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7년 10월 3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생각보다 무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2km / 8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가리파재-성황당사-중앙고속도로-칠봉암 입구-임도-양봉장 갈림길-741봉(H)-안부
강아지 바위-찰방망이 고개(임도)-갈림길-안부-휴양림 갈림길-산부인과 바위
벼락바위-안부-벼락바위봉-쉼터-관리실 갈림길-안부-회론재-안부-수리봉-조망바위
한해재-무명봉-보름갈이봉 갈림길(왕복)-보름갈이봉-852.7봉-폐헬기장-쉼터-안부
작은백운산-925봉-안부-봉화지맥 분기봉(군부대)-철조망 우회-부대 정문-헬기장-백운산
안부-무명봉-한양조공 묘지-안부-906봉-상재-930봉-안부-오두봉(H)-오두재-폐헬기장
872.2봉-삼면경계봉-천등지맥 분기봉-안부(천은사 갈림길)-안부-산촌마을 갈림길
796봉-암릉구간-코뿔소 바위-암릉구간-갈림길-동막봉-597봉-폐헬기장-묘지-작은양아치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판부면, 흥업면, 귀례면 / 충북 제천시 백운면
다들 추석을 전후로 하여 10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라지만 나 같은 자영업자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타격이 많은 편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들이야 신이 나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한달에 1/3을
공쳐야 하니 정말 곤욕이다... 가계 문을 열어봐야 파리만 날리고 사람 구경을 못하니 할 일이 없다
그래봐야 마땅히 갈데도 없고 이틀만에 다시 산행을 준비하는데 백두대간을 나서려는데 양양에는
내일 비가 온단다...하는 수 없이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원주지역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지난해 11월에 백운지맥 1구간을 끝내고 가지 못한 2구간을 급하게 정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추석에 준비한 송편과 부침개를 조금을 싸서
동서울 터미널(강변역)으로 향하는 선릉역에서 지하철 첫차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05분이다
내일이 추석인데도 불구하고 버스터미널은 평소보다도 더 한가한 느낌이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06시 10분발 원주행 버스표
06시 10분에 출발하는 원주행 버스에 오르니 40인승 버스에 손님이라곤 달랑 10여명...
평소의 습관처럼 버스에 오르자마자 깊은잠에 빠져다가 깨어보니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원주시내에 들어서고... 이내 원주 터미널에 도착한다
원주시외버스 터미널(07:55)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 탓에 잘 몰랐는데 명절 전날이라 고속도로가 밀린 탓이였는지 예상시간보다
조금 늦게 원주 시외 터미널에 도착한다(서울에서 원주터미널 예상시간 1시간 30분)
터미널을 빠져나와 치악재를 가기위해 신림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터미널에는 없고 터미널 건너편
정류장에서 중앙시장가는 버스를 타고 중앙시장 앞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가야는 것을 알았다
원주 중앙시장앞 버스 정류장(08:15)
버스에서 내려 치악재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21번 버스가 가는데 10분전(08:05)에 출발을 했다
1시간에 1대씩 다니기에 09시 05분까지 기다리가 뭣해 어려운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타고 치악재로 향한다
원주중앙시장 버스정류장에 붙은 버스 시간표
원주중앙시장에서 택시를 타고 25분만에 가리파재(치악재)에 도착하니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택시비: 16,000원)
가리파재 (450m:08:45)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5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신림면에서 세운 ‘가리파재’ 표석이 치악재 휴게소 옆에 서있다
가리+파 → 가리파가 되었다. '가리'는 물, 물가, 분기를 뜻하는 '갈'에서 파생된 것으로
물가 마을에 많이 붙는 지명인데 '가리'가 들어간 산 이름에는 산줄기가 갈린 목, 또는
고장을 가른 산에 주로 쓰이며 '파'는 언덕, 고개를 뜻하므로 가리파는 산줄기가 갈린
고개나 언덕, 또는 고장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마 원주와 신림을 가르는 고개라서 가리파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개 정상에는 치악재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치악재 기사식당 맞은편에는 가리파 성항당이 있는데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없어졌다가 복원을 시켰다고 한다
이 성황당은 옛날 보부상들이 조금씩 돈을 거둬 지었다고 하며 등에 짐을 짊어지고 장사를 하기위해 고개를 넘어
다니던 보부상들이 호랑이를 만나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성황당에서 산신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보부상들은 가리파에 있는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고도 한다
도로가 밭가운데 자리잡은 성황당의 모습
지난 6월 첫 주에 지긋지긋한 지맥길의 잡목에 질려버려 지맥길을 잠깐 접고 대간길에 올인을 하다가
4개월만에 지맥길을 나서려니 왠지 좀 어색하다...성황당을 대충 둘러보고 산행을 시작한다(08:52)
중앙고속도로 아래(08:55)
중앙고속도로를 지나 5번 도로를 버리고 ‘백운산, 칠봉암’ 표지판을 보면서 우측 임도로 들어선다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오른다...원 맥길은 승용차 앞쪽인데 중앙고속도로가 끊어 버렸다
임도로 올라서니 쇠줄이 길을 막고...
표지판을 바라보면서 임도로 계속 올라간다
양봉장 갈림길(09:03)
넓은 공터에 올라서니 잡목이 길을 막는다...지맥길답다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고...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잔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반가운 현오님의 시그널
최근에 출간한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책 판매 때문에 요즘 얼굴 뵙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그렇지... 얼굴 좀 보고 삽시다
산수국이 필 생각도 안하는 급경사의 능선으로 오른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초반부터 엄청나게 힘이 부친다
암릉구간에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가리파재 치악휴게소가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강아지 바위(?)...범여의 생각중에서
741봉(H)...(09:30)
아침식사(09:32 ~ 47)
헬기장을 지나면서 아침을 먹지 않았던 탓인지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가져온 송편과 전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안부(09:50)
강아지 바위(790m:09:55)
산꾼들 사이에는 강아지 바위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전에 작고하신 한현우님께서 찰방망이봉이라 붙혀놨다
이곳이 오늘 산행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가야할 백운산과 지난해 걸었던 치악산 남대봉, 원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앞에 보이는 바위가 강아지 바위라는데... 정말 강아지처럼 생겼다
가야할 백운산의 모습
치악산은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암릉구간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우측으로 우회한다
가리파재에서 강아지 바위까지 힘들게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데 마치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찰방망이 고개(察訪峙:676m:10:05)
찰방망이 고개는 옛날에 다니던 구길 이었다고 하는데, 역골이라는 곳에 신림역이 있을 때 역을 관장하던
보안도 찰방이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 찰방망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원주 원(元) 씨가
이곳에 묘를 쓰고 찰방이 났다 해 찰방망이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다
원주시 신림면 금창리에서 판부면 금대리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는데 이곳을 찰방망이 고개라 부른다
찰방(察訪)이란 지방을 왕래하는 관료나 군 관계자들은 반드시 역참을 들러 말을 갈아타거나 쉬었으며
역에서는 말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길을 살피는 일을 하였고 여기에 관료들이 파견되었다.
찰방은 이 역찰의 관리자로서 품계는 종 6품이었으며 또 시기에 따라 지방수령의 탐학을 살피는
역할도 겸했는데, 주로 조선 초기의 일이다. 암행어사제도가 있기 이전이다.
이 때의 찰방은 암행어사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할 수 있다.
임도 좌측으로 신림면 금창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이는데 조금만 더 내려가면 '둔창'이라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둔전(관청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토지)에서 생산한 쌀을 저장하던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둔창이라고 했다는 설과 쌀이 아니라 검(무기)을 보관하던 창고인 검창(劍倉)이
금창으로 바뀌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둔창마을에서 왼쪽으로는 강씨와 안씨가 피난을 와서 살았다는 '강안'이라는 마을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예찬마을이다.
금창리는 원래 원주군 구을파면 지역으로 일리라고 하다가 지난 1914년부터 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둔창, 예찬, 강안, 흑천,금옥동 등 다섯 마을을 합쳐 금창리라고 부른다. 이 중 둔창이 도로 가까이에
붙어있어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금창리는 임진왜란 때부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바람에 전쟁으로 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예찬마을에는 '절충장군'
묏자리가 있는데 워낙 오래된 데다 대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위해
길을 내면서 훼손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평원 평 씨(平原 平氏) 평귀욱 절충장군의 묘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인물로 보이며, 절충장군이라 직급은 곽재우 의병장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직급이라고 전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향한다
잣나무숲 능선에서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갈림길(10:25)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강아지 바위에서 찰방망이 고개로 내려온 만큼 다시 오름길... 초반부터 엄청난 체력 소모가 이어지고..
벼락바위봉으로 Go~~~Go
안부(10:32)
또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
휴양림 갈림길(10:40)
계속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
냄새무당버섯
가을에 소나무림(적송) 지대나 활엽수림에 발생하며 갓 표면은 성장 초기에 밝은 적색을 띠나 비가 온
후에 시간이 경과하며 퇴색하여 옅은 분홍색을 띄는게 특색이며 맛은 아주 매우며 냄새는 불분명하다
준독성을 가진 버섯으로 날 것을 먹으며 중독되나, 끓여서 요리를 하면 매운 맛이 없어지고 중독되지 않는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벼락바위봉으로 오른다
로프를 잡고 올라서니 구멍이 뻥뚫린 바위가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야 한다
산부인과 바위(10:54)
구멍바위, 해산굴이라고도 불리는 바위구멍이 있는데 어른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바위로 그 구멍에서 사람들이 빠져 나오는 모습이 마치 아이를 낳는 모습 같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어둡게 찍은 산부인과바위
산부인과 바위를 지나서 우측 바위로 올라서니 이곳이 벼락바위라고 부른다
벼락바위(10:56)
옛날 벼락을 맞아 바위가 갈라졌다고하여 벼락바위라고 부르며 벼락바위봉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벼락바위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모습
보이는 도로가 중앙고속도로이고 그 뒷쪽 능선이 백운지맥 분기봉인 상원사 뒷산인 남대봉이다
벼락바위봉은 치악산 자연휴양림의 뒷산으로 전망이 빼어난 3개의 봉우리로 있는데 이곳에는
조선조 비운의 왕이였던 단종의 애절한 슬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1441~1457)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영월 청령포(淸冷浦)로
유배되어 17세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으로 한양에서 영월까지 160km를 걸어서 가는데
이 봉우리 아래에 있는 신림면 금창리 찰방망이 고개를 넘어 황둔리, 솔치재, 영월의 눈물재를 지나 다시
주천으로 해서 청령포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당시 걸었던 수많은 고개중에 하나인 찰방망이 고개 위에는
바위 절벽이 벼락을 맞은듯 하다고해서 벼락바위봉이라 불렀고, 하늘이 노(怒)하고 땅이 슬퍼서 벼락이
쳤다고 하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벼락바위에서 바라본 원주시의 모습
가야할 백운산 군부대가 보이고...
다시 내리막길
안부(11:00)
안부에서 암릉구간을 우회하며 오르니...예전에 사약(死藥)의 원료로 쓰였다는 천남성이 보인다
천남성(天南星)
남성(南星)·남생·두여머조자기·창사두초라고도 하며 덩이뿌리는 지름 2~4cm의 편평한
구형이며 주위에 2~3개의 작은 덩이뿌리가 달리고 위쪽에서 수염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줄기는 곧게 서서 자라는데 검은 녹색이고 간혹 자줏빛 반점이 있다. 관상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벼락바위봉(937.6m:11:03)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동과 신림면 금창리,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의 경계에 솟은 삼면
경계봉으로 치악산 자연휴양림의 뒷산으로 정상부는 저마다 전망이 빼어난 세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하나는 백운면 쪽으로 트인 바위봉우리이며, 또 하나는 정상인 벼락바위봉, 그 뒤 조금
떨어진 곳에 벼락바위가 솟았다.
이름도 흥미로운 벼락바위봉은 유래가 벼락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라 그렇게 불리운다.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걸어둔 표지판
벼락바위봉 정상 2등 삼각점(△제천21 / 1995복구)
벼락바위봉에서 베낭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수리봉으로 향한다
쉼터(11:05)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찰방망이재에서 힘들게 올라온 길을 다 까먹는 기분이다
관리소 갈림길(11:07)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 서는데 우측 사면길에서 관리사무소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있어 조심할 구간이다
관리소 갈림길의 모습
좌측으로는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 있는 차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구학산과 백운산 아래에 위치하여 백운과 구학의 이름을 따서 운학 또는 운학동이라 하였다.
또는 구름 위에 학이 날으는 형국이라 하여 운학리라 이름 붙여졌다고도 하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차도리와 용산리를 병합하여 운학리라 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는 구레골, 평촌, 거문골, 새터말, 차도리,
용산리, 독가촌 등이 있다.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초반부터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데
관리소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치악산국립공원 지역을 벗어났는지 표지판이 안보인다
안부(11:12)
직진으로 진행을 할 수가 없어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등로는 아주 고약하다
다래 넝쿨이 맥길을 가로막고...
회론재(770m:11:20)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그저 밋밋한 고개이다
다시 오르막길... 벼락바위봉에서 내려온 만큼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안부(11:25)
철쭉 군락지를 지나니 수리봉이 나온다
수리봉(鷹峰:911.6m:11:35)
원주시 판부면과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철쭉을 비롯한 잡목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지명의 유래는 전국에 많이 있는 수리봉(鷹峰)과 같지 않을까(범여의 생각중에서)
봉우리 독수리를 닮았다고 부르지 않았을까...그런 생각이 들지만 잡목으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수리봉 정상의 모습
수리봉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선다
조망바위(11:38)
수리봉에서 떨어진 조망바위는 전망이 좋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원주시
원주시의 역사적 유래
삼한시대에 마한(馬韓)의 영역에 속했으나, 백제가 마한을 병합해 백제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 후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469년(장수왕 57)에는 평원군(平原郡)이라 하였다.
신라 세력이 북상하면서 678년(문무왕 18) 북원소경(北原小京)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북원경(北原京)이 되었고 원주지역에 소경이 설치된 이유는 중원소경이었던
충주와 9주 가운데 수약주의 치소가 설치된 춘천 사이의 거점지로서 영서·영동 지역에 대한
취약한 지방통치력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원소경을 호위하는 성은 685년에 축조되었는데 현재 원주 치악산 자락에는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그리고 금대산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으며 이후 북원소경은 경덕왕대(742 765)에
북원경으로 공식 행정지명이 바뀌기도 하는데 동란의 시기인 후삼국기에는 양길이 이곳을 거점지로 삼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원주지역 문화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원주 인근에서
확인되는 폐사지와 불상 등의 유물을 통해 당시 성행했던 불교신앙의 모습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법천사와 흥법사, 거돈사와 석남사, 구룡사, 황산사, 법흥사,
비마라사, 국형사, 보문사, 석경사, 천왕사 등의 유적과 여기에서 찾아진 불교 유물들이
통일신라시대에 번성했던 원주지역의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단초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원주지역 일대에는 통일신라기에 풍미했던 신선술이나 도참사상과 연관된 유적들이 전해오기도 한다.
《조선환여승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시 원주면 상동리의 건손석이나 판부면 단구리 근방의
돌절구와 같은 유적과 전승은 불교문화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했던 원주지역의 또 다른
문화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조망바위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젖은 낙엽으로 인해 등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암릉과 철쭉 군락지 사이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한해재(754m:11:50)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와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제천쪽엔 성황당의 흔적이 보인다
이정표((←차도리 3.4km →벼락바위봉 1.6km ←보름갈이봉))가 서 있고 차도리로 향하는 곳엔 등로가 뚜렸하다
한해재는 한엿고개라고도 부르며 옛날 남쪽 차도리 주민들이 원주로 장보러 다녔다 하고,
차도리 주민들이 원주를 다녀오는 지름길이라 하여 차도리에서 한해재로 오르는 골짝을
지름골이라 부른다. 차도리에서 한해재를 넘어 금대리로 가면 중앙선 똬리굴이 있는 백척철교가
나오고, 치악산 영원사 계곡 입구가 된다.
한해재에 있는 성황당의 모습
기름나물도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12:07)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오늘 산행은 계속해서 오르내림이라 초반부터 체력저하가 심하다
보름갈이봉 갈림길(12:10)
이곳에 베낭을 벗어놓고 0.3km정도 떨어진 보름갈이봉으로 향한다
보름갈이봉(877m:12:18)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지맥길에서 0.3km정도
벗어나 있으며 정상은 잡목으로 우거진 그저 밋밋한 봉우리인데 금대봉이라 표기한 지도도 보인다
보름갈이의 지명유래는 옛날 분지를 이룬 골짜기 당거리에서 화전민들이 귀리, 조, 팥, 옥수수등을 심기위해
밭을 가는데 비탈인데다가 돌이 많아서 보름 걸렸다고 하여 보름갈이봉으로 불리워졌다는데서 유래한다
보름갈이봉 정상의 모습
다시 보름갈이봉(12:22)
보름갈이봉을 찍고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떠난다
내리막길 안부에서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852.7봉(12:35)
852.7봉에 올라선 다음에 맞은편의 가야할 백운산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현오님... 오늘 자주 만납니다
용담과 비슷하게 생긴 구슬봉이도 간간히 보인다
우측으로 꺽어져 등로를 따라가는데 군인들이 친 삐삐선이 상당히 성가시다
폐헬기장(12:45)
쉼터(12:52)
안부(12:53)
무명봉은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을 따른다
작은 백운산(979.4m:13:15)
그저 밋밋한 봉우리가 지도상에 작은 백운산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가야할 백운산도 있고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봉화지맥길에도 백운산이 있는데
이곳 원주지역에는 백운산이 자그만치 5개나 있다고 하니 외지에서 온 산꾼들은 헷갈린다
백운산은 국립지리원에 기록된 것만도 우리나라에 33개 있다고 하는데 북한에 있는 7개를 제외하면
26개가 되는데 두위지맥 백운산이 가장 높고(영월 1,426.2m), 백두대간 백운산(함양 1,278.6m),
백운지맥 백운산(원주 1,085.7m)순이고 나머지는 1,000m 아래이다
다시 성가신 삐삐선과 잡풀을 헤치며 백운산으로 향한다
백운산 아래에 있는 군부대가 있는 봉화지맥 분기봉(950m)이 보이기 시작한다
925봉(13:18)
좌측으로 꺽어져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른다
구절초가 외롭게 홀로 걷는 산꾼 범여를 반긴다
안부(13:25)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노거수들이 많이 보인다
오르지 못할 봉화지맥 분기봉 정상의 모습
가야할 백운산이 보이고...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뒤돌아보니 몇년전에 홀로 걸었던 영월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철조망 너머로 백운지맥의 주봉인 백운산이 보인다
철조망과 잡목을 헤치며 개고생을 한다...사서 개고생...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벌개미취도 간간히 보이고...
백운산 노드 통신소 정문(880m:13:40)
이곳이 봉화지맥 분기봉이기도 하다
봉화지맥은 치악산 남대봉에서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로 이어지는 백운지맥이 백운산 직전의
분기점(원주시 판부면 신촌리와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의 경계점)에서 북서쪽과 북동쪽 및
서북쪽과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간현리에서 그 맥을 섬강에 넘겨주고 있다.
군부대 정문으로 나오니 군부대 안에 있는 군인들이 예리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지만 큰 제재는 없다
군부대 앞에 있는 헬기장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아침에 먹다 남은 송편으로 점심을 대신하다
시멘트 계단에서 송편을 먹고 일어서는데 바로옆에 뱀 2마리가 나를 째려보고 있는게 아닌가
난 그것도 모르고 느긋하게 송편먹고 물마시고 휴식을 취했으니....
한 넘은 시멘트 구멍사이로 쨉싸게 도망을 가고 한 넘은 나를 보고 경계심을 드러내며 공격자세를 취한다
이게 겁대가리 없이... 스틱으로 둘둘 말아서 던져 버리고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헬기장(13:55)
헬기장에 서있는 준공기념비
헬기장에서 뒤돌아 본 군부대의 모습
차량유개호 좌측으로 가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목도리 방귀버섯
가을의 낙엽속의 땅에 무리지어 자라며 공 모양의 지름 3cm 정도의 어린 버섯은 윗쪽으로
뾰족한 입부리를 가지고 있으며 자라서 겉껍질은 꼭대기에서 기부로 반 정도 찢어져 불가사리
팔 모양의 5~6개의 조각이 되어 목도리 모양이 된다
겉껍질은 육질이고 적갈색이며, 속껍질은 회갈색에서 점차 적갈색을 띠게되고 꼭대기의 구
멍이 터져 내장된 포자가 탄사(彈絲)와 함께 튀어 나오며, 홀씨는 공 모양으로 사마귀점이 있고
연한 갈색이며,탄사도 같은 색이고 홀씨보다 훨씬 굵고 목도리 모양을 둘러싸고 있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백운산 등산로를 만난다
등산로 합수점에 있는 등산 안내도
계속되는 백운산 오름길
백운산 직전에서 우측으로 올라선다
백운산 정상 아래에는 산림청 무선 중계기가 있다
백운산(白雲山:1,087m:14:20)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늘 흰 구름이 끼여있고, 겨울에도 흰 눈이
쌓여 있다고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마치 고기를 겹겹히 쌓아 놓은 것 같다고해서 육산(肉山) 또는 겹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줄기는 아주 넓게 뻗어있어 북으로는 무실리, 남으로는 귀래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대체로 이 줄기를 백운산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아서 백운산 근처에는 이곳 말고도
백운산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아다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에는 백운산을 백운지맥의 주봉으로 잡고 있으며,
대한산경표에서는 치악지맥으로 부른다.
정상에는 큰 못이 있었고 근처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서 못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현재 못재는 찾을수가 없다
주 계곡은 북쪽의 백운계곡으로 대용소골과 소용소골로 나누며, 산 아래에 있는 후리사 마을은 신라 진흥왕 때
서곡스님이 후리사라는 절을 세우면서 생겨난 지명이고, 서곡리의 지명도 스님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나 후리사는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지금은 흔적조차도 없다고 한다
마을 위에 있는 대용소골과 소용소골 갈라지는 지점에서 계류를 건너 대용소골 서쪽으로 30분정도 오르면
용수연 물줄기가 떨어지는 용수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에는 “보름날이 되면 옥황상제의 외동딸이 은하수를 타고 내려와서 용수연에서 목욕을 하는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용이 함께 승천하려다 벌을 받고 이곳에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광려도』『여지도』『1872지방지도』『해동지도』에 백운산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주의 남쪽 30리에 있다” 기록되어 있고,『여지도서』와 『강원도 원주군 읍지』에는
이에 더하여 “꼭대기에 우물이 있다고 쓰여 있다”고 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가리파면 1리등
3곳에서 백운산이 소재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백운산 정상 삼각점(△엄정308 / 1989 재설)
백운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백운산 정상에는 삼각점과 이정표, 원주시와 제천시에 세운 2개의 표시석이 자리를 잡고있다
백운산은 하나이건만 제천시와 원주시가 백운산이 서로 자기의 산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얼마전인가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클린턴, 부시, 오바마대통령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정당도 다르고 사상도 다르지만 오직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는 것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대국답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런데 이 나라는 어떤가... 누구랄 것도 없이 정권만 잡으면 전임 정권을 죽이려고 안달이니...
전임 정권이 못한 점이 있으면 개선하고, 잘한 점이 있으면 계승하는게 마땅할 터인데
무조건 적폐세력이니 뭐니 하는 꼴...자기들을 뽑아준 민초들은 안중에도 없는듯 하니 답답하다
佛家에서는 自利利他 정신을 강조했는데...즉 남을 이롭게 하는것이 자기에게도 이롭다했거늘
이런 저런 착잡한 생각에 젖었다가 백운산을 내려선다
가야할 시간이 멀어 급하게 백운산을 내려선다
급경사의 내림길을 로프를 잡고 내려서니...
안부(14:30)
안부에 있는 등산 안내도
뒤돌아 본 안부의 모습
안부에 있는 또다른 등산 안내도
우측으로 소용소골로 가는 등로를 바라보면서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4:33)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경주최공 상문지묘가 나오고 묘지 윗쪽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경주최공 묘지를 지나서 또다른 무명봉이 니온다
구조이정목도 간간히 보인다
고도차가 별로없어 빠른 속도로 걷는다
한양조공& 부인 영일정씨 묘지(14:38)
안부(14:50)
906봉(14:57)
맘이 급하다...생각보다 길은 멀고...
상재(880m:15:10)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서 충북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 상학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정표(→백운산 2.3km ,오두봉 1.3km, ↓상학동 임도 1.3km)가 있는데 오두봉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은 희미하고 상학동 임도로 내려가는 길은 뚜렸하여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할 구간이다.
제천시 백운면에 있는 덕동리(德洞里)는 구수애에서 상학동까지 집들이 산재되어 있는 산간 마을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교적 낮은 고도에 위치한다. 자연 마을로는 구수아, 덤바우, 오두재
마을 등이 있다. 구수아 마을은 구수애라고도 불리며, 상학동과 운학리에서 흘러 오는 두 냇물이
마을 앞에서 합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덤바우 마을은 더미로 된 마위가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오두재 마을은 까마귀의 머리처럼
생긴 고개(오두재) 밑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상재를 지나 무명봉이 나오고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길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부드러운 사면길을 지나니...
방화선 임도처럼 생긴 넓은 임도에는 싸리나무가 주인공이다
안부(15:13)
다시 오르막이 이어지고...
기이하게 생긴 노거수
달리다시피 빠르게 걸어간다
오두봉(烏頭峰:964.6m:15:23)
원주시 판부면과 흥업면, 제천시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고
정상에 묵은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갈 길이 바빠서 찾는걸 포기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지명의 유래는 산 아래에 있는 오두마을에서 보면 까마귀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오두마을이 있는 덕동리는 옛날 마을이 생기기도 전에 어떤 도인이 덕을 쌓으려고 수양하던 곳에 마을이
터를 잡아 덕골이라 하였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동리(德洞里)가 되었다고 한다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이 우거진 등로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급하게 내려선다
오두재(烏頭峙:732m:15:38)
이정표(→백운산 5.3km, ↑흥업면, ←십자봉, ↓덕동임도 0.4km)가 서 있는데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와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원덕동(오두마을)에서 흥업면 매지리 전어치 마을로 이어진다
전어치(회촌)마을은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여사가 살았던 곳으로 회촌(檜村)은 원래 전나무가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으로 `전어치마을'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바꾸면서 전나무 회(檜)자를 따서 회촌마을이 됐다.
작가 박경리선생이 1998년부터 2008년 5월 타계시까지 생활했던 집 옆에 토지문화관이 지어졌고 회촌 민속관,
매지농악 전수관, 흙집 학교 아쉬람, 천연 염색학교 솟대촌이 있다.
힘들게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폐헬기장(15:58)
872.7봉(16:15)
삼면 경계봉 정상의 모습
삼면 경계봉(939m:16:18)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귀례면, 충북 제천시 백운면이 맞닿은 삼면 경계봉으로 정상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우측에는 이정표(←십자봉 1.9km, ↗대양안치 3.6km)가 있는데 북쪽은 행정구역이
흥업면에서 귀례면으로 바뀐다
쉬지않고 빠른 속도로 가다보니 돌탑이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천등지맥 분기봉이다
천등지맥 분기봉(967.5m:16:25)
정상에는 이정표와 돌탑,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만든 천등지맥 분기봉 표지판이 걸려있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천등지맥 방향으로는 십자봉이 있어서 그런지 산꾼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등로도 뚜렸하나 산촌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백운지맥길은 희미하다
천등지맥 분기봉에 있는 이정표
천등지맥(天登支脈)이란
한강기맥 청량봉 지나 운무산 못 미쳐 남쪽으로 분기한 백덕지맥 태기산 지나 서남쪽으로 재분기한
영월지맥 향로봉 지나 매봉산 못 미쳐 남대봉에서 남쪽으로 재재분기한 백운지맥 백운산 지나 미륵산
못 미쳐 십자봉에서 재재재분기한 천등지맥은 시루봉, 오청산, 천등산, 인등산, 부대산과 사우양산을
지나 남한강으로 맥을 다하는 길이 44.4km 원주, 제천 지역의 지맥으로 좌측으로 제천천을 우측으로
남한강을 흐르게 한다.
천등지맥 개념도
간간히 보이는 신경수 선생님 시그널
백운지맥길은 상당히 희미하다
오늘 지맥길에는 유난히도 비실이부부님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로프가 있는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백운지맥 등로에서 바라본 십자봉의 모습
십자봉(十姉峰 촉새봉 984.8m)은 백운산(1,087m)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솟아
있는데 십자봉이라는 산이름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고, 덕동리 주민들은 촉새봉이라 부른다.
촉새봉이라는 산 이름은 이곳 주민들이 예전부터 조상 대대로 불러온 이름이며 십자봉이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지형도를 만들면서 자신들의 애조인 십자매로 바꿔치기 한 것 같다.
안부(16:35)
이정표(←십자봉 2.0km, →산촌마을3.6km, ↑천은사 2.5km)가 있고 지맥길은 산촌마을로 이어진다
천은사(天恩寺)는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백운산(白雲山, 높이 1,087m) 등산로 초입의 계곡가(천은사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백운산 십자봉 아래에 고려시대
때부터 승려들이 수행하던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 사찰은 1900년대에 폐사되었다 전해진다.
1960년대에 홍성익이라는 처사가 백운암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던 중 천인(天人)이 나타나 병을
고쳐주며 저 아래 물이 양쪽에서 만나고 산 왼편으로 미륵불이 있는 곳에 절을 지으라 했다 한다.
홍처사는 그 말에 따라 초막을 지어 천은사(天恩寺)라 이름 짓고 수행하며 침술을 통해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한다
무명봉(16:42)
물개바위(?)...범여의 생각중에서
암릉길을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나무가지 사이로 십자봉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산촌마을 갈림길(16:47)
암릉구간 오르기 직전에 암릉 아랫쪽으로 산촌마을 가는길 표시가 있는데 길은 전혀 안보인다
우측의 암릉으로 올라서는데 겨울철에는 상당히 위험할 듯 싶다
산촌마을은 원주시 귀래면 운계리 삼태미마을로 백운산을 배경으로 하여, 좌우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분지로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산골 오지마을로서 현재 원주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에 둔덕(언덕)이 많이 있다하여 달둔으로 불려지다가 변화되어 다둔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의 지명유래는 마을의 지명유래는 시대를 정확히 확인 할 수는 없으나,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구설로는 다둔마을은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금광을 운영하던 사업주는 많은 인부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금광운영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고작 금 닷돈 밖에 않된다 하여 닷돈으로 불리웠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때 둔덕(언덕)이 많이 있다하여 달둔으루 불려지다가 변화되어 다둔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암릉구간을 곡예하듯이 걸어간다
796봉(16:50)
로프를 부여잡고 암릉구간을 내려선다
암릉구간의 좌측 부분으로 내려선다
코뿔소 바위(16:56)
암릉구간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데 아랫쪽으로 내려다보니 오줌이 저릴정도로 아찔하다
곡예사가 된듯한 기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천등지맥 능선...언제쯤 저 길을 걸어보나
계속되는 아찔한 구간
암릉구간을 지나고 드디어 편안한 등로에 들어선다
갈림길(17:08)
좌측으로는 산촌마을 가는 길이고 백운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사면길로 가니...
앙증맞은 암릉을 지나 내려서니 동막봉이 나온다
동막봉으로 내려서니 우측의 급경사에 로프가 보인다
동막봉(588m:17:10)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 동막동 윗쪽에 있는 봉우리인데 동막골은
마을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서 동막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동막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로프가 처져있는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597봉(17:15)
다시 암릉길... 상당히 조심스럽게 걷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원주시 귀래면 운계리의 모습
운계리(雲係里)는 동쪽으로 십자봉이 있고, 남쪽으로 갈미봉 밑에 자리한 산촌로 자연마을로 가맛골, 느릅재,
다둔, 뒷버덩, 아홉사리, 점말이 있다. 가맛골은 전에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느릅재는 길게 늘어진 고개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다둔(多屯)은 산골짜기 또는 산의 둔덕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뒷버덩은 운계리 뒤의 버덩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아홉사리는 아홉사리 고개 밑에 있다 하여 아홉사리라 불린다. 점말은 전에 옹기점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다시 위험한 내리막길
헬기장(535m:17:18)
헬기장을 갈림길이 나오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무심코가면 놓치기 쉬운 곳이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급경사의 내리막길
심통마을 경고판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반갑구먼
다음 구간에 가야할 미륵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암봉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길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니...
묘지(17:30)
우측의 계곡으로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 작은 양아치가 나온다
작은 양아치(小兩峨峙:325m:17:32)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동쪽에 위치한 고개로 귀례면 운계리에서 흥업면을 넘어가는데 흥업 쪽의 큰 고개를
큰양아치, 귀래 쪽의 작은 고개를 작은 양아치라고 부른다. 고개가 마치 말안장 모양이라고 해서 양안치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양어치라는 주장도 있다.
고구려왕의 어거가 매지리에 머물고 신라왕의 어거가 운계리에 머물러서 그 경계인 이곳의 지명이
양어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1872년지방지도』에 양안치로 표시되어 있다.
작은 양아치 고개에 있는 청원 휴게소는 이 고개 아래로 원주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19번 4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운계터널이 생기면서 휴게소는 망해버렸는지 문을 닫아버려 모든게 얼씨년스럽기만 하다
해는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고개 윗쪽에는 차량이 전혀 다니질 않으니 히치할 일도 없다
작은 양아치에서 바라본 원주로 이어지는 19번 도로의 모습
후배 산꾼들이 인정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히치 전문가(?)인 범여도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니 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19번 구 도로를 따라서 귀래리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오랫만에 지맥길을 혼자 걷다보니
희말라야 로체 등정에 나선 진권 아우 생각이 간절하다... 그 험한 곳에가서 밥이나 굶지 않는지...
지맥 산행을 종료하고 10분정도 걸어내려 오니 백운령 모텔과 가든이 보이는데 영업을 안하는지 불이 꺼져있다
백운령 버스 정류장(17:45)
버스 정류장이 있는걸 보니 버스가 다닌다는 얘기인데.. 버스 시간을 알 수가 없다
동막골 버스 정류장(17:55)
날은 어두어지기 시작하고... 차량 한 대 보이질 않는다
귀래 버스정류장(18:05)
이곳이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貴來里)인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으로 동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자연마을로 고청, 곰네미, 동막동, 버덩이 있는데 고청은 귀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곰네미는 뒷너머에 있는 마을을 뜻하며 동막동은 평촌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곰네미 남쪽에 있다.
버덩은 마을이 언덕진 곳에 있는 들과 같아서 유래된 지명이다.
귀래2리 윗말 입구도 지난다
귀래2리 마을 소개 안내판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이곳에 머물다 가셨서 귀한 분이 오셨다는 뜻에서 귀래(貴來)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며
큰 양안치와 작은 양안치 사이 마을 뒷산으로 곰이 넘어 다녔다고 하여 붙혀진 곰내미, 말안장을 닮았다고 붙혀진
양안치, 윗말, 아랫말, 동쪽 골짜기 마을인 동막골에 약 75가구가 정답게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차량이 지나갈까 하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데 윗말 부락에서 승용차 한대가 나오는게 아닌가
무조건 손을 들고 사정을 하니 차를 세우는데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이 분은 서울 사시는 분인데 내일이 추석이라 고향집에 왔다가 원주에 뭘 사러 가는 중이란다
이런 저런 사정을 하니 원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태워 주시는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일부러 원주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태워주신 고마운 분 때문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19시 15분경이다
19시 40분 서울가는 버스표를 사놓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션한
캔맥주 2개와 새우깡 한봉지를 사서 버스에 오른 다음에 캔맥주 2개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니 버스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올림픽대로로 들어서고 있다
첫댓글 좋은곳을 다녀 왔네요.치악의 서남 능선은 산꾼들을 불러 들이기에 멋진곳이라더군요. 건승하십시요.
형님 광양 호남정맥 백운산이 1217미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