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은 이신칭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24.03.24 주일오전설교 로마서 4:13~25 정리(1)
로마서 4장은 구약의 이신칭의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놀라운 구약의 구원에 원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구약은 제사와 성전이 존재하면서 펼쳐지니까 신약과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은 구약과 신약의 이신칭의와 은혜언약이라는 구원의 원리가 다른 것처럼 차이성을 먼저 강조하면서 접근한다. 그로 인해 구약을 등한시하거나, 신약을 등한시하는 여러 혼란을 겪는다. 결국 신인 협력주의라고 하는 인간의 공로를 통해서 마치 구원이 만들어지거나, 유지되고 보태지는 것처럼 공로주의적인 구원관이 많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
로마서 4장 앞부분을 통해서는 신구약의 이신칭의와 은혜언약이 하나이며 동일하다는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구약의 많은 의식들을 들여다보면서 과연 이런 구약에 다양한 내용들이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것으로써 해석되는지 4장 후반부를 살펴보자.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롬 4:14)
만약 신구약을 극단적으로 쪼개거나 분리시키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 된다고 아주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헛것이 될 수도 있다. 분명히 본인은 믿음이 있다고 우기고 자랑한다. 그렇지만,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가 고백하는 신앙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거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천만이나 되는 성도가 있다고 자랑한다. 세계 10대 교회의 절반이 한국에 있다고 자랑한다. 엄청난 신자들이 한국 교회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성경을 믿느냐고 질문하게 되면 성경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자신의 신비 체험과 황홀경과 이상한 은사 체험 등 종교적인 신비로운 경험들을 마치 신앙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다.
꿈에서 예수님을 봤다. 환상 속에 예수님을 봤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오만 가지 신비로운 경험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면서 이게 기독교가 말하는 신앙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무당이 신을 만나면 떨기 시작하고, 갑자기 막 이상한 소리로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를 내고, 또 미래를 맞힌다고 점을 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영매술과 접신행위와 같은 모습으로 기독교를 소개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것을 신비주의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번 성도들이 빠지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부분 맞기 때문이다. 무당들의 행위들이 맞는 부분도 있다. 또, 점을 치는 사람들이 맞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들이 안 맞으면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천개를 이야기하면 그중에 몇 가지가 맞고, 또 맞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사탄과 악한 영이 그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인다. 이것을 성경에서 분명히 우리에게 경고한다. 세상 사람들이 묘 자리를 옮기고, 오만 가지 유교 문화나 불교문화라든가, 타종계에서의 여러 가지 미신적인 행위들이 일부 맞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미신적 샤머니즘 행위이다. 절대로 이런 행위와 종교적 현상을 기독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타종교에도 있고, 무속신앙에도 있고 또, 기독교 안에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도 존재한다. 이렇게 종교적인 어떤 특별한 경험을 마치 기독교의 신앙인 것처럼 주장하면 그의 믿음은 헛것이다.
자식이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절에도 가고, 특이한 산에도 간다. 또, 특이한 돌과 나무를 만지고 섬기고, 해와 달에게 소원을 빈다. 그런 동일한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한 믿음은 헛것이고 구원을 못 받는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선거가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두 번이나 걸친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거쳤다. 아직도 정치 부분들이 안정화가 되어 있지 않다. 극우와 극좌로 아주 극렬한 대립을 하면서 국가와 정치이념이 종교적 영역에 들어와 있다. 한번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들을 거의 신처럼 추종한다. 얼마 전에 테러가 일어난 상황을 우리는 보게 된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감옥에 갇힐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테러적 행위들이 발생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반 정치에 미쳐있기 때문에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상태가 아니다.
정치 이데올로기와 신념에 빠져 자신의 어떤 특정한 정치가 마치 자기 인생의 최고인 것처럼 정치적 우상이 되는 것이다. 종교적 우상도 있지만 정치적 우상도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보호하는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정교 구별과 정교분리의 원칙 속에서 선거의 원칙은 간단하다. 우리는 크리스찬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누가 더 보호하는가? 아니면 누가 더 교회를 더 핍박하는가? 이런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면 된다. 예수님 믿지 않았을 때야 학연과 지연 혈연을 따라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는 선거의 선택도 달라져야 한다.
사탄과 악한 영은 국가라고 하는 무서운 칼의 권세를 가지고, 국가의 법을 가지고 교회를 전멸시킬 힘이 있다. 크리스챤이 된 이후부터는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느 지도자가 어느 정당이 교회에 더 적대적인가 교회에 더 우호적인가 이것만 봐야 한다. 여기까지만 선택하고 그 이상으로 넘어갈 필요 없다. 어떤 정부든지 어떤 정당이든지 교회를 핍박하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반드시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정치를 위해서 신앙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국가와 법과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신앙이 위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정치 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이 원하는 정치 국가를 만들어 놔도 절대로 지옥에서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한 믿음은 신앙이 아니며 헛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기복주의 신앙, 신비주의 신앙, 정치 신앙 이 세 가지는 헛된 믿음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가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오직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이신칭의가 신앙이고 믿음이다. 의는 부자가 되고 병 치료 받고 정치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는 무엇인가? 율법을 아담이 어겨서 죽어서 영원히 지옥에서 벌 받아야 하는 죗값이 발생했다. 이 죗값을 어떻게 사함받을 수 있는가? 죄사함의 문제이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 영생할 것이라고 하는 아담에게 주셨던 율법의 약속인 행위언약을 우리 인간이 범죄하여 지킬 수 없으므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성취하시고 의를 획득하셨다. 바로 이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영생이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사는 복을 말한다. 이게 기독교가 주는 보물이다. 절대로 신비 체험, 기복주의 또 정치적인 복지가 아니다.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하는 것이 복음이고, 기독교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목사가 존재하는 목적이 이 복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돈을 벌면 된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신칭의에 위대한 복음의 영광스러움을 배워가는 것이다. 14절에는 신구약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믿음이 헛것이 될 수 있다고 아주 엄히 경고한다.
믿음이 있는 것처럼 우기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또,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1세기 당시에 전부 다 종교 지도자들이다. 바울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믿음은 가짜이고 헛것이라고 책망하는 것이다. 할례와 제사와 율법적인 의식을 철저하게 헌신하고 잘 지키고, 열심을 내고 있다고 해서,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그런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해준 것처럼, 그러한 노력이 공로가 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 모독죄로 처형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짓밟는다면 그 믿음은 가짜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외치는 정통 기독교와 목사와 신학자들을 보수 꼴통이라고 욕을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받고 죄사함 받는 이 복음을 보수 꼴통이고 외골수적이다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다른 종교와 이제 일치를 이루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한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그렇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예수님만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신만 절대적으로 참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너무 독선적이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과 전 세계는 보수 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로 반쪽이 났다.
WCC라고 하는 종교연합 세계교회협의회 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자유주의와 강력하게 반대하는 보수 교단으로 구별됐다. 그래서 일가친척 중에 혹시라도 WCC에 참여하는 통합측이라든가 또 기장이라든가 이런 데에 속해있는 교회에 다닌다면 WCC를 반대하는 보수 교단으로 옮기라고 간곡히 권면해야 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유명한 기독교학 교수가 WCC 7차 총회 개막식 때 초혼제를 지냈다. 초혼제가 뭡니까? 죽은 혼령들에 대한 위로를 써서 종이에 쓰고 태워서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초혼제 제문에 출애굽 할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불쌍한 애굽의 영들이여 또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죽은 영들이여 위로를 받으소서라고 써 있었다.
2013년에는 WCC 10차 총회가 부산에서 있었다. 종교 혼합주의가 대한민국의 땅에서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일제 신사참배 때는 총칼 앞에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잠깐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신앙을 포기하는 이유라도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는 우리 손으로, 성도들의 헌금으로 50억이나 되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전 세계에 5,000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초청을 했다. 모든 종교가 하나 되어야 하고 서로 사랑을 나눠야 된다는, 그래서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7대 종단들이 대표가 나와서 손을 잡고 더 이상 종교가 싸우지 말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자고 했다. 이런 엄청난 종교 배도의 행위가 자원해서 한국 교회의 손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참여해서 성도들의 헌금을 수많은 회비로 내고 있다. 그 돈으로 전 세계 동성애 단체를 지원하고 무장 테러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버젓이 주장하는 종교 혼합주의 단체에 한국 교회가 앞다투어 가입하고 있다. 대신 교단과 합동측, 고신과 합신 이런 몇몇 보수적 교단만이 WCC에 참여하게 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믿음이 헛것이 될 수도 있고 참된 믿음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고린도후서에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에 빠지면 안 된다고 엄히 경고하고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영이라는 것이다. 다른 예수라는 것이다.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것을 기독교의 본질로 소개하지 않고 이신칭의를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로마서 4장은 1세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고 책망하면서 너희들이 구약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선생들이냐, 너희들이 구약에 의식과 제사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지키고 있는 자들이냐 너희들의 믿음은 헛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신칭의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에서의 이신칭의를 놓쳤기 때문에 너희들의 믿음은 헛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한 언약은 율법의 외적인 제사 의식과 할례와 같은 형식의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교회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이신칭의의 복음을 제대로 신앙고백을 통해서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피 흘림과 공로로 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는 잘 먹고 잘사는 정치 개혁 신비 체험이 아니라 죄사함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생의 복을 얻는 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7~8)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을 줬다. 자손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겠다. 그리고 자손에게 땅을 주겠다. 이러다 보니까 많은 목회자들이 아브라함이 부자가 됐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손을 주고 땅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자손을 통해서 장차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약속해 준 것이다.
가나안 땅은 우리 강원도 땅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이스라엘 땅이 그렇게 크지 않다. 거기에 요단강을 중심으로 해서 반은 사막과 접해 있어 굉장히 척박한 땅이다. 거기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에덴동산과 같은 땅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와 산들이 강들이 즐비하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말씀하시면서 천국의 모델로 삼아 주신 것이다. 과거에는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짓고 먹고살 수 있다. 땅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권세와 힘을 갖게 된다. 지금은 돈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땅이다. 지금도 땅을 많이 갖고 있으면 큰 부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손과 땅이라는 것을 통해 이신칭의를 가르쳐주는 약속을 한 것이다.
장차 메시아가 올 것이고, 메시아를 통해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나안 땅과 자손으로 약속해 준 것이다. 이 자손과 땅을 돈과 부귀영화로 헷갈리지 않도록 거기에 해설을 덧붙였다. 그 약속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바로 이것을 영원한 약속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구원에 이신칭의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구약에는 제사도 많지만, 전쟁과 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많은 싸움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성도들이 구약을 읽을 때 굉장히 헷갈려한다. 도대체 이 엄청난 전쟁을 읽으면서 우리가 다시 전쟁하라는 건가? 도대체 교훈이 무엇인가? 예전에 이라크 전쟁을 할 때 부시 대통령이 요한계시록과 구약을 인용해서 악의 축을 언급했다. 이 전쟁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연설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보수적 성향의 남침례교에 출석하고 계시다. 남침례교회는 약간 세대주의적이며 극단적 종말론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적 마인드가 있다 보니까 이 전쟁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식으로 군인들을 독려하였다. 자기들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전쟁을 구약의 전쟁을 이용하면서, 마치 성전을 치르는 것 같이 이야기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도 300년이나 전쟁을 했다. 젊은이들의 목숨값을 이용해서 로마 교황과 추기경들이 자기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300년 동안이나 십자군 전쟁을 했다. 유럽의 모든 기독교 청년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예루살렘 땅을 회복하고 거룩한 성전을 차지해야 된다고 했다. 지금도 예루살렘의 성전 터를 네 지역이 나눠서 싸우고 있다.
구약의 전쟁과 땅을 차지하는 것, 다윗이 나라를 세우는 이러한 것은 무슨 얘기인가? 오늘날 우리가 전쟁이 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구약에 땅과 전쟁은 절대로 땅을 얻으라고, 예루살렘 땅을 지키라고 명령한 게 아니다. 구약에는 임시적 의식적으로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 가난한 땅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땅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고 난 다음에는 가나안 땅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비유였다는 것을 아주 더욱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이제 더 이상 구약의 땅에 대한 부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모든 부분을 중단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는 더 이상 구약에 땅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문자적으로 실천해서는 안 된다.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사무엘하 7:11~12)
사무엘하 7장에 이 전쟁과 땅을 차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다. 다윗에게 너의 자식을 견고케 하고 너의 나라를 세워주겠다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에게는 땅이라고 했다가 다윗에게는 땅보다도 더 큰 개념인 나라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부귀영화를 약속한 것이 아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사무엘하 7:13~14)
부귀영화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줬던 은혜언약의 내용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거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죄 때문에 원수가 되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를 수 있나? 그건 바로 예수님이 죗값을 대신 짊어져야만 가능하다. 나는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룰 거라는 것이다. 나라는 눈으로 보고 만지는 그런 육신의 땅이 아니라 바로 천국을 예표했던 것이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고 약속했던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예레미야 31:31~32)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와 나라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들의 신앙과 예배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래서 선지자가 다시 등장해서 그들의 죄를 꾸짖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어떤 내용을 회복해야 되나? 부자가 되는 것 신비 체험하는 것 또 새로운 정치 국가를 만드는 것들을 회복해야 하나? 아니다. 새 언약을 세워줄 거라고 약속하신다. 예전에 언약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새로운 언약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말한다. 제사와 성전과 땅과 외적인 수단을 통해서 신앙을 가르치고 은혜언약과 이신칭의를 가르쳤던 옛 언약을 구약이라고 한다.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모형과 비유와 그림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가 그 피 흘림으로 죄사함 받는 것이 명확하게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것이다. 이 새 언약을 신약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책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른다.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인 게 아니다. 구약에도 율법과 복음이 있었고, 구약에도 이신칭의와 은혜언약이 있다. 다만 그것을 가르치는 외적인 형식들이 있는 것이다. 역시 신약에도 복음이 있고 율법이 있는 것이다. 신약의 율법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표현한 것이 계명이다. 다만 외적인 비유의 형식에 있어서 구약은 제사 형식과 같은 옛 형식과 옛 언약이었던 것이, 신약에는 세례와 성찬과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 신앙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새로운 언약으로 변화한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1:33~34)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죄악이 사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죄사함 받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 이게 바로 새 언약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세아 2:23)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9)
구약의 수많은 전쟁과 수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들은 은혜언약과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것이다. 구원과 관련해서는 예루살렘 땅 차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절대로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라고 하는 명령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바로 이 복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는 성도들이 이 땅에 모여서 예배하고 유형 교회를 이루어 가라고 하는 영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출처 :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밴드
첫댓글 음... 이신칭의만 설명하면 좋겠는데.. 다른 이야기가 너무 먾아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