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도(李裪) 1397년 4월 10일(양력으로 5월 15일):626돌
준수방(지금의 통인동 자리) 영추문
운보 김기창 작 " 소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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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잘난 체하고 경쟁심 불타던 소년 세종은 어떻게 좋은 왕 됐나
모친의 장남 편애, 큰형·외삼촌의 견제와 협박 속에서 자란 셋째 아들
부왕 앞에서 학문 뽐내고 큰형에게 잔소리해 재수 없단 말 듣기도
독서·토론으로 마음 가꾸고, 잠행 통해 백성 입장서 정치 바라봐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입력 2023.05.16. 03:00업데이트 2023.05.16. 07:05
한글박물관의 ‘세종 나신 날’ 기념 특강을 위해 왕 되기 전 세종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세종 이도(李裪)가 태어난 1397년 4월 10일(양력으로 5월 15일)부터 즉위년인 1418년 8월까지 실록 기사 40여 건을 찬찬히 되읽었다.
유독 눈에 띈 구절은 “너는 관음전에 가서 잠이나 자라”라는 세자 이제(李褆·양녕대군)의 말이었다. 태종 16년째인 1416년 9월의 어느 날, 세자는 동생들을 데리고 할머니 신의왕후 한씨의 제사를 위해 지금의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흥덕사에 갔다. 향 피우기를 마친 세자는 그곳에서 몇 사람과 더불어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함께 따라간 충녕이 한마디 했다. “세자의 몸으로 간사한 소인배들과 바둑 놀이를 하는 것도 안 될 일인데, 더군다나 오늘은 할머니 제삿날 아닙니까”라고. 이 말을 들은 양녕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너는 가서 잠이나 자라”고 했다.
강의를 들은 학생은 양녕의 이 말을 ‘너, 재수 없어’로 통역했다. 10대 세종의 ‘재수 없는 언행’은 이 외에도 여럿 나온다. 그해 설날 즈음 세자 이제는 새로 맞춘 설빔을 차려입고 주위 사람들에게 “어떠하냐?”고 물었다.
대뜸 충녕이 나서서 대답했다. “형님, 먼저 마음을 바로잡은 뒤[先正心] 용모를 닦으셔야죠[後修容].” 기록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세종은 한마디로 왕따 대상이 되기 쉬운 청소년이었다. 그는 잘난 체하는 왕자이자 일러바치기 잘하는 사람이었다. 비만하고 편식하는 아이였으며 운동도 못했다. 충녕의 경쟁적 언행은 다분히 부왕 태종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종친과 대신들이 모인 경회루에서 열린 술자리에서 충녕은 한껏 학문을 뽐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태종은 세자를 돌아보면서 “왜 너는 학문이 이만 못하냐?”고 꾸짖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삼촌 민무회에게 안 좋은 말을 들은 충녕은 즉시 부왕 태종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 그 일로 외갓집이 풍비박산되고 말았다.
그렇게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이도가 어떻게 훌륭한 리더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그 요인의 하나는 ‘세종 백독(世宗百讀)’이다. 그는 좋은 책을 골라 백 번씩 읽으면 세상 이치를 꿰뚫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전을 반복해서 읽었다.
다른 하나는 훌륭한 스승의 존재다. 이수(李隨)와 김토(金土)가 대표적 스승인데, 세종에 따르면 “이수는 오가면서 진강(進講)했고, 김토는 더불어 종일토록 강론한” 스승이었다.
이수는 고금의 유익한 말과 뛰어난 정치 사례[嘉言善政]를 엄선해 세종에게 가르쳐줬을 뿐만 아니라, 수원에서 출퇴근하면서 보고 들은 민간의 일도 들려주었다. 나중에 세종은 이수야말로 자신을 알아보고[知] 특별한 존재로 대우한[遇] 사람이었고, 마음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준[啓沃]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출퇴근형 스승 이수가 가르쳐주고 들려준 사례와 민간의 일을 어린 세종은 공동 생활형 스승 김토와 더불어 토론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다. 왕위에 오른 직후 세종의 제일성이 ‘의논하자’였던 것은 김토에게서 배운 종일 토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충녕을 변화시킨 마지막 요인은 백성을 직접 만나 그들의 처지에서 정치를 바라본 경험이다. 1416년 2월에 충녕은 부왕 태종을 따라 충청도 태안반도에 갔는데, 강무(講武·군사훈련을 겸한 수렵 대회)하는 약 20일 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두루 살폈다는 기록이 있다. 궁궐 밖 미행은 세자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백성들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국왕이, 정치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깊이 깨달았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가 맞닥뜨린 여러 큰 곤경을 이겨내는 힘은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그는 어머니 원경왕후의 큰형 편애, 세자 이제와 외삼촌의 견제와 협박 속에서 자라야 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잘된 네 살 위 누나 경안공주가 갑작스레 죽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비뚤어지지 않고 오히려 여자 노비와 버려진 아이 등 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백성과 만난 데서 얻은 강력한 전율 때문이었다. “루터는 항상 번개가 바로 그의 뒤에 막 내려치려고 하는 것처럼 의식했고, 그렇게 행동한 사람”이라고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썼다. 어린 시절의 고초와 좌절이 청년 루터로 하여금 법률가나 신부의 길 대신 순교 위험이 있는 종교개혁가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세종이야말로 소외 경험을 승화시켜 백성의 목소리를 번개처럼 느끼고 살아간 지도자였다.
잘난 체하고 경쟁심 불타던 소년 세종은 어떻게 좋은 왕 됐나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chosun.com)
세종대왕 탄신일 기념 강연 <왕 되기 전 세종>
홈 > 교육·문화행사 > 문화 행사 > 행사 신청 (상세보기) - 세종대왕 탄신일 기념 강연 <왕 되기 전 세종> | 국립한글박물관 NATIONAL HANGEUL MUSEUM
* 세종 질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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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
고전 100번 읽는 독서 습관… 책 속에서 나라 다스리는 지혜를 찾다
문화일보입력 2019-05-22 10:50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고전 100번 읽는 독서 습관… 책 속에서 나라 다스리는 지혜를 찾다 :: 문화일보 munhwa
국역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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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루터
에릭 에릭슨 저자(글) · 최연석 번역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3년 03월 25일 (1쇄 1997년 03월 25일)
『청년 루터』는 종교개혁에 불을 지핀 청년 루터의 갈등과 혁명, 삶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근거해 적나라하게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생명력없는 하나의 영웅을 조작해내기 위한 종교적 위인전기가 아니라 루터라는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가 갈등과 혁명과 반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그 하락과정을 보였는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근거하여 분석한 정신분석 역사연구서다.
저자(글) 에릭 에릭슨
에릭 에릭슨은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 정신분석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유대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하면서 성이 홈부르거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중등 교육을 마친 후 미술을 공부하려다 포기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다.
비엔나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 정신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UC 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 받았고 196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여러 대학과 병원, 연구소에서 임상 치료와 연구를 병행했으며 『간디의 진실』로 1969년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첫 저서인 『유년기와 사회』 이후에도 그는 『청년 루터』, 『정체성: 청년과 위기』, 『생애 주기의 완성』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심리학의 관심을 인간의 심리성적 발달에서 심리사회적 발달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심리학을 문화인류학과 역사학에 접목시키는 시도로 이후 심리학의 연구방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발달심리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9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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