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는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의 약자이다. R&B의 시조는 블루스이고, 말 그대로 리드미컬한 블루스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블루스는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흑인 노예가 많았던 남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처음에는 작업능률을 올리기 위한 노동요(Field Holler)로 시작되었는데 작업 중 동료들간 언어소통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남북 전쟁으로 인 한 노예해방은 블루스를 흑인민요화 시켰고 미국 남부 미시시피 강 유역의 술집이나 거리에서 빈번히 불려지면서 정착되었다. 이 남부 시골 블루스 (Country Blues)-또는 델타 블루스(Delta Blues)-는 대공항을 기점으로 일자리를 찾아 북부로 나선 흑인들에 의해 도시적 색깔로 채색되었다. 하모니 카나 기타가 고작이었던 초기 남부블루스는 시카고를 비롯한 한 대도시로 상경해 피아노나 엠프와 결합한 악기들을 만났고 더불어 경쾌하고 화려한 도시블루스(Urban Blues)-또는 시카고 블루스(Chicago)-로 명명되어지며 입지를 넓혀갔다. 이 도시블루스(Urban Blues)는 1930년대쯤부터 악기와 리듬을 더욱 강화시키고 보컬위주의 가스펠 양식을 접목해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라는 새로운 장르를 양산하였다.
처음부터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레이스 뮤직(race music) 이라 불리며 차별 받았다. 1949년 빌보드지에 의해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라 칭해지기 전까지, 레이스 뮤직(race music)은 흑인 노예 출신 아메리칸들의 음악으로 이미지화 되면서 경시되었다. 이 레이스 뮤직은 점프악단이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두왑(Doo-Wop)?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 두왑이 바로 ?슈룹 슈비두 바둠둠둠~?이런 식의 훅 내지는 백보컬을 가진 일종의 아카펠라 형식을 띤 음악이다. 보이즈 투 맨(Boyz Ⅱ Men)의 유명한 아카펠라 메가 히트송 "In The Still Of The Night"도 당시 두왑 그룹 으로 유명했던 파이브 새틴스 (The Five Satins)의 원곡을 리바이벌 한 것이다. 하지만 1940~1950년대를 이른바 ‘두왑의 전성시대’로 이끌었던 수많 은 점프 악단들은 1950년대와 함께 사라져갔다.
백인 아이들이 척 베리(Chuck Berry)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에 이르기까지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가 컨트리(Country)를 만나 탄생한 로큰롤(Rock & Roll)에 열광하는 사이 흑인들은 소울(Soul)이라는 새로운 그들만의 주류 음악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 와 케네디의 대대적인 흑인 유화 정책과 맞물려 흑인들은 자신들의 인권에 관한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발 맞춰 그들의 음악에도 강렬한 메시지가 필 요했다. 당시 흑인들은 집회나 강연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은 음악에서도 나타났다. 그들은 리듬 앤 블루스를 기본으로 하 되 보다 선동적이고 뇌리에 남는 샤우트 창법을 사용하여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가사가 잘 전달되어야 하고, 가슴은 동지의식으로 울렁여야 했기에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 빠르기의 끈적하고 강한 비트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소울(soul)이다. 소울은 당시 흑인들의 절대지지 받으며 그들의 음악, 그러니까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죽어 가는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에 강렬한 인상을 추가시킨 소울(Soul)이 흑인의 정서를 대 변해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와 소울의 경계는 모호해 지기 시작했다.
모타운(Motown) 납시다.
1959년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에 의해 디트로이트에 세워진 모타운(Motown)은 흑인음악에게 대중을 선물하였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북부의 대표적인 자동차 공업단지 로 이 시기에 디트로이트의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흑인 근로자들의 수는 무수했고 고디 주니어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사업수완과 `재능 있는 자 한 눈에 발견하기`가 남달랐던 그는 모타운에 자금을 유입시키면서 흑인음악의 대형화를 이루었다. 모타운(Motown)은 당대 천재 뮤지션으로 굴림 하 였으며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흑인 뮤지션들에게 숱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를 배출하였다. 물론 이들은 이들의 뮤지션적 입 지가 거대해 지면서 모타운(Motown)과 분리되었으나 그들의 천재성을 대중에게 그만큼이나 홍보 할 수 있었던 건 모타운(Motown)의 공이라 할 수 있겠다.
모타운(Motown)은 입에 척 달라붙는 가사 위에 백인들의 화성을 얹져 인종적 특질을 없앤 앨범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속 가 수들을 잘 팔릴만한 이미지로 만들고 조련한 후 전속 작곡팀이 만든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1960년대를 대표했던 남성 보컬그룹 템프테이션(The Temptation)과 흑인 걸 그룹 슈프림스(The Supremes) 그리고 이 그룹의 프론트워먼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를 비롯해 잭슨 파이브(Jackson 5)에 이르기까지 1960~1970년대에 모타운이 대중에게 쏟아냈던 흑인음악들은 가히 놀랄만한 상업적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때 모타운에 의해 일구어진 흑인음악의 영화(榮華)는 상업적인 성공을 위 해 흑인들의 한, 자존심, 분노, 주체의식 같은 것들의 표현인 소울(Soul)을 상당부분 희석시켰다. 그러던 중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묘하게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나 흑인에게 우호적 이였던 민주당의 정권교체 등으로 모타운(Motown)의 거품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POP = R&B?
1960~1970년대 모타운에 의해 일구어진 R&B의 상업성은 1980년대 들어와서 더욱 미끈하고 세련된 흑인스타들로 인해 절정을 이룬다. MTV가 원하고 MTV를 원했던, 그래서 MTV가 키우고 MTV를 키웠던 1980년대 최 고 인기절정의 백인 미녀와 흑인 미남이 있었으니 그 미녀는 마돈나요 그 미남은 마이클 잭슨이다. 일단 그 미녀 이야기는 본작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접어두고 그 미남 이야기를 해 보자. 다섯 살 때 잭슨 파이브의 리드 싱어로 데뷔했고 이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의 1970년대를 이끌어갔다. 모타운의 음악은 백인들도 즐길 수 있는 흑인음악이었으므로 다섯 살 때부터 모타운과 혹독한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마이클 잭슨은 본능적으로 대중적 코드에 맞춰져 있었다. 전대미문의 퍼 포먼스와 자극적인 비트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그는 말로 다 못할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 그녀는 또 어떠한가? 휘트니 휴스턴은 가스펠 넘쳐나는 집안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교회에서 많은 무대를 경험하였다. 이렇게 타고나고 다져진 가스펠 필을 기반으 로 지금까지도 불후의 러브송으로 즐겨 되새겨지는 주옥같은 팝 넘버들을 불렀다. 그녀는 목소리에서 질퍽한 질감을 지운 후 파워풀함만 남겨 사랑 을 고백했고 영화 "보디가드"를 기점으로 가수로서도 엔터테이너로서도 절정을 맛 봤다. 1980년대 흑인음악은 모타운적 비즈니스의 업 그레이드 버전으로 소비적이고 안정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상에 부합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하지만 흑인의 훌륭한 가창력과 음악적 재능만을 빌린 음악이었기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녕 R&B였던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기교와 비트로 승부 하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R&B는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꽃단장을 하였다. 젊고 푸릇푸릇했던 머라이어 캐리의 [Music Box]가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우리 나라에도 R&B라는 말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환상적인 애드립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고음은 정박 가요에 익숙한 동쪽의 변방 대한민국 리스너들의 마음까지도 매혹시켰다. 그녀와 애드립 대결을 펼친다 하더라도 한 치 뒤지지 않을 남자 보컬리스트가 있었으니 브라이언 맥나잇이다. 이 사람 역시 크리스챤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가스펠에 눈떴고 10대 때 이미 퓨전 재즈 밴드를 결성했을 만큼 음악적 역량도 뛰어났었다. 이렇게 타고난 음악적 감각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게다가 로맨틱하기까지한 멜로디를 뽑아내며 어덜트 컴템퍼러리 R&B의 대마왕이 되었다. 여기에 중저음이 빛나는 토니 브랙스톤의 메가히트 R&B발라드까지 R&B는 더욱 화사해지고 달콤해 졌다.
1990년 하면 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또는 여성들에 의한 뉴 질 스윙(New Jill Swing)이다. 이것은 R&B에 힙합 비트를 도입하여 만든 장르로 느린템포에서 도 그루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은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의 멤버였던 테디 라일리(Teddy Riley)에 의해 만들어졌고, 1990년대 R&B/힙합에서 거의 빠짐 없이 쓰였다. 모타운의 템프테이션(Temptation) 이후 남성 보컬그룹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보이즈 투 맨(Boyz Ⅱ Men), 마이클 잭슨의 1990년대 음반, 잭슨가의 우먼파워 자넷 잭슨, 그리고 1990년대 대표 걸 그룹 TLC등 이 모두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또는 뉴 질 스윙(New Jill Swing)의 막강 영향력 하에 있었다. 이후 뉴 잭 스윙은 테디 라일리가 아니더라도 많은 저명 프로듀서에 의해 활용되었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할 한 사람. 팀벌랜드(Timbaland). 이 사람은 뉴 잭 스윙 보다 더 살벌하게 쪼개지고 엇나 가는 마이크로 싱코페이션 박자를 R&B에 삽입하여 또 다른 주류를 형성하였다. 팀벌랜드의 살벌한 쪼개기는 팀벌랜드표 비트로 유명세를 타면 서 단연코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였다. 대표적 패밀리는 알리야(Aaliyah)와 미시 엘리엇(Missy Elliot)으로 알리야가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도 지금 한 영향력 했을 것이고 미시 엘리엇은 이미 한 영향력하고 있다. 또 화이트 R&B의 대표주자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솔로 앨범 또한 그의 화 려한 싱코페이션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다시
이제까지는 R&B의 역사와 주류 R&B에 관한 흐름을 짚어 보았다. 모타운 시절부터 팝 B&B로 서서히 체질을 개선하던 흑인 음악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부 젊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반성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었던 흑인음악이 ‘팔리기 위한 음악’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고 다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네오 소울’ 이라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새로운 소울’ 다시 말해 새로운 경향의 소울이지만 그 근본은 1960~1970대를 풍미했던 클래식 소울이며 지금 비주류에서 주류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좀 더 자세히 전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