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입니다.
언제나 가던 사우나가 공사로 문을 닫아 다른 사우나를 찾아야 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때를 밀곤 하는데 한 주만 건너뛰어도
누가 서로 등밀어 주자고 할까봐 구석에 가서 때를 밀어야 할 정도로 때가 많은 사람인바,
거진 한달 동안 때를 못 밀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여서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은 기어코 반드시 필히 결단코 때를 밀어야 했습니다.
아침에 때수건까지 챙겨나와 퇴근길에 아내에게 꽤 오래 걸릴거라고 전화하고
지하철역 부근 술집들이 밀집한 곳에 있는 ‘24시 남성전용 사우나’ 를 찾아갔습니다.
동네에 일반 사우나가 한 곳 뿐이어서 퇴근하면서 저곳은 시설이 어떨까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카운터가 나왔습니다.
럭셔리한 곳이었습니다.
카운터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스카프를 매신 카운터 아주머니도 럭셔리했고
저를 매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아마도 사우나 사장님인 듯 했습니다.
여긴 얼마냐고 물으니 7만 원이랍니다.
놀라서 여기 사우나 아니냐고 물으니 사우나만 하시면 6천 원이라고 합니다.
마사지 하시면 7만 원이라고 합니다. 아가씨들 어리고 예쁘답니다. .
‘퇴폐업소!’
돌아서 나갈까도 했지만 그날은 반드시 뜨끈한 탕에서 때를 불리고 때를 밀어야 했습니다.
사우나만 한다고 말하니까 아가씨들이 서비스 잘해 준답니다.
그래도 사우나만 한다고 돈을 내려니까
네 맘 다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돈은 나중에 내시랍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옷장으로 가는데 나비 넥타이를 맨 젊은 남자가 졸졸 따라와
럭셔리한 옷장에서 친절하게 옷을 받아들며 여기 아가씨들 날씬하고 정말 괜찮다고 합니다.
이쯤되니 때고 뭐고 그곳에서 나가고 싶었습니다.
마치 적진 한가운데 침투해 작전을 완수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스파이처럼
찝찝하고 가슴이 콩딱 콩딱 뛰었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다시 입고 다음에 오겠다며 구두를 찾는데
구두를 광이 나게 닦아놓았습니다.
광낸 값 2,000원을 내고
그냥 가는데도 럭셔리 아주머니는 다음에 또 오시라며 매우 친절합니다.
그렇게 나오려는 찰나 사우나 벽에 걸려 있던 나무판에 새겨진 문구가 제 눈에 콱 박혔습니다.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며 번성케 하리라 (히6:14)’
성경에는 참 좋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가화만사성’, ‘하면 된다’, ‘이런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액자와 같이
하나님 말씀이 새겨진 액자를 걸어놓는 집이나 가게가 많습니다.
연말이면 교회에서 ‘말씀뽑기’를 하거나
‘우리 가정에 주신 말씀‘이라고 해서 교회에서 샘플로 올린 성구를 골라
단체로 액자로 만들어서 주는 행사가 유행입니다.
이사심방, 개업예배를 갈 때도 성구액자가 단골 선물이고
생일 선물, 성경 다독상, 전도상, 개근상, 각종 대회 등에서
시상하는 상품 중에 젤 만만한 것이 또 성구액자입니다.
성구액자 시장이 십자가 시장보다 더 크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고...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고...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근심이 없게 하시고....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너의 나중은 창대하리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렇습니다.
성구액자속의 말씀들은 들어가도 복이고 나와도 복입니다.
여기도 형통 저기도 평강입니다.
하나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약속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나른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히고...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자기 생명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내가 죄인 중에 괴수고 ...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런 말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자살 카페 정회원도 아니고 이런 말씀들을 걸어 놓으면
이상한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겁나고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솔직히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웃으며 살아도 행복할까 말까인데,
숨겨진 무한한 잠재력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살아도 비전을 이룰까 말까인데
자기를 부인하고 죽으라구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님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거북하고 부담스럽습니다.
십자가 피 없는 이 땅의 수많은 교회들에서 외치듯
믿기만 하면 소원을 이루고
믿기만 하면 꿈을 이루고,
믿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처럼 복음을 값싸게 만드는 일도 없습니다.
복음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지만 결코 값싼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은혜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쫒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복음은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사람을 돌려놓습니다.
자기 생명, 자기 재산, 자기 가족, 자기 이름,
자기 자유, 자기 실현, 자기 행복을 향해 내달리던 사람을
죽음의 십자가를 향해 돌려놓습니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아 날마다 버리고 날마다 포기하고
날마다 죽는 길로 돌려놓습니다.
폭탄같은 복음의 위력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교회들은 피의 십자가 복음마저도
자기 행복과 자기 실현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는 교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구액자, 말씀뽑기...
깊이 따져보면 분명 문제가 있는 일들이지만
수많은 평화롭고 건강한 가정들에, 사업터에, 교회에
만일 이런 액자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참 눈물나게 반가울 것 같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첫댓글 의의병기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공감해요..ㅠㅠ
처음부분 읽고 눙물이 아,,, 남성전용 사우나가 그런곳인가요?? 가족과함께 사우나 갔는데,,,, 저만 혼자 쓸쓸히 ㅋㅋ 그래서 결국 집에서 하고 말았는뎅 ㅋㅋ
님글 잘 읽었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수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깊이 잘 읽었습니다.
진실로 공감하는 글입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말씀뽑기에 동참했던것 같습니다.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흘려 보낸체..
귀한말씀에 이저녁 은혜 받고갑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일으면 찾는다고 했습니다.(마16:25)
이 글 쓴이 영업방해죄로 포도청에 고발 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나팔소리에 정신을 차려야할 저희들입니다.
내가 올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십자가의 도 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