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정교 사제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신학자가 되지 않고 과학자가 된
희대의 천재 겸
오덕이자 20세기 초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을 만들어 버린 인물.
이름이나
C&C 시리즈의 영향인지
러시아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에서 공부도 일도 한 적이 없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 출신 미국인. 머리도 좋고 말도 잘 하고 8개국어를 하는 언어의 천재에다 키도 크고(198cm) 얼굴도 잘 생기고 옷도 잘 입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엄친아.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다만
평생을 독신으로 산 것만 제외하면...
프라하 대학을 나와 도미후 에디슨 컴퍼니에서 일했으나 직류에 올인을 외치는
토머스 에디슨과 대립, 회사를 뛰쳐나와 투자자를 긁어모아 자기 회사를 세운다. 이후 직류 vs 교류 문제로 에디슨과 엄청나게 싸웠다는 것은 유명한 일로 나중에(1915년) 에디슨과 노벨 물리학상 공동 후보로 올랐을 때 서로 "저 놈이랑 같이 받느니 안 받고 만다"고 악담을 퍼부어댔다는 루머가 있다.
당시 에디슨 전기회사(제너럴 일렉트릭)와의 직류 vs 교류 전쟁에서 테슬라의 파트너였던 웨스팅하우스사는 교류 전류 전송방식을 특허로 등록해서 같이 돈 많이 벌자고 제안했으나, 자신보다는 인류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며 특허등록을 거부.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얼마후 웨스팅하우스 기술진과 대판 싸운 끝에 회사를 그냥 뛰쳐 나와 버렸다.
원래는 직류 전송 방식이 먼저 연구가 시작되어 많이 쓰였으나, 결국 변압이 용이하여 장거리 송전에서 손실적은 등, 교류가 가진 여러 장점으로 인해 에디슨의 전송방식은 일반 전기 분야에서 개발리고 세계적으로 교류 전송 방식이 쓰이게 된다. 에디슨은 테슬라를 어떻게든 지게 만들기 위해 로비도 하고 선전도 하는 등 별짓을 다 했으나 결국 승리한 것은 교류.
- 대표적인 술수로 교류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교류를 이용한 전기의자를 만들어서 사형수에게 시험했으나, 몇 번 전기를 통한 후에도 연기가 모락모락 날 뿐 죽지 않았기 때문에 참관하던 간수에게 "차라리 화형을 하시죠"라는 말을 들을 정도.
그다지 수익성있는 발명을 하지 못하여 상업화되지 못한 채 사라진 물건들이 많은데다 에디슨과 버금갈 정도로 독선적인 고집쟁이에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조수나 동료는 물론이고 투자자(그의 스폰서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금융가 JP 모건이다)들과도 싸움을 자주 벌이고 안하무인으로 대해
네놈들은 그냥 하루하루 돈대는 기계일 뿐이지그 대다수가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었다. 예를 들면 형광등의 경우 그 발명에 어느정도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품화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고 심지어 전 세계에 형광등을 보급하여 떼돈을 번 회사는 바로 최대의 라이벌 에디슨이 만든 GE였다. 그 탓에 기껏 고안한 발명도 개발비가 없어 묻혀버린 경우가 많았다. 이 양반도 만년의 에디슨처럼 오컬트에 깊이 심취하였는데 에디슨과의 반목은 사실상 동족혐오일 가능성도 있다. 친구나 동료는 남아나질 않았으나 그래도 지지자, 추종자들이 많아서 만년이 별로 불행하지 않았던 굉장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1943년 거의 노숙자용 거주지같은 곳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늘그막 시절 사진이 고작 4장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강연
#)
첫댓글 테슬라..옴넥오넥의 나는 금성에서 왔다라는 책에보면 또 테슬라가 나오는데 죽지않고 지하세계로 갔다고 써있더군요. 세상이 차원변화를 일으키면 다시 컴백한다고도 하공..
기인은,,,,,,,기인 이네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