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영산일회(靈山一會) 엄연미산(儼然未散)의 문(文)이니라. 시(時)란 감응말법(感應末法)의 시(時)이고, 아(我)란 석존(釋尊)·급(及)이란 보살(菩薩)·성중(聖衆)을 중승(衆僧)이라고 설(說)하였으며, 구(俱)란 십계(十界)이고 영추산(靈鷲山)이란 적광토(寂光土)이니라. 시(時)에 아(我)도 급(及)도 중승(衆僧)도 다 같이 영추산(靈鷲山)에 나아가는 것이니라,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비밀(秘密)로 할지어다. 본문(本門)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명문(明文)이며, 어본존(御本尊)은 이 문(文)을 나타내셨느니라, 그러므로 구(俱)란 불변진여(不變眞如)의 이(理)이며 출(出)이란 수연진여(隨緣眞如)의 지(智)이고, 구(俱)란 일념(一念)이요 출(出)이란 삼천(三千)이니라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시(時)란 본시(本時)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시(時)이다, 하(下)는 십계완연(十界宛然)의 만다라(曼陀羅)를 나타내는 문(文)이니라. 그 까닭은 시(時)란 말법(末法) 제오시(第五時)의 시(時)이니라, 아(我)란 석존(釋尊)·급(及)은 보살(菩薩)·중승(衆僧)은 이승(二乘)·구(俱)란 육도(六道)이니라·출(出)이란 영산정토(靈山淨土)에 열출(列出)함이고 영산(靈山)이란 어본존(御本尊) 및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주소(住所)를 설(說)하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757쪽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경문(經文)을 보건대, 조금도 흐림이 없도다. 또 그 자리에도 있었겠지만 범부(凡夫)이므로 과거(過去)를 알지 못하노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열반경(涅槃經)에는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권속(眷屬)과 이별하여 흘리는 눈물은 사대해(四大海)의 물 보다 많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위하여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는 것은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이니라. 같은 초목(草木)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宿緣)이며 부처라도 권불(權佛)이 되는 것은 또한 숙업(宿業)이니라.
이 문(文)에는 니치렌(日蓮)의 중대(重大)한 법문(法門)들을 썼으니 차근 차근히 읽고 해석(解釋)하여 이해(理解)하도록 하시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1360~1361쪽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영추산(靈陀山) 이란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곳으로, 불국토(佛國土)를 의미하고, 그 설법(說法)의 회좌(會座)를 영추산회라고 한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에 대해 「영산(靈山)이란 어본존(御本尊) 및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花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의 주소(住所)를 설하느니라」(어서 757쪽)라고 말씀하셨듯이 본존님의 주처(住處) 또 그것을 수지하는 자의 주처를 영추산이라 한다. 또 말하자면 영추산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신(己身)의 생명 안에 있는 것이며 본존님을 향해 창제(唱題)할 때, 기신(己身)의 영추산회가 빛나며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본존님을 수지해 간다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라는 뜻.
허공회는 영추산회와 더불어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회좌. 석존은 법화경 28품 중, 보탑품(寶塔品)에서 촉루품(囑累品)까지를 허공(虛空)에서 설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석존의 흉중(胸中)의 깨달음을 설해 밝혔다는 뜻. 허공회 의식은 본존님의 모습을 나타내며 또한 기심의 생명의 모습을 나타낸다.
법화경에 나오는 설법 모임 가운데 중핵이라 할 수 있다. 허공에서 하는 모임. 견보탑품 제11에서 촉루품 제22까지 허공회 의식이 펼쳐진다. 허공회에서는 다보여래의 보탑이 출현하고 시방세계에서 분신(分身)의 제불이 모였다. 그 장엄한 장소에 수많은 지용의 보살이 대지에서 불려져 나와 석존의 본지가 구원의 부처였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한 후, 상행보살을 상수로 하는 지용의 보살에게 멸후 홍통을 위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