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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왕이 백성들과 대신 들로 부터 빈축을 받고 있는 동안 고구려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던 중국에는 대 혼란이 야기 되어 동한의
황실은 완전히 몰락의 위기에 빠지고 있었다 .
동한의 황제를 제 손 아귀에 쥔 동탁이 스스로 승상이 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왕윤이
자기가 기른 양녀 초선을 아름답게 꾸며 동탁과 여포를 차례로 초대해 여색에 빠지도록 한다 . 미인계 미끼에 걸려든 동탁과 부장 여포는 초선이라는
미녀을 사이에두고 서로 자기 여자를 만들려고 암투를 벌리다가 부장 여포와의 갈등은 급기야 양아들이나 다름 없이 끈끈했던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된다
.
이때 초선은 양부로서 왕윤의 키워준 은혜를 생각해서 동탁을 죽이는데는 협력했으나 일단 동탁에게 맡겨지었던 더럽혀진 몸을 다시
여포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아 여포 몰래 스스로 자결 하고 만다 .
여포는 초선이가 죽자 그때서야 자기가 한 짓이 잘못 되었음을 후회 하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한편 동탁의 심복 이었던 이각과 곽사는 동탁이 죽자 일단 양주(凉州)로 피하여 있으면서 조정의 눈치 만 보고 있다가
왕윤이가 특사를 내린다는 바람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항복 할 뜻을 비추었으나 왕윤은 오히려 두사람을 크게 꾸짖는다 .
" 동탁을
등에 업고 호의 호식 하던 놈들이 어디에서 대가리를 내밀고 용서를 바라느냐?"
왕윤은 사자를 돌려 보내고 이각과 곽사를 을 토벌 하려고
군사를 일으킨다 .
이각과 곽사가 왕윤의 회답을 받고 낙심하고 있을때 부장이 말한다
"항복은 무슨 항복 입니까 ? 왕윤이
저렇게 나오는데 ...나가 싸워야 합니다 .장안을 공격 하여야 합니다 .이기면 충신이 되고 잘 하면 천하가 우리 것이 될수도 있습니다
"
두 사람은 더 이상 대안이 없음을 인지하고 장안의 왕윤을 치기로하였다.
이각과 곽사는 장안으로 처들어 가다가 도중에 여포가
관군을 이끌고 자기들을 토벌 하러 온다 말을 듣고 겁을 집어 먹는다 .
"여포는 힘으로는 칠수가 없다 .계교로서 잡아 죽이 어야
한다".
곽사의 부장 주후가 말한다
"여포와 싸우다가 거짓 지는 체하고 도망 치다가 산 속으로 유인한후 공격해야 합니다"
이
말을 좇아 곽사는 여포를 유인하여 산속으로 유인해 들였다.
한편 이각은 우회하여 장안으로 쳐들어 간다 .
여포가 정신
없이 곽사를 쫓아 산속으로 추격 해 들어가고 있을때 여포에게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다 .
"지금 장안이 위태로우니 속히 회군 하여 적군을
막으라"
여포는 명령을 받고 장안으로 말 머리를 돌리자 곽사의 군사들이 여포의 뒤를 쫓는다 .
한편 이사는 장안 외성 까지
도착하자 비밀리에 장안성으로 간첩을 보내 동탁의 동조자들로 하여금 성문을 열게하여 물밀 듯이 성내로 진입한다 .
성내로 진입한 이각의
군대는 사방의 불을 지르며 백성들의 재물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며 대궐로 향하였다.
놀란것은 황제 인 헌제(獻帝)였다
.
헌제가 누각에 올라 몰려든 군사들 앞에서
"너희 들은 어찌하여 과인의 허락도 없이 궐내 까지 들어왔느냐"
하고 호통을 친다
.
왕윤은 몰려 든 군사들 앞에서 헌제의 호통치는 모습만 지켜 보고 있었다 .
이각이 말한다 .
"황제 폐하 , 돌아
가신 동탁 승상께서는 한(漢)나라의 충신이며 공신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서 있는 왕윤이란 놈이 초선이라는 계집애를 미끼로 승상과 여포장군을
이간을 시켜 나라가 이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들은 결코 반란군이 아닙니다. 저기서 있는 저놈이 역적입니다"
왕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에라 이 썩어 빠진놈 들아 "
하고 왕윤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는지 갖고 있던 칼로 자기 배를 가르고 누각아래로 몸을
던진다 .
누각 아래는 순간 붉은 선혈로 물들여 지고 왕윤은 숨진다.
"천자도 죽여라"
순간 병사들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치었다
.
이각이 짐짓 엄한 얼굴을 하며 병사들을 돌아보며
"지금 지꺼린 놈이 누구냐"
하고 소리 치자 큰 소리를 치던 병사
한명이 군중 심리로 한마디 소리쳤다가 질려 있었다 .
"저놈을 끌어 내어라 "
하고 이각은 죽이지는 않고 짐짓 황제를 위하는척하며
"황제 폐하 고정 하십시요.곽사 장군이 도착 되면 저놈을 조치하고 앞으로는 그런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하고 읍한다 .
병사
들에게도 자극을 주지 않고 황제에게도 압력을 넣자는 속셈이었다 .
한편 장안으로 돌아 오던 여포는 장안이 불 바다가 되어 타오르는
연기를 보고 탄식하며 할수 없이 원술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몸을 피한다 .
한편 황제는 도리 없이 이각에게 거기 장군을 주고
곽사에게는후장군의 벼슬을 내리었다.
중국 천하는 다시 동탁의 후예인 이각과 곽사에게 모두 권력이 돌아가는 듯했다..
그때 쯤
청주에서 또 다시 황건적이 날뛰기시작했다
이각과 곽사는 당시 동군 태수 조조에게 황건적 토벌을 명한다 .
조조는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황건적을 토 벌하였는데 그 공로를 치하 하여 진동장군의 벼슬을 제수한다 .
조조 뿐만이 아니었다 . 중국은 하북성은
원소가, 유주와 요동은 공손찬과 공손도가, 강소성은 도겸과 여포가, 감숙성은 마등과 한수가, 양주 땅에는 원술, 강동에는 손책, 호남에는 유표,
사천성에는 유언등이 각자 군벌을 조성하여 각자의의 군대를 갖고 있었다,
언제 이각과 곽사를 조정에서 몰아 낼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로 부터 중국 대륙은 이합 집산이 계속 되어 조조는 주로 산동에서 ,원소는 기주, 청주, 유주 병주에서, 남방에서는
손책이 권력을 잡기 시작하였다.
중국 조정은 이각과 곽사의 손 아귀에 있었지만 각 군벌들은 아무 누구도 그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능력한 헌제와 도둑으로 몰린 이각과 곽사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때 조조가 동탁 제거에 실패한 과거의 한을 풀고자 이각과 곽사를
공격한다. 결과는 조조의 승리로 끝나고 동한의 권력은 다시 조조가 차지한다.
조조는 황제를 보호 한다는구실로 헌제를 이끌고 장안에서
낙양으로 다시 허창으로 끌고 다니며 사실상의 권한은 자기가 갖고 황제는 유명 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중국 대륙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때 고구려 산상왕은 국정은 국상 을파소에게 맡기어 놓고 그는 국내성에 는 있지 않고 사냥을 핑계로 중국 국경 지대인
건평(建平),능원(凌源),대청산(大靑山),을 둘러 보고 북녕(北寧),팽무(彭武),요중(遼中),을 거처 본계(本溪),안산(鞍山),등의 철광을
둘러보았다 .
오랜 시찰을 마친 산상왕은 을파소를 부른다
"과인이 전국을 두루 살펴 보니 우리 국내성이 너무나 비좁은것
같습니다"
을파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말하는 임금의 말에 어리둥절하였다 .
"어인 말씀 이온지 ?"
"서쪽을
가보니 평야도 넓고 온갖 농수산물이 풍부하여 앞으로는 그쪽을 개발하여야 할것입니다 . 앞으로 중국이나 선비족들을 고구려에 복속(服屬) 시키려면
수도가 이런 산골짜기에 있어서는 않 된다고 생각 합니다 "
"서쪽 이라면 어디를 말씀 하시는 것인지?"
"여기서 200 리 밖에 있는
본계(本溪)와 안산(鞍山)이라는 곳을 가보니 가보니 그렇게 좋은 곳이 없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곳도 동쪽은 산악
지대이고 서쪽은 평야 지대로 알고있습니다.이곳 국내성과 별로 다를 바 없는곳이지요"
"국상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제가 둘러 보니
교통이 편리하고 안산 근방에는노천굴에 철광이 지천이어서 무기 생산이 쉽고 농산물이 풍부합니다 .특히 해안이 가차워 새우와 조개류가 많이 잡히는등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은 곳입니다. 장백산맥(長白山脈)의 정기를 받은 천산산맥(千山山脈)기슭에 성을 쌓고 새 도성을 만든다면 앞으로 고구려는
무궁무진 하게 발전 할수있습니다"
"일국의 수도를 그렇게 즉흥적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나라의안위에 결부된 중요한
사항입니다"
"우리 고구려는 우물안 개구리로 있어서는 않됩니다 . 수도는 아무래도 국토에 중앙에 있어야 할 뿐만아니라 ,앞으로 중국 대륙을
손 아귀에 넣으려면 아무래도 혼강(渾江)과 태자하(太子河)유역이 적당할것으로 생각합니다"
"중앙 이라면 국내성이 중앙이지요 , 이곳이
계곡에 위치한 곳 이라고 해서 그곳 으로 꼭 옮겨야 한다는 논리는 훨씬 잘 못된 생각이십니다. 수도를 옮기려면 막대한 재정과 조야의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까짓 합의는 무슨 필요 있습니까? 과인의 의지가 더 중요 하지요, 왕이 하겠다는데 누가 반대
합니까?"
"..............."
국상 을파소는 어이가 없었다 .
" 꿈으로 만 천도가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 이곳 국내성은 천혜의 요새지입니다. 또 이곳은 200 년의 고구려의 터전이고 천하의 중심입니다. 천도를 하시다니 .....
"
왕은 을파소의 말에
"허...내 얘기는 천도가 아닙니다 .이곳 국내성을 버리자는 말씀이 아니고 이곳은 계속 발전을 시키고 더 넓은
곳에 수도를 정하자는 말씀입니까? 국상께서는 안보를 얘기 하시는가 본데 외적들이 언제 단 한번이라도 국내성 까지 침공 해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까?"
하고 을파소의 말을 반박한다 .
을파소는 왕의 억지 의도를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너무도 완강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자기 주장을 더 계속한다 .
"천하의 정세가 변하였습니다. 중국에는 위, 촉,오 세나라가 각축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도 영토를 확충 해야지요.그러자면 수도를 서쪽으로 옮겨 대처 해야 합니다"
"말씀은 좋으시나 도성을 지으려면 막대한 국가 재정이
들어갑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서울을 옮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구태어 많은 돈을 들여 옮기시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왕은 을파소의 완강한
주장에 처음으로 반감을 갖는다.
(왕이 하라면 했지 뭐가 말이 많아? ...)
"전하 , 그러한 돈이 있으시다면 차라리 군비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을 구제 하시어 살기좋은 고구려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왕은 군비라는 말이 나오자 귀가 번쩍 띄었다 .
"바로
그 말씀이오, 내 말은 수도를 당장 천도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군비를 튼튼히 하자는 얘기요, 우선 본계(本溪), 안산(鞍山),심양(瀋陽)지방에
축성을 서두를 필요가 있어요 "
을파소는 자기 말중에 백성들을 잘 살게 하여야 한다는 말은 거두절미 하고 자기가 몰두하는 말에만
집착하는 순발력에 또 한번 놀란다 .
(큰일 낼 사람이다 ....장차 무슨 파국을 가져 오려고 저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있을까?")
늙은 재상의 얼굴에수심이 가득해지었다 .
계속
왕은 을파소에게 천도 계획을 꺼냈다가 을파소로 부터 천도하려면 조야의 합의가 필요 하다는 말에 우씨 일파와 대신들의 강력한 반발이 머리에
떠올랐다.
산상왕은 당초 마음 먹었던 천도 계획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하였다 .
( 국상과 우씨 일파 들을 먼저 갈아 치우기 전
까지는 말을 꺼냈다가는 큰일 나겠다.......)
왕은 화제를 돌린다 .
"최근 변방을 돌아 보니 중국의 정세가 혼미 상태라고 하는
말이 들리는데 그들이 언제 말머리를 돌려 우리나라를 침범 할지 모르니 이에 대비 하기 위하여라도 새로 축성이 필요 한것을 느꼈습니다
"
을파소가 말한다 .
"선왕때 이미 중국 경계에 무려 5개 성이나 이미 축성이 완료 되었는데 또 어디를 하시자는
말씀입니까?'
을파소는 더이상 축성 할곳이 없다는 얘기다 .
왕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맹수도 짐승을 잡을때는 귀를
기울이고 잠복한다는 말이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고구려 군사가 강하더라도 한(漢)나라 군벌들이 우리나라를 넘보아 처들어올경우 적들이 미처 생각
못할곳에 제2 방어선을 처서 결정적인 순간에 덮칠 성을 미리 쌓아놓아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대능하(大凌河)나, 요하(遙河) 근방에 대대적인
축성을하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
하고 말하자 을파소가 반대한다 .
"전하, 대능하와 요하는 허허 벌판입니다 .그런 진흙 구덩이에
성을 쌓는다는 말씀입니까?"
왕의 언성이 높아진다 .
"아무리 허허 벌판에다 성을 쌓는 다는 말씀이오? 인근 천산산맥(千山 山脈)
기슭인 안산이나 본계가 있지 않습니까? "
을파소는 산산왕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더 이상 대꾸를 않기로 했다.
다음
날 왕은 자기의 심복인 울절 고우루(高優婁)를 부른다 .
왕이 먼저 고우루가 들으라는 듯이 혼자말로 지껄인다
" 국상이 말을 안들어
서 ...."
고우루가 묻는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늙은 이가 아주 꼴통이야 "
고우루는 꼴통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
"꼴통 이라니요?"
"도대체 국상이라는 자가 왕의 권위를 뭐로 보는거야?"
왕의 심경이 좋지 않았다.
고우루는
왕과 을파소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음을 지례 짐작하고 말한다
"그러시니까 혁정을 하시라 하지 않았습니까?"
왕이혼자 지껄인다
"혁정이라...."
고우루가 왕의 독백을 놓지지 않고 말한다
"개혁이라는 명분으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왕권을 강화
하는것입니다"
"맨 그놈의 대가와 대신들 때문에 무슨 정책이고 마음 놓고 해 나갈수가 있어야지 ..."
왕은 각부의 대가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
고우루가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
"그러니까 혁정에 찬동 하는자는 벼슬을 내리고 사사 건건
방해하는자들에게는 벼슬을 깎으면 자연히 전하에게 승복 하지 않겠습니까?"
고우루의 말에 왕은 귀가 솔깃 하였다.
왕은 순간
느끼는것이있 었다
(그렇다 , 왕권을 강화만 하면 자연히 골치 아픈 꼴통들이야 물러 나겠지....)
그러나 난데 없는
벼슬이라는것이 그렇게 많은 것 도아니고 벼슬 이라는 벼슬은 대신과 우씨 일족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그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벼슬 자리가 어디 그리 흔한가?"
고우루가 말한다 .
"전하 께서는 하나만 아시고 둘은
모르십니까?
"............."
계속
고우루는 왕이 자기 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하자 힘이 절로 났다.
"대신들이나 우가(于家)들의 힘을 꺾는 방법이 있습니다"
왕이
귀를 기울인다 .
" 어떤것이오?"
"전하 , 백성들이 있지 않습니까?'
"............"
왕은
백성들이라는 말에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우왕후(于王后)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후 형의 처를 자기 처로 맞이한 불륜 사항을 가지고
백성들이 말이 많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왕이 말문이 막히어 난처한 표정을 짓자 고우루가 침묵을 깬다
.
"속담에 먹는 개는 짖지 않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을 얻어 먹은 개는 미안 해서 짖지 못 하듯이 사람도 뇌물을 받게 되면 할 말도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이 말을 잘 삭여서 생각해 보십시요 .
지금 농민들은 썩어 빠진 대신들과 우가들의 권력 남용으로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말만 고구려 왕이지 실제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왕은 제껴두고 제가회의의 각 오가(五加)
대대로(大對盧)들이 곧 왕이요 .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 들이야 대가 희의 관련자들에게 만 충성을 다 하면 되었지 임금은
아예 뒷 전이 아니었습니까? 각 대가들 입에서 왕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하면 좋은것으로 만 알고 있고 왕이 나쁘다고 하면 나쁜 줄로 아는것이
상례가 아니었습까?""
"..................."
왕은 고우루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
고우루가 말을
말을 계속한다 .
" 따라서 농민들은 자연히 전하를 별로 의식 하지 않고 대가들의 말 만 따르면 별로 생활에 부담이 없게 되었습니다.
대가들도 자기들이 의도 한대로 농민들이 따라 주었으므로 조금만 농민들을 배려 해주면 백성들이 자기들을 잘 따른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나라의 지배자는 임금이 아니라 대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왕은 고우루의 독설에 귀가
가려웠다 .
" 말이 너무 과하오"
"신의 말이 듣기 싫사옵니까?"
"그게 아니고 과인이 듣기에 좀...."
왕이
자기가하는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것을 알아챈 고우루는 자신 있게 더 말을 계속한다 .
"제가 왜 이렇게 까지 말씀을 올리는가 하면 지금
까지의 이러한 대가들 중심의 틀을 깨고 임금께서 직접 챙기시라는 뜻입니다 "
"어떻게.....?"
"첫째 ,말을 듣지 않는
지식인들을 각 관등에서 과감하게 제거하십시요 .그자들은 글줄 깨나 알면 알수록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전하를 앞으로 계속 괴롭힐것입니다 .
두번째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모두 책자를 모두 압수하여 좋지 못한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십시요 .요즈음 중국에서 들여 오는 각종
서적은 모두 왕권을 비평하는 못된 서적이 많아 앞으로 왕권 신장에 걸림 돌이 될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
".................."
왕은 고우루의 말에 깊이 빠진다
"다음은 새로운 도성을 쌓아 그곳으로 옮겨
전하의 권위를 새로 세워야합니다 .
지금 국내성은 왕실의 갈등과 우가들의 득세로 조정의 위계가 문란하여 도저히 대왕께서는 위엄을 세울수
없는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
마침 한(漢)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이 되어 가고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
이 말은 왕의 마음과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었다.
형수인 우씨를 왕후로 맞이 한 것으로 인한 민심
이반, 동생 들의 반란, 외척 들의 득세, 구신 들의 무시 등으로 겹처진 국내성은 그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독모의 주장은 그의 새로운
도읍을 만들어 새 고구려를 만들고 싶다는 자기의 도피 의식과 딱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
왕은 귀가
솔깃했다.
"구체적으로 말 해보오"
"우선 서서히 대가 회의를 헤체 시키는 작업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국의 군과 현을
모두 임금의 통치권이 직접 미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
" ................"
"먼저 대가회의를 우선 무력화
시키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대가회의라면 국가의 중요정책을 심의 결정하는 고구려의 중요 국가 정책기관이다.
이를 무력화 시킨다는것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큰 사건이다.
"없앨수야 있나?"
" 없애면야 좋지만 저의 말씀은 대가회의를 무력화 시키자는
뜻입나다."
왕은 아예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무력화로 얻는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수로우냐는듯이 시큰둥했다.
고우루가 말을
계속한다 .
"대가회의를 무력화 시키면 우선 왕권이 강화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
왕은 고우루의 설명에 다시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대왕께서 내일이라도 당장 먼저 졸본 땅에 가시어 부여에 모신 유화 부인과 동명성왕 사당에 행차 하시어
손수 제사를 치루십시요 .
그래야 백성들이 전하를 부지 불식간에 하늘이 보내 주신 왕이라는 관념을 우선 심어줄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지금까지 대가의 허락없이 마을에서 3 명이상이 술을 마신다든가 5일이상 연회를 베푼다든가 하는것을 위반하면 벌금 5냥을
내게 되어 있는 제도를 폐지하도록하여 선심을 베푸는 동시에 각 촌락에 제사가 있을 때마다 촌장들에게 직접 제주의 직위를 내리고 쇠고기열근과 술
열섬을 하사 하십시요 .
그렇게 되면 각 촌장들은 모든 것을 간섭하려드는 대대로들에 비하여 역대 왕이 직접 내려 준적 없는 고기와
술에 감동 할 것이며 촌장들은 제주의 직책을 내려준 왕에게 감사해 할 것입니다 .
그렇게 되면 그 마을 제사 현장에 있는 자리는
자연히 서열이 정해 질 것인데 그중에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제주가 될것은 뻔합니다. 또 마을 제사에는사람들좌석 배치 될경우 왕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순서대로 앉게 될것입니다.
이런 것이 관행이 되면 농민들 머리속에는부지불식간에 왕의 존재를 뇌리 속에 자기도 모르게 새겨
둘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왕께서는 만인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것은 자명 한것입니다"
왕은 고우루의 설명에 감탄한다
.
그런 일이 있고 난후 왕은 부여 땅에가 유화 부인과 동명 성왕의 사당에 나가서 친히 제사를 지낸다 .
그리고 각 촌장들이
주관하는 제사나 경조사에 어김 없이 임금의 하사품이 전달 된다 .
무엇이든지 주어서 싫다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산상왕을 색 안경으로 바라 보던 눈이 달라지었다 .
"쯧쯧 대왕께서 어찌하여 그런 형제들을 만나서 골육 상쟁을 벌렸다는 말인고 불상도
해라"
백성들 입에서는 원망이 측은의 소리로 변하였다
이리하여 한 동안 술렁 이었던 고구려 사회가 다시
조용해지었다.
여기 까지는 좋았다 .
왕은 때를 놓질세라 마음 먹은대로 국내성에서 서쪽 200 리 밖에 있는 본계, 안산
심양지방에 대규모의 성을 쌓으라고 지시한다
이것을 보고 을파소가 한탄한다 .
(나무접시가 놋접시 될까?)
을파소는
요사이 나이도 든 데다가 왕이 사사건건 자기를 홀대하는 것만 같아 왕이 매사를 서두는데 대하여 더이상 말을 않기로 했다.
왕은 새로
쌓기 시작하는 성이름을 환도성(丸都城)이라고 이름 까지 지었다.. 국내성에서 200 여리 떨어진 지역이었다.
"중국 국경지역도
아니고 하필이면 국내성에서 겨우 2백리 밖에 안되는곳에 성을 쌓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구려 조야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
"정신나가 사람이야"
왕은 사실상의 새도읍지로 환도성을 마음속에 내정하고 있다는것은 을파소만 알고있었다 .임금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천도 얘기가 나오지않은 이상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못하고 왕의 거동만 처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왕은 환도성 축조 현장에 나가
국내성에는 별로 자리에 없다 싶이하였다
관심이 없던 백성들이나 대신들중에는 왕이 다른 현안이 많은데도 환도성에만 집착하고 있는데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
"이백리도 안되는 지역에 으리 으리하게 성곽과 집을 짓고있대...."
"위나암성에 비 할데가
아니라는데?"
집과 성곽에 동원 되었던 백성들 입에서 입으로 퍼저나갔다 .
처음에는 인부들을 썼으나 점차 규모가 커지자
각지방에서 징용자로 모집한 장정들이 투입되기시작되기 시작하였다.
계속
고우루의 계책은 적중하여 왕권이 정착 되기 시작했다 .
고구려의 각 촌락들은 제가회의의 입 김에서 벗어나게되었다.
각 촌장들은
왕이 내린 제주(祭主)라는 새 직위를 가지고 마을신에게 제사 지내게 된다.
마을의 제사 현장에 서는 자연히 사람들간의 서열이 정해
지게되었다 .
제주는 어느 좌석에 가나 상석을 앉는 권위를 갖게 되었고 어디에를 가나 대우를 받았다.
왕의 덕분이었다
그리하여
왕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한 권위자로 둔갑 하게되었였고 만인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 대대로 들도 처음에는 왕의 전에 없던
촌장 회유책에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였으나 차차 왕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서부터는 마을의 인심은 모두 왕에게 집중되어 허탈감에
빠저있었다.
대가들의 큰 뒷 받침 억할을 하고 있었던 촌장들은 모두 왕의 절대 신임 받는 제주라는 든든한 직위를 받고 부 터는 더욱 마을의
중요 행사에는 어른 대접을 받게되었다.
왕권강화에 힘입은 산상왕은 이제 본격적으로 환도성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
제일
골머리를 아파하고 있는 사람은 국상 을파소였다 .
을파소는 국가의 한정된 자원이 뻔한데 생산성이 낮은 축성 공사에 막대한 예산을 마구 투입
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 되지 않을수 없었다.
참다못한 을파소가 왕에게 환도성 축조 계획을 백지화 할것을
건의했다.
"전하의 천도 계획은 이해 하나 지금 대역사에 따른 백성들의 원성이 적지않습니다, 또 대역사(役事)로인한 재원 조달이
장차 나라를 망칠수 있습니다"
왕이 화를 낸다 .
"허. ... , 나라가 망하다니오? 새로운 강한 대국을 만들려고 하는 마당에 그
무슨 망녕 된 말씀이오? "
"생각은 좋으시나 지금 농사철입니다 . 생업에 전념 해야 할 농민들을 이런 생산성이 낮은 공사에만 투입 해서야
되겠습니까?"
"허...지금 농민들에게 공짜로 일을 시키는겁니까? 임금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농민들을 도와 주고 있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임금의 궤변에 말에 을파소가 긴 한숨을 짓는다
을파소가 걱정 하는 것은 동원 되는 농민 문제 그자체 보다도
절대 권력을 갖다 싶이한 왕이 강행하는 환도성 공사를 막을 길이 없다 는것이었다. 막대한 재원 조달에 따른 백성들의 세금 부담 을 어떻게 해결
하는가가 큰 문제였다.
왕은 최근 국상에게는 일체 상의도 없이 심복 고우루의 자문만을 받아 예전에 없던 세금 세목을 마구 신설하여
세금 받아 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집 마다 인두세 , 중국 당산(唐山)을 통하여 들여오는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로
부터받는 자산 취득세, 중국에서 육고하(六股河), 대능하(大凌河), 요하(遼河)등을 건너 국내로 들어 오려는데 따른 도강 허가세 , 각종
죄수들이 풀려 나올때 받아 내는 보석금, 소금, 철, 후추 같이 이익이 많은 것을 일반 백성들도 손을 못대게 하고 얻는 국가 전매 수입 , 군대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로 부터 걷는 병역 대체비 등이었다.
모두가 예전에는 세목조차 듣도 보도 못한 세금이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농민들과 직접 피부에 닿지 않는 것이니 괞찬았다 .
문제는 농민들로 부터 강제로 받아 들이는 토지에 관한 세금 징수
제도였다.
왕은 토지 제도를 바꾸어 밭 100 두둑(밭과 밭 사이를 경계 지어 나눈 단위)을 다섯 식구 단위로 각 가구에게 배정 하였는데
밭 한 두둑에 농산물 한 섬(한가마 )씩을 생산 하는것으로 보고 다섯 식구를 가진 가장은 1 년에 150 섬 을 생산 하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
여기에서 농민들은 토지세로 15 섬을 내고 남은것을 일년 식비로 먹고 사는데 90 섬을 잡으면 나중 남는 것은 45 섬에 불과했다
.
그 45 섬도 피복비와 제사등 마을 행사에 받치는 돈 , 병 치료비, 경조사비,등에쓰고나면 오히려 부족하여 빚을 지게 마련이었다
.
그런데 설상 가상(雪上加霜)격으로 환도성에 징용으로 몇달씩 의무적으로 강제 동원되어 쥐 꼬리 만한 임금을 겨우 받아와 생활
하자니 날로 생활은 어려워 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개혁을 한답시고 토지 분배를 공정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
외척들이
소유하고있는 막대한 토지는 사실상 몰수가 불가능 했으면서 각 촌장들인 제주들에게 내리는 하사물 정도로 백성들을 회유 해 보려한 처방도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농촌에 대한 왕의 새로운 시도에 감탄 하던 민심이 환도성을 축조가 시작되고 나서 부터는 동원되는 징용 제도와 마구
잡이로 걷워 들이는 세금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다시 원망으로 되 돌아 왔다.
대신들의 걱정은 왕이라는 절대 통치자가 나라의 곳간(庫間)의
돈을 함부로 쓰다가 국가 경제를 피폐의 시킨후 나라가 망하게 까지 가게 한다는 것이었다.
왕은 나라 안의 정사는 국상에게 맏겨
내팽게치고 밤이나 낮이나 환도성에가서 성 축조에 만 관심을 쏟고 있으니 국가 대사를 제대로 볼리가 없었다.
게다가 왕은 늙은 우왕후와는
의식적으로 잠자리를 피하고 후녀라는 젊은 여인과 환도성에 보금 자리를 차려 놓고 단 꿈에 젖어 있었다 .
산상왕이 후녀를 맞이 하게
된 내력은 이렇다 .
고구려에는 전통적으로 봄에 삼월 삼일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습과 가을 10월에 지내는 동맹이라는 제사에 돼지를
신에게 받치는 제물로 쓰는 풍습이 있었다.
환도성의 첫삽을 뜰때도 어김 없이 돼지를 신에게 받치는 제물로
쓰이었다.
고구려에는 이것을 교시(郊豕)라부른다 . 들에서 돼지를 묶어 놓고 죽이는 행사를 하여 신을 위로 한다는
뜻이다.
장차 환도성이 수도로서의 국도(國都)에대한 신통력을 발휘 해줄 중요한 제물이라는것이다.
즉 교시라 부르는 돼지는 장차
환도성을 크게 번성 하게 할 예언자인 동시에 길 잡이가 된다는것이다.
교시에 쓰일 돼지가 죽이기전에 머물며 꿀꿀 거리는 장소는
명당(明堂)이 되었으며 이 명당은 환도성의 궁궐 정전 자리가 되었다.
특히 산상왕은 교시 돼지의 행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의 그동안 걸어 왔던 행로가 비참 했듯이 그의 앞 날도 점칠수 없이 불안 했기 때문이었다 .
그의 본처와 자식은 고국천왕이
죽고 그의 부인 우씨가 발상을 미룬채 형 발기에게 후사를 논하다가 쫓겨 자기에게 찾아와 결국 정권 흭득에 성공은 하였으나 형 발기의 반란때 그의
인질로 잡혀 모두 몰살 당한 바 있었다.
그후 형의 부인과 결혼을 하여 살고 있었으나 불륜 이라는 낙인을 면할수 없었다.
게다가 우씨는 아이를 낳은 일도 없었을 뿐 만 아니라 지금은 중년의 여인으로 아이를 생산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기공식을 하기 이틀 전에 고우루가 왕에게 찾아왔다
"전하, 이제 태자를 보셔야지요"
"허....때 아닌 태자
얘기는...."
왕은 그동안 왕후 우씨 사이에 잠자리를 여러 차레를 가지었으나 태기가 전혀 없어 죽은 본처와 자식 생각이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마다 울적하기 짝이 없었다 .
고우루가 왕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호랑이 같은 우씨가 눈이 멀뚱 멀뚱 한 이상 후궁을
맞이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우루가 말 한다 .
"어제 밤 꿈에 앞으로 새로 건립 할 환도성
기공식에 대왕 께서 우왕후 아닌 다른 예쁜 새 왕후와 나란히 앉아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희한한 꿈도 다 꾸셨구려 ..."
왕은
껄껄 웃으며 애써 화제를 바꾸려한다 .
고우루가 말 한다
"전하 앞으로 이틀후 환도성 기공식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내성은 우씨 일파들 때문에 곤란 하시 겠지만 환도성은 전하의 세상이 아닙니까?"
"웬
우가(于家) 얘기는 별안간 꺼내누?"
"우왕후 몰래 후궁을 맞이 하십시요 "
"몰래?"
왕이 놀랜다 .
" 전하께서도
후사를 어서 정 하시어 야지요 ."
"................
왕은 자기도 용안이 화끈 달아 올랐다.
환도성
기공식날 이었다.
공교롭게 환도성 기공식 날 교시에 쓰일 돼지가 달아나 놓지고 말았다 .
관리들이 돼지를 잡기 위하여 쫓기 시작했다.
관리들은 돼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잡아야했다. 만일 상처를 입히고 잡았다가는 신성한 돼지에 상처를 입혔다는 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어 함부로
대들수가 없었다.
이 돼지가 주통촌이라는 촌에 까지 도망 치었는데 도저히 상처 안내고 잡을수 없었다 .이것을 알고 있던 동네사람들도
선듯 나서는이가 없었다 ,아니 일부러들 피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때 20 세가량의 아름다운 처녀가 집 앞에서 그 돼지를 보고 맛 있는
먹이를 주며 유인 하자 도망 다니느라고 배곺아 지쳐 있던 돼지가 처녀의 음식을 받아먹다가 배가부른 돼지는 다 얻어 먹자 이내 그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한편 기공식장에서는 돼지를 잃고 왕과 주위 신하들이 놀래어 우왕 좌왕하고 있을때 그 돼지가 잡혀왔다
왕은 돼지를
요모 조모 살피었다 . 상처 하나 없이 잡혀 온것이다.
"어떻게 하여 이렇게 감쪽 같이 잡을수 있다는 말이냐?"
관리는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
"허....어느 여자 인지는 모르나 지혜가 많은 여자 이구먼...우리 남정네 들이야 돼지를 잡으려면 때려
잡는것 밖에 몰라 ....기공식을 앞두고 상처 투성이인 돼지이면 어쩔까 걱정 했는데 ....."
돼지는 힘 안 들이고 잡혀와
기공식은 무사히 치루었다 .
행사를 치루고 나자 모두 물러 가고 고우루 만 남았다 .
왕은 돼지 사건으로 혹시 환도성 신축에
부정이나 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참에 무사히 치루게한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왕이 고우루에게 묻는다
"돼지를 무사히
잡았다는 여자가 주통촌에 산다고 했던가?"
고우루가 시침이를 떼고 왕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맞습니다, 스므살 정도의
처녀라고 합니다"
"허... 스므살? 지혜로운 여자로다"
"한번 찾아 가시어 보시겠습니까?"
고우루가 왕의 마음을 간파했다
.
주통촌에 돼지를 잡아 준 처녀의 집을 찾아간 산상왕은 처녀의 아비로 부터 환대를 받는다 .
그리고 처녀를 불렀다
.
과연 꽃 같이 예쁜 얼굴에 행동 거지가 예의 바르다 .
왕은 처녀의 아비에게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을 청한다
.
누구의 명이라고 그날 밤 임금은 처녀와 첫날 밤을 맞이한다
왕은 등잔불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처녀를 처다 보며 왕이
말을 건다.
"처자는 내게 은인이오, 그렇지 않아도 교시에 쓰일 돼지가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랴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었소 . 돼지를 잡기란
그리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했오?"
" 그렇지않아도 돼지를 붓뜰다가 상처를 내면 죄가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아무리 미물인 돼지 지만 강제적로 위협하면 오히려 저항이 심해지고 저항이 심하면 상처 받기 마련 입니다 .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 하려면 계책을 써야 하듯이 돼지를 다루는 것도 머리를 써야 합니다. 강한것 보다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
"허.....강한것이부드러운것보다 더강하다...?"
왕이 처자의 말에 감동한다 .
"그대가 나와 오늘 하룻 밤,
천년성을 쌓고 싶은데 어떻겠나?"
" 소녀에게 청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 내가 다 들어 주마"
"혹시 오늘 밤 일로 아이가
생기면 버리지만 말아 주신다면 만년성 이라도 쌓겠습니다 "
"허....그걸 말이라 고하느냐? 당장 환도성에 내 처소가 마련 되어 있는데
그곳으로 그대를 데리고 가겠다"
산상왕은 그날밤 이 처녀와 동침후 환도성으로 돌아왔다.
산상왕은 결국 가마를 보내어 그녀를
불러들였다 .
물론 환도성에서 이 처녀와 깨가 쏟아 지었는데 국내성에 있던 우왕후는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후에
이 처녀가 산상왕의 두째 부인이된다.
나라안의 정사를 맡은 을파소는 환도성 신축에 따른 세금 문제와 징용 때문에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여 것 잡을수 없이 돌아가자 피로가 겹친 탓인지 자리에누워 조정에나오지못하는날이더 많았다 ,일찌기 고구려 역사상 진대법을 만들어
농민구호에 앞장서나라의기틀을 바로 잡았던 훌륭한 재상이 공교롭게도 산상왕의 전횡속에서 고전하다가 늙고 병들어 세상을 하직 하고만다
.
산상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우루(高憂婁)를 국상으로 앉힌다
계속
산상왕 13 년 봄 이었다.
우왕후는 궁궐 뜰을 시녀들과 걸으며 봄 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진달래꽃이 정원뜰에 활짝피어
중년의 나이라지 만 아직 남자의 품이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
그러나 임금은 환도성 축조일에 정신이 팔려 국내성에는 발그림자도 않고
있었다,
특히 저녁에 잠 잘시간이 가차워 지면 더 쓸슬함을 느끼었다.
자기는 아직도 꽃다운 나이에 절정기에 있다고 생각하며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전 남편 고국천왕이 떠올랐다 .
우왕후는 저녁 노을이 붉게지는 서녘 하늘을 응시하며 침묵에
잠기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
" 나는 여자의 몸으로 이세상에 태어나 어찌하여 두 남자를
섬기게 되었는고? 무릇 여자의 일생은 한사람의 남편을 절개로서 받들고 도리로서 섬겨야 옳은 일이 거늘 나는 어찌하여 왕실의 안정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고국천왕의 사랑을 저바리고 신발을 거꾸로 신게 되었는고?
아, 나는 고국천왕의 사랑에 보답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밤마다 산상왕과
애정 행각만을 벌려 왔을까?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 나의 남편은 엄연히 산상왕일 따름이다 .
여자에게는 진실로 사랑 해 주는
산상왕 밖에 없다 .
그렇다 ,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산상왕이야 말로 나의 하늘이다"
우왕후의 소리 없는 고백은 산상왕이
자기의 손을 잡고 발기로 부터 받은 수모를 제끼고자기를 감싸주던 따뜻한 체온을 잊지 못하고있었다 .
우왕후가 거울속을 다시 들여다 보니
아직도 중년의 여인으로서 아름다움을 간직한채 하이얀 뺨에 방울 방울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오늘날 우왕후가 눈물을 흘리게
한것은 그의 친정과 왕후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현실적 욕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당시의 고국천왕이 죽고나서 형제들간의 싸움으로
인하여 고구려의 운명이 그녀의 역활이 아니었더라면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기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고 있었다.
"잊자, 이미
지나간 일은 깨끗히 잊자, 이제 산상왕과 새로운 고구려를 이끌고 나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자"
우 왕후는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거울 속을
바라보고 씽끗 웃었다.
산상왕이 환도성에서 후녀와 달콤한 꿈에 젖어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는 산상왕을 굴뚝같이 믿고
있었던것이다 .
그러나 우왕후는 타고난 냉혹한 여자였다 .
산상왕이 후녀와 환도성에서 단꿈에 젖어있다는소문이 귀에 들어
온것이었다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왕이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있더란 말이냐?"
제보 해주는 제조 상궁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주통천에 살고 있는 후녀라는 계집이라 합니다"
"아니 이런 발칙한 일이있나 ?"
왕후가 크게 흥분하자 상궁이
아뢴다 .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자객을 시켜 처치해 버리시지요"
"어떻게 할수 없느냐?"
"저의 조카중에 날랜 장사가
있사온데 명령만 내리신다면 처치 하겠습니다 . 대신 성공하면 보답을 해주십시요 "
"아무렴 , 일만 잘 성공시키면 벼슬 자리 하나 하다
마다 .은밀히 대신 이 일은 잘 조치 하 라"
다음날 제조 상궁 방에 그의 한 사내가 들어와 무슨 음모를 얘기하고 있었다
"왕후 마마의 특명이다 . 네가 이번 일을 잘 성공 시키면 너는 당장 큰 벼슬자 리가 생기는것이야...젊은놈이 집에서 백수 노릇이나
하고.....쯧쯧"
"걱정 마십시요 누구 말씀인데 ...그런데 임금이 알면 큰일인데 "
"아,이녀석아 , 무슨 걱정이야 ,왕후마마가
있지 않아? 왕의행 실이 지금 정상이냐?"
"그럼 왕후마마의 행실도 정상입니까?"
"쉿...이녀석이 ....누가 들을나
"
제조상궁이 자기 손으로 조카의 입을 손으로막는다 .
"야 이놈아, 너도 어서백수 노릇을 면해야지...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매일
산에 올라가 무술인지 무언지 지랄을 하더니 쓸떼가 있기는 있구나 "
"지랄을 하다니요? 이렇게 요긴하게 쓸일도 생기는데
"
"너 명심하라 ,지금 산상왕이 왕후 몰래 후녀를 끌어 들여 재미를 보고 있기 때문에 산상왕에게 잡히더라도 공개적으로 너는 처벌 받지는
않을거야 안심하고 거행하라"
"아...참 어떡해서 내가 이런 운명이되었어?....."
"야 이놈아 허튼 소리말아 .이런일도
산상왕이 젊은 사람들의 일 자리를 주지 않고 엉뚱한 공사만 벌리고 있는 덕분이야 ...왕후가 네 일자리는
보장할거야"
"알았습니다"
다음 날
제조 상궁의 조카 조궁(曹穹)은 환도성에 나타나 후녀의 처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
(계속)
후녀의 처소는 새로 짓는 궁궐 아주 깊숙히 있었다 .
환도성내 궁궐은 국내성에 비교 안 될만큼 지어 지고 있었다. 도성 다웁게
천산(千山)을 기준으로 궁궐을 남서쪽을 향하여 궁궐을 배치 하도록 하였고 그 남서쪽으로 시가지를 구성하는 방법을 썼다.
궁궐
왼쪽에는 왕실의 조상을 모실 종묘로 쓰일 산을 준비해 놓았고 우측으로는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도 만들었다.
궁궐은 4 개구역으로
나누어 구역마다 정전(正殿)을 중심으로 길게 건물이 늘어섰고 건물 사이로 문을 세웠다.
정전 주변은 조정의 대신들이 업무를 볼
외조(外朝)가 만들어 지었고 왕과 우왕후가 거처할 침전 구역으로 나누어저 있었다.
침전구역 뒤에는 왕과 왕비가 쉴수 있는 정원도
만들었다.
건물 마다 담과 회랑으로 외견 상으로는 단절 되어 있는것 같았으나 실은 사방으로 문이 나 연결 되어 있었다.
칸으로
따지면 200 여칸이나 되는 거대한 궁전이었다.
정문 으로 들어서면 정전으로 들어가는 남쪽 문이 나오고 그 앞에 거대한 정전이
나온다 .정전과 왕의 침전 사이에는 편전이 있는데 왕이 평상시의 집무실이었다. 왕의 침전뒤에는 우왕비의 침전을 만들어 놓았고 침전뒤에는
정원이있다.
정원 뒤에 침전을 따로 지었는데 이 집이 후녀의 침전이었다 .
왕은 궁전을 짓는과정에 있었으므로 낮에는 후녀가
편전 옆에다 방을 꾸며 놓았다가 쉬던가 잠을 잘때는 자기의 침소로 돌아 갔고 왕도 저녁이면 후녀의 침소로 드는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후녀는 피곤하여 잠간 잠이 들었는데 황급히 상궁이 그녀를 깨웠다 ,
"마마, 정전 옆 방에 괴한이 들어 마마를 찾는다는
급보가 들어 왔습니다 몸을 급히 피하시 옵소서"
상궁은 언제 장만하였는지 남복을 한벌 준비하여 갖고있었다 .
후녀는 남장
차림으로 나가다가 마침 괴한 3 명과 맞 닥드리었다'
괴한들은 모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후녀를 그냥 지나 치려다 맨뒤 괴한이 후녀의
옷자락을 부뜰었다 .
그자는옷을 나꿔 채는순간 후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놈이 이거 여자 아냐?"
순간 후녀가 남장복을
벗어 던지며 큰소리로 말한다 .
" 그래 내가 대왕 마마의 소후다 . 너희들은 분명 나를 죽이려 왔나본데 .누구의 명령이냐? 전하의
명령이냐 ,왕후의 명령이냐? 전하의 명령 이라면 달게 받겠다 . 그러나왕후의 명령 이라면 단호히 응징 하리라. 지금 나의 뱃속에는 전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
너희들 왕후의 말 만 듣고 나를 죽였다가는 목슴을 부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나를죽인다는 것은 왕의 유체를 죽이는 것과 같다
. 어서 죽여봐라"
역시 후녀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3 명의자객들은 감히 해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처다 보고 있었다
"왜 죽이지 못하느냐? 너희들게 분명히 말한다 .누가 시켰느냐?"
"..........."
"좋다 , 묻는말에만
대답하라 왕후가 시켰으면 그렇다고 답변하라 대신 너희들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면 오늘일은 대왕께 일러 받치지 않겠다."
조궁은 왕의 아이가
후녀의 뱃속에 자라고 있다는 말에 두려움이 앞섰다 .
이자리에서 후녀를 죽인다면 우왕후의 말처럼 자기들 목슴을 왕이 순순히 살려줄것
같지않았다 .
우선 살아야 한다 .
조궁은 먼저 후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 "
담대한
대처로 후녀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다 .
물론 왕에게는 이 사실을 감추었다.
우왕후에게 돌아온 자객 들은 왕후에게 후녀가
태기가 있어 차마 죽이지 못하였노라고 보고 하였다 .
우왕후는 며칠후 국내성으로 돌아온 자리에서 왕에게 말한다
"듣자하니
대왕께서 첩을 얻어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오"
"교시 행사로 돼지를 잡은 처녀가 있어 하루밤을 그집에서 묵었다가 그만
....."
우왕후가 조롱 비슷히 화를낸다
"흥 잘도 하시오 , 왕이라고 만들어 주었더니 고작 작은 마누라나 얻어 재미나
보고 ...잘도 하오"
" 미안하오 , 환도성 축조에 너무 노심 초사 하느라고 어쩌다 잠간 생각을 잘못해서 ...."
"듣기 싫어요
... 후녀인가 후궁인가 하는 년이 아이를 배었다니 친 자식인가 다른 놈팽이 하고 붙어서 생긴 자식 인가나 알아 보시오. 만일 그 아이가 다른
놈의 자식이면 내손으로 죽이고야 말겠소 . 그렇게되면 왕께서는 여러말 마시오 "
왕은 우왕후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고 환도성으로
돌아왔다 .
왕은 후녀의 처소로 방문하여
"듣자니 태기가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누구의 아들이냐?"
하고 의심 스러운 얼굴로묻는다
.
"전하, 저는 같은 자매 간에도 동석을 않는데 하물며 감히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하겠습니까? 지금 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전하의
유체가 틀림 없습니다"
왕은 기뻐하고 부리 낳게 국내성으로 돌아가 우왕후를 다시 만난다.
"아이가 내 자식이 분명하오 .기왕에
이렇게 된 것이니 나를 용서하고 아들을 낳으면 왕자로 잘키워 늙어서 부양이나 잘 받으시오"
(진작 죽였어냐 하는것인데
.....)
우왕후는후회 막급 하였으나 어쩌랴?
우왕후는 자기가 낳지 못하는 왕의 아이를 낳는다는 바람에 후녀를 죽이는 계획은 다시
거두기로 작정하였다 .왕은 기뻤다 .어차피 알아야 할일이 해결 되어 후련하였기 때문이었다.
계속
산상왕 13 년 9 월에 후녀가 아들을 낳으니 산상 왕은 기뻐하였다 .
우 왕후와 사이에 아기를 갖지 못하여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토록 염원 하던 왕자를 낳아 주었으니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아,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
그는 왕자가
교시(郊豕) 사건으로 인하여 후녀를 얻었고 그 여인으로 인하여 아들을 얻었으므로 아들 이름을 교체(郊遞)라 짓고 후녀에게는 소후(小后)의 직첩이
주어 지었다 .
후녀는 주통촌에서 어렸을때 자기 어머니가 하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 어머니에게 자기 이름에 대하여 물어 본적이 있었다
"어머니 하필이면 저의 이름이 후녀가 무어에요?"
".........."
어머니는 한동안 대답을 해주지 않았었다
후녀는 다그쳐 묻자 그때서야 나직히 말해주었다 .
"너를 임신 했을때 백악산 산신(山神)이 꿈에 나타나서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라고 점지하는 꿈을 꾸고 너를 낳았는데 아버지가 꿈 얘기를 듣고 후녀(后女)라고 네 이름을 지었느니라 .왕비가 될 아기라는
뜻이지..."
".............."
"내 꿈 얘기는 일체 입 밖에 내지 말아라. 천기를 누설 하면 무슨 액(厄)이
낄는지 모른다 "
후녀는 어머니에게서 이말을 들은지 15 년만에 왕비나 다름 없는 소후가 된것이다 .
왕은 너무 기쁜 나머지
후녀에게 기념품 까지 하사하고 군사 까지 배치하였다 .
교체가 태어 난후 후녀는 일약 왕비에 버금가는 대우 까지 받고 있었다.
왕은
아들 교체를 얻은후 환도성 축조 과정을 둘러 보는 이외에는 거의 소후 후녀의침실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지내는것이 큰 낙이었다
.
국내성에는 국사를 국상에게 모든 것을 맏기고 있다 싶이하였다 .
고우루도 국상으로 국내성에서 정사를 보고 있었으나 을파소때
와는 판이하게 대신들이나 제가의 협조가 없어 무슨 일이고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이런 일이 일이 있은지 며칠후 왕에게 고우루가
보자기에 싼 물건을 내놓았다.
"전하, 이런 글이 위나정(威奈亭)에 붙어 있는것을 떼어 왔는데 그냥 두고 볼수가 없는 글이라 보관하고
있습니다."
"무슨 글이오?"
왕이 읽어 보니 내용은 이렇다
동명왕을 모신 다더니
백성들의 원성은 어디 갔느냐
인륜은 땅속에서 신음하고
환도성에는 환락만 넘치는구나
하늘이여
내 위나암성에 올라 너를 조상(弔喪)하노라
읽어보니 산상왕을 욕하는 글이었다.
산상왕은 기가 막혀 눈을 휩뜨고서
"이놈들, 내가 환도성을 축조하는 것을 못
마땅하여 어느놈이 쓴 글인 모양인데 너희들이그런다고 내가 천도 못할상 싶으냐? 어서 천도계획을 진행하시오"
산상왕의 오기(傲氣)가
발동하였다 .
고우루가 만류한다 .
"전하 한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천도는 전하의 말씀 한마디로 수도를 옮기고 안옮기고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중히 고려 하십시요"
왕이 오히려 역정을 낸다 .
"국상은 자리에 앉더니 생각이 달라지셨구려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옮기는것은 임금이 마음대로 하면 되는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묻는다는 말이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요? 왕의 나라 아니오? .국상이
매양 그런식으로 생각하니 못된놈들이 저따위 글이나 써붙이고 지랄들이지...."
"..............'
고우루는 할말이 없었다
. 국상 자리에 앉아보니 세상 일이 그리 간단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왕이 혼자말 비슷이 말을 계속한다 .
"틀림없이 글께나 배웠다는
놈들거나 우가(于家) 같은 놈들의 짓이 분명해 ..........내 이놈 들을 해치우고 어서 환도성으로 떠나야지.... "
고우루가
간한다.
"전하 고정 하시옵소서 . 이글은 필히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하려는 대왕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자들이 전하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그자들이 이시(詩)를 붙여 놓고 전하의 분노를 자아나게하여 대왕께서 경솔하게 행동을 하심으로서 대가들의 단결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아직도 대가 놈들이 정신 못차리고있소?"
" 대가들뿐만이 아니고 막대한 환도성 축조비 조달에 따른 과중한
세금과 공사에 동원된 농민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옵니다 "
"허.... 국상도 그동안 국내성에 머물고 있더니 그놈 들에게 물이 들어
있구료. 그러니까 어서 환도성으로 옮겨야 하오. 에이.... 기득권 가진 놈들은 아주 씨를 말려야 해...."
고우루는 왕의 고집을 꺾을수
없음을 알자 무리하지만 왕의 천도 계획을 밀고 나갈것을 다시 마음 속 으로 다진다 .
다음날 위나암성 벽에는 왕의 글이 크게 써붙여있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있었다 .
글 내용은 이렇다
"과인이 환도성을 세운것은 동명성왕 이래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 나라를 굳게
지키기위함이다. 일찌기 동명왕께서는 하늘이내린 자질로서 나라를 세운지 오래되었다.
최근 위나암성에는 구태의연한 사람들이 궁궐을 드나들며
정치를 한답시고 청탁이나 성행하고 남을 모략하며 내외를 이간시키는등 정치와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는것이없었다 .
그래서 과인이 생각한 끝에
서쪽 200리 밖에 새 도읍을 정하였으니 만조백관들과도성 백성들은 새도읍지로 이전하라 "
조정은 천도소 식을 듣고 발칵 뒤집어 지었다
.만조백관이 모인자리에서 태대형 을지 도(乙支 度)가 왕 앞에서 반대 하였다.
"전하, 왕으로 즉위 하신지 얼마나 되셨다고 그렇지 않아도
환도성 축조로 민심이 흉흉한데 종묘사직을 버리고 서울을 옮긴다는말씀입니까? 서울을 옮기면 민심이 크게동요할것이니 그 일만은 신중히 생각하시
옵소서"
왕이 노기를 띄운다 .
"네가 감히 내앞에서 국가 백년 대계를 막으려 하느냐?"
왕은 이제 이성을 잃다 싶이 하였다
.태대형에게 까지 반말로 막말을 하고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울절 양조면 (揚助勉)이 말한다
"태대형 말씀이 옳습니다 ,천혜의요새
이며 유리 명왕의 혼이깃든 이곳을 하루 아침에버리고 황무지와 같은 오지 땅인 환도성으로 떠나면 민심이 크게 동요 될것입니다"
왕이 양조면의
말에 다시 한번 노기를 띠운다
"오지(奧地)라니?"
"그곳이오지가아니고 무엇입니끼?"
굽히지 않고 말하는 양조면의 말에 왕이
화를 벌컥낸다 .
"여러 소리 하지 말라 . 국가백년대계를 생각해야지 무슨 오지 운운하는가"
이번에는 조의두대형 을상표(乙翔杓)가
말한다
"아닙니다 . 백성이 우선이지 그까짓 성만 지어놓고 백성들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나라입니까?"
"모두들 입닥쳐
그까짓이라니...여봐라 저 세놈의 벼슬을 박탈하도록하고 이자리에서 내쫓아라 "
왕은 분을 참지못하여 그 한마디를 던지고 편전으로 들어갔다
.
계속
다음날 왕이 다시 정전으로 나갈때 무엄하게도 길에서 왕 앞에 태대사 유비주도(由備宙度)와 알사 우문도(于紋度)가 읍하고 길을 가로
막는다.
왕이 놀라 묻는다
"무슨 일 들이냐?"
"대왕께서 환도성으로 천도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일이 옳지 않음을 말씀
들이러 왔습니다 "
왕은 어제의 흥분이 채 가라 앉지 않은 상태였다 .
"무슨 소리냐 ? 내가 네 놈들 말을 듣고 천도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를 할줄 알았느냐 ? 내 소신을 너희들이 꺾겠다고?"
"전하 , 그것은 소신이 아니고 만용(蠻勇)입니다"
"아니
이놈이 만용 이라니 ....여봐라 이놈들을 잡아다 참수하라"
두 충신은 성 밖에 끌어다 목을 친다 .
다음날 드디어 환도성
천도령이 내려진다 .
왕이 국상에게 명령했다 .
" 천도 준비는 다 되었오?"
" 지금 부서 마다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백리 길을 이동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텐데 마련은 되었소?"
"재정이 바닥이 나서 어렵기는
합니다."
"허...백년 대계를 위한 국가적 사업에에 부자들이 협조좀 없오?"
"그자들은 수중에 돈이 들어 가면 내 놓지
않습니다"
" 세금을 잘 내지 않는다는다는 말이오?"
"세금이야 또박 또박 잘 내고 있지만 지금 천도 비용은 세금과는 별도이기 때문에
그들의 처분 만 바라고 있는데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 국상은 그 좋은 머리 어디다 두고 그러시오 ? 안내면 쥐어 짜낼 방법을 연구좀
하시오"
" 방법은 있습니다만........ 돈께나 있는 놈들은 본인이나 자식들에게 병사로 차출 한다고 압력을 넣거나 탈세여부를
조사한다고 그들에게 압력만 넣으면 꼼짝 없이 비용을 좀 걷워 낼수 있겠는데...제가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수 없습니다 .
"
"함부로 할수 없다니........ 왕의 명령이면 다 되었지 제가회의 의결이 무슨 필요 있다는 말이오? 어느 놈이 반대 한다는
말이오?""
"............"
고우루가 침묵을 지키자 왕은
"그러면 천도에 앞서 비용 마련을 위한 작전에
들어갑시다"
하고 운을 뗀다 .
"작전이 라니오?"
"비용 마련도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전격적으로 해야지 미온적으로 하면
부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얘기요"
(비용 마련 작전이라......)
고우루는 웃음이 나왔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비용을
마련하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할만큼 사정은 어려워 있었다.
고우루는 즉시 유사(有司)에 명령하여 당대 재력가들의 자제들에게
압력수단으로 징집 명령을 전달 하고 .돈을 스스로 받치는자는 군대에서 빼주고 거주지 선택권 까지 주었고 그것도 못하는자는 환도성으로 강제 이민을
시켜 노역을 시키기로했다 .
동시에 산상왕은 군사들을 풀어 집집 마다 보따리를 싸서 환도성으로 이사를 하라고 강제 명령을 내리었다
.
이리하여 천도령이 떨어진지 5 일후 왕과 고우루를 비롯하여 대신들이 국내성을 떠나 환도성으로 떠난다 .
그러나
국내성의 제가(諸加)들은 무언으로 그뒤를 따르지 않고 왕이 떠난 뒷모습 만 바라 보고 있었다 .
왕이은 위나암성이 바라다 보이는
고개 위에서 잠시 쉬는 동안 국내성을 주시 하다가 고우루에게 살며시 불러 낮은 소리로 묻는다 .
" 왕이 천도 한다고 하는데도
제가(諸加)와 우가(于家)놈들이 얼굴 조차 내 비치지 않는데 정말로 괫심하군...."
"그러게 말씀입니다"
"저놈 들이야 말로 꼴통
들이야 ...나 같으면 얼굴 이라도 내밀겠구먼"
" 전하 , 그런 놈들이니까 그저께 반대 상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말야...."
임금이 나즉히 소리를 낮추어 고우루 귀 가까이 입을 대고 말한다 .
" 아무래도
저놈들 을 아주 없애 버릴가?"
"어떻게요?"
"초토화 방법(焦土化 方法)을 쓰면 어떨까?"
"예?"
고우루가 이번에는
크게놀란다
초토화란 위나암의 모든 궁전과 모든 관아와 모든 성문에 일제히 불을 지르자는 얘기다 .
이번에는 고우루가 왕
앞에서 처음으로 바른 말을 한다
"전하, 그것 만은 안됩니다 .고구려 200년 역사와 종묘 사직에 큰 죄가
됩니다"
"..........."
어쨋든 왕이 어마 어마한 우씨 일파와 제가들에 대한 미움의 한 풀이를 하려는 위험 천만한 발상은
고우루가 막았다.
이것은 고구려에 대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이렇게하여 산상왕 13 년 10 월
고구려의 서울은 환도성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환도성 축성한지 11 년만의 이루어진 산상왕의 집념이었다.
이로써 고구려는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천도 한지 세번째 천도를 한 셈이었다.기간으로 따지면 졸본 땅에서 40 년 , 그리고 206 년을 지켜온
국내성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 부터 끝 까지 오로지 서라벌에서 만 천년을 벋히어 온 신라의 번영을 살펴보고 고구려 왕들의 잦은
천도로 쓸데 없는 국력을 소모 한것을 서로 비교 해 보지않을수가 없다 .
지금에 와서 드넓은 만주 땅을 한족(漢族)에게 뺴앗기고 영토의
축소 를 자초한 고구려의 역사를 생각 하면 수도의 위치는 그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
어쨋든 고구려는 환도성 시대로 접어 들게 되었다.
산상왕이 천도를 강행
할적에 왕실에서는 따라 나서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우왕후였다 .
우왕후는 왕이 후녀를 환도성에 데려다 놓고 총애하고있다는 사실에
대히여 못 마땅히 생각하고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다.
우왕후의 오빠 우문장(于文章)이 누이에게 간하였다 .
'누님 , 이곳에
혼자 만 남아 계시면 어쩌실려고 그러십니까?"
"후녀라는 년이 꼴 뵈기 싫어서 남아 있기로 하였네....."
"누님도....누님이 안
가시면 누구 만 좋게요? 목슴을 내 놓고 산상왕을 왕위에 앉힌 것이나 매부를 그동안 왕으로서의 기반을 만들어 준 내조의 덕이 누구 때문 인데
왕후의자 리를 포기 하시려 하십니까? "
"..............."
우왕후는 그렇지 않아도 배신 감 때문에 산상왕이 미워
옆에 가기도 싫었던 참이었다.
"누님, 아무리 매형이 미워도 엄연히 누님은 이 나라의 왕후가 아닙니까? 자리를 빼앗기지 마십시요 제가 내일
수레로 환도성 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
이리하여 우왕후는 자의반 타의반 환도성으로 출발하였다 .
한편 이 소식을 들은
고우루는 그렇지 않아도 우왕후와 산상왕 사이가 소원하여 나라의 정통성에 먹칠 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 하다가 우왕후가 환도성으로 뒤늦게
출발하였다는 말을 듣고 마중을 내 보내어 모셔다가 새로 지은 왕비의 침전으로 모시었다.
후녀의침소에 있던 임금이 이소식을 듣고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옷을 줏어 입었다 .
후녀가 돌연한 왕의 거동에 놀라 묻는다
"어디 급한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왕비가 돌아 온 모양이야"
후녀도 당황 하였다 .내심 우왕후가 코 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하여 전전긍긍
하고있었던 참이었다.
왕이 우왕후의 침전으로 찾아오자 우왕후가 얼굴 조차 왕에게 돌리지 않고 다른쪽만을 바라본다 .
"과인이 왔는데
.....?"
왕이 제면 적게 말을 건넨다
우왕후는 그때서야
"저를 잊지 않으셨소?"
하고 우왕후가 찬바람이 돌듯이
쌀쌀하게 말을 받으며 그제서야 왕의 얼굴을 쳐다본다 .
왕이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주위의 환관과 시녀를 눈 짓으로 물리고 왕비옆에 바싹
앉는다 .
방에는 왕과 우왕후 만 남았다 .
왕은 우왕후를 껴안으려 하자 왕후가 가볍게 뿌리친다 . 우왕후는 중년의 여인이지만
아직도 꽃다운 미모를 간직 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
왕은 늘그랬지만 왕후의 그 알지 못할 질투에 야릇한 여인으로서의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
왕이 달랜다.
"여보, 우리가 예사로운 부부 관계요? 보통 부부와는 다른 생사를 나눈 동지나 다름없는 사람들 끼리 그렇게 쌀쌀하게
굴거는 무엇이오?"
우왕후가 뽀두퉁하여 말한다
"그래 그 선녀인지, 후녀인지 하는 계집 맛이 얼마나 달콤 합디까?"
"원 별
말씀도 많으시오 , 나야 왕후 아니면 내가 될수 없는데 젊은 계집과 어쩌다가 아이를 갖는 바람에 할수없이 그 계집을 데려다 놓고 있는것 뿐인데
너무 상심마오, "
"정말 나를 사랑 하십니까?"
"아무렴 , 왕후가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있었겠소?"
'능청스럽게 그러시지
말고 진심을 말해보아요"
"정말로 나는 우왕후만 사랑 한다니까"
순간 왕이 우왕후를 와락 끌어안고 촛불을 끈다
다음날
후녀가 왕자 교체를 안고 우왕후를 찾아왔다 .정식으로 자신과 아들을 왕비에게 인사드리기위해서였다.
우왕후는 후녀의 큰절을 받고
교체왕자를 받았다. 어린 교체왕자는 우왕후를 처다보다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
우왕후는 즉석에서 보모상궁을 부른다
"지금 부터
이아이를 보양청(輔養廳)보모 상궁이 맡아 기르도록하라"
후녀가 멈칫한다
"아직 어려서 ...."
"무슨 소리냐 . 원자는 원래
나라의 근본이므로 장차 성군(聖君)이 되려면 평소부터 내명부 법도 대로 왕자와 공주는 보양청 보모상궁에게 맡기도록 되어있다"
후녀는
당황하였다
지금까지 후녀가 품에 안고 있던 왕자를 보모상궁이 데려가자 허탈감에 빠진것이다 .후녀는혼자 자기 침소로 돌아 갈수밖에 없었다
.
산상왕 1 7 년 왕은 왕자 교체를 왕태자로 세운다 .
산상왕은 환도성에서 집무 하게 되자 국내성 보다 훨씬 중국의
동태를 유리알 보듯이 관찰 할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과의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지었기 때문이었다 ,
당시중국은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이 중국대륙을 삼분하여 각축전을 벌리고 있었다.
조조는 황하 상류와 화북 지방을 차지 하고 있었고 유비는
양자강 중류 형주와 익주를 차지 하였으며 손권은 양자강 하류의 남쪽을 차지하고있었다.
고구려는 자연히 조조의 위나라와 국경을 마주 대하고
있지 않을수 없었다.
조조의 위(魏)나라 조조의 서울은 낙양(洛陽)이었고 촉(蜀)은 성도(成都). 오(吳)는 건업(建業)이
주무대였다.
위나라 조조는 촉오와 전쟁을 치루면서도 고구려 국경으로 영토확장을 꾀하였다 .
산상왕은 수도이전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 결핍으로 되도록이면 섣부른 영토 확장 정책은 아주 접어들였다..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전비(戰費)가 필요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수도이전으로 취약해진 고구려가 오히려 위나라의 공격이라도 받으면 어떻게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행히 중국 대륙은 삼분되어
자기들끼리 각축전을 벌린탓에 고구려는 위기를 어느정도 모면 할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산상왕 21년에 고구려 국경에 한(漢)나라의 장수
하요(夏瑤)가 위나라 조조군에게 쫓겨 고구려 산상왕에게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
계속
산상왕이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 하면서 나라 재정을 탕진 하는 동안 중국땅에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라 할수있는 영제(靈帝)는 큰 수난을
당하고있었다 .
영제가 중병이 걸려 들어 누었는데 영제는 느닷 없이 대장군 하진 (何進)을 불렀다.
하진은 백정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누이 동생의 뛰어난 미모 때문에 영제의 눈에들어 아들을 낳아준 덕분에 대장군 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황후가된 누이동생
하후(何后)는 왕희(王姬)라는 궁녀가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질투하여 궁녀를 독약을 먹여 죽인다 .그궁녀에게서 낳은 자식이 있었는데
협(俠)이라 불렀다.
영제의 어머니 동(董)씨가 고아가 된 협이 불상하여 맡아서 길렀는데 영제 자신도 하후에게서낳은 변(辨)보다
협을 더 불쌍히여겨 그를 더욱 사랑하였다.
이때 한 황실을 좌우 하는 열명의 환관들이 황실을 보살폈는데 시종을 맡아 보는 환관
벼슬로 상시(上侍)라 불렀다 .
흔히 환관 열명이 임금을 모시는 높은 시종(侍從)들 이라 하여 십상시 라고도 부른다 .
이 십상시
중에 건석(蹇碩)이라는 눈치 빠른 환관이 있었다.
건석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황제가 협을 사랑 하고 있는것을 눈치 채고 협을 황태자로
책정하려면 대장군 하진 부터 없애야 한다고 진언한다 .
영제도 동의하고 하진을 급히 호출한다
하진이 급작 스러운 호출에 놀라
입궁 하다가 건석이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수레를 돌려 자기 저택으로 되돌아간다 .
집으로 돌아 가기가 바쁘게 하진은
대신 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건석이 자기를 죽이고 협을 황태자로 세우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하며 이 기회에 열명의 상시, 즉 삽상시들을 제거
하자고 제언한다 .
모두 눈치 만 보고 말이 없는데 말석에 앉아 있던 조조라는 사내가 이 환관들을 함부로 손댔다가는 큰일난다고
반대한다 .
하진이 노하여 조조를 향하여 호통을 치어 나무랜다 .
"네가 무얼 안다고
나불거려....."
"............."
조조는 할 말을 잊고 입을 다문다 .
이때 조정에서 칙사가 하진의 집으로
왔다..
황제가 죽게 되어 마지막 으로 분부 할 사항이 있으니 즉시 하진이 입궐 하라는 통지였다 .
황제가 죽었다는소리를 듣자 하진은
대신들과 상의도 없이 오천 군사를 동원 궁궐을 점령하고 하후의 아들 변을 데리고 전격적으로 궁중으로 처들어 가서 변을 새 천자로 옹립한다
.
건석은 이 와중에 하진의 병사들 손에 죽고만다
환관들은 하진이 정권을 잡자 이제 자기들 목슴은 바람 앞에 촛불
같이 느껴지자 하태후에게 사정하여 하진이 자기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여달라고 하소연 하였다..
원소가 열명의 환관중 건석을 뺀
아홉명의 나머지 환관들을 이기회에 무두 죽여버리자고 하였으나 하태후의 지시를 받은 하진은 이를 묵살한다 .
하진과 하태후는 협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동태후와 함께 먼 시골로 귀양을 보낸 후 뒤 따라 자객을 보내 동태후와 협에게 사약을 내려 모두죽여 버린다
.
원소는 또다시 환관들을 없애 자고 하진에게 건의 했지만 고집이센 하진은 자기 누이 동생의 눈치만 보느라고 이를 묵살한다
.
하진도 환관들을 다 죽이고 싶었지만 하태후의 허락을 받아 낼수 없어 그냥 넘어 가기로 작정 한것이다.
원소는
여남(汝南)출신으로 그의 증조 할아버지 원안(袁安)이 후한의 삼공이라 일컫는 사도(司徒)라는 벼슬을 했던 이후 4대를 두고계속하여 태위 사도
사공이라는 벼슬을 해오던 명문가 집안 출신이었다
그가 태어나자 아비가 이찍죽는 바람에 숙부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풍채가
크고 무슨 말이든지 서슴치않고 말하는 당당한 사내였다 .
조조와 원소는 젊은 시절부터 친하게지내었고 두사람다 권문세가의 자제였다
원소는 스므살에 복양 이라는곳의 현장(縣長)으로 부터 출발하여 기주목(棄州牧)으로있으면서 10만 정예병을 갖고있던 실력자로 변신
한것이다.
원소가 대안을 내 놓는다
하진은 뒤로 슬쩍 빠지는 대신 지방 제후 들을 불러 들여 이들 환관들을 모두 없애
버리자고 안을 내 놓았다. 그렇게되면 하태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진이 좋은 묘책 이라고 생각 하며 마침내 각
진(鎭)에 비밀히 밀소를 보내어 제후들을 불러 올린다
조조는 이 사실을 듣고 한탄 한다 .
(하진이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구나....)
드디어 사방의 제후들이 중국의 서울 낙양으로 모여든다.
그중 서량자사(西凉刺史) 동탁(董卓)이란 자는
황건적 토벌에 큰 공을 세운것도 없으면서 환관들에게 뇌물을 잘 받힌 덕으로 서량자사의 벼슬 까지 갖고 있는 자가 있었다. 군대도 이십만 이라는
대군 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이 동탁이 대군을 거느리고 서울로 들어 오고있다는 말을 듣고 시어사 정태 (侍御史 鄭泰)가 하진에게
동탁을 못들어 오게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간한다 .
"대장군 ,십상시를 처치하는데 적은 병력으로도 충분한데도 20 만 대군을 다 끌고
입성하고 있다는데 이를 저지하여야 합니다"
하진이 껄껄웃는다
"동탁이 이미 출발했는데 구태어 막을 필요 까지야 있나 ? 오히려
십상시 놈들이 겁을 먹겠지..."
하진은 대범 한척 하면서 동탁군이 낙양 진입을 허용한다 .
동탁은 낙양 근방 까지 와서
진입을 하지 않고 낙양성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상시(上侍)들은 동탁군이 성 외곽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잘못 하다가는 자기들
모두 몰살 당 할것이 두려워 하 태후를 찾아가 살려 달라고 엄살을 떤다 .
고지식한 하태후가 환관들을 살려 주라고 하려고 하진을
불러 들인다
한편 십상시들은 이때를 이용 하진을 죽이려고 궁궐 입구에 경비병을 매복 시켜놔 두었다.
부장(副將) 오광(吳匡)이
만류한다 .
"주의하십시요 , 상시 놈들이무슨 흉계를 꾸밀지모릅니다 "
하진이 말한다
"태후마마가 있는데 감히 무슨 짓이야
하려고?"
"아닙니다 . 주의는 하셔야지요 .호위 병을 몇명 대동 시키겠습니다 "
"..........."
하진은 오광이
딸려보낸 호위병 몇명과 함께 궁성으로 향하였다
궁성으로 들어가려다 상시들이 태후의 엄명 이라하며 하진을 혼자들어 오라고 한다
.
하진은 의심 없이 무심결에 혼자 궁성문을 들어 선다
하진이 태후의 침소로 향할때 결국 하진은 매복된 병력에 의해 살해된다
하진의 부장(副將)인 오광(吳匡)이 아무래도 하진이 걱정되어 높은 망루에서 하진을 지켜 보고 있다가 하진이 습격당하는것을
멀ㄴ발치에서 보고 있다가 대노하여 성문을 습격 불을 지르고 궁궐로 진입한다 .
궁궐은 삽시간에 검은 연기가 중천한다
.
"불이야 , 궁성에 불이 났다 ."
원소, 조조등 제후 들이 이소식을 듣고 자기들이 끌고온 병력을 동원 사방에서 궁궐로 벌떼 같이
몰려 들어 낙양성은 불 바다에다가 온통 병사들과 우왕좌왕하는 백성들로 아수라장이된다.
한편 황제와 하태후는 는 검은 연기가 중천하는
대궐을 바라 보며 환관들의 호위를 받고 북궁을 빠저 나와 북망산 산중으로 몸을 피하였다 .
다행히 산골 민가에 황제와 하태후 일행이
난을 피하여 머물게 되었는데 이 민가에 궁성쪽으로 가던 장수 한사람이 임금과 하태후를 발견하자 이들을 모시고 서울인 낙양으로
향하였다.
낙양에 가차워지자 원소,조조등 제후들이 나와 영접한다 .
이때였다 성밖에서 이십만 대군을 거느린 동탁이 보무도
당당히 궁성으로 들어온다
얼마되지 않는 병력이었지만 원소와 조조군이 가까스러히 질서를 잡아 놓은 궁성을 동탁이 손가락 하나 깟딱도 않고
뒤늦게 대병력을 이끌고 들어온것이다.
환관의 난이 끝나자 낙양성은 잠시 조용 해진다 .
그러나 한(漢)나라의 서울
낙양은 죽은 하진의 명을 받고 서울에 들어온 각 제후들의 군사들이 들어와 어수선 하기만 하였다 .
이중에서도 제일 군사수가 많은 동탁이
큰소리를 치게 되고 다른 제후들은 쪽을 못쓴다.
이때 원소와 사도(司徒)왕윤(王允)등이 동탁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연회를
베푸는 장소에서 그를 죽이려 했다가 실패한 사건이 발생 하였다.
이사건을 게기로 동탁은 자기 권력을 더욱 다진다 .
동탁의 위세가
점점 더하는데도 아무도 그를 제지 할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동탁은 이에 13 세 밖에 안되는 협을 황제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상국(相國)이 되어 황제를 자기 마음대로 요리 할수 있는 위치에 이른다 .이사람이 헌제(獻帝)이다
동탁은 황제와 하태후를 영안궁에
깊숙히 유폐시키고 정치는 자기가 해 버리었다
이제 그는 황제나 다름 없었다.
누가 말했지만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
동탁도 어김없이 매일 주지육림에 빠저 예쁜 궁녀들과 놀아 나기 시작했고 그의 마음을 거스리게 하는자는 자는 가차 없이 파리
목슴과 같이 죽여 없앴다 .
원소와 왕윤, 조조,등 제후들은 불만에 차 있었으나 동탁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
동탁이 몰래
잠든 틈을 이용하여 조조가 죽이려 했다.
그러나 동탁이 눈을 떠보니 조조의칼이 번뜩인다 .
동탁은 놀라 묻는다
.
"무엇하고있는거요?"
동탁에게 들키자 가지고 있던 보검을 받치려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
동탁이 이를 믿고 오히려 조조에게
자기의 준마를 하사한다 .
조조는 더이상 동탁에게는 머물다가는 꼬리가 잡힐것 같아 동탁으로 부터 답례로 받은 준마를 타고
도망친다.
조조는 고향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자기 아버지 조숭(曺嵩)게알리고 의병을 모집한다 .
조조는 준비가어느정도 되자
원소가 동탁을 친다는 말을 듣고 각처의 군벌들에게 알려 동탁을 치기위하여 자기에게 모여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원술을 비롯한 각 제후들은
동탁을 치기로하고 모여든후 병력을 이끌고 낙양으로 진군하기 시작 하였다
한편 궁궐에서는 왕윤이 피하지 않고 궁궐을 나들며 동탁을
죽일 기회만노리고있었는데 동탁을 죽이려면 여포라는 장수가 항상 그림자처럼 동탁을 쫓아다녀 그를 죽일수가 없었다 .
이때 왕윤에게는
초선이라는 예쁜 양녀가 있었다 .
왕윤이 나라 걱정을 하고있는것을 눈치챈 초선이 자기 한몸을 받쳐 동탁을 유혹하여 죽이겠다고 약속한다
.
왕윤은 우선 여포를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여포에게 초선을 받치겠다고 약속한다 .같은 방법으로 동탁을 자기 집을 초청하여 초선을 동탁의
애첩으로 들여보낸다 .
자기에게 받친다던 예쁜 초선이 동탁의 품에서 놀아나자 여포가 동탁을 미워 하게 된다 .여포에게 미움의 씨앗을 떨어
뜨린 것이다.
결국 여포가 자기의 양 아버지 동탁을 죽인다 .
이때 중국 탁현 이라는 곳 누상촌 이라는 가난한 마을에 유비
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자칭 천자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관우와 장비등과 같이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가 낙양 소식을 듣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린다
.
기어코 한(漢)나라를 다시 일으키 겠다고.....
이제 중국 대륙은 무조공산(無主空山) 이나 다름 없이 되어 버렸다
.
동탁이 죽은후 그의 충복인 이각과 곽사가 각각 대사마 대장군을 자칭하고 있었으나 각 지방의 제후들을 통제할 힘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렇다고 황건적이 아주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
황건적이 다시 고개를 들자 이각과 곽사는 조조에게 토벌 할것을 명령했다
.
조조가 이를 토벌하여 공적을 세우자 벼슬을 내리기 까지 하였다 .
그런데 이각과 곽사 사이에 내분이 일어 나자 헌제는
이각의 군사들에게 이끌려 다니다가 조조군에 의하여 구조된다 .
헌제는 조조에 의하여 낙양에 도착 하였고 조조는 헌제 앞에서 곽사와
이각의 무리를 쳐부술 것을 맹서한다
헌제는 크게 감격하여 조조를 칭찬한다
이때 부터 조조는 헌제를 모시고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 정통 한족(漢族)을 자처하는 촉의 유비와 양자강 남쪽의 오의 손권과 대치하며 각축을 벌린다
일단 조조는 인구가 조밀하고
산업이 발달 된 핵심 화북지역을 차지함으로서 사실상의 중국 대륙의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조조는 어느 정도 숨을 돌리자 촉과 오를
견제하면서 북쪽의 유주(幽州)쪽에 에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주(平州) 태수 하요(夏瑤)는 조조를 싫어하여 촉의 유비와 내통하고 있었다 .
평주의 풍족한 농산물을 수확하여 조조에게는 받치지 않으면서 유비에게 군량미용 양곡을 공공연히 보내주기 까지하였다 . 그 것만으로도 좋았다 .
조조가 심지어는 헌제를 감금하고 자기가 황제가 되려고 한다고 공공연히 험담을 일삼았다 .
조조 귀에 이얘기가 안 들어 갈리가 없었다
.
드디어 조조는 평주 정벌에 나섰다 .
평주 태수 하요는 이러한 때를 대비해서 병력을 별로 기르지를 않았다 .상비 병력이래야
800 명 뿐이었다 . 군대라는 것은 백성들에게 배만 불려 주면 족한 것이지 무슨필요가 있느냐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조조군이 평주로
진격 해 온다는 말을 듣자 망연자실 하였다 .
촉까지 거리는 1000 여리이고 고구려는 바로 코 앞의 이웃나라 였다 . 하요가 촉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조 요청을 할 곳이라고는 바로 이웃 고구려밖에 없었다
궁여 지책으로 고구려 산상왕에게 병력을 요청
한것이다 .
그러나 고구려도 환도성 천도 이후 극도로 재정이 고갈되어 군사를 유지 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상비 별력도 거의 귀농시키고
무방비 상태였다 .
계속
조조는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군사를 동원 한것이 아니라 유비가 공명(孔明)을 군사(軍師)로 삼아 군사를 훈련 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
유비를 그냥 두었다가는 장차 후환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군사를 동원 하게 된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내정을 개혁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다지고 있었다.
특히사마의(司馬懿)를 중용하여 그의 자문을 많이 받고 있었다 .
사마의는 자를 사마 중달(司馬
仲達)이라고 부르는데 문무를 겸비하고 지략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조조는 내정을 바꾸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완전한 문무겸직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자 이번에는 강남의 손권을 칠 계획을 세웠었다가 하후돈이 남쪽의 손권 보다도 서쪽의 유현덕이 더 위협적인 인물 이라고 강조 하자 유비를
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때 부장 한호(韓浩)가 이의를 제기한다
"만일 군사를 동원 했다가 고구려군의 배후 공격이라도
있으면 어찌 하실려고 그러십니까? 재고하십시요"
이때 사마의가 말한다 .
"고구려는 걱정 할것 없어요 , 산상왕 이란 자는
이름만 임금이지 망나니나 마찬가지 인물입니다.,
백성들로 부터 신망을 잃고 있는데다가 개혁 한답시고 나라 사정은 어려운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를 강행 하는가 하면 엉뚱한짓을 하는등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자입니다 .게다가 천도로 인하여 나라 재정은 파탄이
되어 군사를 기를 양곡이 없어서 군사들이 거의 귀농 상태라는 얘기입니다 "
조조가 말한다
"그러면 이 기회에 고구려 부터 칠가
?"
사마의가 말한다 .
"고구려는 받아 놓은 당상이나 다름 없습니다 .언제고 마음 만 먹으면 항복을 받아 낼수 있습니다 .문제는
평주 태수 하요라는 놈입니다 . 평주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달 되어 살기 좋은 땅입니다 .
하요는 원래 한나라 종실의 친척이라고
자처하며 유비가 한실의 정통성이 있으니 그를 도와야 한다고하며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비와 내통하고 많은 군량미가 유비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하요를 처 없애 유비의 군량 보급로를 끊어 버려 병력을 약화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 유비를 쳐도 늦지
않습니다"
조조가 탄복한다 .
"그대 말이 옳소 ."
사마의가 부언한다
"그러시다면 평주의 하 요부터
치시겠습니까?"
하후돈이 이말을 받아 말한다
"하요 뿐이오? 고구려 까지 공격하여 산상왕 이란 놈을 잡아 들입시다 "
조조가
말한다 .
"아니야,고구려는 중달의 말대로 급할것 없오 . 우리 주변에는 서쪽의 유비와 남쪽의손권이 우리를 노리고 있어 .우선 급한것 부터
한가지씩 해결 해 나가야 하는데 그 첫째가 우선 유비부터 쳐 없애야 하오 .그러기 위하여 평주를 점령한 다음 유비를 공격하도록 합시다
"
조조는 다음 날 즉시 출동령을 내린다 .
하후돈을 대장군으로 삼고 한호 등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십만을 이끌고 평주
정벌에나섰다 .
놀란 하요는 모사 하전(霞銓)을 부른다 .
"조조가 우리를 치려고 온다는 보고가 있는데 어찌 하면
좋겠소?"
하전이 말한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반드시 역적 조조가 우리를 칠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당장 조조의
대군을 막아 낼 힘이 없습니다 .지금 유황숙이 계신 곳으로 가시든가 아니면 ......"
하요는 유황숙이 있는곳 까지 피 하려면
천리나 되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 하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다 .잘못 하다가는 피난 도중에 조조군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
.
하요는 하전의 말중 다른 대안의 말을 꺼내다 멈춘 부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니면...."
"이웃 고구려 밖에 없읍니다
"
"고구려에게 사정을 하다니 ... 고구려는 우리와 말도 틀린 오랑캐나라인데..........."
"그렇다고 조조의 대군을 막아 낼
병력이 태부족입니다 . 싸워도 승산이 없습니다 .제가 환도성을 찾아가 산상왕께 사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날 하전이 하요의 사자로 환도성으로
향한다
산상왕은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서울을 옮긴 후 팔자가 늘어지었다 .보기 싫은 제가(諸加)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고
항상 압박하는 우가(于家)들의 압력을 받지않아서 좋았다 .
이제 고구려는 자기 손아귀에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자연히 자기의 끼가 발동하기 시작 하였다 .
주색(酒色) 잡기의 세월을 보내기 시작한것이다 .
"
한(漢)나라 평주 태수로 부터 조공이 들어 왔습니다"
"무엇이라고 ? 하요로 부터 조공품이 보내 왔다구?"
산상왕은 중국의 태수로
부터 조공품 이라고 받는 것은 처음 이었다 .
조공 상품을 열어 보니 귀한 백옥,비취,호박등 보석이 가득찼다 .
옆에서
산사왕을 모시고 있던 예쁜 여자들이 눈이 휘둥그래지었다 .
왕은 보석상자를 들고온 하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후히 대접만 해서
보내라고 하명하고 계집들을 희롱하던 일을 계속 하려고 방문을 닫으라한다 .
그러나 보석을 조공 이라고 까지 받치며 산산왕을 찾아 온
하전이 그냥 돌아 설리가없었다
일부러 말을 꺼낸다 .
"폐하, 저는 하요 태수를 모시고 있는 하전이라는 사람입니다"
왕을
귀찮다는 듯이
"알았소 돌아 가거든 태수께고 맙다고나 전해 주시오"
하고 문을 닫으려 한다 .
"실은
...."
"무슨 할 말이 있소?"
"다름이 아니오라 부탁의 말씀 좀 있어서 ...."
"뭐요?"
"지금 중원에는 한실이
큰 위기에 봉착되 어 있습니다 .그래서 ....."
왕은 눈이 휘둥그래지었다
"무슨 말이오? "
"조조 역적이 황제 폐하를
납치하다 싶이하여 낙양에서 장안으로 , 허도로 끌고 다니며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태수께서는 조조 같은 간신의 말을
들을수 없다며 정통성이 있는 유황숙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이유로 조조가 우리를 공격 하러 들어 오고 있습니다 .구해주십시요?"
왕이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
실상 고구려는 국내성에서 환도성으로 서울을 옮긴 이후 바닥 난 재정으로 군사를 모두 귀농시켜
동원할 병력이라고는 1000 여명도 않 되었다 .
더구나 외국과의 전쟁을 한번도 치뤄 보지 않은 산상 왕으로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
그렇다고 평주 태수 따위에게 허약하게 보여서는 않 된다고 생각하였다 .
여기서 산상왕의 독특한 큰 소리가 다시 입에서 튀어 나온다
.
"걱정 마시오 , 우리 고구려가 그까짓 조조 군사 쯤이야 못 막아 내겠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