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견문각지(見聞覺知)의 성품은 여래장(如來藏)이다
❙ 원문
「阿難. 見覺無知, 因色空有. 如汝今者在祇陀林, 朝明夕昏. 設居中宵, 白月則光黑月便暗, 則明暗等因見分析. 此見為復與明暗相并太虛空, 為同一體 為非一體? 或同 非同? 或異 非異? 阿難. 此見若復與明與暗及與虛空元一體者, 則明與暗二體相亡. 暗時無明, 明時非暗. 若與暗一, 明則見亡. 必一於明, 暗時當滅. 滅則云何見明見暗? 若明暗殊, 見無生滅, 一云何成? 若此見精與暗與明非一體者, 汝離明暗及與虛空, 分析見元作何形相? 離明離暗及離虛空, 是見元同龜毛兔角. 明暗虛空三事俱異, 從何立見? 明暗相背, 云何或同? 離三元無, 云何或異? 分空分見本無邊畔, 云何非同? 見暗見明性非遷改, 云何非異? 汝更細審 微細審 詳審 諦審, 觀. 明從太陽 暗隨黑月 通屬虛空 壅歸大地. 如是見精因何所出? 見覺空頑非和非合. 不應見精無從自出. 若見聞知, 性圓周遍本不動搖, 當知無邊不動虛空并其動搖, 地水火風均名六大, 性眞圓融, 皆如來藏本無生滅. 阿難. 汝性沈淪, 不悟汝之見聞覺知本如來藏. 汝當觀此見聞覺知. 為生為滅? 為同為異? 為非生滅? 為非同異? 汝曾不知. 如來藏中, 性見覺明覺精明見, 清淨本然周遍法界, 隨衆生心應所知量. 如一見根見周法界, 聽嗅嘗觸覺觸覺知, 妙德瑩然遍周法界, 圓滿十虛寧有方所? 循業發現, 世間無知, 惑為因緣及自然性, 皆是識心分別計度. 但有言說, 都無實義.」
「아난. 견각무지, 인색공유. 여여금자재기타림, 조명석혼. 설거중소, 백월즉광흑월갱암, 즉명암등인견분석. 차견위부여명암상병태허공, 위동일체 위비일체? 혹동 비동? 혹이 비이? 아난. 차견약부여명여암급여허공원일체자, 즉명여암이체상망. 암시무명, 명시비암. 약여암일, 명즉견망. 필일어명, 암시당멸. 멸즉운하견명견암? 약명암수, 견무생멸, 일운하성? 약차견정여암여명비일체자, 여리명암급여허공, 분석견원작하형상? 이명이암급이허공, 시견원동구모토각. 명암허공삼사구이, 종하립견? 명암상배, 운하혹동? 이삼원무, 운하혹이? 분공분견본무변반, 운하비동? 견암견명성비천개, 운하비이? 여갱세심 미세심 상심 체심, 관. 명종태양 암수흑월 통속허공 옹귀대지. 여시견정인하소출? 견각공완비화비합. 불응견정무종자출. 약견문지, 성원주변본부동요, 당지무변부동허공병기동요, 지수화풍균명육대, 성진원융, 개여래장본무생멸. 아난. 여성침륜, 불오여지견문각지본여래장. 여당관차견문각지. 위생위멸? 위동위이? 위비생멸? 위비동이? 여증부지. 여래장중, 성견각명각정명견, 청정본연주변법계, 수중생심응소지량. 여일견근견주법계, 청후상촉각촉각지, 묘덕형연변주법계, 원만십허영유방소? 순업발현, 세간무지, 혹위인연급자연성, 개시식심분별계탁. 단유언설, 도무실의.」
❙ 해설
「아난아. 견각(見覺)은 아는 것이 없어서 색공(色空)을 대상으로 하여야만 아는 작용이 나타나느니라.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때 아침은 밝고 저녁은 어둡다. 설령 한밤중이라도 보름에는 밝고 그믐에는 다시 어두워지는데, 이러한 밝고 어두운 것은 견(見)을 통하여 분석할 수 있다. 이 보는 견은 다시 밝고 어두운 명암의 모습 및 허공과 더불어 일체이냐 일체가 아니냐? 또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느냐? 또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이 보는 견이 만약 명암 및 허공과 더불어 원래 일체라면, 곧 밝음과 어둠이라는 두 가지 자체가 서로 없어지고 말 것이다. 즉,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고, 밝을 때는 어둠이 없을 것이다. 만약 견이 어둠과 일체라면 밝을 때는 견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견이 밝음과 일체라면 어두울 때는 당연히 견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보는 견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밝음을 보고 어둠을 볼 수 있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둠은 서로 다르지만, 견은 생멸이 없다고 한다면, 일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 견정(見精)이 명암과 더불어 일체가 아니라면, 네가 밝음과 어둠과 허공을 떠나서, 보는 것의 근원을 분석해 보면 어떠한 모양이 되느냐? 밝음과 어둠과 허공을 떠나면 이 보는 견은 원래 거북털이나 토끼뿔과 같게 된다. 견이 밝음과 어둠과 허공의 세 가지와 모두 다르다면, 무엇으로 보는 견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둠은 서로 반대되는데,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보는 견이 같다고 하겠느냐? 밝음과 어둠과 허공의 셋을 떠나면 견은 원래 없는데, 없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보는 견이 다르다고 하겠느냐? 허공을 나누고 견을 나누어도 본래 끝과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느냐? 어둠을 보고 밝음을 보더라도 견의 성질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살펴보고 꼼꼼하게 살펴보고 속속들이 살펴보고 살피고 살펴서, 관찰해 보아라. 밝음은 태양에서 오고, 어둠은 그믐달을 따르고,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데 견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견은 깨닫고 알지만 허공은 완고하여 알지 못하므로 서로 어울리거나 합할 수가 없다. 또한 당연히 견정이 까닭 없이 스스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러한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성품이 원만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본래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끝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지수화풍과 똑같이 육대(六大)라고 불러야 할 것이니, 그 성품이 참되고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으므로, 모두가 여래장으로서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너의 본성이 무명(無明)에 빠져서 너의 견문각지가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네가 마땅히 이 견문각지를 살펴보아라. 생기는 것이냐 없어지는 것이냐?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냐?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견[見]인 각명(覺明)과 성품이 각[覺]인 명견(明見)이 청정(清淨)하고 본연(本然)하여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어, 중생의 마음에 따르고 아는 바에 응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견근(見根)의 보는 견(見)이 온 세상에 널리 있는 것처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의 묘한 능력[德]이 밝아서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고, 시방 허공에 충분히 가득한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業)을 따라 나타난 것일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몰라서 견각이 인연으로 생긴 것인가 아니면 자연으로 생긴 것인가 의혹하지만, 모두다 마음[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려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고 전혀 진실한 뜻이 없다.」
❙ 보충
견각(見覺)은 견정(見精) 또는 견원(見元) 또는 견(見)을 말한다. 시각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니고, 어떤 물질을 상대하여야 아는 것이 있다. 견은 경계에 상대하여 존재하므로, 경계가 없는 경우라면 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과 밝음은 상반되지만, 보는 견은 어둠과 밝음을 다 볼 수 있으니, 어둠을 본다고 해서 견이 달라지거나, 밝음을 본다고 해서 견이 바뀌지 않는다. 보는 견(見)의 본체는 비어[空] 있다.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본래 공(空)하여 청정(清淨)하고 본연(本然)한데, 조건을 갖추면 어디서든 견(見)이 나온다.
견(見) - 대상[명明 암暗 허공虛空]
①견(見)이 대상과 동체(同體)인가? 대상은 늘 변하지만 보는 견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 견은 불생멸(不生滅)이고 대상은 생멸(生滅)인데 서로 반대되는 것의 바탕이 같다는 것은 틀렸다. ②견(見)이 대상과 이체(異體)인가? 생멸하는 대상을 떠나서 보는 견을 따로 찾을 수가 없다. 견은 대상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의 바탕이 다르다는 것도 틀렸다. ③견과 대상은 동체도 아니고 이체도 아니며, 동체이기도 하고 이체이기도 하다. 견(見)의 성품은 비어[空] 있으며 자성(自性)이 없다. 이것을 진여 불성 공성 열반 일심 본성 여래장 진심이라고 부른다.
회통(會通)을 하면, 견(見)은 인연도 자연도 아니며 여래장 묘진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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