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과 WTO 체제 |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징기스칸 치하의 몽골이 고작 100만명 안팎의 소수로 동쪽으로는 중국 중원에서 한반도까지, 서쪽으로는 러시아와 아라비아까지, 북쪽으로는 눈 덮인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인도와 베트남까지 이르는 광활한 대륙을 200여 년에 걸쳐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후세의 사가들이 여러 이유를 대곤 하지만, 필자에게 가장 와 닿는 이유는 ‘자유무역의 보장’이다. 징기스칸 시대 몽골은 자유무역 전성기 몽골비사가 전하는 징기스칸의 발자취를 따라 5년여 몽골초원을 탐사하며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집필했던 잭 웨더포드는 그의 책에서 몽골을 ‘주식회사’로 표현하기도 했다. 19세기 초 경제학자 리카르도가 비교우위론을 체계화한 시점보다 400년 이상 앞선 때, 징기스칸 치하의 몽골제국은 이미 비교우위론에 바탕을 둔 자유무역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다시 웨더포드를 인용해보자. “징기스칸 시대 이후 몽골인은 한 곳에서는 흔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물품이 다른 곳에서는 이색적으로 여겨져서 잘 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로 비교우위론이 역설하는 바가 아닌가. 당시의 교역은 수로를 이용하기도 했었지만 대부분 육로가 이용되었다.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서도 카라반의 통행은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았다. 징기스칸 사후 몽골제국이 4개의 한국으로 나뉘고, 형제간 권력다툼이 한창이었던 와중에서도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양의 교역은 거의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동방견문록을 통해 동양의 신비를 서양에 전한 마르코 폴로가 처음 몽골을 접하게 된 것도 카라반 무역을 하는 작은아버지를 수행하면서부터였다. 이러한 자유무역의 과실이 몽골 지배하에 다른 민족들에게도 나누어지고, 이는 몽골 소수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해줬다는 해석이다. 바로 지금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지향하는 세상이 징기스칸 치하에서 지금보다도 더욱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몽골치하의 자유무역 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흑사병이었다. 흑사병이 창궐하기 시작하자 당시 유럽각국은 흑사병을 옮기는 매체를 카라반 무역으로 단정 짓고 교역자체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몽골제국 내 4개 한국간에도 카라반 대상(大商)의 이동이 급속히 제한되기 시작했다. 후기 대원제국 황실에서 많이 나타났던 의문사의 원인이 바로 흑사병이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제기되고 있다. 급속히 무너져 내리는 자유무역 체제 속에서 소수의 몽골정권의 정당성도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급기야 황족들이 ‘황금씨족’의 전통마저 버리고 현지인과의 결혼, 현지 종교로의 귀화 등 현지화 전략을 채택했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생검역, WTO 체제 위협 오늘날 WTO 체제가 지향하는 자유무역도 또 다시 위협을 받고 있다. 광우병, 조류독감 등 전염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질병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질병들에 대한 인류의 공포는 전염경로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심하다. 질병이 발생되면 해당국가 또는 해당지역과의 교역은 완전히 차단되곤 한다. 설령 교역이 이루어진다 해도 엄격한 위생검역 조건으로 그나마의 교역도 유명무실해지고 마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엄격한 위생검역은 다른 상대방의 무역 보복을 불러오기까지 한다. 이는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뼛조각’ 파동으로 인해 협상의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미국은 이 문제를 비록 한미 FTA 협상 대상은 아니나 협상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사안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아니 이제 행정부 차원의 실무이슈를 넘어서 정치적인 이슈로 까지 변화하는 양상이다. 몽골시대에 있어 흑사병은 분명 넘지 못할 벽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 발전과 위생수준을 감안하고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문제는 광우병, 조류독감 등 질병 자체보다도 우리의 대처방법이다. 질병이 무서워 아예 교역의 빗장을 완전히 걸어두자는 식으로 과민반응을 한다면 질병보다도 더한 어려움을 자초할 수도 있다. 13세기 몽골제국의 번영과 쇠락과정을 되돌아보며 WTO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다시 한 번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 ||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wcho@mofe.go.kr) | 등록일 : 200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