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내가 정말 너무했던 것 같다. 눈물 정도는 흘려줄 것을 ….”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1월 23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부터 며칠 간, 다산 정약용 선생의 ‘50대 때 다져야 할 습관들’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내면과 외면을 모두 가꿀 것’입니다. 외면을 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산은 공자의 말을 인용해서 ‘외면을 가꾸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독방을 쓰시는 ‘정혜’ 어르신은 가톨릭 신자여서, 그의 방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성물도 여럿 있습니다. 인지력이 높아 얼마든지 대화가 통합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남편이 고교 영어교사였고, 시부모님과 남편의 형제들은 정말 점잖고 좋았는데, ‘정작 남편은 부인인 자신에게 폭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자전거 퇴근길에 넘어진 남편은 그 길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너무 미워서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나더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홀로 요양원에 오신 어르신은, 이제야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과 사무친 모든 감정을 토해내고 계십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너무했던 것 같다. 눈물 정도는 흘려줄 것을 ….” 먼저 떠난 남편에게 올리는 진심어린 사과와 참회의 글이 끊이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진실하게 대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사무치는 그 그리움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미움들과 원망들이 그가 매일 쓰시는 글속에서 볼펜 끝으로 매일 밤 다 빠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출처; 죽으면 못 놀아, 윤세나 / 사회복지사)
우리 나이 또래 6~70대의 사람들을 가리켜서 소위 ‘낀 세대’라고 합니다. 남성본위와 봉건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물결이 급격하게 밀려옴으로써, 우리는 심히 당황하면서도 옛 잔재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채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반동적(反動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황혼이혼’이라는 단편소설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소설화한 글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자는 평생토록 ‘남자의 종’처럼 살다가, 늘그막에 ‘나도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여자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자, 부인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했고, 1심에서는 부인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고, 2심에서는 부인이 승소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났습니다.
전혀 다른 성품과 환경 속에서 전혀 다른 교육을 받은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룰 경우,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물론, 좋았던 일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창고’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저장해두게 마련입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정혜 어르신’도 좋았던 일들은 거의 다 망각하고, 남편의 폭력이 충격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남편이 죽었을 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모든 일이 후회가 되고, 한편으로는 그 밉던 남편이 그립기까지 한 겁니다.
그야말로, 이제는 ‘진정한 남녀평등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거꾸로 ‘남존여비’가 아닌 ‘여존남비’시대가 되어, ‘매 맞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이제 우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가 상대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거룩한 인간’으로 여겨서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물맷돌)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1:27표준)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2:7-8,현대인)]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은데~~.’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11월 22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소설(小雪)인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마지막은, ‘끊임없이 배우기’입니다. 최근연구에 따르면, 교육을 계속 받은 성인은 치매발병 위험이 19% 더 낮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각 분야에 대한 공부나 취미활동을 하면, ‘치매예방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인용문)
우리 부부와 자녀들은 그해 겨울을 서울에 있는 어느 병원 입원실에서 혹독하게 보냈습니다. 삶과 죽음의 공간을 넘나들다가 병원의 탁월한 기술과 의술 덕분에, 일단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는 상태에서 돌아올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들려진 진단서는 ‘힘들고 아픈 앞날의 시한부인생’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대구에서 멀리 양평전원주택으로 이사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큰 병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아내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쁜 병 인자(因子)는 어디엔가 꼭꼭 숨어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우리가 겨울을 보내면서, 아내가 모진 병앓이를 하는 동안, 그의 몸무게가 10㎏이나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아슬아슬한 체중으로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력을 회복해서 사람 노릇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우리가족이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면서 식단을 잘 짜야 하고, 또한 본인이 의지를 보여야 할 일이었습니다. 바둑강사 일로 아침마다 문화센터로 향하면서 간식가방을 챙기는 그의 손길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간식가방을 만들 이유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가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가 바둑알을 제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정신력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내일을 확실히 기약할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그를 바라볼 수 있으며,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가 아픈 만큼 저도 아팠으며, 그가 신음하는 소리를 내는 날이면 저의 가슴은 더욱 따가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병원에서 내려준 시한부 삶’을 살고 우리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후, 저의 삶도 거기서 멈춰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졌고, 할 수도 없었으며,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버리고 3년을 넘어선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마지막 말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은데~~.’(출처; 그린에세이, 이강촌 / 수필가)
글쓴이는 ‘그 아내를 엄청 사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자,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말았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기를 3년이 지났을 때, 아내가 생전에 했던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은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세와 은혜를 입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도움도 많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고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거주하는 공간도 그 누군가의 수고 덕분입니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냐?’고 강변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자신이 사회와 국가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의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그 수고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물맷돌)
[오네시모가 그대에게 빚진 것은 내가 다 갚을 것이며, 나 역시 그대가 내게 은혜로 빚진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몬1:19,쉬운성경)]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1월 21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빕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여섯 번째는, ‘고혈압 관리하기’입니다. 고혈압은 뇌졸중을 일으켜서 혈관성치매를 유발합니다. 따라서 치매관리와 고혈압관리는 동반되어야 합니다. 과다하게 짜거나 매운 음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 혈압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인용문)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무언가를 소비(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고 또 다듬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살면서 조금만 주변에 눈길을 돌려도 ‘좋아 보이는 물건이나 라이프 스타일’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물욕이나 집착이 적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들의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취향을 발휘하게 될 여지도 커져버렸습니다. 소극적인 태도는 어쩐지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가능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꺼이 그걸 좋아해보기로 맘먹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 ‘좋음의 정도’가 아무리 크고 선명해도, 결국에는 조금씩 줄어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성심성의껏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새 식물은 ‘어쩐지 생기를 잃고 있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향수를 찾아서 ‘열심히 써보겠다’고 결심해도, 이윽고 다른 브랜드의 신상품에 이내 관심이 돌아가곤 했습니다. 고심 끝에 고르고 골랐던 ‘처음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뜨거웠던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쉽사리 흐려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질리지 않는 것들도 있긴 합니다. 그다지 반짝이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 잘 달라붙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지속하는 데 드는 노력과 열정’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점차, 저는 엄청난 열정을 부러워한다거나,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꾸준히, 어찌 됐든 ‘좋아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는 태도’, 그 끈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에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그것보다는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출처; 월간에세이, 김수민 / 마케터)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나 취미라 할지라도, 하다가 중단할 경우, 그 동안의 노력이나 수고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물론, 조금은 유익이 있을지 몰라도, 처음 목표했던 것에 비하면 실망적인 결과를 낳고 말 겁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열정을 쏟는 것도 좋지만, ‘얼마나 계속 꾸준히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취미활동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실패나 중단’을 예상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더욱 어리석은 태도일 겁니다. 어쨌든 그 뭣이든지, ‘성공’을 기대하면서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하나님께 여쭤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 무엇을 하든지, 인간의 능력과 지혜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물맷돌)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시다. 참으로 능력이 많으시다. 주께서는 때와 시대를 마음대로 움직이시는 분,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 지혜와 깨달음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셔라.(단2:20-21,현대어)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고전1:24-25,표준)]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샬롬! 어저께 추수감사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11월 20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다섯 번째는, ‘스트레스 관리하기’입니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분비시킵니다. 장기간으로 이어질 땐, 뇌 손상까지 유발합니다. 따라서 치매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 ‘스트레스관리’는 필수입니다. 고로, 명상이나 심호흡운동을 통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긴장을 줄이는 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인용문)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합니다. 그 이유는,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는 못해도 뒤처지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정보검색하고, 뉴스를 보고,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보거나 듣습니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정보들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자극으로 인하여, 뇌는 어느 순간 과부하에 걸려 두통을 호소합니다. 뇌가 더 이상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멍 때릴’ 자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불안해서, 아무 것도 안 하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태까지 들어온 자극이나 머릿속에 쌓인 정보들이 소화될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뇌는, 쉬는 시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극과 정보들을 내적으로 배열하고 통합해서, 어떤 것은 걸러내고 어떤 것은 의미를 두는 등, 사고(思考)를 형성합니다. 그런데, 뇌가 쉬지 못하면, 끊임없는 자극에 반응하느라 지쳐버립니다. 그러므로 어떤 답이 계속해서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그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뇌가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통합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몸과 뇌도 때론 쉬어야 합니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더 자신 있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보시기 바랍니다.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은 줄어들면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전문의)
컴퓨터도 쉬지 않고 계속 사용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경우에는 반드시 컴퓨터를 꺼놓고 나갑니다. 그러니까, 기계도 쉴 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계도 계속 사용할 경우에는 열을 받아서 사고를 일으킵니다. 하물며, 생물(生物)인 우리 인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특히, 머리는 중간 중간 쉴 틈을 주어야 합니다. 옮겨 적는 게 아니고, 새로이 창조적인 글을 써야 할 경우에는 잠깐 잠을 청한 후 작성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코멘트는, 주로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써야 잘 쓸 수가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무튼,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도 쉴 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머리를 거의 쓰지 않을 경우엔 치매에 걸릴 염려가 더 많답니다. 그래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원에서는 ‘머리를 써야 하는 놀이’를 계속 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나이 드신 신앙인이라면 성경필사 하는 것도 치매예매의 한 방법일 듯합니다.(물맷돌)
[너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이레째 날에는 쉬어라. 밭가는 철이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철에도 반드시 쉬어야 한다.(출34:21,현대어) 빈둥빈둥, 하는 일 없이 게으름 피우는 자들은, 날마다 ‘쉬어야지, 쉬어야지’ 하다가 굶어죽는다.(잠21:25,현대어)]
“고마워요!” “맛나네요!”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1월 18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11월의 세 번째 주말인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네 번째는,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하기’입니다. 수면과 치매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합니다. 수면부족은, 뇌세포를 손상시키며, 치매의 진행을 촉진시킵니다. 따라서 규칙적인 수면패턴을 유지하면서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조용하고 어두운 수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습니다.(인용문)
“고마워요!” “맛나네요!”
‘점숙’ 어르신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지내시던 분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음에도, 짜증내거나 욕을 하거나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요양사 선생님들도 너무너무 예쁘게 여기는, 예쁜 치매 어르신입니다. 그런 어르신이 갑자기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병원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왠지 다시 오실 것 같다’는 요양사 선생님들의 예언대로, 며칠 만에 요양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인지 상태는 더 안 좋아지셨지만, 그래도 돌아오셨습니다. 그런 점숙 어르신께서 며칠 전부터 진짜 길을 떠나시려는 듯했습니다. 요양원 사람들은 압니다. 숨소리, 얼굴빛, 냄새 같은 것으로도 어르신들 떠나실 때를.
거친 숨으로 버티던 어르신은 딸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간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검안의가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어르신을 모실 차가 들어 온 시간은, 마침 직원들의 퇴근과 딱 겹치는 시간이었습니다. 퇴근길, 어르신을 태운 차를 향하여 전 직원이 허리를 굽혀 경건하게 인사했습니다. 사실 요양원에서는, 어느 어르신이 돌아가셨는지, 다른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점숙 어르신은 복도 많습니다. ‘전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가시려고 다시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을 몇 년 간 모셔오던 요양사 선생님들의 아쉬운 눈물이 ‘어르신 가시는 길’을 촉촉이 적시었습니다. 피가 섞였다는 가족들의 눈물도 이처럼 애달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복 많은 점숙 어르신은 그렇게 전 직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길을 떠났습니다. ‘잘 가세요, 안녕! 그동안 웃음 주셔서 고마웠어요.’(출처; 죽으면 못 놀아, 윤세나 / 사회복지사)
‘치매에 걸렸는데도 어찌 이처럼 예쁘게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성품이 그러셔서 그리 행동하신 건지, 아니면 치매에 걸리셔서 그처럼 얌전하고 예쁘게 행동하신 건지, 궁금하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아버님은 나름 성격이 좀 있던 분이신데, 약간의 치매가 오히려 우리 아버님을 얌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님을 편히 모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매는 정말 무서운 질병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영화 ‘그대 어이가리’를 꼭 한 번 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치매가 이토록 무서운 질병이구나!’하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통하여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간접체험하심으로써 ‘치매에 대한 예방’을 미리 단단히 하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물맷돌)
[인생살이 기껏해야 한 70년, 건강하게 살아도 80년인데, 그 인생살이 고통과 슬픔뿐, 덧없이 지나가고 쏜살같이 빠르게 날아갑니다.(시90:10,현대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영원히 다 사라져 버렸다.(계21:4,현대어)]
균형조절이 무너졌을 때, 바로 질병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11월 17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세 번째는, ‘사회활동하기’입니다. 사회활동은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타인과 교류하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 등을 주고받으며 활성화됩니다. 사회적 고립이 우울증을 유발하며, 뇌 발달을 억제하는 고로, ‘봉사와 취미생활 등의 사회활동을 통해서 신경경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이 영양제도 좋고, 저 영양제도 좋다는데, 다 먹으면 당연히 좋은 것 아닌가요?” “회사를 계속 다니면 죽을 것 같고, 일을 그만두면 뒤처질까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아요!”
저는 약사로서는 신체건강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작가로서는 마음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넘치는 정보의 홍수와 빠르게 흘러가는 경쟁사회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몸과 마음의 건강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두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중심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편중’입니다.
‘편중’이란 한쪽으로 치우침을 뜻하는 말로, 풀어 말하자면 ‘균형이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곳에서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근본적으로 ‘균형’이라는 규칙 아래 존재합니다. 일시적으로 뒤틀린 균형은 ‘자정 및 회복작용’을 통해서 조절됩니다. 만약 임계수준을 넘어 균형이 깨진다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집니다. 그런고로, 미리 ‘편중과 과잉’을 조절하며 균형을 맞추는 일이 올바른 길입니다.
우리 몸에는 ‘항상성(恒常性)’이라 불리는, 균형을 잡아주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신체는 자율신경과 호르몬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루 동안, 식사하고, 일하고, 운동하고, 수면을 취하는 과정에서, 몸에서는 ‘혈압 호흡 혈당 체온 삼투압’을 일정범위 내에서 유지하도록 합니다. 이런 균형조절이 무너졌을 때, 바로 질병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균형이 깨지는 이유는, 잘못된 식습관, 생활습관, 음주와 흡연, 그리고 운동 부족 때문입니다. 하지만, 균형을 되찾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더 편하고 쉽다는 이유로 ‘영양제과잉섭취’를 택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심리에 기름 붓듯이, 건강헬스 산업에서는 고함량, 고순도, 활성형 개선 등을 매력 포인트로 내세우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출처; 월간에세이, 강 준 / 약사)
아무튼, 뭐든지 치우치거나 넘쳐나면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늘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몸 관리를 하면서 운동도 해야겠지만, 건강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염려가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건강에 좋다는 약들을 과용하는 것도 아주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겠지만, 적절히 몸 관리 하면서 적절히 운동도 해야 좋지 않을까요? 글쓴이가 말했듯이, 몸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 먼저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영혼의 건강’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맷돌)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 되어도, 마음의 근심(영이 상하면)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17:22,현대인) 사랑하는 자여!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그대의 모든 일이 잘 되고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요삼1:2,현대인)]
우리 며느리는 지금도 저에게 거절을 많이 하는 ‘좋은 며느리’입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11월 16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습관 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린다.’ 그 두 번째는, ‘운동하기’입니다. ‘규칙적인 운동이 두뇌인지력을 보호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며, 또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걷기를 포함해서, 일주일에 150분간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며느리가 마음을 연 것은 식사당번 때입니다. 우리 부부와 아들 내외가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하자고, 제가 제안했습니다. 당번이 어떤 밥상을 차리든지 싫은 내색 하지 말고, 당번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건강이나 칼로리는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국음식을 배달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당번이라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슬그머니 옆에서 채소를 다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너, 당번 아니잖니? 나 도와주려고? 그러려면, 당번을 왜 정했겠니? 시아버지 당번 때 도와주고, 시어머니 당번 때 나서고, 신랑 일한다고 거들면, 앞으로 너는 계속 식사 당번해야 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얼른 손을 털고 주방에서 나갔습니다. 아마도, 그때 며느리는 ‘아, 우리 시부모님한테는 속마음을 드러내도 되겠구나!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거절은 불편합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훈련을 통하여 거절을 잘하고, 또한 그 거절을 잘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감정에 대하여 솔직해집니다. 웬만한 거절에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시부모와 며느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진정한 배려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진정한 마음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며느리는 지금도 저에게 거절을 많이 하는 ‘좋은 며느리’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외출할 일이 있어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오늘 일산 갈 일이 있는데 차 좀 태워줄 수 있니?” “아버님,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안 되겠어요.” “그래, 알았다!” 저는 택시를 타고 일산에 갔습니다. 다른 사람 눈엔 며느리의 거절이 싹수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며느리는 저의 몸종이 아닙니다. 저도 아들내외의 이런저런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출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 이대명예교수)
오늘의 제목을 보면, 서로 상충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거절’과 ‘좋은 며느리’입니다. 이 박사의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부탁하는 말에 ‘예’하고 순종도 잘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겠노라’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며느리가 ‘좋은 며느리’라고, 이 박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부탁한다고 해서, 자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시아버지의 부탁이니,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있으련만, ‘무조건 그냥 안 된다고 거절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참으로 대단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박사의 가정에서는 ‘3대(代) 13명의 식구가 한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합니다. 이 박사 내외와 두 아들, 그리고 두 딸 내외와 손자들까지 모두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식사당번은 네 사람이 번갈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박사님은 ‘여러 면에서 선구자(先驅者)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집사는, 한 사람만을 아내로 맞아야 하며, 자녀들이 순종하는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딤전3:12,현대어)]
“그처럼 따뜻한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11월 15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길 빕니다. 뇌건강전문가가 말하는, ‘습관7가지를 방심하면, 중장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걸린다.’를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가공식품섭취 피하기’입니다. 가공식품은 ‘자극적인 맛을 내려고 소금과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조리한다.’고 합니다. 이는 ‘신체에 전신염증을 유발하고, 장내세균균형을 무너뜨려,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 ‘신창원’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가 서울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당시, 구치소 보안과는 매일매일 ‘힘들고 괴로운 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서,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견디다 못한 나머지, 보안과는 교무과에 협조요청을 했습니다. ‘제발 신창원이를 좀 달래보라’고 말입니다.
당시 교무과에는 김 과장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성품이 온순하고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우람한 체격도 아니고, 재치 넘치는 달변가도 아니었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낮은 음성, 여자인 제가 한 손으로 밀어도 금방 넘어갈 것 같은 만만한 체구였습니다. 보안과의 요청을 받은 김 과장님은, 재판을 받으면서 한창 사고를 치고 있던 신창원을 교무과로 불러들였습니다.
“여러 사람을 그리 힘들게 하면, 네 마음은 편하겠니? 나도 너처럼 장성한 아들만 셋을 키우고 있다. 부모는 똑같은 마음으로 자식들을 사랑해도, 제각각 불만을 갖고 있더라. 너라고 왜 불만이 없겠니? 하지만, 교도소 좀 도와주라!” 이렇게 말하고는, 커피 한잔을 마시게 하고 보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듣고 싶을까?’싶어서, 평안하게 해주려고 따로 부탁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몇 달 후, 재판이 끝나 신창원은 감호대상이 되어 청송감호소로 이송을 가게 되었습니다. 교도소는 다시 한 번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어떻게 저 신출귀몰한 흉악범 신창원을 청송감호소까지 무사히 데려갈 것인가?’를 놓고,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다 동원해서 작전을 짜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때, 과장님이 다시 한 번 신창원을 교무과로 불렀습니다. 먼 길 가는데, 따뜻한 커피 한잔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청송에 가서 잘살고 나오기 바란다. 그곳까지 무사히 가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짧은 몇 마디를 하고 나니, 침묵이 흘렀습니다. “…….”
과장님이 ‘이제 그만 나가보라!’고 해도, 신창원은 일어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왜,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과장님, 죄송합니다.” 신창원은 어렵게 말문을 열더니, 앞가슴에서 뭔가를 꺼내어 과장님 앞에 내놨습니다. “이송 갈 때 작업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신창원이 내놓은 물건은 못을 갈아서 만든 예리한 송곳 하나와 팬티고무줄을 꼬아 만든 끈이었습니다. “이거, 여기 놓고 청송까지 잘 가겠습니다. 과장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따뜻한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출처; 어른공부, 양순자 / 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봉사, 저서로는 ‘인생 9단’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네요!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더 없이 살기 좋은 세상일지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참으로 고달프고 힘들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단 한 마디의 위로와 격려의 말이 때론 ‘아주 큰 힘이 되고,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갖게 하리라’고 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우리의 이웃들과 되도록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을 부지런히 나누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물맷돌)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절망에 빠지지만, 격려의 말(좋은 말, 따뜻한 말, 선한 말, 다정한 말)은 그를 다시 일으켜 준다.(잠12:25,쉬운성경) 예언(성경말씀)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개역개정)]
한결같은 모습
우리는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가장 좋은 모습은 모든 관계 속에서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1번 유형은 집에서나 이웃에게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한결같은 사람이고,
2번 유형은 집, 이웃, 교회, 직장 각 상황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번 유형의 한결같은 사람은 자기가 소속된 어느 단체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웃을 교회에서 만나던 직장에서 만나던 별다른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직장 동료를 교회에서 만나던 친목 단체에서 만나던 상관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번 유형의 각각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은 각 단체별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단체들이 연합했을 때 매우 어색하고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예를들어 직장에서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직장 동료를 만났을 때 같은 경우는 모른체 하거나, 피하게 됩니다.
1번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해서 자신을 열어 보여주고, 관계 속에서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 소통을 합니다.
2번은 자신이 상황과 사람을 선택해서 만나려고 합니다. 이기적이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향의 사람이지요. 소통이 아닌 영향력을 통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손에 쥐려고 하지만, 2번 유형은 쉽게 외로움을 느끼고, 자신은 괜찮은데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선택적인 만남을 추구하다 결국에는 모든 모임에서 인정 받지 못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1번은 겸손한 분이고
2번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분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옆에는 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어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강조 합니다. 옆 사람이 귀가 아픕니다. 피하게 됩니다.
신앙인은 한결같이 겸손한 사람이 되길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모임 속에서 숨지않고, 언행이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라. 로마서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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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의 연결고리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해서 맺는 관계, 타인이 원해서 맺는 관계, 지인을 통해 연결된 관계, 직장과 단체로 맺어진 관계, 서로가 원하지는 않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한 관계 등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우리는 그런 관계 속에서 호감이 있는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지요. 가장 흔한 지역, 학연, 지연, 취미 등 긍정적 관계를 위한 공통점을 찾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통점을 이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도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태어나면서 저를 아셨던 분 없지요?
다 학연, 지연으로 맺어진 관계 입니다^^
공통점을 찾아서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사람의 관계의 욕구입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는데, 그 중 3단계 욕구가 사회적 관계(소속감)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 관계적 욕구를 지나면 그 관계를 통해 존경을 받고 싶은 욕구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1단계(생리적)부터 4단계(존경)까지는 ‘결핍’의 감정으로 인해 생기는 ‘결핍욕구’입니다. 최종 5단계는 자아실현인데 5단계까지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 모든 사람은 4단계에서 끝이 난다고 보면 맞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 입니다.
사탄도 사람들이 죄를 짓게하기 위해서 에덴동산에서 욕심이라는 ‘연결고리’를 인간에게 심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셨지만 보기에 욕심나고(지위, 명예), 먹기에도 좋을 것 같은(생각, 언어, 건강, 쾌락 등) 욕심의 생각, 의심의 생각을 심어 준 것입니다.
생리적인 욕심, 안전을 위한 욕심, 관계를 위한 욕심, 존경을 위한 욕심 각 단계별로 아주 다양한 옵션의 연결고리들로 죄의 길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죄(罪)는 내 의지로는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고, 죄와의 연결고리를 끊으실 수 있습니다.
원론적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완결편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탄과의 공통점 ; 죄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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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담’결려 보신적 있으시지요?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나 옆구리에 담이 결리면 회복하는데 힘이 듭니다.
특히, 목에 담이 결린 경우는 시선을 돌릴 때 매우 불편합니다.
목만 돌리면 되는데 뻣뻣한 목으로 인해 상체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보여지는 모습도 어색합니다.
혹시..
마음에 담 결려 보셨습니까?
언어에 담 결려 보셨습니까?
마음과 언어에 결린 담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악화 시킵니다.
냉랭한 무관심의 ‘냉담’
짐스럽고 불편한 ‘부담’
남을 헐뜯는 ‘험담’
두렵게 하는 불확실한 ‘괴담’
이런 담에 결리면 상대방도 불편하지만 무엇도다 나 자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마음이 뻣뻣해 지고, 내 모습이 어색해 집니다.
올바른 마음의 태도가 나오질 않습니다.
올바른 언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뻣뻣해져서 굽혀지지 않지요..
미담. 회담, 상담, 소담, 장담, 쓰담 같은 좋은 담을 가까이 하고,
위에 말씀드린 담들은 멀리 하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남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계신 분들이라면
더욱 그렇게 하셔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로새서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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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접시
한 남자가 잔치를 하는데 접시가 모자라 부유한 친구에게 빌려왔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접시를 돌려주려는데 가장 비싸보이는 접시에 금이 가 있었습니다. 주머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남자는 ‘잘 사는 친구니까 접시 한 장 정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금이 간 접시를 모른 체 돌려줬습니다.
부자 친구는 금이 간 접시를 보고 친구의 인성에 크게 실망해 이후로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친구가 부자를 찾아와 접시를 빌려갔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이 친구는 금이 간 접시를 들고 와 말했습니다.
“빌려간 접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 금이 갔다네. 파는 곳을 알려주면 새 접시를 마련해오겠네.”
부자가 실수로 준 금이 간 접시를 자신의 실수로 여겼던 것입니다.
부자 친구는 크게 미안해하며 사정을 설명했고, 이후에 이 친구의 어떤 부탁이든 흔쾌히 들어줬습니다.
작은 접시 하나가 신뢰를 잃고, 얻는 단초가 된 것처럼 작은 일부터 양심에 거리낌없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작은 약속과 서원을 어기지 말고 반드시 지키십시오. 아멘!
주님! 아무도 없는 곳에도 주님은 계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비추어 판단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두루미의 외침
시리아 북쪽과 터키 남부 사이에는 800km에 달하는 험준한 토로스 산맥이 있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철을 따라 두루미들이 산맥을 넘어가는데 선두에 선 두루미는 시종일관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토로스 산맥에 서식하는 독수리들은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날아와 선두에 선 두루미를 사냥하지만 잠시 뒤 다시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이어집니다. 선두에 선 두루미가 사냥당하면 다른 두루미가 앞서 나와 똑같이 울기 때문입니다.
이 울음소리는 많은 두루미가 이동할 때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한 신호이자 지치지 말라는 격려의 울음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토로스 사람들은 지혜 없는 두루미가 시끄럽게 굴다가 독수리에게 사냥을 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시끄러운 두루미는 그 어떤 두루미보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두루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서는 위 예화에 나오는 이유로 ‘토로스를 조심하라’는 말이 퍼져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이 산맥을 넘어 다니며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위해 독수리를 두려워 않고 선두에 서는 두루미처럼, 복음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토로스 산맥을 넘었던 사도 바울처럼, 세상을 두려워 말고 담대히 하나님을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지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진리를 세상에 외치게 하소서.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믿음의 리더십
나폴레옹의 심복이었던 샤를 모리스는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사자 백 마리보다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 양이 더 무섭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리더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까요?
존 맥스웰 목사님이 말한 ‘그리스도인 리더가 알아야 할 7가지 키워드’입니다.
1.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리더가 되라.
2.좋은 부하가 되는 법을 먼저 배우라.
3.리더십의 영향력을 통해 긍정적인 관계를 세우라.
4.평범한 사람은 누구도 존경하지 않으니 탁월성을 갖고 일하라.
5.감정이 아니라 규율에 의지하라.
6.가치를 부여하는 리더가 되라.
7.힘을 모으기보다 나누는 리더가 되라.
그리스도인의 축복과 영향력은 고이는 호수가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큰복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뛰어난 리더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바른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리더가 되게 하소서.
올바른 수칙을 따라 섬기는 리더로 성장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반드시 인도하신다
극동방송 송신소는 소래포구 염전 인근에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외딴 뻘밭에 40년 전부터 송신소를 세우고 자리를 잡았음에도 인근에 신도시가 생기며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주민들이 살기 전부터 운영되던 송신소였는데 고압선이 위험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송신소를 이전해야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극동방송 직원들이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송신소를 이전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부지를 교회 장로님을 통해 최적의 위치로 붙여주셨고,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하게 하셨습니다. 기존 송신소 부지의 땅값이 크게 올라 금전적으로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북한에 더 강력한 전파를 보낼 수 있는 부지였고, 까다로운 허가도 비교적 수월하게 받았습니다. 위기로 생각했던 순간이 선교를 더 강력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 김장환 목사의 인생 메모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어딘지 모를 때에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손을 잡아 인도하겠다"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주님의 뜻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순종하십시요. 아멘!
주님! 두려운 마음보다 더 큰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해을 때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눠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고가 준 깨달음
꿈 많은 청년 벤 포스터는 24세 때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벤은 사고 후에 이제 인생은 끝이라 생각해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운명을 증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완전히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버린 벤이었지만 가족들과 친구들, 교회의 지인들은 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위로와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의 노력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 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불편해 다른 취미를 찾을 수 없던 벤은 주로 책을 읽었습니다.
10년 동안 무려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생각이 그 누구보다 깊어졌습니다. 변화된 시각을 어떻게 활용해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깨달은 벤은 거리로 나가 거리의 사람들에게 무작정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다 큰 지지를 얻어 정치인이 됐습니다.
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벤은 오히려 그토록 끔찍한 경험을 통해 진짜 소중한 것을 얻게 됐고, 15년이 지난 뒤 미국 조지아주의 국무 담당관에 당선됐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음을 믿고 오로지 감사, 오로지 순종하십시오. 아멘!
주님! 삶의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해도 주님을 믿고 감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공을 만든 마음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갖가지 사업에 뛰어들었던 블레이크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탁소부터 시작해, 케이블 방송, 자동차 운전학원, 옥외광고판까지 조금의 아이디어와 기회만 있다면 닥치는 대로 도전했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하나같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수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블레이크는 자신의 능력에 실망해 모든 일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히러 남미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떠난 아르헨티나에서 현지 주민들이 신고 다니는 ‘알파르가타’라는 신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디자인도 예쁘고 실용성도 뛰어나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실패한 수많은 사업들이 떠올라 마음을 접으려는 찰나 또 다른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신발 없이 맨발로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블레이크는 이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귀국 후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기부하는 원칙으로 ‘탐스 슈즈’라는 회사를 창립했습니다. 실용적이고 독특한 디자인과 좋은 취지의 탐스 슈즈는 세계적인 신발회사로 크게 성장했고, 이 회사의 성장으로 개도국의 많은 아이들이 신발을 선물로 받게 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세상에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목표의 중요성
아테네올림픽 사격경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격 천재’로 불리던 미국의 매튜 에먼스는 이미 5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30m에서도 결선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둔 상황에서 3점 차로 크게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2관왕이 사실상 확실시 되던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카메라와 관중들의 이목이 에먼스에게 집중되었고 잠시 후 마지막 한 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광판에는 아무런 숫자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고장 난 줄 알고 심판관이 과녁을 확인했지만, 표적에 맞은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잠시 후 카메라를 확인한 심판은 에먼스의 점수를 ‘0’점으로 선언하며 에먼스가 쏜 총알은 옆에 있던 선수의 과녁판에 맞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최고의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총을 쐈지만 에먼스가 보고 있던 것은 잘못된 과녁이었고 마지막 한 발로 인해 그는 꼴찌로 대회를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바라는 성공을 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모든 꿈을 이룬다 해도, 세상의 어떤 복락과 즐거움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결국 새벽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헛된 성취일뿐입니다.
무작정 높이 올라가기보다 하나님이 명하신 바른 봉우리를 올라가는 인생을 사십시오. 아멘!
주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소서.
삶에서의 목표, 주님 안에서의 목표를 바르게 설정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웃음의 가치
미국상공회의소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10대 인물’에 앤서니 라빈스를 뽑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앤서니 라빈스는 성공한 사업가나 백만장자가 아닌 사람들의 긍정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 강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기에 나중에는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하며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앤서니 라빈스가 변화를 위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웃음’입니다.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바로 웃음이며, 관계가 깨질 때도 가장 먼저 웃음이 사라집니다. 웃음이 사라질 때 모든 관계가 깨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스며듭니다.
중국 송나라 때 유명한 관상가인 마의는 어떤 사람의 관상을 보든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상이 가장 나쁜 관상이고, 항상 즐거워하고 웃는 상이 가장 좋은 관상이다.”
사망에서 나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어떤 일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기쁨으로, 내 얼굴의 미소로 드러나는 삶을 세상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사라지지 않는 기쁨의 은혜를 마음에 부어주소서.
주님이 주신 축복을 생각하며 되도록 많이 웃으며 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죽어서 천당 가시겠소
한 개척교회 전도사가 설 명절 귀성길에 올랐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눈이 내렸고 설상가상 차량의 시동이 꺼져 레커차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도사 부부와 첫돌을 막 지난 딸아이는 레커차 조수석에 앉아 가까운 정비소로 향하게 됐습니다. 이동 중 레커차 운전자는 개척교회 전도사 가족이 고향 집에 내려가는 길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레커 차량이 톨게이트를 지나쳐 갑니다. 전도사가 운전자에게 묻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요?” “어차피 제 차에 타셨으니 고향 집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합니다.” 그때 다른 레커차에서 무전이 옵니다. “형님 지금 어디세요?” “손님 모시고 고향 가는 길이야.” “형님 오늘 고향 가신다는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제야 전후 사정 이야기가 오갑니다. 그러자 무전을 해온 분이 기분 좋게 말합니다. “어이쿠 형님, 죽어서 천당 가시겠소.” 믿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미루거나 외면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약력=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Ph D), 전 여의도순복음교회 수석부목사.
MBTI 명함
최근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격유형검사 일종인 MBTI를 명함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보는 게 흔한 일이 됐습니다. “그 사람 T라서 그래.” “그런데 그 친구는 F더라고. 그래도 둘이 참 잘 맞아. 그렇지?” 이런 사람도 본 적 있습니다. 자신의 성격유형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연신 “맞아, 정말 나 그대로네”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과 지인의 성격을 분석한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게 무척 재미있나 봅니다. 물론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MBTI를 통해 내가 분석한 그 사람, 혹은 내가 분석한 나를 생각하면서 무엇이든지 그걸 기반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특정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MBTI로 사람 전체를 이해하는 건 아니겠지만 자칫 섣부른 이해가 그 사람에 대해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분석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존귀함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갑진년(甲辰年), 값진 해
새해가 밝았습니다. 12월 31일 오후 11시에 시작한 송구영신예배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유난히도 힘겨웠던 2023년이었기에 새해에는 좀 더 나은 삶, 밝은 희망을 염원하는 열망이 엿보였습니다. 낯선 젊은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어쩌면 결혼을 앞두고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앉은 이 사람이 평생의 반려가 되게 해주세요.” 간절한 기도문도 보았고, 그 기도가 온전히 응답되도록 기도해줬습니다.
2023년은 계묘년, 육십 간지 해석에 따르면 ‘검은 토끼’의 해였습니다. 검은 토끼의 핵심은 지혜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지닌 지혜의 한계를 봤습니다. 2024년은 갑진년인데 ‘청룡’의 해입니다. 용이 도를 깨치면 비늘이 파란색으로 변한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자유와 창의성 등 청룡과 관련한 미사여구가 넘칩니다. 2024년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갑진년, 얼핏 들으면 상스러운 말로도 들립니다. 그래서 갑진해로 바꿔봅니다. 모두에게 갑진 해, 값진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믿음 그리고 희망
‘이 시대에 희망이 있을까.’ 요즘 자주 되뇌는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개탄합니다. 그런데 희망은 뭘까요. 이리저리 따져서 성공 확률이 높으면 희망이 있고 낮으면 없는 걸까요. 잘 계산해서 희망이 있으면 투자하고 없으면 발을 빼야 하는 걸까요. 아니죠. 희망은 그런 확률이 아닙니다. 희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 양식입니다. 희망은 방관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새번역)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의 시대는 어땠을까요. 혹독한 박해의 시대요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시기였지요.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시대였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때 선조들의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모든 가능성이 끝났어도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났습니다. 다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희망으로 순종했지요.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희망을 꺾지 않았습니다. 선조들의 희망은 어디서 왔을까요. 이들의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 왔습니다. 희망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새해 첫 기적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입니다. 우리 각자의 능력은 다르지만 새해 첫날을 같이 시작할 수 있음이 기적이라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살다 보면 속상함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서로의 능력은 달라도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시간’이라는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2024년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은혜요 축복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시간의 마스터 되시고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가장 선하고 안전하게 인도해주실 겁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최고의 한해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용서로 한해를 마무리하세요
인간 타락의 결과 중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입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용서입니다. ‘복음 중심의 삶’의 저자 로버트 슌은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가해자인데 그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피해자 하나님의 은혜 베풂이 복음인 것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용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죄는 나의 죄보다 더 크다”라는 잘못된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해 줍니다. 내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겸손과 죄인인 나를 끝없이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부요한 사랑입니다. 이 겸손과 사랑을 확신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선택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해가 저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용서일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가 내게 다가오신 것처럼 지금 손을 내미십시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축복의 새해
새해에 복의 인사를 많이 합니다. 옥수순복음교회 남기환 목사님을 보면서 복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봤습니다. 시편 1편 1절에 나오는 ‘복(Blessed)’의 원어 의미를 살리면 1절 말씀은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즉 “복되도다!”입니다. 하지만 그 복을 우리는 ‘행복(Happiness·해피니스)’이 아닌 ‘블레스드(Blessed·행복한)’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의미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행복을 ‘해피니스’로 이해하곤 합니다. 우연히 일어나다는 뜻의 영어 ‘해픈(happen)’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좀 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축복을 빌다는 뜻의 블레스(Bless)는 블리드(Bleed), 즉 피를 흘리다로부터 파생된 단어로 누군가의 피 흘림, 희생이 전제돼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어른의 스승
한 번은 다섯 살 난 아이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아이가 재미있는 책을 읽어 주겠다면서 자신의 손보다 더 작은 책을 펴들었습니다. 그 책은 겉장만 캐릭터 그림이 있을 뿐 나머지는 투명한 비닐로 만들어진 책이었습니다. 글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야기에 스스로 빠져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지하고도 열정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다 듣고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동화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각색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에 또 다른 세계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돌아보니 제 아들, 딸도 어릴 때 그랬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면서 커가나 봅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생각과 가치관 등 나의 세계가 너무 견고해져서 물건 하나 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죠. 아이를 통해 한 가지 배웠습니다.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아이는 어른의 스승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성탄절 이후
성탄절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기쁜 성탄이었지만, 베들레헴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성탄 축하예배 대신 사망자들을 위한 추모예배를 드리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성탄절 이후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홍콩에서 선교사로 생활할 때 성탄절 다음 날은 ‘박싱데이’였습니다. 성탄 선물 상자를 나누거나 받은 선물 상자를 풀어보는 날이었죠.
교회사 전통에 따르면 12월 26일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기리는 날로, 12월 27일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을 기리는 날로 지킵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명이었고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서신,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돌봐달라고 요한에게 부탁했고, 그 부탁을 끝까지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탄절 직후에 스데반과 사도 요한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전통은 오늘 우리가 성탄절 이후를 보내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줍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허망함 대신 복음을 전하는 열정으로 다시금 일어서는 연말연시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사랑한다는 말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예전에 뉴욕 9·11테러로 무너지는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통화가 녹음이 되어 알려졌었지요. 그 참담한 때에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한탄하고 원망하는 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말을 듣는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 새번역)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새 계명일까요. 사랑하라는 것은 너무 흔해서 누구나 다 하는 낡은 계명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절박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유다는 이미 배신했고 베드로가 곧 부인할 것도 아셨지요. 십자가를 앞둔 이 마지막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