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內里)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리(里).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기장읍의 중앙 남서쪽에 위치하여 남서쪽은 송정동과 좌동, 동쪽은 석산리, 북쪽은 대라리와 접한다. 서쪽에 감딤산[305m], 북쪽에 양달산[287m]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해운대와 경계를 이루는 구곡산[463m]과 곽걸산[154m]이 있다. 산록에서 발원한 송정천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유역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을 지난 송정천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를 지나 동해로 유입된다.
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마을이다.
형성 및 변천
내리 인근에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창건[661]한 안적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리는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3]에 기장현 남면 석산방(石山坊)으로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 기장현 남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동래군 기장면 내리가 되었다.
-1973년 경상남도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80년 기장면이 기장읍으로 승격하였고,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내리(內里)라는 명칭은 1914년에 처음 확인된다. 중심 마을인 내동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내동은 앵림산의 계곡 안쪽에 자리한 마을로, 안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한 이름으로 보인다.
자연마을로는 내동마을, 오신마을, 소정마을, 백동마을이 있다. 내동마을은 백동마을, 오신마을, 소정마을의 세 각단 마을 중에 안쪽에 있다 하여 안마을, 즉 내동마을이 되었다. 오신마을은 웃오신과 밑오신이 합쳐서 생긴 마을이다. 소정마을은 개척되기 전에는 소나무가 우거져있어 해송림으로 불리다가 후에 소정이 되었다. 백동마을은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새벽에 아침해가 동해에서 솟아 오르면 그 햇빛이 높은 골짜기를 먼저 비추므로 백골이라 부르다가 후에 백동이 되었다.
현황
내리의 면적은 12.3㎢이며, 인구는 1,938가구에 총 4,274명으로 남자가 1,978명, 여자가 2,296명이다(2021년 12월 기준). 마을의 동쪽으로 부산 울산 고속 도로가 지나간다. 자연 마을로 내동 마을, 매박골 마을, 백동 마을, 소정 마을, 오신 마을, 용소 마을, 장자방 마을이 있다. 내동 마을의 상류에는 소규모의 소류지가 있으며, 매박골 마을은 매바위와 관련한 전설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정 마을에는 한때 삼양 라면 공장이 입지해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내리 택지 개발 지구에 속하여 있으며, 용소 마을은 지금 군용지에 편입되어 없어졌다. 법정리인 내리의 행정리로는 내동·오신·소정 1구·소정 2구·소정 3구·내리휴먼시아리이다.
내리(內里)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리(里).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내리 서쪽으로 낙동강(洛東江)이 흐른다. 구릉성 산지와 농경지가 두루 분포되어 있으며, 구릉성 산지의 산기슭에 자연 마을들이 위치하고 있다.
들이 넓은 지역이다. 내리는 모정 안쪽이 된다 하여 내동 또는 내모정이라 이름 붙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현풍군 구지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4.1 행정 구역 폐합 때 구지면의 내동·외동·장동·성산동·세암동 및 노곡동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내동이 되었다.
-1988.5.1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내리가 되었다.
-1995.3.1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내리(內里)는 자연 마을인 안모정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 지역의 모정(茅停) 마을 안쪽으로 분산되어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안모정 또는 내리·내동(內洞)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노곡(蘆谷), 모정(茅亭), 성산, 장동, 세암 마을이 있다. 노곡마을은 마을에 갈대가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모정마을은 청도군 은행정에 살던 사람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고 들어와 살면서 은행정의 고향을 사모하는 마음이 컸다 하여 모정이라 이름 붙여졌다. 장동마을은 소나무숲이 울창하므로 숲실이라 하다가 낙락장송의 뜻을 따서 장동으로 고쳤다 한다. 고적으로는 연산군 때 한훤당, 김굉필 등이 놀면서 제일 강산이라 부르고, 후에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정자를 지은 제일 강정이 있다.
현황
내리는 구지면의 남부에 있으며, 내 1리와 내 2리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3.0㎢이며, 총 222가구에 376명[남자 221명, 여자 155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5.12.31 현재). 인구는 구지면 전체 인구인 7,503명[외국인 제외]의 5%를 차지하고 있다. 동쪽으로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 남쪽으로 대암리, 북쪽으로 창리·응암리, 서쪽으로 낙동강 너머 고령군 우곡면과 마주 보고 있다. 낙동강 변을 제외한 내리의 북쪽과 동쪽은 현재 달성 제2차 산업 단지이거나 향후 대구 국가 산업 단지 사업 지구로 개발될 예정이다. 낙동강 변에는 조선성종 때 학자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논하던 이노정(二老亭)[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0호]이 자리하고 있다.
내리(內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리(里).
서해에 있는 작은 섬마을이다. 동쪽으로 육지와 매우 가까이 인접해 있다. 어업이 주로 행해지는 마을이다. 자연마을은 동산말, 막은골, 소루지 마을이 있다. 동산말 마을은 샛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상봉 동쪽이 된다 해서 동산말 마을이라 불린다. 막은골 마을은 안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소루지 마을은 소루지에 있는 마을이다.
내리(內里)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에 있는 리(里).
서해바다에 있는 매우 작은 섬이다. 남동쪽에는 영흥도라는 섬이 있으며 영흥도는 대부도와 연결되어 있다. 자연마을에는 삼박골(三朴谷)이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박과 같은 형의 산이 세 개가 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내리(內里)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에 있는 리(里).
자연마을로는 내동, 윗말 등이 있다. 내동은 마을 앞에 넓은 하천과 들이 있어 그 옆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윗말은 내리의 위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리(內里)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에 위치한 리(里).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흑천의 남쪽 평야지대에 있으며 동쪽에는 추읍산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향리와 주읍리 일부를 합쳐 내리가 되었으며,
-1963년 양평군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에는 내동(內洞), 용머리, 절골 등이 있다. 내동은 개군산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안말, 내리라고도 부른다. 용머리는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골은 절이 있던 곳이다.
내리(內里)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리(里).
만성천 가에 있는 마을이다. 본래 충청우도 평택군 서면 지역이었다. 서면사무소가 있었으므로 내리 또는 서면이라 한데서 내리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서면(西面)이 있다. 서면은 읍의 서쪽에 면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며 내리의 원마을이다.
내리(內里)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에 있는 리(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산지사이를 흐르는 지류를 따라 농경지가 발달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기장대, 고장촌, 능골, 비석거리, 장터 등이 있다. 내리는 골짜기 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안골 또는 내곡이라 하였다. 기장대는 안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기장대라는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장초은 안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장산 아래 위치한 마을이다. 능골은 안골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처음에 세조의 능을 이곳에 잡았다가 광릉(光陵)으로 옮겼다고 한다. 비석거리는 마을에 비석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는 장이 서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북 피난민들이 살았다 하여 해방촌이라고도 하였다.
내리(內里)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리(里).
동북쪽으로는 수원과 접하고 있는 산간구릉지역으로 논농사 지역으로 발달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옹현, 삼봉, 안골 마을 등이 있다. 옹현 마을은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삼봉 마을은 고려 때 삼봉처(三峯處)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안골 마을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내리(內里)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리(里).
본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리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사근절이, 안암, 창말 등이 있다. 사근절이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사근동이라고도 부른다. 안암은 내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뒷산에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창말은 조선시대에 정부의 곡식을 보관하는 커다란 창고(倉庫)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내리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리(里).
산자락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며 밭농사가 행해지는 지역이다.
자연부락으로는 기전동, 중평, 살개골, 우당골, 뒷골, 원골, 가리지기, 조제, 박달골, 회암, 칠룡동, 은곡 등이 있다. 이 마을에는 부석사가 있는데 부석사(浮石寺)를 건립할 명당에 큰 너럭바위가 있어 고민하던 중, 이 바위가 저절로 공중에서 떠서 옮겨간 뒤 그 곳에다 절을 건립하고 이름을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내리(內里)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서쪽 오티리와 덕산면 성암리와의 경계에 야미산[일명 아미산, 525.7m]이 솟아 있고, 야미산에서 성암리와의 경계를 따라 남쪽 착골재에 이르기까지 443m 고지·438m 고지·382m 고지, 동북쪽에 268m 고지, 동남쪽 적곡리와의 경계에 346m 고지가 솟아 있다. 내곡리 서쪽 큰 서낭당이 있던 곳에 대서낭산, 작은 서낭당이 있던 곳에 소서낭산이 있다.
내리천이 안골 남쪽 절골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구산교 아래에서 수산천과 만나고, 야미교천이 야미산에서 발원하여 수산천으로 흘러든다. 골안천이 동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수산천으로 흘러들고, 여러 물줄기를 받아들인 수산천은 동쪽으로 흘러 수산교·원대교를 지나 옥순대교 방향으로 흘러 청풍호로 유입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내리가 되었다.
-1980.4.1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내리가 되었고,
-1991.1.1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수산면 내리가 되었다.
-1995.1.1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수산면 내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있던 수산역(壽山驛) 안쪽 마을이므로 안골, 내곡, 안말 또는 내동이라 하였다.
마을 중앙에 절골에서 발원한 내리천이 북쪽으로 흘러 구산교 밑에서 수산천과 합수된다. 수산리의 수산역 안쪽이 되므로 안골, 내곡, 내동(內洞)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내곡, 내동, 안골, 안말, 역리 등이 있다. 역리는 안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수산역이 있었던 마을이다. 특산물로는 수석, 목공예품, 담배, 고추가 있다.
현황
내리의 전체 면적은 3.31㎢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4만 3023㎡, 밭이 0.28㎢이며 총 51가구에 110명[남자 59명, 여자 5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1.4.30 현재) . 동쪽으로 적곡리, 서쪽으로 오티리와 덕산면 성암리, 남쪽으로 덕산면 도전리, 북쪽으로 수산리와 이웃하며, 안골·닛골·내동·내리·역말·절골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소하천 계곡에 약간의 논이 있고, 주변 완만한 산기슭에 조성된 밭에서 담배와 고추 등을 재배한다. 특산물로는 목공예품과 수석 등이 있다.
수산면 소재지인 수산리에서 남쪽으로 1㎞ 떨어져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수산리와 같은 생활권에 속한다. 지방도 82호선이 수산리 야미교에서 제천 시내로 이어지고, 보령~울진 간 국도 36호선이 단양~수산~내리~적곡~덕산을 이어 주며, 국도 36호선 동쪽에는 내리~수산 간 1.2㎞를 이어 주는 리도 201호선이 개설되어 있다.
내리(內里)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의 지대가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동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금강이 지나가고 있다.
백제시대에는 사비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하였다.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고 나서 강변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성이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여울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속뜸 또는 속말이라 불리웠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규암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서당굴, 여울, 풀뭇간 마을 등이 있다. 서당굴 마을은 전에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여울 마을은 앞에 백마강의 여울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풀뭇간 마을은 전에 대장간이 있었다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적으로는 내리성터가 있다.
내리(內里)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에 있는 리(里).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동리, 외동리(外洞里) 일부를 내리(內里)와 합병하여 그대로 내리가 되었다.
지명은 이 지역의 지형이 바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으므로 안골 혹은 내동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했다. 서해안의 해안 마을로, 북쪽으로 상당히 튀어나온 반도부이다.
자연마을에는 안골(내동), 사목이 있다. 사목은 지금은 해안이 오랜 세월 퇴적되어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서해안의 넓은 백사장이었는데 마을 안을 흐르는 하천 물이 이 백사장을 관통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목이 되었다 하여 이름이 사(沙)목이 되었다.
내리(內里)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에 있는 리(里).
유증산 밑에 있는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화산, 마산, 양동마을이 등이 있다. 화산(華山)은 마을 형성시에는 유증산에 화산(火山)이 있다 하여 화산(火山)이란 지명으로 불리다가 후에 화산(華山)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한자가 다시 바뀌어 화산(花山)이 되었다. 마산(馬山)은 마을 모양이 말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양동마을은 마을 모습이 말의 형태로, 어진 말이라 하여 양동(良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산마을과 양동마을을 합쳐 양마(良馬)라고도 한다.
내리(內里)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에 있는 리(里).
들이 넓게 펼쳐진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원동, 월악, 신월마을 등이 있다. 원동(院洞)은 앞으로도 더욱 큰 마을이 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집 원(院)자를 붙여서 지은 지명이다. 월악(月岳)은 서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로, 해가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끝에 마을이 있다 하여 처음에는 월락(月落)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월악(月岳)으로 바뀌었다. 신월(新月)은 마을의 형세가 초승달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리(內里)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있는 리(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섬마을로, 수산업이 주로 행해지는 곳이다. 아늑한 곳에 자리한 마을이란 뜻에서 내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마안도리, 소장구도리, 솔섬, 어룡리마을 등이 있다. 마안도리마을은 마안도 한복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소장구도리마을은 소장구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솔섬마을은 소나무가 무성했던 섬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어룡리마을은 어룡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내리(內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리(里).
내리(內里)의 지명은 안골이라고도 불리는 내동(內洞)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내동마을이 있다. 마을을 세분하면 웃똠, 섬동네, 구성굴로 구분된다. 내동마을은 전체적으로 보아 면소재지의 서남쪽에 있어서 소재지와 분리되어 있다. 마을에서 보면 북동쪽으로 길이 있는데 이 길이 소재지와 연결된 도로이다. 내동은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둘러있는 분지형태이고, 여러 개의 고인돌이 있는 마을이다.
내리(內里)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에 있는 리(里).
내리(內里)는 동복현에서 보면 내남면(內南面)의 첫 리(里)가 되므로 내남면(內南面)에서 내(內)자를 취하여 내리라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원래 삼산, 밀양, 대사골, 중촌, 평촌, 신암 마을 등이 있었으나 중촌 마을은 폐촌되었다. 삼산은 마을에 샘이 있어 새미굴로 부르던 것이 새미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세(=삼=三) 미(=뫼=山)로 표기하여 삼산이라 불린다. 밀양은 밀양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밀양이라 불린다. 평촌은 처음에 마을 뒤에 돌이 많아서 독자리(石村)으로 불렀는데 이 후 마을이 평지에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대사골은 원래 대나무가 많아 숲을 이룬다 하여 대숲골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개칭된 것이다. 신암은 예전에 이 마을에 샘이 있어 샘골, 새암골이라 하였다. 특산물은 삼베, 한봉, 주소득원으로는 쌀, 보리가 있다.
내리(內里)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에 있는 리(里).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시가지가 발달해 있으며, 주거지역으로 주택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마을 서쪽에는 부제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내곡, 당산 마을 등이 있다. 내곡 마을은 남방동의 안쪽에 위치한다 해서 안골이라 불리다가 후에 내곡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당산 마을은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라 해서 당산 마을이라 불린다.
내리(內里)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에 있는 리(里).
육화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동창천이 흐른다.
자연마을에는 안마, 애미각단, 양지편, 중각단, 큰각단이 있다. 안마는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애미각단은 모체가 되는 중심마을이며 제일 먼저 취락된 마을이란 뜻이다. 양지편은 햇빛이 잘 드는 양지에 들어선 마을이라 붙은 이름이다. 중각단은 양지편과 큰각단 가운데 위치하였으므로 붙은 이름이고 큰각단은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리(內里)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있는 리(里).
북쪽으로 넓은 산지가 이어진다. 인근에는 용각산이 있다. 대구부산간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대능지 불무지, 용담지, 아간지 등의 큰 저수지가 매우 많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대나무밭, 삼거리가 있다. 대나무밭은 현재 인가가 없고 대나무만 남아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는 이 마을에서 덕암리와 안인리로 가는 길이 있어 삼거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리(內里)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리(里).
남강의 동쪽 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작은 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금당, 마당머리, 바람재, 신기, 한밭 등이 있다. 금당은 마당머리 동북쪽에 잇는 마을로 김정지라고도 부른다. 마당머리는 내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타작마당이 있었다 하여 마당머리라 한다. 바람재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내동에서 바람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바람재고개 밑이 된다 하여 바람재, 풍현이라 한다. 신기는 바람재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신기라 하였다. 한밭은 금당동쪽에 있는 마을로 주위에 큰 밭이 많다 하여 한밭, 또는 대전이라 한다. 문화재로는 경남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산청 지곡사지 [山淸智谷寺址]가 있다.
내리(內里)
양강도 풍서군 내포리에 있는 마을. 골안마을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