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담의 웃음꽃” / 野花今愛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길 가는 나그네 발길을 유혹하는 때다. 하지만 무심한 마음이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은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말리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게 얼마만인가. 아마도 십 년만인지 큰 아들과 모처럼 함께 탁구장에 등록하여 탁구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난, 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어느 곳, 어느 사람이나 가볍게 어울릴 수 있도록 이런저런 운동을 다 가르쳐주었다. 축구, 농구, 야구, 배드민턴, 바둑, 장기, 태권도(모두 공인 3단)수영 등을 배우게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는 제 엄마에게, 기타는 아는 형에게 배웠다. 물론 태권도 외에는 학원비로 쓴 것이 거의 없다. 장소 문제로 어려움 겪는 테니스는 라켓이라도 사서 만져보고 공원 같은 곳에서 몇 번이고 휘둘러보도록 했다.
어릴 때 배운 습관 때문인지 둘째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 뜬금없이 학교 탁구 선수로 뽑혔다며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학교 클럽활동 차원에서 종목별로 하는 운동이라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무슨 학교 대표냐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시합 날 구경하러 단원고등학교 강당체육관을 찾아갔다. 물론 단체경기였다. 그런데 아들은 친한 친구와 함께 대표로 뽑혔는데 자기가 팀 에이스란다. 지도하는 체육교사가 있는데 자기가 선생님과 게임해서 이기니까 게임준비나 작전 짤 때 아들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덜컥 안산(安山)시 대회에서 우승하고 말았으니. 우린 어쩔 수 없이 다른 학부형들과 어울려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어느 학교 경기장까지 아이들을 응원하러 가야했다. 안산시 대표가 되어 아들이 경기한다는데 안 가볼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도 행운인데, 예선만 통과해도 감사할 일이지. 그런데 이게 웬일? 결승까지 올라간 게 아닌가. 우린 다른 학부형들과 어울려 목청껏 응원해야했다. 접전 끝에 마침내 성안중학교 팀이 우승했다. 모두가 싱글벙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저녁에 안산(安山) 와서 불고기파티에 함께 참석했다.
나중에 또 놀라운 통보가 날아들었다. 아들이 속한 학교 탁구팀이 경기도 대표가 되어 전국대회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선수들은 그때 그 선수들이다. 내가 놀란 이유를 굳이 설명하는 것은 아들의 실력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런 실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건 가문에 영광 아닌가. 그일 후에 난 친척들을 만나면 ‘우리 형제들 가운데 경기도대표가 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며 난 큰 소리를 친다. 조카들 가운데도 다른 쪽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경기도대표 해본 사람은 없다. 물론 충북 단양에서 열리는 전국대회(2011년)에 나가 강력한 우승후보 서울대표를 만나 분패해서 팔강에서 떨어졌지만 그게 대단하지 않은가.(마침내 서울 팀이 우승) 경기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중학교 정문에 우승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둘 다 공부만 할 줄 알아 재미없다고 이상한 소문이 난 동산고등학교를 다른 학생들과 별 다르지 않게 머리 싸매고 버티더니 잘 졸업했다. 이제는 둘 다 대학 다니느라 언제 함께 탁구해본적은 없으나 큰 아들도 둘째와 거의 실력이 비슷할 거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아빠랑 함께 어울려 함께 운동하며 땀 흘릴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실은 큰 아들은 지금 이 년째 중앙대 휴학 중이다.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더니 경기 중에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어 완전히 끊어졌다. 그래서 수술 후에 빠져버린 근육양도 늘려야하고 걷는데도 불편 없도록 지금까지 재활훈련과 치료를 병행중이다. 가을에 사학년 이학기로 복학 예정이지만 다섯 가지의 시험절차를 거쳐 학사장교 시험을 통과하고 졸업하면 장교로 군입대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주위 분들에게 축하인사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병무청에 가서 재검 받은 결과 병역면제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참 아쉬웠다. 그러나 아들은 또 다른 기회가 생겨서 인지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어제는 이 큰 아들과 안양 호계체육관에 갔다. 아들도 5월 5일에 학교 탁구동아리 대표로 시합에 나가고, 나도 총회체육대회(4월 30일) 노회대표로 나가기 때문에 팀 동료들과 손발을 맞춰보기 위해 체육관에 모였다. 우린 어디까지나 믿음이 좋아? 기쁨조를 자처하고 있어 우승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실력이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즐겁게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목사님들 네댓 분들과 운동 후에 저녁 식사하러 청계산을 옆구리에 끼고 나룻배처럼 산중에 두둥실 떠있는 백운호수가 보이는 메밀막국수 집을 찾았다. 한 십오 년 전 의왕시에 살았을 때는 자주 바람 쐬러 놀러오던 백운호수인데 모처럼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고, 새록새록 새 옷으로 몸단장하는 호숫가 야산들의 연초록 물결이 내 시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비빔국수로 통일해서 식초도 넣고 육수 조금, 매콤하게 하는 소스를 곁들여 이리비비고 저리 비벼 열무생김치에 한입 깨물어 먹으니 소문답게 별미였다. 물론 큰 아들도 자리에 함께 했다. 모처럼 아빠와 아들만의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 흐뭇하다.
식사 후 나오면서 뜨거운 메밀 차에 봉지커피를 부었다. 이건 순전히 계산대의 주인이 시켜서 한 일이다. 손에 커피를 들고 나오려는 순간 주인마담이 날 부르는 게 아닌가. 식당에 들어오기 전 아들과 나를 보았다는 것이다. 어찌 사람을 알아보고?! 이제 쭉 돌아서 길 건너 주차장으로 가지 말고 식당 바로 밑 화분 옆 돌담샛길로 내려가란다. 내가 누군가. 잘하고 멋진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아닌가. 그래서 긴 파마머리에 멋진 중년 마담에게 한 마디 했다. “내가 들어올 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눈이 아름답게 빛나더라. 했어요.” 그때 백운호수 곁을 따라 봄꽃 향연을 펼치는 산속 길을 달려오는 내내 마담의 얼굴에 핀 웃음꽃향이 떠나지 않았다.
첫댓글 비도 오고 우중한 날씨에
상큼한 비빔국수와 따끈한 부침이 하나 먹고 싶은 날 입니다.
목사님 귀한 글에 쉼을 얻으며 미소 반짝 거리며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비오는 날 따끈한 빈대떡도 좋지요.
강물같은 평강이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