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10
적극적인 믿음
이제 2002년이 거의 50여 일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느 분은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어 가는 것을 보고 이 해는 만사형통할 것 같은 희망으로 부풀어 있는 반면, 어느 분은 신년부터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엉키는 느낌이 들면서 벌써부터 낙심하여 '나는 매사가 되는 법이 없어.'라고 합니다. 더 나가서는 '나는 올해도 내게는 운이 없는가봐'라는 식으로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에 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드리는 대로 우리가 적극적인 생각을 품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생각은 온 몸의 운전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면 적극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팻말을 보니 '포이손(poison)'이라고 써 있습니다. 영어로 '독약'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제 곧 창자가 녹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진단을 마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기를 "포이손은 영어로는 '독약'이라는 뜻이지만, 불어로는 '낚시금지'라는 뜻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환자는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생각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에머슨은 말하기를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고,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는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죄수들은 타에 의해 감옥이라는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 속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둘 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죄수는 내내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깊은 진리를 찾아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씩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 되고, 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면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놓인 조그마한 장애물 앞에 흔들리지 마시고 적극적인 믿음의 생각으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주 적극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포로였으나 나중에 강대국의 왕, 아닥사스다의 술시종이 된 것을 보면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실성과 신뢰성은 물론이고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것입니다. 술시종이란 아무 막강한 권력의 자리로,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왕이 들기 전에 먼저 시식(試食)하는 직책이었습니다.
당시는 왕의 승인 없이는 왕비조차도 만날 수 없을 만큼 왕의 호위가 대단히 삼엄했는데, 그런 속에서 왕의 음식의 위험여부를 검사할 정도의 직책이라면 왕의 신임을 엄청나게 받고 있는 자가 아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비록 포로였으나 아주 화려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권력, 안일보다는 먼저 조국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관심은 자기 조국과 백성들에 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국의 소식을 들으니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점령당할 때 예루살렘성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우수한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 갖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다 인정이 많은 분이 왕위에 오르므로 주전 536년에는 스룹바벨이 일단의 유대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2차로 458년에는 에스라 선지자가 난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의 갖은 방해와 아닥사스다 왕의 지시로 재건한 성벽과 성문을 불테워진 탓입니다. 아마, 느헤미야는 무너졌던 성전과 성벽이 재건하는 데에 뒤에서 많은 후원과 자금을 대어주면서 조국 회복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여러 날 울면서 금식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국의 위기 앞에 울고만 있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결심하기를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재건해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가려면 왕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왕이 절대 필요한 느헤미야가 장기간 먼 곳으로 가게 하겠습니까? 또한 설령 허락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금이나 건축자재도 없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은 800마일나 떨어진 곳이기에 가는 동안 어떠한 위험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나 지금 예루살렘 성문과 성벽이 불탄 것은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왕에게 성문과 성벽을 재건하러 떠나겠다고 하면 곧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더 나가서는 왕의 신하들 중에는 느헤미야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음에 대해서 시기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왕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미고 있다고 모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누명을 쓰고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가장 신임을 받던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버림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이러한 여러 가지 장애요소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가서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느헤미야는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새해 초반부터 무슨 어려움, 무슨 답답한 일, 무슨 불가능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오늘 느헤미야를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느헤미야는 불가능 문제 앞에서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무슨 문제에 당면하면 먼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하다하다 안 되면 마지막에 가서야 기도를 합니다. 순서가 잘 못된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내용이 1장 11절에 나타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 했습니다.
그의 기도내용은 왕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에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여 초점을 맞춘 기도는 하나님의 눈으로 문제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듯에 맞는 구체적인 기도는 성공을 가져옵니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기도는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기도 드리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렘32:17에 "주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이다"라는 고백대로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움직이시고 국가를 움직이시고 홍해를 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는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즉각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장 1절에 보면 그가 기슬르월에 기도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12월을 말합니다. 그리고 2장 1절에 보면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이라고 했는데, 니산월은 한 것을 보면 4월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하면 12월부터 기도를 시작했으나 1월이 가도, 2월, 3월이 가도 응답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실 것을 믿으면서 계속 기다림의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준비기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앞질러서 우리의 시간에 하나님의 시간을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느헤미야가 계속 기도할 때, 100일이 지나도 응답이 없다가 4월이 가서야 응답이 온 것입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조금 기다리다가 결국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를 "하나님, 무엇을 하시고 계십니까? 나는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보고만 계십니까?"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도의 줄을 놓치면 안됩니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서울 충신교회 어느 여집사는 좋은 위치에 고급 아파트에 사는 30대 초반의 여인으로 갑자기 간이 나빠져서 간병으로 고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음에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하는 중 환상을 보았는데 도처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데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양배추에 실파를 먹으면 간이 좋아진다'고 하면서 실파를 열심히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집사는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하여 양배추와 실파를 열심히 먹었는데 6개월만에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는데 전에 없던 불순물이 빠져나가더니 불러있던 배가 홀쭉하게 되고 간병에서 완치되었습니다. 어느 날 TV를 보는 중 미국서 간암 치료에 양배추와 쪽파가 간암에 치료된다고 하는 연구 발표를 듣고 여집사는 더욱 확신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느헤미야가 4달 동안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는데, 마침내 하나님이 역사 하시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장 2절에 보니 기도한지 4달이 되는 때에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향해 느닷없이 묻기를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일부러 슬픈 척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왕 앞에서 슬픈 척해 보이거나 병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아무리 슬픈 일을 당해도 왕의 기분에 맞추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왕의 음식을 먼저 먹어보는 신하가 병이 있다면 왕의 건강을 위해서 당장에 추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을 받은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된 줄로 알고 감히 아뢰기를 3절 "왕은 만세수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수색이 없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잘못하면 이 귀한 직책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으나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줄 알고 그 뜻에 담대히 순종하기 시작한 느헤미야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 믿음입니다.
에스더도 하나님의 시간이 오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담대히 나갈 때에 살 길이 열렸던 것이요,
모세도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에 200만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향해 '죽으면 죽으리라'고 순종으로 나갈 때에 큰 바다가 열리면서 살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러한 대답을 하자 왕은 놀랍게도 묻기를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2장 5-8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것과 유다까지 통행증을 만들어 줄 것과 중건을 하기 위한 재목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감히 청원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너무 엄청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왕은 기쁘게 허락하였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이 생길 때에 지체 없이 순종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전술은 사람들에게 '내일 하지'라는 마음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말리야 산 속에는 야맹조가 사는데 낮이면 신나게 즐기다가 밤이면 잘 둥지가 없어서 다른 새의 둥지에 가서 거하면서 밤새 구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그 새는 서럽게 울면서 '내일이면 집 지으리, 내일이면 집 지으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밝은 아침이면 다시 신나게 노는데 정신을 뺏기고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심에도 이리 핑계 저리 핑계로 순종을 미룹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어도 '내일 하지. 돈 좀 번 다음에 충성하지. 직장이 안정되면 주일성수하지.'라면서 미루다가 결국 아무 것도 못 하는 자가 됩니다. 아닙니다. 깨달음이 왔을 때 적극적인 믿음으로 순종으로 행해야 하나님의 도우심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주실 때에 산을 옮기려고 출발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나폴레옹이 유럽을 휩쓸고 갈 때에 그의 장군 한 사람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한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도시의 주변 고지에는 수많은 불란서 군대가 진을 치고 쳐들어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펠드리히 시에서는 비상 시의회를 소집하고 불란서 군에게 미리 항복을 해서 피해를 방지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너나 없이 일어나서 갑론을박했지만 좀체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모든 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교회의 목사님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여러분, 오늘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예정대로 교회의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 맡깁시다."라고 했습니다. 시의회에서는 이 발언 모두 찬성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들이었습니다. 불란서 군대가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교회에서는 기쁨에 찬 우렁찬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에 교인들이 모여서 전력을 다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종소리를 들은 불란서 군인들은 밤사이에 오스트리아의 많은 지원부대가 도착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불란서 군대는 작전을 변경하여 오스트리아의 펠드리히 공격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 도시는 군대도 없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도시의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온 시민이 삶의 모든 결정권과 작전권을 자기 손에 들려드리는 믿음을 보시고 그런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신약성경 속에는 믿음이라는 뜻의 '피스토스'라는 헬라어가 600번이나 들어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빼면 텅빈 책이 되고, 그리스도인에게서 믿음을 빼면 정신나간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믿음으로 삽시다. 때로 우리 앞에 어려운 문제가 닥쳐올 때에 열심히 기도하다가 믿음이 생기거든 그 믿음에 따라 담대하게 믿음의 순종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의 강한 도우심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느헤미야는 어떠한 난관에도 적극적인 믿음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마침내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갖은 난관을 뚫고 가까스로 도착하게 하셨으면 이제는 형통한 길, 승리의 열림만 있어야 하는데 갖은 반대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성벽을 건립하기 전, 건립하는 도중에 내내 괴롭히고 들볶았습니다.
2장부터 7장까지를 보면 얼마나 갖은 비난과 술수와 갖은 방해와 공작을 꾸미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뜩이나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하여 중건공사가 대단히 힘든 판에 지독한 반대를 만나니 큰 부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때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이런 비난과 조롱, 반대와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대단히 싫어하기 때문에 반드시 방해공작을 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비난과 반대, 핍박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반대나 핍박을 당할 때 가장 하기 쉬운 것은 일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마귀가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엄청난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조금도 굴함이 없이 담대하게 충성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그 방법이 4:9에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라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면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모든 반대들을 물리치고 성벽을 중건하는 일에 승리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승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방법 따라 충성을 다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능력자이십니다. 우리 앞에 무슨 반대, 무슨 난관이 있든지, 무슨 불가능이 가로막고 있든지 전혀 굴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 그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담대히 충성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문제와 난관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기도로 바라보면서 오직 하나님의 좁은 길만 따라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을 통해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백년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한 가수가 흑인가수인 마리아 앤더슨이라고 합니다. 그 여가수는 얼마나 많은 영광을 받았는지,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흑인이 차별대우를 때였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나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미국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대표로 지명까지 했으며 63년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훈장인 대통령 자유상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40년 간 성악 활동을 마치고 은퇴할 때에 그는 너무나 귀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노예 밖에 될 수 없는 비천한 흑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줄기차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나도 이처럼 존귀함을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 앤더슨은 흑인으로 태어나 백인으로부터 짐승이하의 차별대우를 받는 극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적극적인 믿음으로 기도하고 오직 좁은 길로 나가며 하나님의 영광만 위하여 노래를 부를 때에 마침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2002년 여러분 앞길에 무슨 문제, 무슨 어려움, 무슨 난관이 있습니까?
더욱더 기도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길이 열릴 때 오직 순종으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어떠한 난관이 온다할지라도 끝까지 좁은 길로만 나가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으로 승리의 복된 날을 만나게 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