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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상에서 바라본 일출과 구름에 휩싸인 울릉도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독도페리호에서는 선상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
ⓒ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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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같은 또 다른 화산섬, 울릉도…. 제주도는 맘만 먹으면 비행기라도 타고 갈 수 있지만, 울릉도는 오로지 뱃길로만 갈 수 있는 섬이기에 인내심을 가져야만 그 실체를 보여주는 새침데기같은 섬입니다. 묵호와 포항에서 쾌속선으로만 3시간을 달려야 만나는 섬이지만, 차라도 싣고 간다면 두 배 가까운 시간인 6시간 정도를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합니다.
더구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묵호나 포항까지 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울릉도 여행 자체는 여행에 대한 솟구치는 의지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행(6월 5일∼8일)은 포항에서 차를 싣고 가야 했기에 4시간 남짓을 달려 저 먼 포항까지 달려야 했고, 또다시 차를 배에 싣고 6시간 동안 바다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하루의 반을 울릉도 가는데 소비한 셈입니다.
망망대해 속 눈앞에 보이는 울릉도
'해 뜬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의자에 기댄 불편한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밤새 닫혀 있던 갑판이 열리고, 선상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쾌청한 날씨를 예감하는 둥근 태양이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둥실 거리고 있습니다. 밤새 어둠에 휩싸였을 울릉도도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떠돌던 구름은 울릉도에 발목을 잡힌 채 울릉도에 휘감겨 있습니다.
중간산 지대는 긴창을 두른 듯 흰 구름이 띠를 길게 드리우고, 성인봉과 주변의 산봉우리는 투구를 쓴 듯 짙은 회색빛 구름을 휘감고 있습니다.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기키 위해 바닷길을 지나 이곳에 이르렀을 때 우산국을 지키던 우해왕의 혈기왕성한 모습이랄까?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위세였기에 커다란 목각사자를 이용해야 했던 이사부도 아마 이런 울릉도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봤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대해이건만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울릉도는 울릉도이기 이전에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육지가 보인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울릉도, 울릉도를 향해 애간장만 길게 드리워집니다.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 후로 30분이 넘게 걸렸고, 드디어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습니다.
망향봉과 행남봉의 우람한 산세 사이로 깊게 드리워진 골짜기에 도동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도 페리호에서 600여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오자 밤새 외롭고 고요했던 울릉도는 그제서야 눈을 뜹니다. 6시도 채 안되는 이른 아침인데도 도동항 손님 맞을 채비로 부산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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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해안절벽 사이에 놓여진 울릉도 해안도로 울릉도 해안도로는 맑은 물빛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절벽사이에 놓여져 섬목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
ⓒ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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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에서 시작된 해안일주코스
울릉도 첫날의 일정은 성인봉을 올라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등산코스와 해안일주코스 중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날씨가 워낙 쾌청해서 성인봉 등반보다는 해안일주도로를 돌며 맑고 청량한 바다를 담는 게 낫다는 판단에 해안일주코스를 택하고, 성인봉을 거쳐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일행을 나중에 만나길 기약한 뒤 도동항을 출발했습니다.
도동에서 시작된 해안일주는 울릉읍의 사동을 거쳐 서면의 남양·남서·태하를 지나 북면의 현포·천부에 이르는 40여km정도입니다. 구암에서 태하에 이르는 험준한 고갯길을 제외하면 해안을 따라 깨끗한 해안과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기암절벽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다만 울릉도의 동쪽 내수전과 섬목에 이르는 길은 워낙 험주한 탓에 도로가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일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북적거리는 도동항을 빠져나오면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내 한산해집니다. 급한 경사를 타고 올라 터널을 지난 뒤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금세 사동에 이릅니다. 멀리 가두봉 등대가 아스라이 보입니다.
사동 뒤편의 망향봉과 바다를 향해 혹처럼 불쑥 튀어나온 가두봉사이로는 큰 활 형태로 완만한 해안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슬리는 시야 없이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굵은 몽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파도가 연신 들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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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백리향(왼쪽)과 섬초롱꽃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꽃입니다. |
ⓒ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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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햇살이 드러낸 울릉도의 진가
해안절벽에는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모진 바람을 이겨낸 많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백리향과 섬초롱꽃도 간간이 눈에 띕니다. 섬백리향 군락은 나리분지 일대에 울릉국화 군락과 함께 천연기념물 5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섬백리향은 울릉백리향이라 불리기도 하는 만큼 울릉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꿀풀과의 식물입니다. 그늘을 싫어하는 양지식물이어서 숲이 없는 곳에 군락을 이룹니다. 꽃향기가 무척 향기롭습니다. 꽃향기가 백 리를 갈 만큼 강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답습니다. 낮에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고 밤에 향기가 짙다고 합니다.
섬초롱꽃 역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이름도 예쁠 뿐 아니라 종모양으로 피어난 꽃에서 마치 차임벨같은 은은한 종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가두봉 등대를 급하게 휘돌면 사동을 벗어나 남양이 시작되고, 통구미 몽돌해변을 지나 통구미마을에 이릅니다. 통구미는 거북이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햇살이 울릉도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울릉도의 진가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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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구미의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가 어울어진 풍경 |
ⓒ 문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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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거의 걷힌 후 푸른 하늘과 반갑게 내리쬐는 햇볕으로 해변은 특유의 빛깔을 발합니다. 거북바위는 사람의 눈에 따라 6-9마리로 보인다고 하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거북바위와 산자락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비경에 넋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거북바위와 산자락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물론이고,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에 있는 산자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고, 녹색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색감에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