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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믿음 깨끗한 삶
마태복음 5:21-37
지금으로부터 한 25년 전, 꽤 오래된 이야기가운데 아직도 제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주필로 있던 김대중 씨가 쓴 사설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강남은 유흥의 천국이다’는 제목 하에서 그는 많은 시민들이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만나서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식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2차로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3차로 카바레를 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녀 둘씩 짝을 져서 모텔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다음날 일어나서 사우나에 가서 몸을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강남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면 주말을 아주 잘 보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뒤끝이 좋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토요일에 그렇게 놀다가 주일에 그럴듯하게 옷을 차려 입고 교회에 간다는 말은 그런 사람들의 많은 숫자가 교인이라는 것을 점잖게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그때 어느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때보다 나빠졌으면 더 나빠졌지 조금도 좋아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승려, 목사, 신부 등 성직자와 수도자 등 직업 종교인들이 저지른 범법행위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한다는 통계가 최근에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8일 2008-2010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한해 발생한 형법·특별법 사범 중 직업이 ‘종교인’에 해당하는 건수는 2007년 4413건, 2008년 5123건, 2009년 5409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이 숫자는 종교인 70명중 1명이 범죄자라는 셈입니다.(2008년 기준)
이것은 일반 시민들의 범죄비율인 20명당 1명꼴인 것과 비교하면 낮은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종교인 범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폭력 관련 범죄로 전체의 20%가량에 달하고 폭력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것이 사기라고 합니다.
퍼센테이지는 낮지만 강간 성매매 마약 등 강력범죄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그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범죄행위가 날로 늘어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고, 종교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종교인들, 성직자들이 바로 서야 합니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래 물이 절대 맑을 수 없습니다.
종교인들의 범죄가 늘어나면 결국 일반 신도들의 범죄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할 때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도덕적 형편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장관들이나 국무위원들 인사 청문회를 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위장 전입,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등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청문회를 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니까, 여권일각에서는 그런 것은 아예 덮어두고 업무능력만을 평가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 다 따지고 보면 장관이나 국무위원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돈 있고 배운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있는데도,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저는 고개가 가로저어집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저도 돈이 있었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돈이 없어서 못 한 것이지 돈만 있었다면 저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불법적인 일들이 너무 일반화되었기에 그런 것을 하지 않은 고위 공직자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맞는 불법적인 일을 하고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게 맞는 불법적인 일을 합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공중파 티비에서조차도 낯 뜨거운 모습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공식적인 한 해 낙태건수가 출생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인 낙태까지 합치면 신생아수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키우기 어려워서 낙태를 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결혼 이전의 잘못된 관계를 통하여 생긴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직장인들이 하는 이야기가운데 애인 없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배우자 외에 따로 애인이 있어야 그것이 정상이라는 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인데요, 저는 이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 정말 헤 깔립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영향을 받고 물들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바르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사회에 휩쓸려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보훈의 일부입니다.
이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성도들이 엄격한 도덕적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상보훈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헌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라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깨끗한 삶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간다고 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보다 더 낮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5:20)
이 말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5:48)
물론 글자 그대로 온전하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면서 우리 삶의 모습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구별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고 오늘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지적한 것이 김대중 논설위원의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없고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똑같이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할 것 다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른 것은 주일날 교회 가는 것 그것 한 가지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은 한 가지 더 지적을 받고 비판을 받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는 비판입니다.
이제 정말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땅에 희망과 비전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지금까지는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살인에 대하여, 간음에 대하여, 맹세에 대하여,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에 대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새롭게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를 보면, 제가 자라난 교회의 배경 때문에 방언이니 기적이니 뜨겁게 불로, 불로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장한 교회의 배경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단적인 배경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인 배경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고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데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많이 바뀌어져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인식은 마음의 죄는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고 웬만한 불법도 그냥 이해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생각이 우리 속에 들어오다 보니까 우리도 간음에 대하여 매우 관대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관대해졌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관대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간음을 쉽게 범하고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각은 사회적인 가치관 때문에 너무 잘못되어 있습니다.
간음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죄에 대하여 철저한 인식보다는 가볍게 생각하고 대충 생각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쉽게 짓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시각을 빨리 주님의 말씀으로 교정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창문을 통하여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창문을 통하여 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르게 고쳐야 하고 흐릿하게 생각한 것이 있으면 더욱 철저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기준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시각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교정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작은 일에서부터 범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세를 고쳐서 작은 일에서부터 조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아주 작은 것을 강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면서 살인 즉 사람을 죽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인도 물론 문제가 되지만 그것에 앞서서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하는 것,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이런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인은 처음부터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노하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물론 간음하는 자도 있지만 처음에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고 계속 그 생각을 하다가 간음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는 항상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문제가 쌓여서 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 작은 일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고 작은 일에서부터 늘 조심하고 작은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일에도 불의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작은 일에 조심해야 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범죄 하지 않아야 하고, 작은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율량동 모 은행 앞에서 어떤 사람이 핸드폰을 붙잡고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거기 어디야’ 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응, 여기 부산이야. 일이 있어서 부산에 내려왔어.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그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확인할 수 없으니까 대충 거짓말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전화 받으면서 ‘응 여기 회사야’ ‘나 좀 멀리 나왔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고 그런 사소한 거짓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최근에 김창수 원로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도 부흥회를 많이 다녔는데 한 순간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흥회를 하다보니까 은혜를 끼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하고 자꾸만 덧붙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부흥회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그 목사님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게 잘못한 것이 아니고 은혜를 끼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그렇게 잘못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흥회를 그만 두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간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상한 책이나 영화나 비디오 보는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간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을 조심하고 상대방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죄에 대하여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드리는 것은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예배도 중단하고 가서 그 형제와 화목 하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네 백체중 하나가 범죄 하면 그것을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정말 찍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그 죄를 빨리 처리하고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죄에 대하여 미련을 갖고 그 죄를 처리하는데 미적미적하다가 죄에 빠지고 더 큰 범죄에 빠지고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대표적으로 다윗이 간음죄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다가 살인죄까지 범하지 않았습니까?
죄를 회개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줄 압니다.
죄를 사랑하지 마시고, 죄를 붙잡지 마시고, 죄를 빨리 처리하여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더 큰 죄로 발전하기 전에 빨리 회개하시고 말씀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한 마음이요 정직한 영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깨끗한 믿음과 깨끗한 삶을 지켜가는 일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최선을 다하여 그런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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