마도 여기에 추가적인 임무가 하달되거나, 단지 누군가의 사적인 원한에 의한 사주……. 이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 맛이 갈대로 가버린 브리드하이츠 연방군에서 리스트 공화국에 사적인 원한을 지니고 있던 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그림 해머와 케스티게이션을 1년간 운용할 수 있는 싸들고 부탁하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그런 돈이 굴러다니면 람-라세티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전자가 가장 확실하긴 한데…….
"후자는 가능성이 희박해. 전자에 가능성을 둔다면, 아마 추가 임무를 위한 지원 부대가 더 오겠지."
[그렇기는 하지. 아마도 추가 임무가 하달될 가능성이 높지.]
그래. 아마도…….
"난 잠깐 눈 좀 붙인다. 헤이건, 자네도 그거만 하고 좀 쉬지 그래?"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이만 통신 끊도록 하지. 푹 쉬어라.]
"너도."
띠딕-. 통신 끊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막연한 짐작 속에서, 전투가 아닌 학살이 자행된 광활한 숲지대에서 묘한 여운을 느끼며 잠시 눈을 붙인다.
첫댓글 다음화가 기대되네요. 어서.. 어서... 'ㅅ')~~
...... 왜 전쟁 영화를 글로 읽는 기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