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일본 아바메G)을 중심으로 요약·재편집하여 서원과 연대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발전된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의 창고이다. 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협동조합기업들의 역사나 전국적인 체계에 있어서도 국가 단위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운동의 분기점은 1970년대이다. 70년을 전후해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불황이라는 홍역을 치뤘고, 이 불황으로 부터 탈출하려는 시도가 협동조합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후 협동조합운동은 이탈이아 전역으로 불길같이 번졌고, 오늘날과 같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1983년이후, 이탈리아의 경제는 제2의 이탈리아 경제 기적의 시기로 발돋움하고 있다. 1985년의 경제지표는 모두 오름세였으며 광공업 생산지수는 85년부터 89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다. (연 평균 3.3%). 또 87년 이탈리아의 GNP는 영국을 추월했으며 최근에는 프랑스를 추월함으로써 세계 제4위의 경제 강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급성장의 원동력은 중소기업의 활동이다. 이탈리아는 대공업지역인 북동이탈리아와 공업정체지역인 남부 이탈리아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 중 중소기업중심의 발전을 이룩한 북동·중부의 발전이 이탈리아 경제발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북동·중부지역의 중소기업들에서는 전통적인 생산협동조합들이 눈에 띠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탈리아의 경제발전이 어느정도는 협동조합부문의 발전에 힘입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운도의 역사와 발전과정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아직은 그 수와 규모면에서 일천한 한국에서의 협동조합운동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1. 협동조합운동의 과거, 미래
1970년대 초기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진 여러 계층들이 협동조합세계속으로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디치마 농업협동조합이다. 그 곳 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수백 수천의 예가 있다. 츄차리아, 사루데냐, 토라시메노, 시라쿠사의 레스토랑, 교사, 직원, 신문기자, 인쇄공, 우유센타, 수송기업, 공공도살장, 양호시설, 극장, 심지어 오케스트라(이것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이다.)등을 들 수 있다.
왜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대단히 많은 계층들이 협동조합을 하려고 할까? 관심, 요구, 욕망, 문화적 조건등이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로 뛰어 들려고 할까? 그들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공통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을 협동조합이 취했기 때문이다. 이 욕구를 다른 형태와 다른 수단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주부에게는 협동조합은 믿을 수 있는 곳이고, 소매상에게는 보증할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는 자기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고, 그외에 농민, 어민, 트럭 운전수, 직인들에게는 다른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근대적인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은 여러가지 문을 다 열수 있는 호텔 수위의 열쇠와 같은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의문에 대한 초보적이고 잠정적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협동조합의 급격한 발전에 관한 상황을 주의깊게 관찰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협동조합에 투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꺠달은 사람들은 육체 노동자, 정신 노동자 뿐만이 아니었다. 상인, 직인, 소기업주, 전문가, 고교 및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도 그것을 꺠달았다. 협동조합은 남부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협동조합의 현재의 운명과 미래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 지금과 같이 협동조합이 발전한 것은 근래의 경제적, 사회적 현실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과거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그렇다면, 협동조합의 발전은 현재의 국면이 지나고 사회와 경제가 보다 안정되고 새로운 체제가 될떄에는 쇠퇴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협동조합은 그 경우에도 그 새로운 체제속으로 흡수되어 하나의 지주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협동조합운동은 1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이용해온 것을 현대에 와서 재발견한 것이다. 즉 근세의 경제·사회적 상황과 꼭 결부된 것으로 볼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와서 협동조합운동이 그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왜 오랜동안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잠자고 있는 것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고 있을까?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의 확립에 대응한 노동자들의 회답으로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자본주의 이전에는 협동조합운동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어느 한 시점에서 생겼다면 그것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으며 언젠가는 변모되고 결국에는 이 지구상에서 역사의 유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 대응해서 생긴 협동조합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자본주의가 사라지게 되면 따라서 사라지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대체하여 새로운 경제체제로 확고히 자리잡을 것인가? 이와같은 기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협동조합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역사를 탐구하여 보면 이러한 여러 의문이 풀릴 것이기 떄문이다.
2. 협동조합이란?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들어가 보자. 어떤 목적을 가졌고,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이 목적을 달성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기본이 되는것으로 「상호부조의 원칙」을 들수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소비협동조합의 예를 들어보면, 어떤 시민 단체들이 공동으로 협동조합을 만들 경우 소비재를 시장보다도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구입하고, 적은 금액으로 시장보다도 더 많은 물품을 구입하므로써 임금의 가치와 구매력을 높히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렇다면, 왜 공동으로 해야할까?
그 이유는 한사람으로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매자 단독으로는 상인 또는 생산자와 싸워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 필요가 있고, 공동으로 협동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상호부조의 형태가 필요한 것이다. 이 연합체는 노동조합의 요구투쟁의 방식이 아닌 상호부조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이러한 공동의 기구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인 지출을 한다. 즉, 각자의 저축과 자유시간, 노동을 할애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출은 결국에는 모두 각자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사회적 지출」과 「상호부조의 원칙」 이 2개의 원칙이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방금 거론된 소비 협동조합과는 다른 역사적 실례로 그것을 검증해 보기로 하자. 이 실례는 20세기 초반의 공동차지 협동조합의 예이다. 이 공동차지협동조합은 당시 조방경작이 지배적이던 로마니아주에서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으로 대토지 소유자로부터 경작하지 않고 놀고 있는 땅을 빌려서(공동차지), 그것을 스스로 경작해서 로마니아주에서 가장 발전된 주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조합원들의 강인한 의지가 뒷받침됐다. 즉, 그들은 대토지 소유자와 직접 타협하지 말 것, 누구든지 일고용 이외의 일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하지 말고 설령 임금이 그 곳에 비해 이곳이 낮더라도 이곳에서 일할 것, 노는 사람없이 모두가 일할 것을 맹세했다. 이와같이 해서 로마니아주의 일고용노동자들의 능력은 향상되어 갔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최초의 노동운동의 발전은 협동조합의 활성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최초의 노동자 상호부조협회는 이 시기의 것이다. 이 상호부조협회는 부유한 계급출신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노동자 혼자서는 자기들의 조건을 발전, 만회시킬 수 없다는 것을 꺠닫게 해주었다. 상호부조협회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단결이었으며, 이 원칙이 현대의 공적 보험서비스, 강제보험, 실업수당, 연금등의 기원이 되었다. 노동자상호부조협회로부터 노동조합, 협동조합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당조직도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트럭을 가진 주부들
협동조합, 노동조합, 노동자 정당을 구별하는 근본적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업활동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은 기업활동을 부차적으로 생각하지만, 협동조합은 기업활동이 그 근본 목적이라고 하는 점이다. 기업활동을 빼고는 협동조합을 말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또한 협동조합은 상호부조적인 조직이라는 점과, 기업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자주공제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소비협동조합이 기업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했을까? 소비협동조합의 목적은 두말 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품질좋은 물건을 얻는 것이다. 주부들은 공동으로 연합체를 만들어 소비재를 대신 구입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수의 기본재를 구입할 떄에는 여가로 하는 개척자적이고 무보수로 일을 하는 사람만으로 충분했으나, 대상이 조합원만으로 제한 되지 않을 때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려고 기구를 확대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개척자적 방식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따라서, 그 수준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건을 보다 싼 가격으로 구입해주고, 사업능력을 가진 확실한 기구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그것은 결국 주부집단과 상인과의 관계로 압축시킬 수 있었다. 주부들은 트럭을 구입하고, 창고계와 운전수까지 고용해서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대신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소비협동조합은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시장 내부의 게임의 주체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점차 협동조합의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고, 거대한 자본 그룹과도 경쟁할 수 있는 현대적 상업망을 형성했던 것이다.
새로운 기업
협동조합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협동조합은 결국 일반기업처럼 되는 것 아닐까? 그것은 사회적 목적이라는 구실을 감추고 있지만, 결국은 사기업과 같이 돈벌이가 목적이 되지는 않을까? 기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돈벌이를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다. 그러므로, 협동조합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라 부조조직에 머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판에 해답을 주기 위해서는 사기업과 협동조합기업의 차이점을 구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기업은 그 지배적 요소와 목적이 자본의 가치증식이다. 그러나 사기업의 활동이 투자한 자의 돈벌이 이외에 어떠한 효용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기업은 노동자에게 일자리와 소득을제공하고, 그 물건을 사는자에게 쓸모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단지 자본가의 자본가치 증식이라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켜지지 않을 수 없는 제약일 뿐이다. 그 제약이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자본가는 그 제약을 피해가려고 할 것이다. 즉, 사기업은 자본증식이 그 근본 목적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필요하며, 지본증식이 다른 수단으로 딜성될 수 있다면 사기업은 그 수단을 택할 것이고, 그 수단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본증식을 위해 불가피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목적은 사기업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내부의 자본과 다른 요소와의 관계도 다르고, 사회적 목적으로부터 이탈되지 않게 경계하는 점도 다르다. 또한 사기업은 자본을 소유한 자의 주도권에 의해 만들어지는 점에 그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운동가들은 협동조합을 자본의 결합체가 아니라 사람의 결합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협동조합과 사기업의 차이점을 요약해 보자면, 사기업은 자본의 목적 속에서 존재, 활동, 종속하고 있고,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목적에 존속, 활동, 종속하고 있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성격은 이탈리아 헌법 속에서도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공화국은 상호부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사적 투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협동조합의 사회적 기능을 승인한다. 법은 보다 적절한 보증수단과 적당한 감독에 의해서 그 성격과 목적을 촉진하며 그 성장을 권장한다. 법은 직인 공동조합의 보호·발전을 위한 처치를 강구한다.
3. 협동조합의 기능
협동조합 공화국
여기에 공장과 상점이 있다. 그러나 공장은 누구의 것이고, 상점은 누구의 것인가? 노동자는 공장의 소유에 관여하지 않고, 상점도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고객의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힘의 증대에 의해서 소유자의 권력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소비자도 그들의 것이 아닌 상업기구에 의해 그 소비를 만족시키고 모든 소비의 선택도 그곳에 의존하고 제약되어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에 투신하려고 하는 것은 제약으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공장, 우리의 상점, 우리의 농업경영, 우리의 주택, 우리의 은행 등을 만들어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협동조합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이 제외되고 있는 이러한 소외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건설은 자유를 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개의 측면을 이해해야한다. 첫번째는 상호부조의 원칙으로써, 공장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것이 되려면 그 운영에 있어서 노동자가 관리하고, 노동자가 일하고, 투자하고, 에너지, 시간을 자발적으로 투입했을 때만이 노동자의 것이 된다. 소비에 있어서도, 소비협동조합의 운영에 있어서 자기의 노동, 시간, 저축을 투입했을때에 만이 진정으로 소비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제2의 측면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구별과 관련된다. 즉,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그곳에 가입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해방과 노동조건의 향상에 있다. 협동조합도 목적은 노동조합과 동일하나 그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기존의 공장에서 요구 획득을 하기 위한 조직체이지만, 협동조합은 요구획득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공동으로 노동자가 주인인 공장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에서는 요구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공장의 소유자가 노동자들 자신이므로 스스로 일하고 관리·분배하기 떄문이다.
특정한 요구도 만족시키고, 우리를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 협동조합이 나아가려고 하는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으로부터 2개의 성격이 나타났다. 첫째, 강한 책임감이며, 둘째, 그러한 조직의 힘을 무한대로 확산하려는 유토피아적인 사고이다.
협동조합의 경우 그 정관과 규칙에도 나타나 있듯이 조합원 상호책임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어떠한 자유로운 결사도 회원의 책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협동조합은 조합원 개인이 직접 책임을 지고 있다. 이와 같이 협동조합은 조합원 개개인의 책임의 요소가 특히 강하다. 협동조합인의 이러한 두드러진 책임감은 협동조합을 넘어서 다른 운동으로 향해지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 의해서 협동조합 이론가와 선구자에 의하면, 앞으로 세계는 경제분야에 있어서 협동조합의 형태로 해결될 것이며, 모든 인간이 협동조합인이 될 것이라는 협동조합 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 그룹
바야흐로 협동조합 그룹이 만들어 지고 있다. 총회에서 공동으로 원칙적인 선택을 하고 평등의 원칙에 따라 노동을 분배하고 자기들의 대표를 뽑는다.
협동조합에서는 주식회사나 일반 사기업과 같은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로울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들을 억압하려는 제약들이 다시 그들의 협동조합 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각자 조합원들의 의지와 열망과는 다른 자신의 요구와 규범을 가진 조직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이 점이 또한 개개인의 조합원들에게는 하나의 제약이었던 것이다.
소비조합의 예를 들면 직원의 봉급, 임대료, 설비비, 비품비 등등. 게다가, 그들은 장래에 대해서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모든 비용들이 매입가격에 가산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도 이러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들은 자기들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반발을 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협동조합내부에도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곳은 「전체총회」이다. 전원이 참가하고, 과반수의 투표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총회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조합원 총회에서 「이사회」에 참가할 그들의 대표를 선출한다. 이사회는 협동조합활동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를 지도하고 매일매일의 활동을 지도하고, 「조합원총회」와 「이사회」의 활동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이사회를 대표하는 임무는 「이사장」에게 속한다.
협동조합에도 일종의 사법부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감독위원회」와 「조정위원회」이다. 「감독위원회」는 협동조합 내부의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는가를 감독하는 기능을 맡고, 「조정위원회」는 조합원 간의 분쟁과 행동상의 중대한 오류에 개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협동조합에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인수준의 협동조합에서는 이사장이 직접 모든 전문적인 기능을 발휘했지만, 협동조합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협동조합그룹 정도가 될 때에는 그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반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재정, 판매, 경영, 홍보와 같은 전문적인 영역은 「테크노 스트락쳐」에 맡긴다. 「테크노 스트락쳐」는 기업의 요구만을 고려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 총회를 포합한 지도부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기업의 규모와 내부 민주주의
협동조합에서는 기업의 규모와 내부민주주의와의 상관관계가 부상하고 있다. 즉, 협동조합이 규모가 커 갈수록 내부적으로 민주적인 절차의 시행과 정보의 공유문제가 하부에 있는 조합원에게 까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작고, 적은 수의 조합원으로 유지되고 있을 때에는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성장하고 전원이 모이는 것 조차도 불가능 할 정도로 규모가 확대될 경우에는 지도부와 조합원 간의 의사전달조차 힘들 정도가 된다. 게다가, 협동조합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을때에는 더더욱 협동조합내부의 의사가 조합원 간에 전달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조합원과 지도부 사이가 정말로 분리될 위험이 있다. 조합원 총회는 단지 이미 결정되어진 것을 승인하는 절차만을 위하여 소집되는 결과가 되고 이렇게 될 경우 의논과 조정은 조합원의 손에서 떠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협동조합을 과연 참신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의 말처럼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듯이 협동조합은 작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이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 갈수록 내부 민주주의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 의견도 있다. 즉,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조합원간의 유대는 긴밀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냉엄한 게임논리에서 와해가 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조직 규모가 커 갈수록 여유를 가지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면, 더욱 강력한 조직이 될 수 있고, 여러가지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직민주주의 문제에 관한 해결책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 「조합원 지부」이다. 그러면, 조합원 지부란 무엇인가? 조합원이 조합원 총회에 참가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경우, 일반 조합원을 크고 작은 지부로 분할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합원들은 여러가지 토론과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4. 개개의 기업에서 조직적인 운동으로
협동조합은 왜 규모를 확대하려고 할까? 자기 만족을 얻을 정도가 되었으면 그 수준에서 그쳐야 하는데 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할 까? 이미 설립되어 있는 협동조합 상점만으로도 일상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데, 왜 새로운 상점을 열려고 하는 것일까? 목적을 달성했으면 여기에서 멈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적 기업은 이익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계속 성장하지만, 협동조합은 이익에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더욱더 성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확대에 관한 결정을 할 때 활발한 토론이 벌어진다. 확장에 조심스러운 조합원들, 다른 쪽은 확장에 적극적인 조합원들로 나뉘어진다.
조심스러워 하는 쪽은 “내일의 암탉보다 오늘의 달걀이 더 좋다.” 라는 속담과 같이 현재에 만족하려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의 논거는 “우리가 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우리를 억압하려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려는 것이었는데, 그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우리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계속 확장하려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기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는 논리가 확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확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충족시키기 위해 이 결합체와 이 기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에 의해서 협동조합을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일 여러 사람들에게 골고루 미치게 하고 그 유효성을 더욱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기존의 활동의 범위에서 활동을 멈추게 되면 우리의 협동조합 활동은 경직되고, 고정되며 우리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막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성장을 멈추면 기존의 자본주의적 기업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활동을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최선의 방어는 전진할 뿐이다. 또한 그렇게 해야만이 다른 노동자의 운동과도 동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협동조합활동의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이치에 맞는 의견을 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2개의 입장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 한쪽은 개개의 협동조합을 폐쇄된 자족적인 공동체로써, 다른 쪽은 보다 광범위한 운동과 연맹하고 다른 기업과 공공연히 경쟁하며 사회적 현실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현실은 대단히 많은 고립된 소기업이 아니라, 광범위한 협동조합운동의 존재가 우세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기초에는 무엇이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이렇게 광범위한 협동조합운동의 현실은 무엇에 기초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연대주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앞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상호원조 가능성과 개개기업의 주도권의 강화의 존재는 협동조합운동이 하나로 통일되어 연맹할 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연합회
초기의 작은 협동조합형태로는 가깝고 작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비재를 공급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공장이 먼 경우에는 그 부대비용이 제품가격에 더해지기 때문에 본연의 협동조합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즉, 그 본연의 임무란, 소비재를 보다 싼 가격으로 품질 좋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협동조합이 서로 연합회를 만들어 힘을 향상시키기로 한 것이다. 개개의 협동조합들이 독자적으로 공급자와 계약하는 대신에, 계약 창구를 하나로 통일해서 계약하는 것이다. 즉,「협동조합의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협동조합을 위한 협동조합을 조직한 것이다. 이것이 「협동조합 연합회」이다.
이 협동조합 연합회로 개개의 협동조합이 달성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합회와 함께 협동조합기업의 힘도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인은 협동조합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갈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개개의 협동조합에 있어서는 간직될 수 있는 협동조합 원래의 목적이 연합회 같은 거대한 협동조합기업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즉 기업이라는 경제적 동기가 협동조합의 사회적, 사상적 동기를 압도하고 처음의 순수했던 협동조합 본래의 목적을 없애는 것은 아닐까?
협동조합의 조직은 운동 내부의 목적과 외적인 목적, 이중의 임무를 떠맡고 있는 것이다. 즉, 기업의 사회적, 사상적 동기에서 일탈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과, 한편으로는 대중운동으로써 사회에 협동조합의 존재를 촉진하는 것이다.
1886년 이래, 이러한 이중의 임무는 3개의 조직에 의해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레기에 의해, 후에는 이탈리아 협동조합총동맹(1991년 이래)에 의해서 세번째는 이탈리아 협동조합 총연합(1992년 이래)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위의 3개의 협동조합 센타에 의해 협동조합은 오늘날 이탈리아의 경제, 사회에 있어서 주인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협동조합․시장․경쟁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협동조합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민간 사기업과 시장속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그 경쟁이라는 것은 가격경쟁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며 다음으로는 품질 경쟁이다. 다른 기업과 경쟁하려면 우선 가격을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고객은 항상 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입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외부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내부 가격으로 그것을 보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조합원의 임금, 시설비, 예산등을 삭감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협동조합이 다른 기업과 같게 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그와 반대로 협동조합은 적극적으로 시장을 투기적인 요소로부터 해방시키고, 시장을 만인의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해 시장속으로 뛰어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외부의 시장은 협동조합이 그 많은 시장 법칙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볼 것이다.
5. 시장의 법칙
제3의 경제 구역
협동조합이 시장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밀라노 지구와 사레루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표 : 레가(LEGA)가맹 협동조합 부문별 데이타
노동조합수
조합원
사업고(10억리라)
고용노동자 수
Ancpl
Ancs
Ancab
Anca
Ancc
Andcc
Ancd
Ancp
Anct
Fim
생산.노동
서비스
주택
농업
소비
문화
소매상
어업
관광
공제
1,360
1,200
4,600
2,950
650
528
257
180
163
1,500
60,000
28,000
400,000
450,000
900,000
130,000
20,000
20,000
6,450
800,000
2,197
900
2,900
2,100
1,280
100
678
50
100
-
75,800
28,000
-
45,000
10,500
2,000
2,000
1,000
2,000
-
계
13,388
2814,450
10,305
166,300
■ 레가(LEGA)=이탈리아 전국협동조합․공제조합연맹
자유주의 경제학파에 의한다면,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적으로 다르다. 대단히 많은 경우 극히 많은 자원(공급)이 원칙밖에서 존재하고, 극히 많은 요구(수요)가 만족되지 않은 채로 있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수요공급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투기에 그 원인이 있는데, 그러한 투기적인 요소는 자본주의 시장의 고유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자본가의 이익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협동조합의 존재는 자본가의 투기적인 요소에 대항해서 싸우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들은 자기자신들의 협동기업이라는 통일된 힘을 가지고 시장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협동조합인들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거의 없고, 그렇다고 기업가출신도 아니며, 게다가 기업의 결산서조차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열정 뿐이다. 그들은 시장의 규칙까지 변화시키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약간 미친게 아닐까?
제3의 섹타에 가맹한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35,000개, 조합원수 약 600만명, 연간 총매출액 20조리라 이상이며, 에밀리아․로마니아․토렌테이노․아디지와 같이 주 경제 전체가 긴밀한 협동조합의 기업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위의 의문에 답을 줄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밑바닥에는 어떠한 기본적인 요소가 깔려 있을까? 협동조합을 다른 기업과 구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조합원간의 상호부조, 민주적인 운영, 임노동자를 쓰지 않고 스스로 노동하는 점, 자기들의 주도권, 높은 책임감같은 요소이다.
그 위에 협동조합끼리의 연대이다. 그러나 연대의식은 협동조합만의 고유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기업도 그들끼리의 연대를 하기 때문이다. 공업 총연맹, 상업총연맹, 농업총연맹과 같이… 그러나 협동조합에 있어서의 연대는 다른 사기업의 연대와는 차이점이 있다. 사기업의 연대는 그후에 생기는 것이지만, 협동조합의 연대는 그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기업과 동시에 생겼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협동조합에 있어서의 연대는 그 근본요소이다.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는 100년 이상이 됐지만 그 기간 동안 역사는 엄청난 진전을 했다. 국가의 역사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의 역사도 변했다.
기업의 규모는 확대되었고, 시장에서의 각 기업의 힘은 향상되었다. 소규모의 기업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누구도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과점간의 경쟁 즉, 소수의 거대기업과 금융그룹간의 경쟁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국가산업화로의 이동 현상이다. 즉, 국가참가기업의 광범위한 섹타의 형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근 10년간 이탈리아만에 국한 된 현상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
자주 강조되고 있는 점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민간기업도 아니고, 공공기업도 아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제3섹타의 기업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협동지업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혼합경제 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광범위하고, 강력하고, 자립적인 협동조합운동은 오늘날 이탈리아 산업계이서 제3섹타로써의 완전하고도 지속적인 승인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위치
협동조합의 실제 위치에 관해 크게 2개의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다른 경제그룹과 동등하게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로는 협동조합의 의의에 대해서 주목할 가치도 없다. 또하나는, 협동조합의 경제의 한 부분에서 생산성과 합리화, 효율을 개선하는 수단으로써 보는 입장이다. 즉 주택, 농업, 상업같은 분야에서의 기업적인 이득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으로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운동으로써의 의미를 망각하게 되는 것이고, 후진적, 부차적인 부문에 있어서 존재할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상 2개의 내용이 보편화된 의견이다. 즉, 주식회사로써의 협동조합과 후진적이고 효율적인 요소로써의 협동조합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첫번째의 협동조합의 견해는 협동조합기업의 독자성을 부인하는 입장이고, 두번째의 의견은 협동조합은 어느 후진적인 분야에서는 보다 좋은 개선의 결과를 줄 수 있지만 현대적이고 첨단적인 분야에서는 협동조합으로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협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의견인 것이다. 밀라노의 협동조합, 사레루노의 농산물가공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이 경제적인 존재일 뿐만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그리고, 대규모 기업의 많은 사례들은 협동조합이 현대적이고, 첨단적인 분야헤서 더욱 효율적인 기업으로써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번째는 협동조합을 단순히 사회복지적으로 생각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는 협동조합이 그 독자적으로 제 3섹타로써의 역할은 가능성은 있지만, 오늘날 완전히 달성된 것은 아니다.
경제, 사회부문에서의 협동조합의 역할이 정당 및 여러 사회세력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운동은 현재의 상황에 맞는 자기의 역할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적절한 수단에 대한 과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특히 개개 기업의 자주성과 협동조합운동의 종합적인 조직화 사이에 있어야만 하는 관계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떠한 운동의 주도권에 있어서보다도, 협동조합의 힘은 조직화에 있다. 그러나 개개의 협동조합이 없다면 운동조직의 힘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협동조합원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개개의 협동조합에 있어서도 조직운동 속에서 단위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얼마나 살려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점점 조직운동으로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연합회에서도 기업으로써의 면과 대중운동으로써의 측면이 있는 것이다.
깊은 사회적 뿌리
협동조합은 어디서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지더라도 같은 형태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니아, 토스카나, 토렌티노․아루토․아티지, 부에네토, 론파르티아, 시실리 같은 주에서는 경제의 하나 혹은 여러개의 부문속에서 협동조합이 크게 보급되어 있다.
그러나, 각주마다 협동조합이 발전한 분야는 다르다. 에밀리아 로마니아주에서는 농업, 건설, 상업, 서비스, 어업, 중소기업 분야에서 발달했고, 시실리아주에서는 농업, 농산물가공, 주택협동조합이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그리고, 론파르티아주에서는 주택, 소비, 농업분야에서 발전했다. 부에네토주에서는 농업, 농민금고가 우월하다. 토렌티노주에서는 작은 소비협동조합의 발달이 현저하다. 토스카나와 에밀리아주에서는 다른주에서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은 공업부문의 협동조합이 강하다.
각주의 내부에서도 협동조합의 발달은 지역과 지역간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다. 에밀리아주의 볼로냐, 레츠츄에서는 파루마, 후레라나, 피아첸샤와 비교할때 보다 광범위하게 협동조합화 지방이다.
요약하자면, 협동조합과 그 발전 보급 상황과 우리 국내 내부의 사회적, 정치적 여러관계의 전개 사이에도 하나의 엄밀한 관계가 있다. 즉, 협동조합의 배후에 어떠한 사회조직이 있는가에 의해서 그 협동조합의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는 조직체가 배후에 있는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 색체를 띄는 것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띈 조직체가 배후에 있는 협동조합은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그 중에서 활동하는 지역과 사회현실속에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식물은 줄기를 견고하게 하고 잘 번창하고 꽃을 활짝 피는 것이다. 그 뿌리는 협동조합의 효과적인 기업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자본주의적 기업은 자본이라는 나침반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측량하고, 성장을 하거나 도태되지만, 협동조합은 자본이 아니라 조합원과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는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하게 되고 있다. 즉, 협동조합기업은 자본이라는 나침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조합원과 시민의 요구에 좌우되는 것이다.
예컨데, 어느 깊은 산골에 2종류의 기업이 진출한다면, 자본주의적 수송기업은 자본이라는 나침반에 의해 진출을 꺼리지만(왜냐하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트럭수송협동조합기업은 그 살골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면 수지에 관계없이 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협동조합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파산의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진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송협동조합기업은 그 지역에 있는 농업협동조합과 연대망을 형성해서 그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 지역의 농민은 누구나 농협에 가입했고, 농협은 트럭수송협동조합에게 조합원의 수송물자를 독점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망이 협동조합기업을 가동시킨 것이다. 조만간 농촌의 농민들이 수송협동조합의 주도권에 의해 그들 생산물의 수동비 전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6. 협동조합 도시에서의 기원과 발전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사회계층이 협동조합에 가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의 주인공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협동조합은 일반적으로 농민과 노동자 또는 종속 노동자에 의해 시작된다” 라는 공식은 근년, 특히 70년대의 경영속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대도시에서 만들어지며 계몽주의적인 자유사상가에 의해서 촉진되는 도시빈민계층의 자위수단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 최초의 협동조합은 1854년 토리노의 직인에 의해서 시작됐다. 그들은 산업자본주의의 확립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났고, 드디어는 프롤레타리아 임금노동자로까지 전락됐다. 그러나, 그후 이탈리아의 통일과 반봉건적인 구세력의 몰락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완전히 확립되고 자본주의에 대항한 노동운동이 일어나자, 협동조합은 임금노동자에 의해, 후에는 노동자에 의해 촉진됐다. 그래서 그것은 대중적인 현상이 되고 노동자계층의 자위적인 수단이 됐던 것이다.
최초의 협동조합은 소비협동조합이었다. 즉, 그 목적은 임금의 가치를 최대한 상승시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같은 목적을 가진 노동자의 자위수단이다. 즉, 노동자의 수입에 최대한의 가치를 부여하고, 노동자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협동조합은 노동조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에 의해 얻어진 임금을, 소비협동조합을 통해 소비재를 시중보다 값싸게 구입함으로써 임금의 가치는 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조합과 소비협동조합의 연계는 고용이 안정되어 있는 지역에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고용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은 고용을 위해 그들 스스로 협동조합기업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산․노동협동조합」인 것이다.
「생산․노동협동조합」의 역사는 직업을 구하려는 노동자의 투쟁의 역사이다. 이 협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지역과 뒤떨어진 지역의 경계선이 되는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임금인상의 요구보다는 고용의 요구가 강했던 것이다.
에밀리아․로마니아주와 토스카나주에서 노동․협동조합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이 2개의 주에서는 강력한 「생산․노동협동조합」의 체제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보다 발전이 늦어진 지역인 로마니아주의 몇개 지역에서는 고용보장의 「생산․노동협동조합」은 농업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빌린 땅으로, 노동자들은 순수한 건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들은 정부의 운하건설과 공공건설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강력한 건설협동조합망을 형성하고 있다.
농민의 주도권
농업협동조합의 촉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세기말에 농촌에 확대된 가톨릭 인민운동이었다. 사상적으로는 계급투쟁과도 다르고, 자본주의가 확립됨으로써 사라지게 될 요소인 농민의 통일, 종교적, 윤리적 전통을 지키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것은 농민의 소유의 방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토지 이외의 생산수단의 공동화와는 관계없었다. 즉, 토지의 공동화만이 그 목적이었다. 시골과 작은 촌에서 농민금고, 직인금고로 대표되는 신용협동조합의 보급은 카톨릭의 주도권에 의한 것이다. 그 원칙은 마찬가지로 직인 및 농민을 위한 소유의 방어였다. 토렌티토, 아루토, 아티제와 부에네토, 론파르티아, 시실리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마루케에서 에밀리아, 라치오에서 토스카나에 결쳐 있는 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은 농촌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최초의 설립자가 카톨릭은 아니다. 최초의 협동조합은행은 자유주의자에 의해 도시중산계급사이에서 만들어진 인민은행이었다. 그러나, 이 기관은 임금노동자와 노동세력을 조합원에서 제외시키므로써, 협소한 경영의 틀속에 소수의 자본가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인민은행」은 다른 여러 신용기관과 구별되는 협동조합적인 성격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끊임없는 개혁만이 당초의 순수한 성격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농민금고」와 병행한 새로운 종류의 「신용협동조합」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농민의 요구와 지방경제와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다.
7. 협동조합적 자주관리
현실을 중요시할 것
우리는 지금까지 긴 여행을 해왔다. 그 긴 여행중에 길을 잃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긴 여행중에 중요한 하나는 협동조합의 필수적인 자주관리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그러한 것도 아니고, 숙련된 직인의 특수한 문제도 아닌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협동조합을 스스로 자기완결하는 자급자족적인 세계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주관리라는 하나의 사상이 어떻게 협동조합운동의 현실로 이행되었던가? 어떻게 그것은 실행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자주관리가 이미 경험을 끝냈던 사상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자주관리 사상이 어떻게 협동조합속에서 현실화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중에는 명목만으로 자주관리를 하는 협동조합이 있다는 애기를 종종듣는다. 많은 경우 이러한 불평은 어느정도 근거가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 복잡한 조직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협동조합 내부도 자주 타성화 되고 조합원도 소극적이 되어 기업내부의 활동전체가 흔히 일반 기업과 비슷하게 되는 경향이다. 자주관리라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자유를 억압하지도 않으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러기관에 의해 조합원의 조정과 합의를 거친 지도권의 행사인 것이다.
협동조합과 국가
협동조합운동은 조합원 개개인의 의지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운동을 뒷받침해주는 사회, 경제의 여러 세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협동조합이 몸담고 있는 역사적 조건은 경제적인 여러 이해관계와, 여러 세력, 사회의 여러조직, 문화적인 조건 등 극히 복잡한 여러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국가, 정당, 지방행정당국, 정부 활동가가 협동조합활동을 하기에 보다 쉬운 조건을 만드는 시대, 또는 그런 역사적 시대에 의해서 협동조합의 성장은 좌우된다는 것을 협동조합의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협동조합이 가장 규모가 컸고, 왕성하게 번영한 때는 정부수반의 자유주의자 쥬반니․쥬리추티(1842-1928)가 사회주의자인 야가토리츠쿠와 제휴하고, 협동조합의 이니셔티브를 지지하는 법률을 촉진한 제 1차 세계 대전후의 일이다.
유리한 조건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현대경제와 복잡한 사회속에서 협동조합 기업이 스스로의 능력과 조합원의 의지와 희생만으로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과거와 같이 단순한 사회조직 속에서조차, 협동조합은 그 역사적 조건에서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는 공권력과 정당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헌법 제45조가 공권력에게 협동조합의 촉진을 명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와같지 않다. 이탈리아 공화국 정부가 협동조합운동에 고유한 민주적 세력을 큰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경제와 사회의 민주적 변혁과 부합하지 않는 비민주적인 경제, 사회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기득권층에게 불쾌감을 줄까 두려워 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에게 성장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색채를 띤 정당조차도 협동조합의 발전을 지지하는 태도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곤란한 환경속에서도 성장해 온 협동조합의 발전과 지금까지 실현된 발전 모델의 많은 측면과 지금의 위기상황은 오늘날 협동조합운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정당과 노동조합, 정당에 대해서 반성과 태도 변화의 기회를 주고 있다.
정치적인 여러세력과 국가에 속하는 경제적, 사회적 지도권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모든 세력속에 협동조합을 소외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8. 내일의 협동조합
기적이라는 환상의 종말
50, 6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은 의미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심지어 좌익에서 조차도 생산방법과 사회의 진보가 이미 계급대립을 없애 버렸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협동조합은 과거의 시대, 전쟁과 기아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고용문제는 깨끗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으며, 남부문제는 이민에 의해 해결되고 그 고용은 국가 참가의 석유나 철강 등과 같은 거대한 설비의 유치로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은 전통적으로 요구획득투쟁의 형태였고, 협동조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즉 그들은 그 당시 번영은 가까운데 있는 것이고, 공정한 분배는 노동조합의 요구획득투쟁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하나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근 10년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위기에 의해 일소됐다. 위기는 전 세계적인 것이었으며, 1968년의 학생혁명은 이러한 메카니즘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곧이어 거대산업과 국가참가기업의 위기가 도래했다. 게다가 자원은 무한히 자연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없애주는 아찔한 연료가격의 상승과 무정부적인 생산발전은 자연환경의 파괴라는 위기를 초래했다. 이 위기는 점점 각 개인의 실생활에 반영되고 있었다. 이탈리아
화폐 리라의 가치는 점점 하락했다.
협동조합으로의 도박
이러한 위기 상황속에서 협동조합의 발견이라는 주제가 끼어 들었다. 위기의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협동조합의경험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협동조합은 단순해 위기에 대한 피난소일까? 근 10여년간 협동조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지속된 것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협동조합에 몸을 투신한 사람들은 국가의 위기에서 탈출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기들 자신이 하나의 해결책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 협동조합에 투신하는 것은 경제기적과 거대산업이 지배적 흐름이었던 시대에 하나의 용기있는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도박은 그 당시의 사회적 위기와 관계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작은 공동기업을 만들어, 자주관리하고 단결하려고 했었다. 노동조합도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구출할 수 있고 경제에 있어서 더욱 힘을 축적하기 위한 주도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협동조합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 사이에는 보다 일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이점으로부터 협동조합을 통해서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기들의 노동, 인간적 사회적 욕구, 일상생활에 관한결정에 있어서 많은 힘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나타냈다.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의해서 경제, 사회생활의 메카니즘 속까지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고, 협동조합의 재발견은 빈곤으로 부터의 탈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위기로부터의 하나의 해결책
최초의 협동조합(소비 및 노동협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노동자, 인민 등 여러계층의 생활 조건 속에 파고든 파괴적 작용에 대한 노동자, 인민의 회답이었다. 이것은 또한 적극적이고 용기있는 회답이었다. 협동조합기업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생산과 경제시장의 문제와 맞붙은 것이다. 그후, 1970년대의 협동조합에 대한 선택도 이탈리아에 광범위한 경제위기의 시대에 사회적 여러 조건 속에 가져온 파괴적 작용에 대한 청년, 부인, 기술자, 직인, 자영업자들의 용기있는 회답이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시대적, 생산적 조건이 달랐으며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경제위기의 시기에 선택된 협동조합은 위기가 해결됨에 따라 저절로 소멸될 일시적인 국면인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장래의 경제, 사회속에서 협동조합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과도기인가?
모든 사회현상을 예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도 하나의 모험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약간의 고찰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여러 복잡한 요인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선택은 위기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선택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체계, 새로운 요구의 건설에 있어서 하나의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건설해온 모델, 측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것들은 중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경험에 대한 연구는 현재의 위기와 새로운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다가오는 미래의 경제, 사회, 민주 체제에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첫댓글 엑스님께 죄송합니다. 여러 조각의 내용을 하나로 이어 붙이다가 실수로 올려주신 내용을 모두 지워버렸네요...공들여서 올려주셨는데..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첨부파일도 올려놓았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다운받아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