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경주역 - ‘경주’를 걷다
1. ‘경주’는 역사와 문화가 하나로 집결되어 있는 환상의 공간이다. 여기에는 천년의 시간이 농축되어 있으며, 성공의 환희와 쇠락의 좌절이 혼합되어 흩뿌려져 있다. 또한 인간이 꿈꾸웠던 최상의 삶을 향한 도전의 실체가 남겨져 있는 곳이다. ‘경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유적지를 방문하는 거론 부족하다. 천천히 각각의 유적지가 존재하는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각각의 연계와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선과 점의 공간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으며 위대했던 신라의 문명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2. 이번 역답사는 경주의 중심지인 ‘황리단길’ 숙소에서 시작했다. <호텔 팰리스 경주>는 65,000의 가격(인터넷 예매)으로 비싸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있는 호텔이다. 경주 법원과 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이 곳에서 경주 시내답사를 계획했다. 첫날의 일정은 대릉원과 월성을 중심으로 한 경주의 핵심 지역 답사이다. 시내 중심에 서있는 안내표를 따라 이동했다. 먼저 광활한 평원에 잔존하고 있는 황룡사터를 살펴보고 분황사로 향했다. 황룡사는 여전히 발굴 중이었다. 40년 전 찾았던 때와 달라진 것은 기념관이 건설된 것뿐이었다. 들판에 고독하게 서있는 ‘당간지주’는 과거 무전여행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분황사는 여전히 신비스런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특이하게 디자인된 분황사의 검은 색과 벽돌형태의 탑신은 고대의 세계로 안내하는 타임캡슐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탑을 지키고 있는 돌사자의 강인한 얼굴은 시간의 풍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존재의 힘을 보여 주었다. 개인적으로 뽑을 수 있는 경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얼굴이다.
3. 이어서 월지(안압지)를 보고 월성 발굴지로 향했다. 경주는 언제나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 중인 곳이다. 천 년의 시간 속에 만들어진 수많은 흔적이 아직도 깊은 땅 속에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월성과 월성 주변의 해자를 따라 ‘계림’으로 이동했다. 광활한 역사의 장소는 지금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만끽하는 시간의 여유는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치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경주 곳곳에 존재하는 유적들은 그 자체로 특별한 위엄과 광채를 보내고 있다. ‘대릉원’의 거대한 무덤 사이를 걷다, ‘천마총’을 전시장으로 꾸민 곳을 들어갔다. 내부에는 마립간 시대의 통치자의 화려한 부장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리(금관)에서 발끝(신발)까지 순금으로 장식된 유물은 황금시대라 불렸던 5-6세기 지배자들의 신비스럽고 강력한 왕권의 힘을 상징하고 있었다. 신라의 화려했던 금관은 이 시대에만 집중되었고 그 이후에는 사라진다. 금관의 탄생과 소멸은 신라 역사의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4. 대릉원 옆에 있는 ‘첨성대’는 여전히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단골 촬영지였다.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학창 시설 첨성대 앞에서 찍은 사진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곳은 젊음과 청춘의 특별한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오늘 걸은 장소는 신라의 중심적인 장소가 모인 곳이다. 왕궁과 무덤 그리고 정원과 숲은 같은 공간에 배치되어 하나의 국가를 완성하는 개별적인 장소였다. 그것들은 서로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을 수 있는 왕국의 힘을 상징하며 오랜 시간의 영속을 기원하며 만들어졌던 것이다. 대릉원 무덤 중에는 ‘천마총’과 함께 반대쪽에 있는 ‘금관총’이 개방 중이었다. 시간이 늦어 금관총에는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해가 질 무렵 주변에 앉아 경주의 저녁놀을 즐겼다. 거대한 무덤으로 둘러싸인 ‘대릉원’ 속에 앉아 있으니 인간들의 이중성을 실감한다. 작은 무덤들이 모여있는 공동묘지에는 불괘감과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도 거대한 무덤군 앞에서는 오히려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여유를 즐긴다. 크기의 차이때문인가, 관리의 효과인가. 분명한 것은 신라의 고분은 이제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덤’이 아닌 ‘문화재’이다.
5. 둘째 날은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입구에 있는 ‘사천왕지’와 ‘선덕여왕릉’을 답사했다. ‘사천왕사지’에 남아있는 주춧돌들은 시간의 영겁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돌은 그렇게 영원을 상징하면서 인간의 흔적을 간직한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 그 속에서 ‘문명’이 만들어졌고 또 만들고 있는 인간의 의미가 생성되었다. 오늘의 답사인 남산의 ‘부처님’ 찾기 또한 인간의 의미를 찾는 탐사이다. 통일전이 있는 ‘동남산’에서 출발하여 금오봉으로 향했다. 중간에 몇 군데 석불을 안내하는 표시가 보였지만 그대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금오봉’은 남산의 석불을 답사하는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남산의 석불을 볼 수 있는 각각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삼릉’ 방향으로 이동했다. 가장 많은 부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6. 산을 내려가면서 중간에 숨겨져 있는 부처의 흔적을 찾아간다. 때론 접근하기 어려운 방향 쪽에 고독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를 만나기도 하며, 때론 희미한 선각으로 새겨져 보일 듯 말 듯 한 부처의 형상을 찾기도 하였다. 특히 기억나는 부처는 마치 격투기 선수와 같이 강인하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단한 사각턱과 무표정한 인상은 모든 시련과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번뇌를 극복한 운명의 승리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부처의 따뜻함과는 다른 담담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은 부처의 또 다른 측면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따뜻함과 함께 때론 냉정함과 굳건함이 삶의 중요한 지혜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남산 아래쪽 망월사에 세워져 있는 ‘삼존불’은 주변에 있는 불상들을 모아서 새롭게 조형한 것이라 한다. 불상의 모습은 마치 아이처럼 통통하고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현대적인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었다. 마치 현대화가 ‘루오’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무구한 부처의 모습은 가장 깊은 지혜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는 ‘예수’의 가르침과도 맥이 닿아있었다.
7. 남산에서 내려와 국도를 따라 걸으면 포석정과 오릉을 비롯해 박혁거세와 관련된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대릉원과 월성이 신라 왕궁의 중심지였다면, 남산 코스는 신라의 종교적 신앙과 시원적 신화가 숨겨져 있는 장소이다. 약간은 멀지만 천천히 이동하다면 경주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멋진 탑사 코스라 할 수 있다. 5시간 넘게 답사를 하니 조금 피로해져, 포석정 숲 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남산의 신이 내려와 왕과 함게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포석정은 소박하지만 전설만큼 신비스러운 기운을 품고 있는 조용한 숲이었다. 뻐꾸기 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깊게 호흡한다. 여름이 오고 있지만 아직 숲은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 포석정의 곡상유수 시설보다는 남산과 연관된 특별한 위치가 이 곳의 신비를 만들었을 것이다. 견훤의 습격으로 경애왕이 죽은 비운의 장소, 산신의 경고를 잊고 무능으로 국가를 소멸하게 만든 지도자의 슬픈 역사는 여전히 인간에게 겸손함과 함께 책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8. 1박 2일의 일정으로 경주의 중요한 두 개의 코스(대릉원 코스와 남산 코스)를 답사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았던 곳이지만, 걸으면서 장소의 연계를 확인하게 되니 경주의 지리적, 공간적 감각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공원인 ‘경주’의 매력은 걸으면서 만나고 찾아야만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음 답사 때는 남산 금오봉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부처들을 만나고 싶다. 모든 것은 익숙해질수록 항상 새로운 얼굴로 변모하며 자신의 매력을 뿜어낼 것이다. ‘경주’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 천년의 미소!!!!! 조각, 파편, 불상, 금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