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역 9번 출구 앞에 보면
이런 건물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여자가 절 쳐다보고 있네요.
약간 제 스타일이라 조금 설렙니다.
그리고 마네킹들이 저렇게 입고 저를 마중나와 있네요. 저는 속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인사를 건넵니다.
제가 들어가려는 건물은 엘지팰라스
건물 작명만 봐도 몇년도에 지어진 건물인지 짐작이 가는군요.
회전문을 반바퀴 돌면 선택지가 보입니다.
1번 계단
2번 엘리베이터
3번 에스컬레이터
저는 지하 1층으로 갈거기 때문에 계단을 선택합니다.
안그래도 중2 때 다이하드란 영화를 본 이후론 두세 층 정도는 계단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계단을 다 내려오면 여기가 지하 1층이라는 표시가 보입니다. 맞게 잘 내려왔다는 신호겠죠.
비상문을 열면 조양호 일가의 노예생활의 꿈을 키워보라는 이런 글자가 눈에 띌 겁니다.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우측길
좌측길
어디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상원 냉면은 제 등 뒤에 있거든요.
전 좌측길을 택합니다.
좌측길을 끼고 좌회전을 한번 더 하면 음식백화점이라는 아케이드 입구가 보입니다.
들어가면 80년도스러운 식당가가 나옵니다.
입구에 들어서 바라본 상원 냉면입니다.
잘 안보이시죠?
좌측 냉장고 뒤쪽에 상원냉면이 있습니다
이건 상원냉면에 착석하고 찍은 입구쪽
이렇게 테이블에 앉아서 수줍게 사진을 찍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식당에서 사진 찍는 행위가 좀 속 돼 보여 몰래 태연하게 시침떼고 찍는 스타일입니다.
저기 보이는게 아까 제가 비상구 나와서 우측으로 갔으면 맞이하게 되었을 이 아케이드 후문?입니다.
그 옆이 상원 냉면 주방이구요.
아케이드 특성상 주방과 공용 식탁 개념(요즘은 푸드코트라 그러죠)이라 주변이 좀 어수선합니다.
평냉 특성상 주문을 하면 면을 뽑기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넉넉잡아 10분 정도)
주인공이 나왔군요
보통 이집에 오면 물냉(7,000원)에 비냉사리(3,000원)를 주문하는데 오늘은 물냉만 시켰습니다. 소주를 시켰으니 음식을 천천히 먹어야 하거든요.
비주얼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래옥이나 평양면옥 계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종로 낙원상가 쪽 유진식당 평냉 스타일입니다. 면은 별도 배합없이 포대(분말)를 쓰는 거 같은대 메밀함량이 50%미만으로 느껴집니다.
전 개인적으로 메밀의 푸석함을 안좋아하는지라 우래옥 같은데서 순면을 시켜먹는 사치는 부리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일본 에서 먹는 소바보다 종로 미진의 글루텐스러운 소바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청수냉면같은 분식집 스타일(면이 퍼지지 밀라고 밀가루 함량이 90%가까이되는)을 선호하는 건 아닙니다. 면이 너무 땡글하면 면에 간이 잘 안 베이죠.
어쨌든 상원 냉면의 배합은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평냉 면발 특유의 우드득 씹히는 식감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국물은 사태로 내는 듯 싶은데 우래옥 만큼의 육향을 뽑내는 수준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msg 첨가가 별로 없는 심심한 편이지만 평래옥이나 장충동 보다는 조금 더 입체감이 있는 편입니다. 국물이 뽀얀 이유는 아마도 국물을 뽑을 때 파나 무우같은 야채를 넣어서 그렇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저는 평냉을 각 업소마다 달리 첨가재를 사용해 먹는 편인데 여기서는 겨자와 식초를 꽤 첨가시켜 먹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뭔가 제가 20%정도는 참여해 맛을 완성시켜야 할것 같은 느낌 때문이랄까요?
언젠가부터 만두를 서비스로 두알 주십니다. 공식적으로 만두 두알에 2,000원이라 메뉴판에 명시돼 있는데도 그냥 주십니다. 그냥 인심을 써 주시는 듯 합니다. 요즘 평냉집들의 마인드와는 확연히 다른 서비스라 할수 있겠죠?
뒤를 돌아보니 마침 만두를 빚고 있는 현장이 목격되네요. 수제 만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순간입니다.
얘기가 나온김에 만두의 맛을 잠깐 언급해야겠습니다.
만두는 만둣국용이라 그런지 피가 좀 두꺼운 편입니다. 그래서 찐만두로 나올때 부드러운 식감이 덜하고 식으면 금방 굳는 스타일입니다. 때문에 만두를 내 주시면 사랑하는 사람과 한알 씩 나눠 빨리 드시기를 권장해드립니다. 해서 찐만두용 만두는 피를 조금 소프트하고 얇게 해 주시면 어떨까 사장님이하 담당자 분께 수줍게 건의해 봅니다.ㅇ므
그런데 먹고있는데 제가 소주를 먹고 있어서 그런지 편육을 내 주십니다. '그냥 드셔보세요.'라는 간단한 멘트와 함께 편육 6편이 제 앞에 놓입니다. 전 눈물을 글썽이며 사장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맙니다. 그냥 고개만 한번 깊숙이 숙이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사태입니다. 전 원래 고깃국 베이스는 양지를 선호하는데 꾸들한 식감이 사태도 훌륭하군요.
다음 번엔 돈 내고 시켜먹고 싶은 맛입니다.
기분좋은 완냉
종합해 보자면 홍대입구역의 상원 냉면은 이렇습니다.
요즘 자손대대로 기업형으로 흥행하고 있는 평냉 집들이 남북관계 특수의 급물살을 타 제대로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해 매우 고자세로 우리를 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상원냉면은 홍대라는 특수상권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미진 지하 아케이드에 입점해 있어 접근성이 다소 불리한 실정입니다.
몇번 다녀본 바로는 같은 건물 학생들이나 인근 직장인들이 단골 개념으로 일부러 찾아오는 아케이드인데 입구에 있는 밥집(약간 김밥천국스타일) 두어군데는 점심시간 때 좌석 점유율이 꽤 되는 반면 상원 냉면은 순수 고객들의 순수한 발걸음을 유도하기엔 조금 취약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저희 회원들의 친분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형편상 어려움이 크겠지만 같은 건물의 같은층 단독매장을 알아보시면 어떨까싶습니다. 그간 다녀보다 보니 같은 층에 공실이 꽤 있었던 거 같거든요. 하지만 보통의 흥행으로는 현실화가 어렵겠죠. 어쨌든 저희도 자손대대로 방문할 수 있는 점포가 되었으면하는 바람을 사장님께 직접 말씀드리며 짧게나마 이야기를 좀 나누었네요. 원래 부모님이 파주에서 냉면집을 운영해 오셨다는 군요.
아무쪼록 초보 평냉러 분들도 큰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맛입니다. 특히 초보 평냉러들 옆에는 꼭 식초를 치니마니 겨자는 뿌리니마니 이렇게 먹어야 하느니 저쩌니 하는 허세치들이 깐족거려 음식놓고 스트레스 팍팍 받게 하는데 이곳에선 진정으로 자유로운 평냉식이 가능하리라 장담합니다. 음식에다가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원 냉면은 한마디로 매우 유연한 맛입니다. 거리낌이나 불편함 없이 술술 잘들어 갑니다. 그래서 양이 조금 아쉽다 싶은 느낌도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또 부담이 없습니다. 다음번엔 물냉과 비냉사리 조합을 주문해 놓고다 먹은 물냉 국물에 비냉사리를 한번 말아먹어볼 생각입니다. 시중 평냉집들의 고자세적인 허세와 평냉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평냉 가이드들의 경직된 사고방식에 찬(물)육수를 들이붓 듯 자유로운 면식을 꼭 상원냉면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평냉은 문화가 아닙니다. 사치품이 아닙니다. 법도가 아닙니다. 황교익이 아닙니다. 평냉은 그저 맛있는 음식일 뿐입니다. 유진식당 만큼 문턱이 낮은 홍대의 상원냉면에서 자유로운 평냉식을 경험해 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특히 정모나 벙개하기 딱 좋습니다."
그리고 귀가 전 홍대나들이
며칠 전 들렀던 몬스터 떡볶이에 또 들러 오뎅에 소주 한 잔 합니다. 그땐 낮술이라 몰랐는데 밤 되니까 이 집도 사람들이 줄을 서네요.
반경 백미터 내 인구 평균 연령을 대략 2.12세 정도 높이고 있다는 중년 아재의 자격지심이 발동돼 제일 구석진 자리에 움크리고 앉아서 한잔 걸칩니다.
그리고 흘러 들어간 곳은 인근의 옛날물건 파는 가게입니다. 지하 1층인데 쪼그려 오락기가 보이네요. 참새가 그냥 지나갈 수 없겠죠?
이건 저의 시그니처 오락겜 슬랩파이터입니다. 소싯적엔 성미가 좀 급한 편이라 스피드 다섯개를 다 먹으면 비행기가 총알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좋아 코묻은 동전 꽤나 꼬라박았죠.ㅎ
이것도 이젠 감이 떨어져 두번 째 대장까지 밖에 못가겠더군요. 참고로 전 이 비행기의 레이저 무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설마 이건 감이 좀 남아있겠지싶어 동전을 투입했던 너구리. 이것도 이젠 감이 떨어져 예닐곱판 밖에 못가겠군요. 최소 맥주까지는 가야하는데...
그럼 이건 감좀 잡겠지 하고 최후의 보루로 미뤄뒀던 갤러그. 와 이건 더 감이 안잡히는군요. 보통 5의 배수로 보너스 판이 펼쳐지는데 세판을 못깨고 울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이상 상원냉면 방문기및 홍대 나들記였습니다.
첫댓글 와우 엄청 글 잘 쓰시네요 잼나게 맛나게 읽고 보았습니다
남은 휴일시간도 즐기시길~~^^
매우 훌륭한 댓글을 남겨주셨네요.ㅎㅎ
감사합니다.
내 입에 맛있으면 그 집이 맛집입니다
개인의 입맛이 다르듯 먹는 방법도
강요되지 않아야 함에 동의합니다
냉면과 만두와 편육의 맛을 상상하게 하는,
방문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묘사에 절로 입맛이
다져지는데요
서울에 가게되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습니다
오늘 또 갈까 고민중입니다.ㅎ
참고로 수요일은 휴무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영광입니다.ㅎ
먹고있는건 아닌데 맛이 느껴지는듯한
글이네요 ㅎ ㅎ
딸이 홍대서 살았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었는데 몰랐네요
참이슬 유저시군여 굳~
냉면에 소주는 환상인데 말이죵
가보고 싶네요 ㅎ ㅎ
80년대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선주후면은 옛말
이젠 면주동시입니다.ㅎ
@비보호우회전 사실 물냉보다는 비냉쪽이죠
모임있어서 고기집에라도 가면
안주로 비냉을 시킵니다
가끔 눈총을 받기도 하지요
왜 벌써 후식을 시키냐는 . .
지금은 몇명 전도?도 했네요
참이슬엔 비냉~ㅋ ㅋ
이런 자료 잘 모으셔서 블로그나 책을 내셔도 되겠어요~*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한 권 내면 보내드릴게요. 2,3년 기다리셨가 책냈다는 공지 올라오면 배송지 주소 적어주세요.
그럼 전 이만 숭늉 마시러 다음 우물가로 넘어가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