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 오봉리 강골마을(국회의원3명 대법원장1명을 배출한 명당)
1 강골 마을과 광주이씨 집성촌
* 보성 오봉리 강골(江洞)마을은 물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연못 2개소와 우물 2개가 있다. 1943년경 제방을 쌓기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 광주이씨둔촌계는 둔촌 이집을 기세조로 하고 10대지파가 있는데 그 중 광원군파는 4세손 이극돈(1435~1503)이 파조(派祖)이고 아래 위로 무려 7대를 과거급제한 수재집안이다. 이극돈의 손자 이수완은 전라관찰사로 있던 아버지이세정(1461~1528)의 주선으로 보성 대곡리 이언정의 외동 딸에게 장가들어 부자가 되고 그의 아들 이유번(7세손)은 죽산안씨 안수장의 외동딸에게 장가들어 강골마을 일대의 재산을 물러 받고 강골마을에 정착하였다. 강골마을에서 후손들이 번성함으로써 강골마을은 광주이씨의 집성촌이 되고 나아가 전남일대에 후손들이 널리 퍼져나갔다. 경주 최부자가 2대에 걸친 처가재산 상속에 힘입어 부자가 된 것과 같은 사례인데 풍수적으로 말할 때 처덕(妻德)이라 하지 않고 외손발복이라 말한다.
2. 배출된 인물
* 마을에 현재 40호의 주택이 있으나 해방 무렵에는 30여호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중앙에 세채의 고택(이금재 이진래 이준회)이 있고 이 집들의 주인은 대대로 부자로 살았다고 추측된다(다만 이금재가 큰집인데 해방후 친북 정치인으로 고생하였다고 함).
* 일제 때는 항일 인물도 있었고 해방 후에는 이정재(1925生~2008死, 6선 국회의원), 큰 아들 이종구(3선국회의원), 셋째 아들 이종오(서울고법 부장판사), 이경재(2선 국회의원 이중재 4촌 동생), 이용훈(1942生 대법원장)이 있다.
3. 답사
* 고가 관리인의 말에 의하면 이 동네는 여자 자궁혈이고 안산인 오봉리 오봉산(비봉리 오봉산이 큰 산) 정상바위가 책상 바위로서 공부하여 인물 3인이 배출된다는 설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장을 둘러보니 태조 장흥 제암산에서 출발하여 주산인 방자산에 이르러고 주산에서 마을로 내려 오는 용액이 생동감 있고 백호가 휘감아서 자궁을 감추는 모양새이다. 자궁은 자식들의 번성을 상징하고 안산바위는 인물의 배출을 상징한다. 이 대법원장생가는 건물이 철거되어 나대지로 되어 있다.
* 중국---
* 인물들의 탄생지는 혈이 맺힌 곳인가? 이 국세에서 혈처는 세 고가(古家)임에 대하여 이중재가옥은 좁은 골짜기에 있고 이용훈가옥은 국세의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곳이다. 그럼에도 큰 인물이 된 것은 ①원래 머리가 좋은 가계이고 ②안산인 오봉산 바위가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③나아가 혈처부근을 자주 지나다니면서 명혈의 기운을 받은 덕택이라 생각한다. 안희재 이후락 이명박 송영길이 양택명당 부근에 살면서 명당기운을 받았던 경우와 같다.(2024.1)
* 소국---
* 강골 안산---책상바위
* 이금재(이정래) 고택안내---서열상 큰집이다
* 이진래 고택안내---
* 이준회 고택안내---초가
* 이진래와 이준회 고택사진---
첫댓글 우수회원 등업을 자축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