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끼리의 포옹, 연리지(連理枝)
접촉 위안은 동물의 전유물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간혹 나무들끼리도 서로 포옹한 듯 붙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지요.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보이는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또는 연인끼리 서로 끌어안거나 손을 꼭 잡고 있는 형상입니다. 연리지를 보면 사람들의 프리허그가 연상됩니다. 나무들도 교감하며 서로 위안을 삼는지 알 수 없으나, 생김새는 프리허그를 매우 닮았습니다. 식물들도 정말 접촉 위안을 느낄까요. 연리지만이 알 수 있겠지요.
중국 고사에는 연리지와 관련해 애틋한 모자의 정이 전해옵니다. 중국 후한 말기에 학자이자 효성이 지극했던 채옹(蔡邕 132-192)이라는 사람은 편찮으신 어머니를 정성껏 간호했음에도 돌아가시자,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무덤가에 자라던 나무 두 그루가 서로 붙어 한 나무가 되었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효성스러운 채옹과 어머니가 한몸이 된 것’이라 칭송하였답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가 되길 바라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바란다”는 당나라 백낙천의 시처럼 연리지는 애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신혼부부가 합환주(合歡酒)를 마실 때 쓰는 술잔도 연리배(連理杯)라고 하지요. 연리지는 또 상서로운 일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동사강목>에는 내물왕 3년 임금이 시조 묘에 친히 제사를 지내자, “자색 구름이 사당 위에 서리고 신기한 새들이 사당 뜰에 모였으며,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연리수가 사당 뜰에 났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한 헌종이 제주도에 유배 중인 추사에게 글씨를 보내라고 명하자, 추사는 ‘목연리각(木連理閣)’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올렸습니다. 이는 ‘임금의 덕이 천하에 넘치면 연리지가 생긴다’는 말을 비유한 것으로 연리지가 상서로운 일이나 길조를 상징한다는 의미이지요.
연리지와 비슷한 말로 연리목(連理木)이 있는데, 연리지는 서로 다른 가지가, 연리목은 서로 다른 줄기가 합쳐 자라는 현상을 말합니다. 충북 괴산의 소나무 연리지, 경북 청도의 소나무 연리지, 충남 외연도의 동백나무 연리지, 제주 비자림의 비자나무 연리목 등 국내에서도 많은 곳에서 연리지와 연리목을 볼 수 있습니다.
- <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저자: 이선)에서 발췌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