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긍휼
제목 : 긍휼 없는 신앙, 긍휼 없는 심판
성경 : 약 2:8~13
찬송 : 218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31231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약 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약 2: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그리도 나쁜 일입니까? 야고보는 그저 한 두 마디 경고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율법을 꺼내듭니다. 다른 요구들은 다 지킨다고 해도,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면 그것은 결정적인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그것이 그렇게도 심각한 죄인가요? 그렇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대하고 차별하는 태도는 긍휼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어기는 것입니다. 곧 긍휼의 법입니다.
약 2:8 정말로 여러분이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하신 성경을 따라 가장 중요한 율법을 완전히 이룬다고 하면, 여러분은 잘하는 것입니다.
약 2:9 그러나 여러분이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차별한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율법이 여러분을 율법 어긴 사람으로 들추어낼 것입니다.
약 2:10 누군가가 율법을 다 잘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헛디딘다면, 그는 율법 전체에 대해서 어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약 2:11 “배우자 아닌 사람과 잠자리를 하지마라.”하신 분이 또한 “사람을 죽이지 마라.”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배우자 아닌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죽이면,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약 2:12 여러분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율법을 통하여 장차 심판받게 될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십시오.
약 2:13 한결같은 사랑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없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사랑은 심판을 눌러 이깁니다.
긍휼있는 믿음
약 2:8 정말로 여러분이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하신 성경을 따라 가장 중요한 율법을 완전히 이룬다고 하면, 여러분은 잘하는 것입니다.(새한글성경)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 곧 세상적인 부와 가난의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어기는 것입니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5절에서 밝힌 대로,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은 부러 가난한 자를 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우습게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갑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택하시는 주권적 은혜와 ‘선택’을 거스르는 태도일 뿐 아니라, 그분께서 그토록 오랫동안 그분의 백성들에게 강조하여 명하셨던 이웃 사랑의 계명, 곧 그분의 백성에게 요구하신 그 ‘뜻’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여기서 율법을 다룹니다. 세상적인 기준을 받아들여 그 기준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만이 아니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도 거스르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요약하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가르치신 계명입니다.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웃 사랑의 법은 구약 율법의 핵심적인 내용이면서 동시에 ‘그 나라 법’(8절)(개역개정/최고의 법, 개역한글/최고한 법)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법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구약의 율법을 이웃 사랑의 법으로 요약하셨고, 그분이 그 이웃 사랑의 법대로 사심으로써 그 법을 성취하셨으며(참조, 마 5:17~20; 롬 10:4), 또한 그분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종말의 하나님의 교회에게 이웃 사랑의 법을 새롭게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도 야고보는 이 말씀을 "최고의 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로마의 황제가 제정한 법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황제가 제정한 법은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감히 이 세상에 그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최고의 법입니다. 지고의 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말씀을 어긋나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사람이 율법사인 것을 아시고 그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더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는 잘도 대답했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인정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렇게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그러자 율법사가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랑해야 할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있는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옷도 벗겨졌습니다. 실컷 맞아서 인사불성이 된 채 길바닥에 누워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야만 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눈앞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그 사람이 우리가 사랑해야 하고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눅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성경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말을 고르라면 ‘이와 같이’라는 말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하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와 같이’입니다.
참 사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웃 사랑하기를 우리의 몸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우리의 몸 돌보기를 저절로 터득합니다. 배고프면 먹입니다. 추우면 옷을 입힙니다. 병들면 약을 먹이기도 하고 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이와 같이 돌보듯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으면 그렇게 보살펴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25:4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곧 예수님을 돕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13:2∼3에 보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돌보아줄 때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도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또한 롯도 그러했습니다.
야고보는 8절에서 ‘지키면’ 즉 ‘성취하라’(텔레이테)고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이를테면 구약의 어떤 율법 조항이나 규례를 단편적으로 ‘지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이루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긍휼없는 믿음
약 2: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약 2:9 그러나 여러분이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차별한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율법이 여러분을 율법 어긴 사람으로 들추어낼 것입니다.(새한글 성경)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결코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을 사도 야고보는 "죄"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외모를 많이 갖춘 사람도 있고, 반면에 외모를 많이 갖추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부자를 만났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와 친하게 되면 많은 덕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돈이 필요할 때는 돈을 빌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필요하면 보험도 들으라고 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자식들의 취직부탁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만 만나면 환한 미소를 띠고 인사도 잘합니다. 그리고 온갖 친절을 베풉니다. 이런 것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2:4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반대로 가난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와는 친해보았자 별로 덕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도움을 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도와주기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성가십니다. 그래서 애써 못 본 척 외면해 버립니다. 또 꼭 만나야 될 일이 있으면 아예 눈 아래로 보면서 괄시해 버립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명백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에 위반되는 행동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러한 사람을 범죄자로 단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아니 내가 도적질한 것도 아니고, 간음을 행한 것도 아니고, 살인을 행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사람의 외모를 좀 보고 차별적으로 대했을 뿐인데 그것이 무슨 큰 죄가 됩니까?"
이런 불감정을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단호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예를 들어서 설명해 봅니다. 여기에 큰 거울이 하나가 있습니다. 쇠망치로 거울의 정 중앙을 내리쳤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큰 거울 전체가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깨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율법의 근본적인 정신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은 사랑이라는 기본정신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조항을 어겼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다른 율법도 다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한 가지 실례를 통해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율법을 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하십니까? 나는 간음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도적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거 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부모님께 효도했습니다. 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단 한 가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만 어겼을 뿐인데 내가 율법을 범한 자라니요? 정말 섭섭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한 가지를 범하게 되면 그것 역시 율법을 범한 것입니다. 세상법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일평생 동안 나라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했다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에 실수해서 그가 죄를 범하게 되면 그는 죄인입니다.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야고보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을 결코 가볍게, 시시한 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 한 가지 만으로도 충분한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외모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대할 때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면서 그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외모를 보고서 가난하다고 해서 괄시하고 부자라고 해서 아니꼽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우리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이기는 긍휼
약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2:12 여러분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율법을 통하여 장차 심판받게 될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십시오.
약 2:13 한결같은 사랑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없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사랑은 심판을 눌러 이깁니다.(새한글성경)
야고보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셨으니까, 우리도 누구를 대하든지 그 마음을 가지고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우리말 성경은 원문을 직역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대로는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리를 파악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두 권의 책이 놓여있다고 했습니다. 한 권은 생명책입니다. 또 한 권은 행위의 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에는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위의 책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들이 적혀 있겠습니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사도 야고보는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과 말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만일 그런 것이 행위의 책에 깨알같이 모두 적혀있다면, 우리는 그 책이 펼쳐지는 순간 절로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범죄자로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치스러워서 감히 천국 문을 향하여 걸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절로 우리의 발걸음은 그 반대 방향으로 옮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모세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롬8:1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 관한 행위의 책에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깨끗이 씻은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기록이 되어 있다면 이 말씀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음.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
그 책은 자동적으로 우리 눈앞에서 덮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큰 감격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 천국을 향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2절에 기록된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따라서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모를 조금 갖추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결코 낙심하거나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에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입니다. 천국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면서 살라는 뜻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긍휼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똑같은 원리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고서, 말도 그렇게 하고 행하기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13절 말씀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했으니까 긍휼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긍휼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율법적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행위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다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이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입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행위의 책은 곧 닫쳐지고, 우리는 할렐루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그 자녀 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무궁토록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의 결론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서 우리도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눈이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듯이 누구를 대하든지 우리도 그 마음을 품고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괄시하지 마십시다.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부자라고 해서 꼴 보기 싫어하지 마십시다. 부자도 역시 우리가 모르는 남모르는 무거운 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들도 우리가 긍휼을 품고 대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가운데는 사랑의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품고 누구를 대하든지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보면서 예수님 앞에 내가 서 있는 심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날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