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麗州 역사 문학 기행 최 건 차
문인 4인방이 모이는 날인데 비가 그친 뒤라 더 맑고 화창하다. 신앙과 문학의 뜻을 같이하는 단출한 작가들이라 ‘사인회思因會’라는 이름으로 매월 한 차례씩 모인다. 산야가 그지없이 아름다운 5월을 보내기가 아쉬워 야외 나들이를 계획했다. 기왕이면 찬란한 역사를 품고, 가슴 저린 민족의 한을 간직하고 있는 고장을 찾아보자는 회동이다. 오전 10시 판교역에서 경강선 전동열차에 올라 행선지로 향한다. 주중이라서 넉넉한 좌석에 앉아 푸르름이 마냥 짙어 있는 들녘과 넉넉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중에 우리가 탄 전동열차는 더는 달릴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택시기사분께 부탁하니 음식을 잘한다는 ‘청기와’ 한정식 식당으로 안내 해주었다. 넓은 주차장 한쪽에는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정자가 있고 주변에는 붉은 장미가 한창이다. 우리는 일찍 왔기에 예약을 하지 않고서도 식탁을 잡게 되었고, 다양하게 나오는 갖가지 음식으로 포만감이 들게 잘 먹었다. 밖에 있는 정자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 가지고 온 작품을 내놓고 합평회를 하고 나서 여주를 본격적으로 탐방하러 나섰다. 서틀버스 기사가 가이드로 알려준 아울넷으로 가니 넓은 부지에 상당한 규모의 매장들이 옷가지와 일용품들은 판매하고 있다.
건물 밖의 매장을 둘러보다가 나는 여름에 좋다는 인견 홑이불을 한 장 샀다. 다 둘러 보려면 다음 가볼 곳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빵을 곁들인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나와 다음 행선지를 정하려 하는데 벌써 오후 4시가 다 됐다. 위대한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의 묘역을 탐방하기에는 늦겠다 싶고, 황학산 수목원에 가자면 시간이 더 맞지 않은 시간대다. 신륵사에 가는 것 역시 여의치 않아 전통시장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5일과 10일)이 장날이라 오늘은 텅 비어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버스기사가 일러준 대로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나는 이곳엔 초행이다. 명성황후의 생애와 출생배경에 관하여는 배우고 들은 바가 있어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기왕에 생가에 왔으니 역사적인 사실을 더 알고 싶어졌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 같다. ‘황후의 서재’가 있는 ‘감고당感古堂’에 들어가려는 참인데 감색 치마저고리 차림의 중년 여인이 퇴근하려는 자세로 우리와 마주쳤다. 마감 시간이 되어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요’라는 말에 알겠습니다.라 하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그 여인이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어쩌겠습니까.라며 일단 들어오라는 바람에 ‘명성황후의 서재’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대청마루처럼 넓은 서재 바닥에는 다도茶道의 찻상들이 쭉 차려져 있다.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 명성황후의 출생과 8살까지의 과정이며 이후의 삶에 관하여 심도 있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우리고 마시는 체험을 하자는 것이다. 고전적인 자세로 정성스럽게 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내 윗사람에게 먼저 드리고, 자신도 마시는 순서다. 그다음은 찻잔들과 그 자리에서 사용한 주전자며 다른 그릇들을 차를 우리고 남은 찻물로 깨끗이 씻고 정리하는 것까지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도 실습을 그 자리에서 정리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마치게 되었다.
여주시에서는 감고당을 찾는 4인 이상의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다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감로당에서 수고하는 분들과 시청관계자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 서틀버스가 금방 출발하기 전에 승차하여 여주역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이번 우리들의 여주 방문은 시간관계상 세종대왕 능과 신륵사, 황학산 수목원, 전통시장 등을 탐방하지 못한 건 아쉬움이다. 그렇지만 명성황후 생가 유택을 찾아 역사와 다도를 체험하게 된 것은 여주의 백미여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전국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볼 곳이 많다. 더 생기고 있는 것들은 주로 여가 활동에 좋은 레저관광용이 많은 것 같다. 서울 인근 주변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찾아볼 데가 많이 산재해 있다. 그중에 들녘이 넓고 아름다운 내륙의 역사 도시 여주는 동북으로 강원도 원주시와 남서쪽으로 이천시, 서쪽은 광주시, 그리고 북쪽으로는 양평군과 남쪽에는 충주시와 세종시에 접경해 있다. 여주시 세종대왕유적지구, 영녕릉英寧陵에는 조선의 4대왕인 세종과 소현왕후 심 씨의 무덤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 씨의 무덤 영릉寧陵이 좌우로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연히도 두 능의 한글 이름이 같다. 그런 연고로 세종대왕 능으로만 알고 부르게 된다. 효종의 능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정리해 볼 수 있게 되어 건성으로 쉽게 불렀던 면을 바로 잡게 되었다. 다음에 여주를 다시 찾게 된다면 영녕릉을 참배하고 황학산 수목원과 신륵사에도 가보고, 재래시장을 장날에 맞추어 둘러보며 명성황후의 생가 고택을 한 번 더 찾아보고 싶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