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세계〉/이동민
동화의 세계에서는 꿈이 있고, 환상이 있고 마지막에는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청설모 한 마리가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고양이에게 다가왔다. 고양이는 캐츠 맘이 두고 간 맛난 음식물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청설모를 흘깃 바라보기만 했다.
“야! 고양이 양반, 네 놈은 어찌 그리도 팔자가 늘어졌어.”
“무슨 소리냐? 네 놈이라고 했어.‘
“내 말이 틀렸어. 네 놈이 불쌍하다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아줌마가 있잖아. 도토리는 자연이 준 우리의 양식인데.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빗자루로 쓸 듯이 주워가 버리는 인간들이 너에게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다니. 복도 많지.”
“인간이란 종자는 착한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도 있어. 저네가 우리를 불쌍하다고 하는 일인데 난들 어쩌겠나.”
“불쌍하다고? 어이구 많이도 불쌍하겠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데도 우릴 잡아먹어.”
“무식한 소리 작작 해라. 자고로 먹을거리는 고루고루 섭취하라고 했어. 아암 그렇고말고 탄수화물만 먹어서는 안 되지. 단백질도 섭취해야지.”
“단백질이 뭔데?”
“이 무식한 놈아 고기를 유식하게 하는 말이야.”
“캐츠 맘이 고기조각도 주던데.”
“고기도 고기 나름이지. 신선도가 떨어지면 맛이 좋지 않거든. 너처럼 살아 있는 놈을 잡아먹어야 제 맛이 나거든. 자연산이라고 하는 거야.”
“우와 무서워라. 그럼 나도 잡아먹겠구나.”
“지금은 배도 부르고------, 술을 처먹고 해롱거리는 놈은 술냄새 때문에 싫어. 술을 먹지 말고 제 정신으로 와. 잡아먹게. 신경을 자꾸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아.”
“그렇구나. 다음에 올 때도 술 먹고 술 냄새 푹푹 풍기면 안 잡아먹겠구나.”
“요즈음은 청설모가 통히 보이지 않더라. 귀하다 보니 술 취한 놈도 잡아먹을 수 있어. 조심해라.”
“네 놈이 다 잡아 먹었는데 보일 리가 없지.”
화가 난 고양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자 청설모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숲속으로 도망을 갔다.
산자락에 이어져 있는 담 밑에서 아주머니 한 사람이 비닐을 깔고 음식물을 놓아두고 있었다.
“아줌마, 지금 뭐하는 거요. 그것 치우지 못해요!”
담장 안에서 화가 잔뜩 난 남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도시로 개발되기 전부터 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집주인 아저씨 였다. 길길이 고함을 지르면서 내뱉는 말을 들어보면 왜 화가 났는지 짐작이 갔다. 담장 안에는 닭장이 있었다.
“아 글쎄, 지난밤에도 들고양이가 내려와서 닭장을 넘보잖아. 닭이 놀라서 야단이었지.”
아저씨가 하는 말을 더 들어보면 닭이 놀라면 달걀을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여름에는 닭장 안으로 들어와서 닭을 물어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투덜거리는 말을 더 들어보았다. ‘고양이를 제 부모보다 더 끔찍하게 보살피면서 기르더니 내다 버리기는 왜 버려. 도둑질이나 하고 다니는 고양이를 불쌍하다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은 또 무슨 짓이냐. 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잡아가면서 도둑고양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 이런 말을 하였다. 듣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캐츠 맘 아줌마는 이런 일이 벌써 여러 번이나 있었든지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얼른 자리를 피했다.
집사람과 나는 닭장이 있는 집 앞을 지나서 범어동산의 낮은 산으로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한 지가 아주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다람쥐도 있었잖아. 노란 색 다람쥐의 등에는 검은 줄이 나 있었지.”
“다람쥐가 사라진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데 10년도 더 된 것 같아.”
“맞아. 내가 다람쥐가 없어졌다고 하니 청설모를 들여와서 토종 다람쥐가 사라졌다고 당신이 설명해 주었잖아. 그때만도 벌써 오, 육 년도 더 전인 것 같아.”
“그래. 손바닥에 옥수수를 얹어서 청설모에게 주다가 내 손이 물렸지.”
“그러고 보니 요즘은 청설모도 보이지 않더라. 청설모를 본 지도 몇 년이나 되었네.”
“숲 속의 진짜 주인은 다 사라지고 들고양이들만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네.”
“동화의 세계에서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면서 토끼와 잡담도 나누던데. 사람과 들고양이가 정을 나누는 세상이니 동화의 세계가 아닌가?”
“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네.”
아침 산책길에서 집주인 남자와 캐츠맘 아줌마를 보고 집사람과 나눈 대화였다.
〈동화의 세계〉에 대한 평/하재열
새로운 수필 쓰기를 시도한 작품입니다. 오늘날 정형화된 듯한 수필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가 활발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장掌수필, 아포리즘 수필, 소설적 수필 쓰기, 시적 수필 쓰기 등이 그 예의 하나입니다. 반대로 수필 형식의 소설 쓰기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이야기는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데 수필은 이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니 독자로부터 외면당하는 글이 됩니다. 이는 교술 문학이라는 한계와 허구가 아닌 사실의 경험을 말해야 하는 수필의 속성에 기인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수필에 문학성이 없다고 하는, 또는 비문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형상화를 통해 문학으로서의 미학적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허구가 아닌 경험의 사실을 시나 소설과 같은 차원의 형상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많은 작가의 언어 운용 역량이 미적 구조화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 수준의 문제도 있습니다. 자칫 신변잡기에 머문 수준의 작품이 되는 이유입니다. 기존 수필이론이나 글쓰기 방법에 따라 고착된 형식의 재미없음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오늘날의 실험 수필이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적 수필 쓰기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소설적 방법인 장면 묘사(대화체)로 뜻을 드러내 보이고, 교술 부분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기존의 수필 형식 기준으로 말한다면 수필의 해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세상일의 같은 현상을 두고도 이율배반적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인간 인식의 문제를 꼬집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동화 기법을 차용하여 패러디한 것이라고 봅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중심 이야기는 두 번째 부분인 “산자락에 이어져 있는 ……… 한마디 대꾸도 없이 얼른 자리를 피했다.”입니다. 작가가 산책길에서 닭장 주인이 들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며 거두는 캐츠 맘에게 내지르는 고함의 말 속에서 사실의 현상을 해석하는 인간의 불합리한 인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의식을 첫 부분에서는 청설모와 고양이의 대화를 통해 동화처럼 풀어냅니다. 이 부분은 수필에서는 허용이 안 되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대화를 작가의 말(사람의 언어)로 해석하여 내보이는 기법으로 독자의 구미가 당기도록 생동감 있게, 익살스럽게 재미를 한껏 부풀려 놓았습니다.
그다음 세 번째 부분입니다. 작가가 닭장이 있는 길을 집사람과 함께 산책하면서 같은 문제를 이번에는 부부간의 대화 속에 녹여내어 독자에게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책하던 산길에 많이 보이던 다람쥐는 청설모에 의해 사라졌고, 다시 청설모는 들고양이게 먹혀 사라지고 들고양이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연 파괴의 주범인 들고양이에게 먹이를 왜 주느냐는 비판과 사람과 들고양이가 정을 나누는 동화의 세계로 볼 수 있지 않으냐는 말씨름으로 갈등구조를 만들면서 인간의 이중적 판단에 따른 문제를 다시 강조하면서 글을 매듭짓고 있습니다.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이 글을 기존의 수필 형식을 따랐다면 이 만큼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원래 수필의 형식은 소설이나 희곡처럼 정형화할 수 없는 장르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해내는 것이 수필이라 할 때 작가마다 다양한 경험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필의 형식이 일정한 틀에 매일 일이 없는데도 지금까지의 습관적 몇 가지 유형의 글쓰기로 스스로 고착시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필의 모습을 허문다는 비판도 있지만, 디지털 언어의 환경이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더 촉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찾아내며 수필의 영역을 넓히고, 문학으로서의 미적 구조와 글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분발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글쓰기 시범의 작품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첫댓글 신선한 수필 한 번 볼까요^^....뭐라 할 말이 ㅠㅠ
안병태선생님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