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창경궁에서 구중궁궐의 600년 희로애락을 느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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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토) 오전 10시부터 창조문예동인회 (회장 김상곤 크리스쳔 중독 상담문화원장) 봄 문학기행으로 창경궁을 다녀왔습니다. 이날 우리는 홍화문에서 새콩사랑회 (서울대병원에서 신장 이식받은 환우들의 모임) 회원들과 같이 입장한 후, 동인회 김장식 총무(시인, 문화재 해설사)의 명쾌한 설명을 통해 곳곳 마다 서린 왕과 왕실의 역사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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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궐 체재를 이어왔는데, 성종의 효심으로 태어난 창경궁은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여러 특색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전각의 수가 많지 않아 아담하였고 둘째는 언덕과 평지를 따라가며 터를 잡아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며 셋째는 다른 궁궐이 남향으로 지어진 것과는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왕실 여성의 친숙한 공간인 내전이, 왕과 신하와 백성이 교감하는 외전 보다 상대적으로 더 넓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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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간인 외전으로 들어갈 때는 마음을 정화하도록, 모든 궁궐 마당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또한 궁궐의 안쪽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며,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일부러 낸 물길이다. 이를 금천이라 하는데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으로,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른다고 했습니다. 옥천교를 지나 명정전을 향해 가는데, 중앙은 임금께서 다니는 어도이며 좌우에 문관과 무관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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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 1품에서부터 9품까지의 품계석이 있는데, 장원은 6품에서 시작하며 내시도 내시학교를 마치고 9품부터 시작하여 종 2품까지 올라 상선(영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궁녀도 15품부터 시작하여 30년이 지나면 정 6품 상궁에 오를 수 있는데, 성은을 입으면 바로 상궁이 될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정 2품인 판서는 오늘날 장관급으로 대감마님이라 호칭하였고, 종 2품은 영감마님, 그 이하는 나리 라 하였습니다. 정은 내직이며, 종은 외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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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 깔린 박석은 강화 석모도에서 공급하였다고 했으며, 빗물 처리와 소리와 빛의 난반사를 막는 기능이 있고 과거시험장으로도 이용한다 하였습니다. 근처에는 왕이 일상 업무를 보는 문정전과 독서하거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인자함에 빠지는 정자 함인정은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형상이었는데, 1) 춘수만사택 2) 하운다기봉 3) 추월양명휘 4) 동령수고송 이라는 고개지의 시가 천정에 붙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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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에는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이 있었는데, 용마루가 없는 건물인 무량각이었다. 이는 임금이 용이라,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만 자식을 생산해야 한다는 염원이라 한다. 여기서 66세의 영조가 15세의 정순황후를 간택했다고 했습니다.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다. 순조가 태어난 집복헌에서 순조의 돌잔치를 열었다고 하였습니다.
양화당은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을 당했던 인조가 와신상담하던 곳인데, 지붕에 공중의 사악한 것을 막아주는 잡상(어처구니)이 많은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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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 너른 터 춘당지를 둘러보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 한 쌍이 소춘당지에서 유유히 노닐고 있었다.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큰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미 직파법과 이앙법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니 농업의 발전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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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창경궁 건너편의 함춘원(지금의 서울대병원)에 있던, 수은묘(사도세자 사당)를 경모궁으로 고쳐 짓고 경모궁이 잘 보이는 궁궐 내 언덕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었다. 그러나 일제가 헐어버리고 솔밭으로 만들었다가, 현재는 오르는 계단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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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측정하는 양부일구 (해시계)가, 풍기대 양부와 함께 조선시대의 과학 수준을 웅변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미선나무, 100년이 된 백송, 봄의 전령사 산수유, 오리/ 십리 등 거리를 나타낸다는 히어리, 이종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나무가 하나 된 혼인목 등을 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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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 유산으로 만나는 대온실에서 지상 최고의 나무 속새, 거북선 제작 나무 녹나무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되새김질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