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와 배신(2.위기일발)
<이 글은 5.16 혁명을 또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이야기로서 기존 5.16 비사에서 볼 수 없는 일화들도 많이 실려 있습니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으신다면 그 재미를 더하실 것입니다.>
(1) 이 땅에서 사라지려는 민주주의의 원형을 되찾고,
기아선상에서 울부짖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의 횃불이 되며,
보다 나은 국가적 위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혁명 동지들의 혁명계획은 전방과 후방에서 주도 면밀하게 추진되어 갔다.
이제는 운명의 날만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로지 혁명은 실천만이 남아 있었다.
아, 그러나 혁명완수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단계에서 배반자가 생기리라고 누가 생각하였겠는가.
박정희 소장의 영도하에 젊은 영관급 장교들을 주축으로 한 5월16일 새벽의 혁명 계획은 동지들 중, 몇 사람의 배반으로 인하여 실로 커다란 차질을 가져온다.
혁명군의 주요 행동대로서 준비된 보병 제30사단 동지들의 배신이 그것이다.
폭풍전야, 그날 밤... 제30사단은 밤 10시에 비상을 걸고 새벽 2시에 출동하도록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혁명계획에 회의를 가지고 있던 전투단장 박상훈 대령과 이갑영 대령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제30사단은 출동에 큰 장애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혁명계획 전반에 걸쳐 결정 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박 대령과 이 대령은 이윽고 사단장실의 문을 노크한다.
그리고는 혁명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단장에게 모든 사실을 밀고하는 것이다.
박상훈 대령이 입을 열었다. “
각하, 오늘 저녁의 훈련은 가상훈련이 아니라, 실은 현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사혁명의 일환으로 출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우리사단이 B형 전투단이라고 해서 훈련을 계속해 온 것은 데모군의 폭동진압훈련이 아니라,
이번 혁명에 대비한 훈련이었습니다.
” 사단장 이상국 준장은 크게 놀라고 당황해 하였다.
다시 이갑영 대령이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다음 말을 이어간다.
“각하, 혁명군이 오늘 밤에 사단장님과 제 6관구 사령관 집을 포위하여 두 분과 그 가족들을 사살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그러니 각하께서는 혁명군을 꼭 진압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이상국 사단장은 치미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2)사단장은 황급히 본부사령에게 지시하여 사단장의 가족을 그의 처갓집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서울지구 방첩대로 직행했다.
사단장은 곧 방첩대장에게 혁명계획의 전모를 소상히 이야기했다. 방첩대장은 즉시 이 사실을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거처를 수소문 하였다. 쉽게 찾아낼 수 없었다.
장도영 장군은 그 때 요정 ‘은성’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방첩대장은 은성에 도착하자마자 곧 장도영 장군에게 쿠데다 계획을 구두로 직접 보고했다.
장도영 장군은 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방첩대 서울지부로 달려가 혁명진압에 대한 명령을 발하기 시작했다.
15일 밤, 10시 40분이었다. 혁명과 반혁명이 바야흐로 심각한 대립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장도영 장군은 혁명군의 일부인 제1공수단의 박치옥 단장에게 전화로 명령을 하달하여,
일체의 훈련을 중단하고 부대를 해산토록 지시하는 한편, 박 대령의 직속상관인 특전감, 장호진 준장을 공수단에 보내 부대를 장악토록 명령을 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육군본부에서 발하는 비상훈련인 줄만 알고 출동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제33사단장에게 지시하여 자신의 육성이외에는 어떠한 명령에도 부대를 이동치 말라고 엄명을 놓았다.
또한 헌병감으로 하여금 헌병을 출동시켜 서울중앙방송국을 경비토록 지시하고, 이상국 사단장에게는 믿을 수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서울시청 일대를 장악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그는 헌병 제7중대장 김석율 대위를 직접 불러 한강 인도교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혁명군을 차단토록 지시했다.
이즈음 신당동, 박정희 소장 숙소에 모여있던 혁명동지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전화가 날아 들어왔다.
30사단의 박상훈 대령이 배반하여 혁명계획이 탄로났고, 모든 혁명군 부대가 장도영 장군의 모든 부대 훈련 정지 명령에 의하여 출동이 곤란해 졌다는 6관구 사령부소속의 참모장인 혁명동지 김재춘 대령의 상황보고였다.
허를 찔린듯한 느낌, 그러나 결코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모두의 얼굴에 비장감이 서린다.
박정희 소장과 혁명동지들은 대기하던 지프차에 분승하여 어둠속으로 차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소장이 혁명을 선두지휘하기 위하여 미리 혁명지휘소로 예정했던 6관구 사령부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3)6관구 사령부는 혁명의 낌새를 아예 알리없는 서종철 사령관이 일찌감치 퇴근하면서 자리를 비운 가운데, 혁명과 반혁명이 혼돈된 극한상황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장도영 참모총장으로부터 혁명을 저지하라는 잇따른 전화가 걸려 오면서, 이에 따라 부랴부랴 서종철 6관구 사령관의 비상소집령이 하달된다.
6관구 내의 혁명동지 박원빈 중령은 그들의 혁명계획에 시치미를 뗀 체 본부사령 및 제10경비중대 부관에게 지시하여
2개 소대병력을 완전무장시켜 6관구의 3개의 출입문을 경비시키도록 함으로서 사령부는 혁명군과 혁명저지군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철통같은 경비망이 깔렸다.
사령부에게는 3개의 출입문을 통해 장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혁명장교들은 혁명을 추진코자 비상소집령에 상관없이 계획된 시간에 의하여 붉게 상기된 얼굴로 찾아 들어왔고, 같은 문으로 6관구 사령관의 비상소집령에 의하여 혁명을 진압시키고자 하얗게 질린 얼굴의 반혁명 장교들이 또한 찾아 들어왔다.
누가 혁명군 장교이며, 누가 반혁명군 장교란 말이냐. 6관구 사령부는 누가 적인지, 누가 우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속에 격앙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누가 먼저 뒤에서 권총의 불을 뿜어댈 지 모르는 살기등등한 6관구 사령부였다.
때마침 장도영 장군의 지시에 의하여 6관구 내의 혁명군 장교들을 색출, 전원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이 6관구 사령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범죄수사대원 70여명을 6관구로 들여보내면서 혁명군 장교들을 체포·문초하려는 기세를 보이자,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어버린 혁명군 장교들의 얼굴은 사색이 돌았다. 계획된 시간이 이미 지났건만, 그들의 지도자 박정희 소장은 아직도 6관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혁명군 장교들은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저마다 권총의 안전핀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