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소설 속의 모든 내용은 모두 허구를 바탕으로 창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만월의 성, 아직도 여덟 명의 인간 여자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런 그들에게 네 뱀파이어들은 긴장감을 풀게 하기 위해 성대한 만찬을 제공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왜들 그래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많이 차려드렸으니까 많이 드세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머뭇거리기만 할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사쿠라는 답답했는지,
“설마 제가 독 같은걸 넣었을까봐요? 괜찮으니까 걱정마세요. 저희도 다 잘 먹고 있잖아요.” 눈치만 보는 인간들과 달리 사쿠라를 비롯한 네 뱀파이어들은 맛있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하나둘씩 식사를 한다. 밥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뱀파이어들은 피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반전이었다. 어쨌든 한 번 밥이 들어가니 다들 눈치 보지 않고 먹는데 집중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식사가 끝나갈 즈음, 사쿠라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전달한다.
“혹시 본인이 여기 온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부분들 친절하게 알려드리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인간들이 솔깃한다. 이유도 모른 채 이곳에 와있는 이들로써는 어느 정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다만, 반드시 한 사람씩만 오도록 하세요. 꼭 혼자서만 오세요. 간단한 과정으로 한 명씩 차례차례 얘기해드리도록 하죠.” 이 말에 그들은 의아했다. 왜 혼자 가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왕이면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명이 상담을 받으러 가면, 다른 분들은 반드시 방에 계주셔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시, 목숨은 보장 못 합니다. 알겠습니까?” 사쿠라는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깜빡했는지, 그들을 보면서 한 마디를 더한다.
“아, 그리고 지금 방에 가면 여러분들 체형에 맞게 옷이 따로 준비되어있을 거예요. 그 옷을 입고 와주세요. 알겠죠?” 말을 마치고 그녀는 은비, 채연, 원영과 함께 자리를 떴다. 다른 8명도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 여덟 명의 인간들은 각 방에 나눠진 흰 드레스를 입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혜원의 방부터 노크했다. 그녀가 문을 열어보니 채연이었다. 그녀는 무언가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기계처럼 딱딱한 말투로 혜원에게 말한다.
“여기 번호가 적혀있는 공이 있습니다. 1~8번까지 번호가 들어있습니다. 공 하나만 뽑아주세요.” 혜원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항아리에서 공을 뽑는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도 항아리 안에 있는 공을 뽑았다. 그렇게 8명 모두가 공을 뽑은 뒤, 채연은 빈 항아리를 들고 사쿠라의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온 채연에게 사쿠라는 무언가를 귀에 속삭인다. 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비와 원영에게 그 내용을 전달한다. 잠시 후, 은비가 큰 목소리로,
“1번 공 뽑은 인간 나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목소리가 들리자,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나온 사람을 원영이 사쿠라의 방으로 안내한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유진이었다. 사쿠라는 단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었다. 유진은 쭈뼛거리며 사쿠라가 앉아있는 책상 맞은 편 의자에 앉는다.
“저, 저기...”
“응?” 유진의 말에 사쿠라가 궁금해 한다.
“왜... 저를 살려주신 건가요?” 그녀의 말에 사쿠라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말한다.
“넌 나와 너무 많이 닮아있어. 그동안 살아오면서 당해온 온갖 수모와 고통, 슬픔,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까지. 널 처음 봤을 때 난 그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어.” 그녀의 말에 유진은 호기심을 느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쿠라는 흥미를 느꼈는지,
“나에 대해 알고 싶어?”라고 말한다. 유진은 정말 궁금했던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를 보며 사쿠라는 웃으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유진의 표정은 격한 분노와 연민으로 일그러져간다. 그리고는 마침내 눈물샘이 터지며 흐느꼈다. 유진은 그런 그녀의 과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감정이입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다 끝나자 유진은 사쿠라에게 말한다.
“그랬군요. 그래서 당신이 저를 볼 때 그렇게 느꼈었군요...” 사쿠라는 유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우린 그런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그런 슬픈 일들을 모두 잊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구원자라고 할 수 있지.” 사쿠라는 오른손으로 찻잔을 들어 안에 담겨있는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여기 있는 Irene, Elena, Erica 모두 인간일 때의 고통을 모두 잊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지. 물론 너도 알다시피 그들도 나와 같은 뱀파이어고.” 유진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은 사쿠라에 대한 동경심, 아니 이를 넘어서 자신도 그녀처럼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퍼져간다.
“혹시... 저도 당신처럼 될 수 있나요?” 유진이 어렵게 마음 속의 말을 꺼낸다. 그 말에 사쿠라는 환영하는 표정으로,
“그럼. 하지만 지금은 너를 뱀파이어로 만들 수는 없어. 곧 여기 있는 모두 같이 뱀파이어가 될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라고 말한다. 이를 들은 유진은 괴로운 기억만이 가득했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작을 할 자신에 대한 기대감에 황홀해했다.
“아아... Zoe님. 하루빨리 저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주세요... 허울뿐인 인간의 껍데기를 벗고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고 싶어요...” 유진은 만화 ‘미래일기’의 여주인공 ‘가사이 유노’처럼 양손을 볼에 대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녀를 사쿠라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다음 2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예나였다. 예나는 방에 들어오자 신기한 듯 주변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그런 예나를 채연이 자리를 안내해준다. 예나가 자리에 앉자 사쿠라가 바로 맞은편에 앉는다.
“우와... 여기 인테리어 어떻게 하셨어요?” 예나가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해한다. 그런 예나를 보며 사쿠라가 웃는다.
“신기해요? 여기 이래 뵈도 역사가 오래된 곳이에요. 거의 천년은 넘었을 걸요?” 예나가 그 말에 상당히 놀란다. 아무래도 그녀는 몇 십에서 몇 백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쿠라는 자신의 할 말을 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 왜 여기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녀의 말에 예나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대체 왜죠? 전 도저히 모르겠어요...” 예나의 말에 사쿠라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쪽... 오늘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있었죠?” 사쿠라의 말에 예나는 정곡을 찔린 듯 당황하며,
“어, 어떻게 아셨죠?”라고 말한다. 이를 본 사쿠라는 씩 웃으면서,
“당신이 취해서 쓰러져있을 때, 가방에서 여권과 항공기 탑승권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던데, 왜 중국으로 가는 건가요? 여행? 유학? 비즈니스?”라고 오히려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에 예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그, 그게... 사실은...” 예나는 그렇게 자신이 겪어왔던 일들을 털어놓는다. 주임교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고, 이를 고발해 교수는 해임되었지만, 학교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중국 유학을 갈 처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모두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갈수록 그녀는 분노로 인한 흥분으로 얼굴이 점차 붉어지고 말소리도 점점 높아져간다. 이야기를 듣던 사쿠라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 끝나가자 말을 시작한다.
“그런 세상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어?” 그녀의 말에 예나는 주먹을 꽉 쥐며 쌓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원망스러워요... 전 정말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참아도 고통스럽고, 다 얘기했는데도 전과 다를 바 없이 고통받았어요. 제가 죄가 있다면 그 인간을 만난 것 자체가 죄겠죠.” 그러더니 예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머리를 쥐어 싸매며 소리를 지른다.
“근데, 망할 놈의 학교가. 모든 걸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피해자인 절 중국으로 보내서 철저히 은폐시키려했죠. 그들에게는 학교의 명예가 피해자의 인권보다 중요했으니까요. 내가 죄인이냐고... 누가 죄인이냐고, XXXX들아!!” 예나가 격한 분노를 보이며 책상을 내리친다. 너무나 순수해보였던 방금 전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매우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사쿠라는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그녀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그럼, 혹시 학교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니?”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예나는 사쿠라의 제안에 조금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솔직히 하고 싶죠. 하지만, 제 힘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녀의 말에 사쿠라는 본색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그 힘을 줄게.” 사쿠라의 말에 예나가 혹해서 묻는다.
“정말요? 당신이요?” 그 말을 들으며 사쿠라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당연하지. 내 제안만 받아들인다면.”이라고 말했다. 예나는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쿠라는 웃으면서 자신의 플랜을 공개한다.
“머지않아 너희 8명 모두를 나와 같은 뱀파이어로 만들 거야. 그런 다음에 네게 충분히 그들에게 복수할 시간을 주도록 하지. 거절해도 상관없어. 다만, 거절하면 우리들의 ‘살아있는 먹이’가 되는 거지. 어때? 동의하지?” 예나는 당황했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해놓았지만 사실상 답정너에 가까웠다. 만약 거절하면 자신은 계속해서 이들에게 피를 빨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예나는 복수를 위하여 사쿠라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좋아요. 만약 반대하는 사람 있더라도 제가 최선을 다해 설득해볼게요. 약속, 꼭 지켜주실 거죠?” 사쿠라는 됐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럼요. 약속, 지켜드리죠.”라고 말했다.
한편, ‘만월동 동시 실종사건’의 수사팀은 각 실종자별로 인원을 나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먼저 주변인에 대한 탐색수사를 이어갔고, 실종자들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해갔다. 이 모든 수사를 총지휘하는 손욱은 각각의 수사팀에서 얻어낸 정보들을 하나둘 모아갔다.
‘흠...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도저히 공통점을 찾을 수 없어...’ 하지만 정보들이 모여지기는커녕 오히려 더더욱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형태였다. 게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어떻게 범인은 이곳들을 단시간에 도착해 피해자들을 납치할 수 있었을까...?’ 만월동 자체가 큰 동네라서 피해자들의 마지막 행적을 모두 다 도보로 돌아다녀도 최소 2시간이 걸릴 법한 거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차를 통해서 간 것인지도 확실치가 않았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던 손욱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까 그날 안개가 엄청 짙게 꼈었지...!’ 그날 짙게 꼈던 안개를 떠올린 손욱은 각 수사팀에 모두 연락을 한다.
“혹시 피해자들의 마지막 행적 부근에 CCTV 확인 부탁드립니다. 무언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락을 마치고 손욱은 다시 사건 파일을 하나둘 정리한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한편, 만월의 성에서는 여전히 1대 1 면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 번째 상대는 히토미였다. 그녀는 여전히 냉랭한 시선으로 사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히토미에게 상냥한 말투로 먼저 말을 건다.
“어서 와요. 제가 왜 당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러나 히토미는 여전히 싸늘하게 반응한다.
“아뇨.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어쨌든 빨리 저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주세요.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그녀의 강경한 태도에 사쿠라는 ‘오’하면서 혀를 내두른다. 방금 전의 두 명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쉽게 회유되지는 않을 듯했다.
“이거 유감인데? 솔직히 어느 정도 네가 궁금해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역시 넌 정말 ‘예상외의 여자’야.” 그녀의 말에 히토미가 발끈한다.
“‘예상외의 여자’요? 그게 무슨 의미죠?” 그녀의 의문에 사쿠라가 그녀의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댄다. 히토미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사쿠라에게 얼굴을 잡혀 강제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히토미의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본 사쿠라는 그녀를 향해 서늘한 미소를 날리며 말한다.
“이렇게나 귀여운 얼굴을 갖고 있는데, 행동은 전혀 귀엽지 않단 말이야. 그런 얼굴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지 궁금하네?” 그녀의 섬뜩한 말에 히토미는 당황하며,
“아, 알 필요 없잖아요!”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사쿠라는 그런 그녀를 향해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아마 몇 십 명은 가볍게 죽였겠지. 자신이 그 사람을 왜 죽여야 하는 지도 모른 채. 마치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킬러 로봇처럼 말이야. 안 그래?” 사쿠라의 말 하나하나가 히토미에게 비수로 박힌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은,
“거기에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도 못 알아보고, 원 샷 원 킬로 빵하고 총으로 쏴서 죽였으니 그보다 불행할 수 있을까?” 히토미의 역린을 건드리며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린다. 히토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가슴팍에 숨겨놨던 단검을 꺼내들어 사쿠라를 향해 달려간다. 이 모습을 본 채연이 달려들었지만, 이미 사쿠라의 마법에 의해 사지가 구속되었고, 단검은 힘없이 떨어졌다. 히토미는 계속 저항했지만, 저항할수록 마법은 더더욱 강해져갔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마치 알고 있었던 듯 사쿠라는 다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여기서 도망치면 넌 결국 살인자로 남게 되어 경찰에 붙잡히겠지. 그런 다음에 몇 십 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너의 부모까지 죽인 대가로 평생을 감옥에 썩어야겠지. 근데, 이런 귀여운 얼굴로 평생 감옥살이를 하는 건 솔직히 너무 아까워.” 그리고 그녀는 히토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선택지가 있어. 여기서 모든 것을 잊고 네가 꿈꾸던 새로운 인생을 살거나, 아니면 여기서 나가서 평생 감옥살이를 하거나. 자, 어떻게 할래?” 그녀가 원하는 답은 하나였다. 이를 안 히토미는 공포심과 절망감에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며 말했다.
“하, 한번 생각해볼게요...” 그녀의 대답에 사쿠라는 불만족스러운 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좋아, 생각할 시간을 주지. 근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둬. 알겠지?”라며 약속을 빙자한 협박 투의 말을 속삭였다.
네 번째로 찾아온 사람은 민주였다. 민주는 흰 드레스가 적응이 되지 않는지 자리에 앉아서도 자꾸만 옷을 매만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쿠라는 웃는다.
“혹시 사이즈가 안 맞니? 다른 걸로 바꿔줄까?” 그녀의 말에 민주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가려워서 그런 거예요...” 민주가 소심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다 사쿠라가 먼저 입을 연다.
“그나저나, 너 왜 옷에 피가 좀 묻어있었던데, 무슨 일이 있던 거니?” 사쿠라의 질문에 민주가 머뭇거린다.
“아, 저, 그, 그게...” 민주가 계속 망설이자, 사쿠라는 그녀가 불편해하는 걸 눈치채고 말한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얘기해도 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약속할게.” 그녀의 말에 민주는 어렵게 말을 꺼낸다.
“사실은...” 그녀는 몇몇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러다가 실수로 괴롭히던 친구 2명을 죽이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쿠라는 이를 조용히 듣다가,
“그래서 걔들 죽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민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한다.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제가 사람을 죽인 게 알려진다면, 전 꼼짝없이 감옥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두려워하며 울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그런데... 그런 쓰레기들은 죽어도 싸요. 솔직히 걔네들은 제가 받은 고통의 몇 배로 갚아줘도 시원찮아요. 전 법을 대신해 그들에게 단죄를 내린 거예요. 하하하. 제가 한 짓은 정당방위에요. 제가 그동안 당했던 걸 생각하면 죽이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는 거예요! 하하하!” 사쿠라는 그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다. 자신도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저런 인간은 처음 본다. 영화나 드라마로만 봐오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저런 것인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녀는 침착하게 대응하려할 때, 민주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 죄, 죄송해요... 사실 원래 오디션 때문에 연기에 집중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그녀의 말에 사쿠라가 흠칫한다.
“오디션이라고?” 그녀의 질문에 민주가 답했다.
“그게, 사실은 이번에 여주인공 캐스팅 오디션 역할이 사이코패스 여고생이라서... 실제처럼 연기를 해야 해서 그런 거예요. 죄송해요... 전 진짜 사이코패스는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사쿠라는 민주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역할에 집중해서 실제와 연기를 혼선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심할 정도의 감정기복을 보인다는 것은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무언가에 흥분을 느낀다. 바로,
‘정말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아직도 인간은 정말 흥미로워.’라는 호기심이었다. 인간에 대해 이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김민주, 저 여자는 그런 흥미로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더욱 뱀파이어로 만들어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욕망이 더더욱 커져갔다. 사쿠라는 이제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알겠어. 그럼, 네가 잡히지 않게 도와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그녀의 말에 민주가 놀란다.
“부, 부탁이요?” 사쿠라는 웃으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곧 여기 있는 모두를 뱀파이어로 만들 거야. 물론 너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넌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줘. 그러면 영원히 경찰에게 잡힐 일도 없고, 여기서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어때? 괜찮지?” 그녀의 제안에 민주는 갈등했다. 여기서 나갔다가 붙잡히면 꼼짝없이 감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긴 해도 사쿠라가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생각이 깊어질수록 감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만 먹고 사는 뱀파이어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민주는 결심을 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조, 좋아요. 대신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알겠죠?”라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쿠라는 흡족한 듯 웃으며 말한다.
“OK. 그럼 계약 성립. 들어가도 좋아요.” 말이 끝나자 민주는 허겁지겁 방을 나간다. 사쿠라는 그녀가 나가자 박수를 치며 만족한 표정으로,
“하여간 인간들이란...”이라고 말하며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한편, 수사팀장 손욱이 향한 곳은 바로 석음그룹 본사였다. 그는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본사로 향했다. 본사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자, 그는 경찰 신분증을 손에 들며 말한다.
“회장님 부탁으로 왔습니다. 비켜주시죠.” 그의 말에 경호원들이 자리를 비킨다. 마치 홍해를 반으로 갈랐던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그가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 나이든 중년 남성이 그를 마중나와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원손욱 경감님. 저는 회장님 곁에서 보좌하고 있는 정인홍이라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손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두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가다가 회장실이 있는 25층에 멈췄다. 인홍이 회장실의 문을 열자 손욱이 조심스레 회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회장실에는 최동원 회장이 테이블 맞은 편 카우치에 앉아 있었다.
“어서 오게나.” 회장이 손욱을 보자 반가움을 표시하며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권한다. 손욱은 양손으로 회장의 오른손을 잡으며,
“처음 뵙겠습니다. ‘만월동 동시 실종사건’, 속칭 ‘보름달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고 있는 원손욱 경감입니다.”라고 악수하며 인사한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최 회장은 손욱에게 자리를 권한다. 손욱이 자리에 앉은 뒤, 인홍은 두 사람을 위한 다과를 내온 뒤,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둘만이 회장실에 남게 되었고, 두 사람의 침묵과 함께 어색한 기류가 그들을 둘러쌌다. 그러다 손욱이 먼저 입을 연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에 최 회장은 인홍을 부른다. 잠시 후, 인홍이 서류봉투 하나를 그에게 전달한다. 손욱은 서류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해본다. 서류봉투 안에는 사진 몇 장과 몇 장의 종이가 있었다. 손욱은 사진과 종이를 꼼꼼히 확인해본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본 손욱은 충격을 받는다.
“이게 전부 사실입니까?” 그는 최대한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냉정하게 말했다. 최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고 말한다.
“부탁하네. 내 손녀딸 좀 찾아주게나. 내가 사례비는 두둑이 넣어주겠네...” 최 회장의 표정은 마치 건드리면 바로 울 정도로 상당히 상기되어있었다. 손욱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차갑고 거칠게 내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저보고 찾아달라고요?”라고 싸늘하게 말한다. 이에 최 회장은 상당히 당황한다.
“왜, 왜 그러나? 이제라도 내 진짜 손녀딸 찾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최 회장의 적반하장 태도에 손욱은 환멸을 느낀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로부터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진짜 최채리가 찾아왔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매몰차게 내팽개쳤다고요. 심지어 회장님 무릎까지 잡고 간곡하게 호소하는 데도 말이죠.” 손욱의 말 하나하나에 최 회장은 반박하지 못한다.
“근데,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찾아달라고요? 이거 너무 어불성설 아닙니까?” 손욱은 너무 화가 나 언성을 높이며 최 회장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최 회장도 이에 지지 않고 그에게 호소했다.
“그러니까 그 아이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그러네. 제발 부탁하네.” 최 회장이 손욱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하지만 손욱은 더더욱 쌀쌀맞게 그를 대한다.
“최채리 양이 자살한 이유를 회장님도 아실 거 아닙니까? 최채리는 자신이 회장님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렸습니다. 회장님께서 잘 대해주시면서 보살피다 보니까 쉽게 눈치챌 수는 없었지만 말이죠. 그런데, 회사 내에서 자신이 진짜 친손녀가 아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최채리는 상당히 불안해했습니다. 그래서 최채리는 직접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서 헛소문임을 증명하려했죠. 하지만 이게 웬걸, 소문은 사실이었죠. 그녀에게 아주 잔혹하고 비참한 형태로 말이죠. 최채리는 그 사실을 알고 상당히 괴로워했어요. 그동안 지내고 누려왔던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 두려웠으니까요. 그렇게 혼자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채 속앓이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채리는 진짜 당신의 친손녀를 찾아서 그 아이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군가의 계략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냈죠. 자신의 진짜 친모라는 것을 말이죠.” 그는 따박따박 말을 이어가며 최 회장을 압박했다.
“그 노력의 결과였을까요. 최채리는 당신의 진짜 친손녀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조유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죠. 당신의 진짜 친손녀 조유리는 어려운 가정에서 모친의 학대를 받으며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살고 있었죠. 그런 그녀의 생활을 보며 최채리는 더더욱 느끼게 되었겠죠. 그녀의 진짜 모친의 욕심으로 인해 인생이 바뀐 것에 대한 죄책감을 말이죠. 최채리는 조유리를 만나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죠. 그러면서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군요. 머리카락 몇 올과 입안 DNA가 담긴 칫솔을 꼭 준비해달라고. 그러면 자신이 회장님이나 당신의 아들인 최 사장의 DNA를 대조해보겠다고. 그렇게 두 사람만의 비밀 작전이 거행되었죠.” 그의 말을 듣는 최 회장의 표정은 점차 일그려져갔다. 하지만 손욱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이를 눈치채셨고, 최채리에게 온갖 질타를 퍼부으셨죠. 회장님은 두려우셨겠죠.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석음그룹에 먹칠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최채리에 대한 모든 지원과 권한, 특권을 모두 박탈해버렸죠. 하지만 그 결과, 최채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어요. 자신이 진짜 친손녀가 아닌 것을 들키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죠. 결국 그녀는 조유리에게 최 사장의 DNA가 담긴 물건들과 직접 쓴 편지를 전달한 뒤, 모든 책임을 떠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녀의 친모의 어리석은 행동과 당신의 이기심이 두 소녀를 비극으로 몰아간 겁니다.” 손욱은 말을 끝내며, 최 회장을 바라보았다. 최 회장은 충격을 받은 듯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며 오열하고 있었다. 한 대기업의 회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지?” 최 회장의 말에 손욱은 연민의 시선을 보이며 답했다.
“실종자 조유리의 방을 뒤졌고, 친모를 구속해 심문한 결과로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최 회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손욱은 그런 최 회장의 모습을 측은하다는 듯 그를 보며 혀를 끌끌거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며,
“당신의 진짜 친손녀, 조유리 양을 찾아드리도록 최선은 다해보죠.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시죠.”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당신도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만약, 당신이 조유리를 따듯하게 대해줬다면, 조유리 양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짜 가족을 만나 뒤늦게나마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 테니까요.”
손욱은 말을 마치고 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인홍이 그가 나가자 회장실로 들어갔다.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회장을 위로해줄 것이 뻔해보였다. 손욱은 착잡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본사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의 차를 타며 생각한다. 어쩌면 다른 실종자들에게도 어떠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는 또다른 실종자 안유진 수사팀에 배정된 병호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린다.
“병호야, 그 안유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가지고 와봐. 뭔가 있는 것 같다. 알겠지? 그럼 끊는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모는 그의 어두운 표정이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안녕하세요. 늦은 새벽에 8편과 함께 인사드립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남은 멤버 8명이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는지에 대한 전개와 그와 동시에 이뤄지는 손욱의 수사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유진, 예나, 히토미, 민주의 이야기를 먼저 서술했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정해진 결말에 도달할지 기대해주세요.
최근에 스토리라인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애니를 보면서 대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사 쓰는게 보통 일은 아니더군요. 그래도 이런 연구가 헛되지 않은 게 요즘엔 대사 쓰는 게 상당히 수월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솔직히 계속 쓸 용기가 없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여기 계신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부제는 Cytus에 최초로 수록되어 Deemo, 사운드 볼텍스 IV 헤븐리 헤이븐에 수록된 Cranky의 Libera Me입니다.(여담으로, 원래는 '리베라 메'라고 읽지만 '리베라 미'로 읽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라틴어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파트의 분위기와 잘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선정했습니다.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출처 - Spiral Soul OSTs 유튜브)
다음 연재는 혜원, 채원, 나코, 유리의 이야기를 담은 Part.9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2~3일 정도만 기다려주시면 올라올테니 좀만 기다려주세요!
p.s)궁금한 점 있으시거나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보지만 마시고 댓글 많이많이 달아주세요!!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고 답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관심과 댓글이 저에게 좋은 힘이 됩니다!
그럼 Part.9에서 뵙겠습니다! 안녕!
첫댓글 역시 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와... 소름돋았어욥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이 묘사할때 일기 언급하신거 예전의 after story가 기억나면서 레알 소름 ㄷㄷ.... 다음 내용이 살짝 예상되는데 과연 맞을지 다음 화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