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진호 SBS 피디/김기창동창 차남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SBS 예능 본부에 입사했다. 어쩌다 정글로 발령이 나서 10년간 오지를 다녔다. 자연과 사랑에 빠져 〈정글의 법칙〉, 〈공생의 법칙1,2〉, 〈전설의 빅피쉬〉, 〈녹색아버지회〉를 연출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가위손>과 카메라 (SBS 김진호 피디)
1991년에 개봉한 영화 <가위손>은 내 인생작이다. 지금은 거장이 된 팀 버튼 감독의 초기작으로 영화는 눈 내리는 어느 밤, 손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화장품 외판원 펙은 외딴 고성에서 홀로 외로이 지내는 미완성 인조인간 에드워드(조니 뎁)를 불쌍히 여겨 마을로 데려온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에드워드는 펙의 딸인 킴(위노나 라이더)과 사랑에 빠지고, 크리스마스 저녁 에드워드는 킴을 위해 얼음을 조각한다. 얼음은 눈이 되어 내리고, 아름답게 휘날리는 눈발 아래 춤을 추며 황홀해하는 킴. 그 장면을 잊지 못한 에드워드는 고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랑하는 킴을 위해 평생 얼음 조각을 만들며 눈을 날려보낸다. 할머니가 된 킴은 손녀에게 너도 언젠가 눈 속에서 춤추는 기쁨을 알게 될 거라고 전하며 영화는 끝난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는 '눈'의 기원은 사랑이고 선물이다.
요즘 아이들은 겨울에 눈을 보기 힘들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지구온난화 탓일 게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과거 30년에 비해 최근 30년은 봄이 6일, 여름이 20일 늘어났고 가을은 4일, 겨울은 22일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열 효과를 내는 강설량의 감소로 남극 빙하는 유실 중이고, 곤충과 설치류는 추위에 노출되며, 인간이 즐겨 찾는 수많은 스키장은 문 닫기 일보 직전이다. 비단 눈만의 문제이겠는가. 전 세계는 지금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적게 오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리거나 그 반대이기도 하다. 태풍이 불고 산불이 나고 가뭄은 계속된다.
지구온난화는 필연적으로 해수면 상승을 불러온다. 물에 곧 잠길 것이라는 남태평양 투발루와 키리바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과 20여 년 후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세계 과학자 단체 '클라이메이트 센트럴Climate Central'은 우리나라에서 2050년까지 현재 수준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되면 약 40만 명의 거주지가 밀물 때 바다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인천, 김포, 부산 등 해안 인접 도시는 물론 양천구 목동, 강서구 마곡동 일대와 올림픽대로 대부분 구간이 물속으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방송국들도 이제 이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방송 촬영 덕분에 10년간 남극을 포함해 전 세계 오지를 직접 다니며 수많은 현장을 목격했다.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몇 년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 말은 답사와 촬영 당시 현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다.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화석 연료를많이 사용하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타기 때문이고, 여름과겨울에 에어컨과 히터를 너무 많이 틀어서이다. 쓰레기를 너무 많이버려서이기도 하지만,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모든건 포유류 영장목 동물, 인간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한 몸 바쳐 누군가를 계몽하고 인류 구원에 일조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 건 더더욱 아니다. 나는 환경운동가도 생태주의자도 아니다. 심지어 태생이 다큐멘터리 피디가 아닌 딴따라 예능 피디이다보니, 환경문제를 다룰 때마다 밀린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진땀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기로 용기를 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아들은 눈을 참 좋아한다. 눈 내리는 날엔 놀이터로 나가 펄쩍펄쩍 뛰며 빙글빙글 돈다. 어느 날 문득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눈이 올까? 눈 내리는 날이 하루라도 더 많아지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조각엔 소질이 없어 얼음을 깎진 못하겠지만, 조각칼 대신 16년간 밥벌이를 하게 해준 카메라를 들면 제법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위손은 못될지언정 고양이 손이라도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두려워 존경하는 동료 피디분들께 감히 도움을 청했다. 비슷한생각을 가진 분들이 모이면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가위손이 많아질수록, 눈은 더 많이 내릴 테니까.
이 책에는 티브이는 물론 라디오와 책까지, 지상파 3사뿐 아니라 교육방송과 지역방송까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태평양과남극까지 시간과 공간과 매체를 초월해 고군분투한 피디들의 기록이고스란히 담겨 있다. 평범한 피디들의 이야기지만 내용은 생각보다비범하고 재밌다. 이 책이 기후 위기에 관심 없는 독자들의 마음까지움직여 지구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감히 소망한다.
2024년, 조금이라도 시원한 여름을 꿈꾸며, 김진호
지구가, 기후가 심각하다고? 근데 왜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걸까(SBS 녹색아버지회 회장 차인표)
책을 쓴다는 것은 저자의 진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들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만들던 중, 병들어앓고 있는 지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병든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죠.
환경문제는 너무나 거대하기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만,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아픈 지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포기를 모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방송국 제작진을 가리켜 방송국 놈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구를 지키는 데 진심인 방송국 놈들입니다. 그들이 보고, 겪은 실제의 이야기가 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책을 따스한 햇볕과 활짝 핀 꽃들, 한 여름의 빗줄기와 상쾌한 바람, 함박눈과 깨끗한 공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SBS <녹색아버지회> 회장 차인표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