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4, 2020년 1000만대 돌파
전기차에 보낸 토요타 ‘경고장’
전기로 63km, 연비 15.6㎞/ℓ
5000만원대 가격은 부담스러워
토요타 라브4 PHEV(왼쪽)와 테슬라 모델Y [사진출처=토요타, 테슬라]
“전기차 때문에 망했다 소리 들었는데”
전기차 때문에 존재감을 잃어가던 일본 하이브리드카(HV)가 반격에 나섰다.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로 예상보다 일찍 그리고 강하게 시작된 전기차 시대가 충전 고통과 화재 불안으로 주춤한 사이 존재감을 다시 부각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반격 선봉에는 일본차 대표주자이자 ‘하이브리드 명가’ 토요타가 섰다. 이번에는 가솔린 성향에 가까웠던 HV에서 전기차 성향에 가까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라브4(RAV4) PHEV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분야에서도 강자였다. 하이브리드가 워낙 유명해서 존재감이 덜 알려졌을 뿐이다.
토요타가 국내 출시한 PHEV인 프리우스 프라임 [사진출처=토요타]
토요타는 지난 2017년 브랜드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프리우스 프라임을 한국에 가져왔다.
프라우스 프라임은 기름 1ℓ로 21.4km를 달리고 1회 전기 충전으로 40km를 달릴 수 있다. 당시로서는 최상급 성능을 자랑했다.
다만, 파격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인과 회생제동을 위해 포기했던 승차감 등으로 국내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도 무너졌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거친 토요타는 햇수로는 6년 만에 두 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가져왔다.
무너진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글로벌 베스트셀링카이자 하이브리드 SUV 분야에서 ‘넘버1’으로 인정받는 라브4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편안한 도심형 SUV 시대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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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라브4 PHEV 주행 장면 [사진출처=토요타]
라브4는 토요타 SUV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다. ‘SUV=프레임 바디’가 공식처럼 여겨지던 1994년 모노코크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한 SUV이자 ‘승용차 타입 스몰 SUV’ 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라브4는 주말에는 레저용으로, 주중에는 편안한 출퇴근용 도심형 SUV를 원하는 소비자를 공략했다.
차명도 ‘Recreational Activity Vehicle with 4-wheel drive’라는 의미다. 라브4는 SUV 격전장인 미국에서 베스트셀링카가 됐다.
토요타는 2010년대 중반 SUV 대세가 형성된 뒤에는 도심용 SUV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이름값에 어울리는 4륜구동 성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5세대 라브4 개발 콘셉트는 도심형 SUV에 어울리는 세련미와 정교함은 물론 4륜구동이 주는 강인함과 편안함이다. ‘RAV4’ 의미도 개발 목적에 맞게 ‘Robust Accurate Vehicle with 4-Wheel Drive’로 변경했다.
2019년 출시된 5세대 라브4는 ‘1000만대 신화창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글로벌시장 누적 판매대수는 지난 2020년 1000만대를 돌파했다. 2021년까지 누적 판매대수는 1192만대에 달했다.
벤츠, BMW, 폭스바겐이 주도하는 국내 수입차시장에서도 선전했다. 지난해까지 국내 판매대수는 2만1923대다. 이 중 가솔린 모델이 1만207대, 하이브리드 모델이 1만1716대다.
강렬하면서도 편안한 ‘외강내유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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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라브4 PHEV 후면 [사진출처=토요타]
지난 2019년 국내 출시된 뒤 현재까지 판매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도 출시된 5세대 라브4는 기존 모델보다 더 다부진 매력을 발산한다.
디자인 콘셉트는 옥타곤(8각형) 한 개는 누운 형태로 차체 앞에, 다른 한 개는 세워진 형태로 차체 뒤에 90도로 교차한 ‘크로스 옥타곤(Cross Octagon)’ 형태다.
가로 옥타곤으로 와이드한 전면부, 세로 옥타곤으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는 디자인 전략이다.
기존 모델보다 커지고 메쉬 타입으로 꾸며진 다각형 라디에이터 그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보닛 안쪽으로 파고든 LED 헤드램프는 강렬하다.
오프로더처럼 다각형 디자인의 휠 아치는 오프로더 성향을 보여주면서 튀는 파편으로 발생하는 차체 손상을 예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리어 램프 디자인도 뭉뚝한 창을 닮았던 기존 모델과 달리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또 직선 가로 바로 두 개의 리어램프를 연결시켰다.
측면에서 후면으로 연결되는 차체 밑 부분의 블랙가니시, 후면 하단부의 스키드와 듀얼 머플러도 다부진 이미지에 한몫한다.
전장x전폭x전고는 4600x1855x1685mm다.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2690m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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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라브4 PHEV 실내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라브4 PHEV 실내는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더 스포티하게 다듬어졌다. 시트에는 스포츠카나 스포츠세단에 적용하는 레드 스티칭 시트를 적용했다. 스티어링휠에 부착돼 달리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패들 시프트도 추가했다.
디지털 편의성도 향상했다. 12인치 대형 풀 컬러 멀티 인포메이션 계기판과 팝업형태 8인치 터치 방식 센터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기존에는 각각 7인치에 불과했다.
네이버 클로버와 연동된 인공지능(AI) 음성인식으로 온도조절, 내비게이션, 라디오 등의 기능을 작동할 수 있다. 애플 카플레이는 무선으로 연결된다.
한국에 출시된 토요타 차량 중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도요타 커넥트’도 처음으로 채택했다. 앱을 통해 탑승 전 미리 목적지 전송, 주차 위치 찾기 등이 가능하다. 1시간 마다 주행거리를 모니터링한 뒤 소모품 교환시기도 알려준다.
패밀리 SUV로 사용하는 만큼 뒷좌석 편의성에도 공들였다.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해 시트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리마인더 기능도 탑재했다.
공간 활용성도 우수하다. 폴딩 시트를 적용해 뒷좌석을 적재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리어 시트 밑부분에 배치했다. 트렁크 공간에는 60L 캐리어 4개와 9.5인치 골프백이 여유롭게 들어간다.
‘몸짱 파이터’ 라브4 PHEV, 옥타곤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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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라브4 PHEV 계기판 [사진출처=토요타]
시승차는 2.5ℓ 4기통 엔진과 전·후륜 모터 조합을 통해 최고출력이 306마력에 달한다. 라브4 HV(218~222마력)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발산한다.
18.1㎾h의 고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 1회 충전으로 63km를 주행할 수 있다. 충전구는 완속 충전용 AC단상을 적용했다. 32A(6.6㎾) 완속 충전기 사용 때 완충까지 2시간 37분 소요된다.
복합연비는 15.6㎞/ℓ(19인치 타이어)로 라브4 HV(18인치, 15.1~16.1㎞/ℓ)에 맞먹는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일반 하이브리드보다 배터리 무게가 더 나가 연비가 나쁠 때가 많지만 라브4 PHEV는 다르다.
운전석 개방감은 우수하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낮게 배치돼 시야가 넓다. A필러와 옆 유리가 만나는 꼭지점 부분 삼각형 공간도 유리로 처리, 개방감을 향상시켰다
미국 소비자 성향에 맞춰 크게 만든 사이드미러는 도어패널 쪽에 배치됐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공조장치 다이얼과 기능 조작 버튼은 큼직큼직하다. 멋보다는 조작 편의성을 추구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를 반영한 결과다. 다만 투박하게 보이는 단점이 있다.
토요타 라브4 PHEV 적재공간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주행모드는 엔진의 개입 없이 전기만으로 주행하는 ‘EV모드’, 배터리 충전량을 유지하면서 전기모터와 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HV모드’가 메인이다.
EV모드로 주행할 때 엔진출력도 함께 사용하는 ‘오토 EV/HV모드’, 배터리 충전량이 EV모드로 주행할 수 없을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엔진 구동력으로 충전하는 ‘CHG HOLD’도 있다.
EV모드에서는 조용하지만 가솔린차 성향이 살짝 느껴진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전기차처럼 바로 튀어나가지 않고, 반박자 쉰 뒤 속도를 높인다. 감속할 때 울컥거림도 없었다. 기존 프리우스 프라임의 단점을 해결한 셈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63km. 출퇴근용도로 사용한다면 그냥 전기차가 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서울시 승용차 1일 평균 주행거리는 31km 수준이다. 한번 충전하면 2일 정도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달릴 수 있다.
‘HV모드’는 달리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쭉쭉 지치지 않고 속도를 높인다. 도심형 SUV에서는 과하다 여겨지는 306마력의 최고출력이 본격적으로 발산된다.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 라브4 HV와 달리 퍼포먼스를 향상한 셈이다. 패들시프트와 레드 스티칭을 채택하고, 스티어링휠을 라브4 HV보다 묵직하게 세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포(E-Four) 시스템은 곡선 구간에서 차체 안정감에 기여한다. 전자식 무단변속기(e-CVT)는 부드러운 변속을 통해 승차감을 향상시켜준다. 오프로드를 안전하게 주행하고 싶다면 트레일 모드 버튼을 누르면 된다.
토요타 라브4 PHEV 주행 [사진출처=토요타]
가격은 부담스럽다. 5570만원으로 4000만원대에 판매되는 라브4 HV보다 비싸다. 6000만~8000만원대에 판매되는 수입 SUV PHEV보다는 저렴하지만 체급이 다르다.
대신 토요타의 장점인 뛰어난 내구성과 연비, 출퇴근용으로 쓰기 충분한 전기모드 덕에 탈수록 유지비 부담은 줄어든다.
라브4는 하이브리드에 이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거듭나면서 기름기는 더 빼고 힘은 세진 ‘몸짱 SUV’가 됐다.
혼다 CR-V, 지프 컴패스, 폭스바겐 티구안, 기아 스포티지, 현대차 투싼 등과 ‘옥타곤(격투기 경기장)’ 혈투를 벌인다.
아울러 라브4 PHEV는 ‘하이브리드 제왕’ 토요타가 모델3와 모델Y로 전기차 전성시대를 연 테슬라에 보내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토요타가 주도했던 하이브리드 대세에 큰 타격을 준 전기차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엿보인다. 타깃도 충전 고통과 안전성 문제로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소비자들이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