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없게 생긴 눈썹이야.”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한 장면. 직업이 커플 매니저지만 정작 제 머리는 못 깎는 여주인공이 친구의 지적을 받고 깜짝 놀란다. “내 눈썹이 어디가 어때서?” 그제야 물어보니 주변의 대답이 한결같다. “애인 없게 생긴 눈썹이야.” 말도 안 된다. 신은경의 눈썹은 멀쩡하다. 애인 있게 생긴 눈썹이다. 애인 없게 생긴 눈썹이란 이런 거다. 검정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 듯 두껍고 진한 데다 한 고집 할 것처럼 일자로 쭉 뻗고, 그 주변으로 정리 안 된 지저분한 털들이 무성하게 돋아난…. 한 마디로 내 눈썹 같은 것이다. 그렇다. 난 눈썹만 장군감이다. 눈썹은 얼굴의 지붕이라는데 난 밋밋하고 허술한 판잣집 위에 구중궁궐에나 쓸 법한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그러니 시선은 온통 눈썹으로 집중된다. 억센 눈썹 탓에 아무리 헤벌쭉 웃어대도 심각하고 진지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게다가 이 놈의 털들은 남 몰래 비료라도 챙겨먹는지 며칠만 방심하면 송충이, 숯검댕이, 송승헌, 일자 눈썹 등 따끔따끔한 지적들이 쏟아진다. 그래서 여행 갈 때면 선 블록은 안 챙겨도 족집게는 꼭 챙긴다. 빨간 립스틱도 못 바른다. 시커먼 눈썹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입술까지 진하면 너무 과하고 정신 사나운 화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살기 편해졌다. 10년 전만 해도 눈썹은 C컵 가슴과 더불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몸매는 낭창낭창, 살갗은 매끈매끈, 털이란 털은 죄 밀거나 다듬거나 옅게 염색이라도 해야 예쁘단 소릴 들는 세상이었다. 미용실만 가면 학구열에 불타는 보조 미용사들이 달려와 눈썹 좀 다듬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겨드랑이 털을 땋고 슬리브리스 셔츠를 입거나 망사 팬티 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한 것도 아닌데 단지 눈 위에 털이 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이길 포기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내 눈썹을 호시탐탐 노린 건 동네 미용사들만이 아니었다. 신당동 처녀보살님도 나의 관상이 나쁘지는 않으나 눈썹은 다듬는 게 좋겠노라 하셨다. 눈썹은 주로 형제나 자손, 친족과의 관계를 드러내는데, 그게 너무 짙은 사람은 장남이 아니어도 부모를 모시거나 맏아들 역할을 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또한 일자 눈썹은 고집이 강하고 외골수라 윗사람과 불화하고 주위 사람을 압도할 수 있으며, 여자의 경우 여성스러운 면이 부족하고 애교가 없으며 남편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을 늦게 해야만 한다고. 물론 일자눈썹의 장점도 있다. 마음이 강직하고 용맹하며 대담해서 지도자가 될 수 있고, 관록과 재물이 붙는다는 거다. 하지만 좋은 게 백만 가지면 뭐하나. 외골수에다 남자를 못살게 군다는데. 그 지경이 되자 선 블록이 뭔지도 모르는 뷰티 낙제생 주제에 눈썹만은 꾸준히 손을 봤다. 게이샤 눈썹을 한 그 시절 사진들 때문에 몇 번이나 문서 파쇄기를 사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눈썹을 영구제모 해버리거나 문신을 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치형 눈썹과 탈색한 머리가 트렌드에서 퇴출당한 2000년대 중반에는 아예 눈썹을 방치했다. 공 들인 티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그루밍이 각광받으면서 여자들의 눈썹 모양은 제각각이 됐다. 일자형 눈썹이 더 이상 지탄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눈썹은 너무 무성하고 진했다. 보리밭에서 잡초 뽑듯 솎아내거나 가위로 트리밍하는 정도론 해결되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눈썹을 염색한 다음날, 늘 내가 천년 묵은 통나무 같다고 나무라던 남자 선배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좀 인상이 부드러워 보이는구나. 여태까지 네가 한 짓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람이 됐어.” 하지만 염색 약은 따가웠고, 눈 주위에 약품을 쓴다는 게 내키지 않아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눈썹 염색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족집게로 대열에서 이탈한 잔털들만 뽑아냈다. 그 무렵 내 눈썹을 지지해준 건 <엘르> 기자들뿐이었다. 임신한 여자에게조차 다이어트를 종용하는 냉혹한 미모지상주의자요, 넌 왜 사회생활 몇 년을 하고도 촌티를 못 벗냐며 나를 구박했던 예전 상사도 눈썹만은 매력적이라고 했다. 물론 이쪽 업계 사람들이 늘 그렇듯 대중성은 결여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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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트렌드가 한 발 뒤에서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80년대 스타일이 트렌드의 최전방으로 복귀한 2007년부터 빅 브로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오드리 햅번 타입은 그나마 무난한 거고, 프리다 칼로도 울고 갈 파격적인 눈썹들이 런웨이를 점령했다. 그 즈음부터다. 어딜 가나 눈썹이 멋지단 말을 듣게 된 건. 그러자 넘쳐서 탈이지 부족해서 아쉬울 일은 없을 줄 알았던 내 눈썹도 옅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또 다른 불만도 생겼는데, 베이스조차 안 발라 지저분한 얼굴을 하고도 눈썹은 꼭 정리할 정도로 집착을 하다보니 과도한 족집게질의 폐해로 눈꺼풀이 늘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대열에서 이탈한 잔당들만 제거한다지만, 그 떨거지들만 해도 모나리자를 눈썹 미인으로 만들 정도의 양은 되기 때문에 자극이 없을 리 만무하다. 한때 김연아 스타일이었던 눈에 짙은 쌍꺼풀이 생기고 눈두덩이 움푹 꺼져 오늘날 종종 느끼하단 소리를 듣게 된 건 아무래도 다년간에 걸친 그루밍의 영향이 컸지 싶다. 전문가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때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뷰티 브랜드들이 눈썹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 역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하다. “눈썹 모양은 좋은데요?” 베네피트 브로우 바에서 들은 첫 마디는 그랬다. 짙은 눈썹이 유행은 유행인 거다. “눈꺼풀이 늘어질 정도로 자극을 받았다면 족집게 사용을 잘못 하신 게 아닐까요? 족집게를 90도로 세워서 사용하면 아프잖아요. 눈썹이 난 방향을 따라 눕혀서 당기셔야 해요.” 오오, 그런 거였군. 역시 독학의 폐해였다. 브로우바는 왁싱만을 전문으로 한다고 했다. 칼로 밀거나 족집게로 뽑는 것과 달리 3주 이상 가기 때문에 관리가 편하다고. 롯데백화점 본점의 베네피트 매장 한 켠에 앉아 시술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노라니 축축한 왁스를 눈썹 주변으로 펴 바르는 게 느껴진다. 살짝 정리만 한다더니 왁스 도포 면적이 꽤 넓은 것 같다. 나, 내세울 거라곤 C컵 가슴과 브룩 실즈 눈썹뿐인 여자니까 살살 다뤄주세요, 라고 부탁하려다가 처음이니까 전문가의 처분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좀 아프실 거예요.” 경고와 함께 그녀는 왁스 위에 붙였던 스티커를 확 떼어냈다. 약간 따끔하다. 수분 크림으로 눈두덩을 마사지하면서 그녀는 불주사를 맞은 유치원생 어르듯 “잘 참으셨어요”라고 칭찬을 했다. 훗, 이 정도쯤이야. 일자 눈썹의 소유자들은 대범하거든요. 왁스 후에도 숱이 몰린 부분을 솎아내고 성긴 부분을 펜슬로 메우는 디테일한 작업이 계속된다. 그때 한 무리의 여자 손님들이 나타났다. 다음에 전화 예약을 하고 찾아와 달라는 설명을 들으며 떠나는 그녀들을 실눈으로 훔쳐보았다. 확실히 왁싱이 필요한 안타까운 눈썹들이다. “요즘은 남자 손님들도 많이 오세요. 남자들도 눈썹 정리를 하면 인상이 많이 달라져요.” 눈썹은 초보가 모양을 잡기 어려울뿐더러, 손톱과 달리 한 번 기초를 다져두면 집에서도 관리를 할 수 있다. 바로 브로우 바가 네일 숍보다 유용한 이유다. 왁싱을 마친 눈썹은 생각보다 별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모양은 그대로 두기로 합의를 한데다 얼마 전 족집게로 뽑은 자리에 막 솟아나기 시작한 짧은 눈썹들은 어쩔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도 한결 정돈된 느낌은 든다.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주고, 지속 효과가 길기 때문에 눈썹 그루밍 초보들에게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눈썹을 잘못 솎아낸 건지 위쪽 절반이 아래쪽에 비해 좀 성겨 보인다는 것. 브로우 펜슬 따위가 집에 있을 리 만무하다. 어차피 ‘득템’하러 가는 김에 한 번 구입한 펜슬은 매장에 갈 때마다 사용하기 편한 모양으로 깎아준다는 슈에무라의 눈썹 서비스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일반 서비스는 하지 않고, 15만원 이상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님들께 쿠폰을 드리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갤러리아 매장 직원에게 눈썹 관리 비용만 따로 내면 안 되겠냐며 떼를 써보았다. 그녀는 잠시 후 전화를 걸어와 매장이 한가할 때 예약하고 방문하면 살짝 서비스를 해줄 수도 있다는 고급 정보를 흘려주었다. 그건 그것대로 감사하지만, 그냥 기자라는 걸 밝히고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모양은 지금도 괜찮으세요.” 이번에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반응은 그런대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눈썹 모양을 한 번 바꿔보기로 했다. “너무 반듯한 일자가 지루해서 각을 좀 줬으면 해요.” 그녀는 준비된 용지에 나의 주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그리곤 눈썹 머리와 꼬리, 눈썹산, 눈, 코 등의 이상적인 배치와 관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뒤 시술에 들어갔다. 칼과 가위, 족집게 등 다양한 장비를 써서 눈썹산 아래부터 꼬리까지 날렵하고도 자연스럽게 다듬었다. 브러시로 결을 정돈하고, 틴트로 색깔을 입히고, 납작하게 깎은 펜슬로 한 올 한 올 스케치하듯 성긴 부분을 메우는 섬세한 과정이 뒤따랐다. 왁싱이 그루밍 초보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건 고급반이다. 그날 오후, 모처럼 만난 친구는 내가 언질도 주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뭐 했어? 오늘 따라 눈썹이 완벽해!” 이렇게 된 이상 펜슬뿐 아니라 브러시와 틴트까지 사야겠다. 스킨, 로션도 귀찮아하는 주제에 그걸 매일 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눈썹은 눈이나 입술보다 공들여 메이크업 할 가치가 있는 얼굴의 핵심 부위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갖춰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매일 면도하는 남자들이나, 눈썹 없는 여자들이 MT에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비밀리에 수행하는 작업들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 수고는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서울 시내에 네일 숍이 우후죽순 생길 때만 해도, 여자들이 방치했던 부위를 하나씩 찾아내 용의주도하게 돈을 쓰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드는 뷰티 업계의 전략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어쩌면 눈썹에 쏠리는 뷰티 브랜드들의 새로운 관심에 대해 같은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썹은 대부분 여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부위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MB가 눈썹만 좀 짙었어도, 지금보단 훨씬 신뢰가 가는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골드미스가 간다>의 송은이가 맞선 볼 때 옷과 메이크업에 신경 쓰는 것만큼 눈썹을 공들여 다듬었다면 남자들의 호감을 사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아직도 완벽한 눈썹 찾기를 미루고 있나? 진돗개를 곰돌이 푸로 변신시킨 ‘눈썹 하나 그렸을 뿐인데’ 시리즈를 아직 못 봤나? 내세울 건 C컵 가슴과 브룩 실즈 눈썹밖에 없는 여자로서 조언하건대, 요즘 너도나도 부르짖는 ‘에지’라는 거, 어쩌면 브로우 펜슬 하나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다.
Tip 이상적인 눈썹의 조건 1 눈썹 꼬리 부분이 눈썹 앞머리보다 약간 높거나 비슷한 위치에서 끝나는 것이 좋다. 앞머리보다 아래로 처지면 코믹하고 자신감 없는 인상이 된다. 2 눈썹의 전체적인 길이가 눈 길이 보다 너무 길거나 짧지 않아야 한다. 3 아치형이나 갈매기형 눈썹의 경우, 가장 높은 부위인 눈썹산이 눈동자의 바깥쪽 라인과 비슷한 위치인 것이 좋다. 4 눈썹 끝과 눈 가장자리, 코 끝이 일직선상에 위치하면 균형 잡힌 얼굴로 보인다. 5 눈썹의 색상은 머리 색과 비슷한 것이 자연스럽다. 눈썹이 머리색 보다 짙다면 염색을 하거나 틴트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자세한 사항은 엘르 본지 9월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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