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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서울을 한성(漢城) 이외에도 경부(京府), 경성(京城), 경도(京都)[4], 경사(京師) 등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그 밖의 표기 중에는 서울의 한자 음차 표기로서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썼던 '徐蔚(서울)'이 있다. 이는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들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강북의 성저십리)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5]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京城)으로 불렸으며, 1945년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6]
(산) 서울의 한자가 있었을 것이다하여, 아니면 한자로 써써 이쁜(???) 한자를 응모하라고 하는 응모전까지.. 이씨조선시대에 순우리말, 서울을 서울徐蔚(서울) 혹은.. 다음.
한국고서연구회 김시한(金時漢·74) 회장은 4일 “1778년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와 1933년 ‘신동아’ 9월호에 실린 한글학자 이중화(李重華)씨의 기고문에 서울의 한자 이름이 ‘徐(원,울:艸밑에 宛)’이라는 내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신라의 도읍지인 경주가 당시에는 ‘서라벌(徐羅伐)’이라고 불리다가 훗날 ‘서벌’로, 다시 ‘서울(徐(원,울:艸밑에 宛))’로 바뀌었다는 것.
옥편에 따르면 울((원,울:艸밑에 宛))자는 ‘우거질 원’과 ‘쌓일 울’이라는 두개의 음으로 발음된다.
김 회장은 “신동아 외에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편찬된 전통문화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일제시대 ‘경성기략(京城記略)’ 등 20여권의 사료에도 서울의 한자명이 徐(원,울:艸밑에 宛)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산) 이렇게 한자로 표기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말 서울을 한자로 표기하여 한자문화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말은 순 우리말로, 우리말로 해석해야지, 언어권력이 큰 한자로 쓰면 그 해석과 원형, 어원이 망가집니다. 마치 서씨집안은 쌓일 울하여 울타리라는 서씨집안 장터인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한자의 외래어표기법으로는 가능하지만, 우리말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조선시대 쓴 한자어는 전부 그 어원을 살린 것이 아닌 음차, 음과 비슷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말이 한자에서 온 것이라는 강한 부정, 사대주의 식민사관에 의한 종속적인 사고입니다. 이유는 서울은 우리말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해석하여야 한다입니다. 물론 한자로 적은 사서 및 고증을 통해야 하지만...
서울특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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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큔-라이샤워 표기: |
서울의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Se-oul 쎄-울[*]’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e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u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대표적인 예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스페인 출신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 선정발표때 '쎄울' 이라고 외친 바 있다.[7]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와 같은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의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8]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서울을 조선시대의 명칭이었던 한성(중국어 간체: 汉城, 정체: 漢城, 병음: Hancheng 한청[*])으로 써왔다. 최근(2005년 1월)에는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首尔 (중국어 정체: 首爾, 병음: Shǒuěr 서우얼[*])’을 서울의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9]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제방송인 조선의 소리 방송의 중국어 프로그램에서는 2009년까지도 서울을 ‘汉城 (중국어 정체: 漢城, 병음:Hancheng)’이라 말하고 있다. 일본어 표기는 ソウル 소우루[*]로 많이 쓴다.
(산) 중국에서 漢城, 일제때는 京城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城은 지역정부의 수도라는 의미로 종속된 식민된 일개 성이라고 하는 의미로 그래 성이라고 하여라입니다. 제국에서는 경을 쓰거나, 장안 등을 썼고 우리는 한양이라는 한수의 북쪽, 양지를 의미하는 한양이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고대에서는 성은 아무곳에나 있었던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성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 해라고 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漢族이 아닌데, 漢을 썼을까?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漢은 중국애들을 한나라이후에 부르는 명칭이지만, 원 뜻을 아리수, 하늘의 한이 땅에 내린 강이라는 아리수라 우리말이기 때문입니다. 한강을 그래서 아리수강이라고 한 것이고, 경계강은 압록이라고 했는데, 이는 요수를 의미한다고 한 것입니다. 어이 되었든, 1945년 해방이후, 서울이라는 우리말을 쓰고, 중국도 현재 서우얼이라고 首爾이라고 쓰는데, 다행스럽게도(?) 首夷라고 써주지는 않았습니다. 오랑캐 이가 더 맞는 말인데도.. 일본어로는 쿄토(경도)에서 동쪽으로 서울을 옮겼다하여 동경을 쓰는데, 그 의미를 모르고 쓴 것이고, 경성이라고 해서 서울의 성이라는 뜻은 일본의 수도가 아니고, 일개 성으로 省의 城이라는 경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일본어 표기는 徐伐을 서우루라고 한 것이고, 류구국의 수도는 首里라고 하고 발음은 "소우루".. 우리의 서울과 같은 음가입니다..
이것은 바로 서울은 일반적인 나라의 중심, 도읍이라고 하는 말로, 서울에서 首都(소도)로 되었다는 것, 한자로.. 즉 수도라고 하는 말이 일반명사로 서울이라고 하는 순우리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자로 적는다면, 수도(首都, 蘇塗)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차후에 상세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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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을 통치하던 미군정청의 문서에서, 서울특별시의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것이 굳어져 현재 공식명칭(the Seoul Special City)에 이르고 있다.[10]
(산) 어떻게 해방후에 경성부, 한성, 한양 등에서 서울로 낙찰이 되었나..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서울로 굳히기..그런데 뜻은? 신시였을 것이다...
http://eastpeak.tistory.com/1908
처용가(處容歌) 첫 구절 ‘東京明期月良’을 양주동(梁柱東)은 ‘새벌 발기다래’로 풀었다. 매일 아침 새로 해가 뜨는 동쪽이 ‘새’임은 해가 지는 서쪽이 ‘헌’ - 또는 하늬 - 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경(京)을 ‘벌’로 푼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고어에 문외한이지만 ‘울’로 푸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경(京)이란 글자가 울타리를 쳐 놓은 일정한 구역에 육방(六方)으로 길이 난 형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새벌’ 보다는 ‘새울’이 더 어울리는 풀이가 될 터인데, 양주동(梁柱東)은 아무래도 동경(東京)을 서라벌이니 서나벌이니 하는 말과 연관짓는데 집착했던 것 같다. 그거야 어찌되었던, 새벌이니 새울이니를 따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양주동이 ‘새벌’로 풀어 놓은 것은 요컨대 그것이 ‘서울’의 옛 말이었음을 밝힌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새벌 - 서라벌 - 셔 - 서울로 변했다는 것이 통설인데, 문제는 ‘서울’이라는 말이 애당초 무슨 뜻으로 쓰였을 것이냐에 있다.
(산) 양주동선생의 해석은 건너뛰기식.. 동경이라는 것은 우리는 방위로 동쪽의 경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경은 동국의 서울 우리말로 그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동국에 사는데, 동국의 수도는 동경(동국의 수도).. 그러니, 신라는 동국의 수도는 서나벌이라고 했으니, 새벌(서나벌)이라고 마치 고어식으로 해석한다고.. 경주가 신라의 서울이 아니었다는 사실, 신라의 서울은 동경이라고 하고, 이는 동국의 서울로 신라의 서울이 동경이고, 지명은 金城(쇠벌)이라고 하였으니, 쇠벌에 집착하여 새벌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넘겨 집은 것이라고 합니다. 쇠벌, 이상한 것은 벌을 꼭 벌판 벌이라고 칠 벌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어를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즉 쇠불은 아니었나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칠 벌(伐) 뭘 치는 것인지도 모르고, 칠 벌은 벌판 벌이라고 하는 풀쭉한 해석으로 지금까지도 신라의 수도는 서나벌이고 이것이 샛벌, 새벌, 서벌(서불) 그리고 서울로. ㅂ탈락한 것이다고 일률적으로 해석합니다만, 아닌 것 같은데요.. 하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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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서울이라는 말과 관련해 다소 우스꽝스러운 속설을 소개하고 있다. ‘(한양에 새 도읍을 정한 후) 외성(外城)을 쌓으려고 하였으나 둘레의 원근을 결정짓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녹아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양이다.’ 그래서 눈이 쌓여 생긴 울, 곧 ‘설(雪)울’이라는 말이 생겼고, 그것이 ‘서울’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서라벌이니 새벌이니 하는 말은 서울과 아무 관계도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니, 이중환이 살던 무렵에도 고어는 이미 사어(死語)가 되어 버렸던 모양이다.
(산) 뻘쭉한 설화.. 설벌, 섣벌, 서블.. 서울이다.. 이성계의 뻘쭉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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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양주동의 풀이에서 뜻을 취해 본다면, 서울이란 ‘새로 생긴 벌’이나 ‘새로 만든 성’ 정도의 뜻으로도 풀어 볼 수 있을 터인데, 그런 풀이가 꼭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이 대목에서는 이른바 ‘재야 학자들’의 주장에도 잠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소도(蘇塗)의 ‘소’와 새벌의 ‘새’가 지닌 음가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고어(古語)에서는 ‘새’, ‘소’, ‘쇠’가 모두 같은 뜻이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그 말은 ‘솟다’나 ‘솟대’에서처럼 높이 솟아 있음, 또는 신성함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이라는 말의 본래 뜻에 관한 한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 주장에 따르면 서울이란 ‘솟은 벌’이나 ‘솟은 울’, 즉 ‘솟벌’, ‘솟울’에서 온 말이 된다. 철원(鐵原)을 풀어 쓰면 ‘쇠벌’이니 이 역시 ‘서울’을 의미한다고까지 주장하는 데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 서울을 수선(首善)이라 쓰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서울이 ‘가장 좋은 곳’, ‘신성한 벌(또는 울)’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산) 앗 많은 부분 생각의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도, 솟도, 솟대.. 그리고 벌은 여전히 벌판.. 그래도 신성한 벌(울)로 수선, 수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모르겠으니까.. 수우, 수(소)는 우리가 牛라고 해서 우두머리, 하면 수두(수우).. 소의 대가리, 소의 머리라고 해서 소를 소 우라고 해서하는데, 소도, 솟도, 솟대, 마고지나의 궁소의 소는 어디에 빼먹고 이야기하는지.. 서울에서 수두, 수도로 한문으로는 首都(소도, 蘇塗의 음차)일 뿐이다고 생각하면.. 다음에 상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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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포드는 도시의 기원을 성소(聖所)에서 찾았다. 구석기인들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놓았던 것을 단순한 창작 욕구의 발현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정주생활이 불가능했지만, 그들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수시로 - 비록 자주는 아닐지라도 - 찾아오는 곳을 성소(聖所)로 삼았고, 그곳에 그들의 신앙심을 표시해 두었다. 그렇게 해서 동굴은 도시의 배아가 되었고, 거기에는 이미 도시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소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성채(城砦)로 둘러쌓인 공간, 즉 도시가 만들어진 것은 인간이 동굴을 벗어난 뒤의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꽤 오래된 게임 - the Age of the Empire이든가 - 의 규칙은 수도와 신(神)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바탕해서 만들어졌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신상(神像)을 먼저 만들거나, 아니면 적국 도시의 신상(神像)을 파괴해야 한다. 고대의 - 사실 현대에도 - 모든 전쟁은 도시의 신상(神像) 앞에서 경건하고 엄숙한 출정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적의 도시 중심부에 있는 신상(神像)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끝났다. 근래에는 내란에서도 ‘동상(銅像)’을 허무는 것이 ‘싸움 끝’을 알리는 상징적 행위가 되고 있지 않은가. 부시가 버릇처럼 ‘십자군’ 운운하는 것이 비단 그의 ‘기독교적 경건성’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정교 분리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까지, 모든 국가의 판도는 원칙적으로 종교적 동일체여야 했고, 수도는 정치의 중심일 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이기도 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종교는 세속 정치에 대해 상대적,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니, 수도를 ‘신의 땅’, ‘신의 울’로 부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렇게 본다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만든 도시를 ‘신시(神市)’라 했던 것도 쉬 이해가 된다. 서울이라는 말의 뜻을 따서 한역(漢譯)하면 바로 ‘신시(神市)’가 되는 것이니까. 동일한 종교권역 내에서도 신시(神市)가 여럿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권역 내의 정치적 통합성이 강화되면 신시(神市)는 결국 하나일 수밖에 없을 터. 국어사전에도 서울은 달랑 ‘수도(首都)’로만 정의되고 있다.
(산) 앗.. 대단한 유추가 나옵니다. 성채로 둘러쌓인 공간.. 처음으로 만든 도시(?)를 신시라고 했던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서울이라는 말을 한역하면 바로 "신시"가 되는 것이다. 으메.. 이것은 정확하게 말하고 있네요, 소도가 수도로 된 것이고, 소도가 있는 곳은 그 국가의 중심이니, 수도, 즉 소도가 있는 도읍지가 그 나라, 국가의 중심도시라는 수도가 되었다.. 다 알고 있네요.. 신시가 서울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는 내용으로 단지 왜 그렇게 음이 변했는가를 증명하라? 아이고.. 머리아픈 이야기.. 그래도 말을 끄냈으니, 이야기는 해야겠지요.. 신시가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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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서울’이라는 단어는 한성부(漢城府)나 한양(漢陽), 경조(京兆), 경도(京都), 수선(首善), 장안(長安) 등의 단어보다도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 이 땅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 말을 배우면서 공식 명칭인 ‘한성부’ 대신에 ‘서울’을 썼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속담에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거나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식으로 ‘서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다만 이 말이 본래 ‘순 우리말’인 관계로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공사상의 문서에 ‘서울’로 표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글 소설에서나 간혹 튀어나오는 정도였으니 오죽하면 우리 말을 못잡아 먹어 안달인 서울 시장이 서울의 새 한자 표기법을 찾아내라고 ‘현상금’까지 걸었을까.
(산) 서울은 우리가 고대부터 너 어디가 수도니? 하면 어느나라 사람이니...와 같이 그 수도를 함께 말하는 것으로 수도라는 말보다는 서울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먼저 사용되고 매일 밥먹듯이 쓰는 말이 한성부, 한양, 경조, 경도, 수선, 장안, 서안 등이 아닌, "서울"이지요.. 새 한자표기법을 찾아내라.. 별 이상한 현상금도.. 서씨집 울타리 울.. 徐蔚, 徐艸苑.. 이건 한자로 외래어표시하기지요. 기리사독.. 불란서, 덕국 등... 하등의 쓰잘데기 없는 현상금으로 게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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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공식적인 문건에 ‘서울’이 표기되는 것은 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 4월부터의 일이었다. 국문판에서는 ‘서울’로, 영문판에서는 ‘Seoul'로 각각 그 발행지가 표기되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신문이 ’황성(皇城)‘이라는 말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독립신문만이 ’서울‘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기야 ’짐(朕)이 곧 국가(國家)‘라는 식의 ’인신(人神)‘적 절대 황권을 추구했던 광무 년간에는 신시(神市)나 황성(皇城)이 같은 뜻이었을 터이니, 순 우리말로 바꾸면 그 또한 서울이 아닌가. 다만 ’서울‘이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익숙했던 영어표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그 결과로 ’서울‘이라는 말은 제한적으로나마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 비록 당시까지는 외국인들에게 국한된 현상이었겠지만 - 바뀌었다. 외국인들도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성부가 아니라 ’Seoul'로 표기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로 그 명칭이 바뀌었고, 그 지위도 한 나라의 수도(首都), 신시(神市)에서 일본 제국의 일개 지방도시로 전락하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잡지 서울이 발간되었고,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글도 나왔다. 공식 명칭 게이죠와 민중 세계의 언어 서울은 그 내용상의 현격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공존하였고, 혼동되지도 않았다. 동경(東京)은 동경(東京)이거나 도오꾜-였을 뿐, 결코 ‘서울’이 되지 못했다. ‘서울’이라는 말은 그렇게 식민지 예속민들이 민족해방의 염원을 꼭꼭 감춰 놓은 ‘비밀의 언어’로 남았다.
사진)1920년대 후반 종로 ; 출처 - 서울시청 홈페이지 서울갤러리
그러나 해방 후에도 한동안 서울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경성부(京城府)’였고, 그 행정수반은 경성부윤이었다. 경성부가 ‘서울시’로 바뀐 것은 해방 1년째 되는 날인 1946년 8월 15일의 일이었다. 이 날 전문 7장 58조로 된 서울시헌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제1장 제1조에 '경성부를 서울시라 칭하고 이를 특별자유시로 함'이라고하여 이 때부터 '서울'이 공식 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김형민(金炯敏)은 이와 관련해 씁쓸한 회고담을 전한다. 광복이 되었으니 왜인(倭人)들이 제멋대로 갖다 붙힌 ‘경성부’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써야 한다는 데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했지만, 무슨 이름을 붙일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논이 분분했다고 한다. 옛 이름인 한성부를 쓰자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승만의 호를 따서 ‘우남시(雩南市)’로 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김형민은 ‘그 압력을 물리치고 서울로 하자고 고집하여 관철시켰다’고 주장했는데, 다소 과장된 기술일 수는 있겠지만 김형민의 ‘공(功)’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 싶다. 군정청 장교를 대학동기로 둔 덕에 석유장사에서 일약 시장으로 벼락출세한 처지였으니,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쓰자고 고집할만도 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순한글’ 이름의 도시가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우남정(雩南亭)이 팔각정(八角亭)으로 바뀔 때에도 서울의 이름은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다음 글을 기다릴 독자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니 사족(蛇足) 하나만 달아 두기로 한다. 신시(神市)는 이미 사라졌고 - 정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 서울이라는 말이 신시(神市)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과거에도 신시(神市)였고, 지금도 신시(神市)이다. 그리고 행정수도가 어디엔가로 옮겨 간다 해도 오랫동안 신시(神市)로 남을 것이다. 신시(神市)는 종교적 동일체의 상징이고 종교적 권위를 표현하는 공간이다. 물론 우리는 종교적 구심점을 갖지 못한 희귀한 ‘단일 민족’이다. 그렇다고 정말 종교적 중심이 없을까? 굳이 마르크스를 걸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시대의 신은 물신(物神)이다. 오늘날의 서울은 한국적 물신(物神)의 도시이며, 서울 시민들은 그 물신(物神)의 ‘은총’ 속에서 다른 도시, 다른 지방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서울은 중세적 중앙집권국가에서 유교적 왕신(王神)의 도시로 만들어졌지만, 왕신(王神)이 그 현실적․상징적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뒤에도 새로운 종교의 성지(聖地)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이후에 계속될 일련의 글조각들은 신시(神市) 서울에 감춰진 비밀, 그 성공적 변신의 비결을 찾아가는 데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산) 의외의 글을 마주하면서.. 서울이 과거에도 신시였고 , 지금도 신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대신시의 개념보다는 물신의 도시고, 새로운 종교(개신교)의 성지로 개신시 서울이라는 말.. 성공적변신의 비결은 바로 서울이 "신시", 신의 시로, 새로운 종교의 성지가 된 비결이다. 즉 개신교가 성공하여 새로운 성지가 된 이유는, 바로 지명인 신의 시, 서울이었다.. 쓰려고 한 내용을 잊어버렸다. 그러니 신은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지, 신시인 서울을 찬양해주라는 의미로.. 갑자기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래도 알아나 봐야지..왜 신시인지...
다음...
http://yanbianforum.com/board.html?include=&mode=view&id=129844&lc=0&sc=0&mc=&gid=nb&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라는 단어 는 신시배달 신시에서 시작 배달국(倍達國,B.C3,898~2,333년)은 신시배달(神市,1~13대 환웅)과 청구배달(靑丘,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지는데, 신시(神市)배달은 제1대 배달(倍達) 환웅(桓雄)께서 B.C 3,898년에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건국이념을 가지고서 백두산 신시(神市)에 개국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청구(靑丘)배달은 제14대 치우(蚩尤) 천황께서 B.C.2,707년에 재위에 오른 후, 청구(靑丘) 즉 지금의 만주에서 산동반도 태산(泰山)아래로 도읍을 옮긴 것을 말한다. 신시(神市)는 서불로도 불리다가 서라벌(서불의 사투리)로 바뀌다가 오늘날의 서울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이 조선을 예로부터 청구(靑丘)라고 불렀는데, 배달국의 청구(靑丘) 시대의 영향 때문이다. 원동중의『삼성기(三聖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국(桓國)의 말기에 환인(桓仁)이 환웅(桓雄)에게 천부인(天符印) 3종을 주어, 환웅(桓雄)은 3000명을 이끌고, 백두산(白頭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도읍을 정하니, 신시(神市)라고 불렀다.” 『신불역대기(神市歷代記)』에는 더욱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배달국(倍達國)은 환웅(桓雄)이 정한 나라 이름이고, 도읍은 신시(神市)이다. 뒤에 배달국(倍達國) 14세 치우(蚩尤)환웅이 청구(靑丘)로 도읍을 옮겼다 |
(산) 아.. 신시는 서불로도 불리다가 서라벌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서울이란 말로 바뀌었다...
으메 환상적인 것..
『신불역대기(神市歷代記)』
왜 이 서적만 가져왔나요? 그거요.. 모두 신시, 신시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신불연대기.. 신시(神市)를 "신불"이라고 해석해놓아서.. ㅎㅎㅎ. 신은 다음에 이야기하고, 市는 후대의 도시가 성립되고 시라고 했을 것이고, 배달한국, 기원전 3898년에 도시를 열은 것이 아니고, 불을 설치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신불이 올바른 음가라고 하는 점.. 그래야 신만 해석하면 서블, 서불.. 서울이 왜 블에서 울이 되었는가까지 해석이 됩니다... 으메.. 다 나와 있군요. 말하기도 전에...
그래도.. 한번 더.. 다른 이야기로.. 서울은 "살"에서 연원.. '솟대의 땅' 의미로.. 아주 명확한 내용이나, 조금은 수정이 있어야 하지만, 서울의 어원은 신시, 소도. 그리고 서라벌, 서불.. 서울이 된 것이다는 내용.. 고대문화의 원형과 상징, 언어의 원형에서 현재어 찾기.. 언어권력 되찾기.... 김양동 석좌교수님의 이야기...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8176
신의 순수 고유어 ‘살’에서 연원 … ‘솟대의 땅’ 의미로 神宮있는 곳 지칭 | ||||||||||||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16. 神市, 蘇塗, 서라벌, 서울의 어원을 찾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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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그 민족이 지닌 문화의 상징이며 표상이다. 언어는 오래된 집과 같이 삶의 역사 속에 이미지 층을 켜켜이 쌓으면서 그 시대를 표상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상고시대 ‘神市’에서 오늘의 ‘서울’까지 민족역사의 문을 연 ‘터’에 대한 말의 변천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문징과 물징과 구징으로 그 원형질을 추적한다. (산) 조금 다른 것은 아사달에 소도(제천단)을 쌓아 천제를 지내고, 별읍(제후국)에도 별도의 소도를 쌓아 제천, 지신제를 지냈다고 하여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후한지 동이열전에도 고구리와 별도로, (부여국, 읍루, 고구리, 동옥저, 예, 한)중에 고구리가 있고, 별도로 삼한은 소소를 열어, 제후국의 의미가 아닌 제천행사를 지낸 별읍같지만, 목지왕과 같이 제천왕이 별도로 있었다는 것을 구분하여야 합니다. ===================
(산) 현재까지 신시하면 시라고 했지만, 기원전 3000년전에 마치 도시를 건설한 대단한 국가라고 해석하기 전에, 시는 "불"이라고 정음으로 해야 우리나라 민족사가 연결됩니다. 불함문화다, 불, 불, 불이 나오듯이 바로 불의 곳.. 불꽃.. 市 부수: 巾 슬갑 불에 대한 이야기: http://blog.daum.net/ttugi77/15710986 인끈, 관직의 직급을 나타내는 끈, 천.. 불이라고 하는 것은 둘러치는 천, 성, 흙, 돌로 둘러친 곳, 초기, 선인들의 하강족이 사는 곳, 일정한 둑(독)으로 둘러친 슬갑 불.. 즉 신불이라고 하여야 우리 민족사의 언어학적으로 그 의미가 통합니다. ----------------------------------------------------------- ④ 神市의 명칭에 주목해, 神市는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왕래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이며, 두 세계간의 교류가 이뤄지게 하는 신성지역이라는 설. (서영대,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 <汕耘史學> 8, 1998)
(산) 앗.. 신성한 숲을 일러 불이라고 한다.. 다른 고어로는 艸市로 불이라고 읽고, "큰 숲이 우거지다" 초목盛).. 신성한 숲이라는 의미보다는 독(둑), 일정한 철책, 혹은 인공적인 흙으로 堡를 쌓은 불(우리말 불) 음으로써가 아닌, 우리 훈(뜻)글로, 불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뜻.. 신불을 천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독은 둑이라는 인공으로 쌓아올린 뚝이라는 뜻이고, 불은 벽, 파람벽과 같이 높이 돌이나, 흙으로 둘러친 성스러운 곳.. 소도와는 달리, 선인의 기거하는 곳으로, 신불이라고 하고, 그 안에 소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산) 소도는 소와 도, 제천단, 마고대성이라고 하는 천제보를 쌓았다는 내용으로 신불은 바로 성과 같이 신이 사는 곳, 머무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고, 소는 궁소에서와 같이 천제단의 형태가 바로 소도지역이고, 성을 쌓듯이 독(둑)을 쌓아 신성, 선인이 사는 지역을 신불이라고 하고, 이는 천불, 한불, 천독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어 궁(穹)을 만들고,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 또한 궁(穹)을 만들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 되어 소(巢)를 만들고, 화(火)를 맡은 자는 흑(黑)이 되어 또한 소(巢)를 만들었다라고 부도지(符都誌)에서 기록하고 있다.
========================= 천제단 (소도)와 신불..
(산) 神에 대한 해석. 당연히 현대적인 의미로, 가드, 유일신이라고 해석해서는 말이 안됩니다. 신의 고유어는 살/설이라고 하나, 신은 示申으로 보이시여 펼친 분이라는 현신의 의미입니다. 신의 반대말은 歸神이 되는 이치입니다. 우주의 신은 신이라고 하지 않고, 位라고 하고 主, 빛이 되어 돌아가신 분으로 삼위일체하면 우주의 신에 대한 이야기고, 삼신일체는 이 땅에 내려오셔 보이신 분으로 서양신체계론과는 전혀 다른 우리의 신학체계를 이해하여야 해석이 됩니다. 신을 우리가 천신, 지신, 인신이라고 석삼극해도 모두 신이고, 특히 하늘은 무로, 하느님이라고 하나, 삼위일체는 하나에서 시작하므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즉 대웅을 한웅이라고 하는 이유도 큰(사이, 하늘에서 땅으로 온 사이)웅도 하늘에서 온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신은 천신하면 天毒이라고 해서 신시대신 사용하는 경우, 한독, 하늘의 독(둑을 쌓아 신선이 기거하는 곳, 신불이고 신시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분으로 신은 천하고는 곰(고마, 고미, 검/감, 금)으로 ㄱㅁ의 하늘에서 온 신으로 지신을 의미하므로, 천독하고는 검독, 험독이 지명이 된 것은 바로 검이라고 음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의 음은 숫입니다. 솟/숫.. 한자로는 雄이라고 하지만 훈은 숫(컷)입니다. 즉 숫이고, 이는 스승이라고 합니다. 대는 큰 숫으로 칸이라고 하고 가한으로 신을 의미하고 신은 王을 의미하는 것으로 배달한국의 신불을 열었다고 할 경우, 선인들이 사는 곳이라는 신성한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숫들의 거처로 숫이라고 하고, 선인들을 스님이라고 하였고, 큰스님(대웅)이 바로 숫입니다. 숫/솟이라고 하고, 이는 바로 ㅅ의 세움하신 분을 의미하는 우리말입니다. 원 녹도문은, 셋.. 숫/솟.. 솟도는 솟을 모시는 터로 제천단입니다. 소불은 사이불 셋불로, 둘러쳐있는 신성한 소도가 있는 선인의 거처, 도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숫(슷)불로 소불/서불이라고 하게 됩니다. 불은 토의 형상으로 지신, 특히 화의 형상을 의미하므로 우리가 불한, 불하면 땅의 모양으로 둘러쳐 있는 곳, 벼락불이 둘러쳐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거처하는 곳을 말하는 소불/서불로 서울이 됩니다. 천독의 독은 흙으로 쌓아오린 인공적인 뚝(둑)으로 높은 제방을 쌓듯이, 소를 쌓아, 그곳에 계신 선인, 그중에 최고의 왕은 숫이라고 하고 솟(셋)이 된다는 우리의 의식이고 사상입니다. 즉 살/설은 후에 말하는 것이고, 소(솟)이 셋의 표상으로 소도는 셋도로 제천단을 의미하고 신불의 신은 서/섯불이라고 해야 옳은 정음으로 이것이 서불입니다. 쇠불이 되기도 하는 것은 바로 金은 사이 쇠로 巫를 의미하는 제천장, 소도의 제사장이기에 서불(소불)입니다. 소도는 제단이라는 터를 의미하고 불은 이 소도가 있는 곳으로 눌러쳐져 있는 흙이나 파람불로 둘러쳐져 있는 성스러운 곳이기에 천독, 신불이라고 하는 우리말의 변이입니다.. 결론적으로, 신불은 천독이고, 이는 아사달의 사달, 사이달, 사이불, 새불, 쇠불입니다. ===== 백제의 서울이었던 부여는 원래 이름이 소부리(所夫里)였다. 소부리와 서라벌은 이름이 닮았다. 백제의 도시이름은 대개 부리(夫里)라는 지명이 붙는다. 소부리(부여), 반나부리(반남), 모량부(고창) 등 무수히 있다. 백제의 부리가 신라에서는 비사벌(창녕), 달구벌(대구), 서라벌(경주) 등 벌(伐)이 되고, 고구려에서는 매홀(수원), 술이홀(봉성), 미추홀(인천) 등 홀(忽)이 된다. === 부리는 불과 같이 높이 삐쭉나온 소와 궁으로 궁소의 제천단이 있는 마고성이라고 성의 개념이 바로 불입니다. 둘러쳐져 있는 천으로 천황단이나 귀중한 곳에는 천을 둘러치는 것과 같이 불은 둘러쳐진 성스러운 곳이고, 독을 제방과 같이 선인, 신선이 거처하는 높은 곳, 신사와 같은 곳에 쓰는 우리말입니다. 독섬(뚝섬)은 치우사가 있는 선인 천왕 대웅사가 있는 곳임을 표시하고 독섬인 독도는 한자가 아닌, 바로 우리말로 신이 계신 섬으로, 독(선인, 무릉)의 섬이라는 우리신령스러운 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시는 한불, 천불, 천독, 이나, 그 뜻은 바로 선인이 거처하는 빙 둘러쳐진 제방 혹은 표식을 한 곳으로 신성한 소도가 있는 곳이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표식입니다. 그곳이 배달한국의 중심지이므로 首塗(진흙 도라는 의미는 독을 의미하고 진흙으로 독을 쌓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수도로, 수우라고 하고 하고, 수도라고 하는 일반명사인 서울입니다. 수도와 서울은 한자와 훈차인 것이지 별반 다른 말이 아닙니다. 금성도 서울이고, 개성도 서울이고, 평양도 서울이었고, 한양도 서울이라는 뜻으로 어떠한 정부, 정권이라도 하나민족의 중심거점인 수도는 서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렵게들 풀고 있는 우리말.. 쉽게 한자에서 벗어나, 그 훈으로 읽으면 쉽게 우리민족은 부리라고 해도 불이고, 울은 한문적으로 어렵게 발음하는 것을 줄이기 위한 울, 하늘울.. 무릉섬, 울릉도.. 불릉도가 아니고, 울릉도와 같이.. 그러나 잊지 말라는 것이 붉음이고 일편단심, 지신의 마음은 하늘을 향해 붉음이고, 하늘은 밝음을 주니, 그것이 바로 천신과 지신의 화합입니다. 불.. 함.. 불은 함과 하나가 되니, 하나다.
蘇塗와 솟대
(산) 고구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삼한.. 국가의 서울(신불)에는 원 소도, 천제단이 있어 이를 천왕, 임금님이 주관하고, 그 국읍(각 제후국 및 부속국읍)은 각각 별읍을 설치하여 별읍이 바로 신불이나, 이는 서울은 아니고, 지방서울이라는 의미로, 국읍에 별도로 별읍을 설치하니, 그것이 소도, 서블로 울타리를 쳐서 이를 천군단, 소도라고 한다는 것. 제단이 없는 각 국읍에는 산상 웅상(대웅나무, 박달나무)를 정해, 웅상으로 하고, 이에 제를 지내니, 이것이 서낭단이라고 하나 원 뜻은 천왕(웅상, 숫상)의 대리물로, 이를 대웅전 및 천제단을 대신하여 각 국읍은 이에 제를 지내고 천왕을 모시는 것이지 귀신을 섬기는 하찮은 민족이 아니었음을 표시하는 것.. 후한지이므로, 그냥 두고 보는 것이지, 자신이 하나민족이면서 귀신, 샤먼하는 것은 웃긴 일이라고 합니다. ==========================
‘서라벌’과 서울 서울에 해당하는 한자는 都邑, 首都, 京, 京都 등이라 할 수 있는데. 『說文』에선 ‘都는 역대 천자의 종묘가 있는 곳(先君之舊宗廟曰都)’이라 했으며, 殷注 『左傳』에선 ‘先代의 神主를 모신 종묘가 있는 곳이면 都이고, 없으면 邑이다(凡邑有宗廟先君之主曰都, 無曰邑)’라고 했다. 읍이 아닌 머릿고을[首都]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종묘의 유무가 漢代 이후 都에 대한 관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京은 갑골문에선, 금문에선 로 나타나 있음을 볼 때 『說文』의 풀이처럼 높은 집에 사람이 사는 곳을 가리키거나 글자 모양이 重屋之形이므로 궁궐이 있는 곳, 곧 천자가 사는 곳을 京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이러한 都나 京의 의미와 동일한 ‘서울’이란 명칭은 그 유래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발음은 어떤 변천을 겪어 왔을까? 이 문제는 한민족의 시원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 고대문화 원류의 상징과 해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된다. 신라의 서울인 경주가 ‘벌(徐伐) 또는 서라벌(徐羅伐, 徐那伐)이란 명칭에서 오늘의 서울로 변천돼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벌 〉 셔 〉 셔〉 셔울 〉 서울 문헌에서 경주는 徐羅伐, 徐那伐, 徐耶伐, 徐伐, 斯盧, 斯羅, 蘇伐 등의 音借로 나타난다. 그것이 503년((智證王 4) 정식 국호인 ‘新羅’로 정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414년에 建碑된 廣開土太王陵 비문에 ‘新羅’란 국호가 이미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신라란 국호는 지증왕대 이전부터 사용돼 왔음을 알 수 있다. ‘新羅’의 의미는 『三國史記』에서 ‘新’은 德業日新에서 ‘德’을, ‘羅’는 網羅四方에서 ‘羅’를 取字한 상서로운 의미라고 했으나, 그 이전의 고칭을 볼 때 이는 후세 유교적 훈석임을 알 수 있다.
(산) "살" 이 아닌 솟/숫, 소/수의 원 우리말의 셋, 석의 말씀으로 신은 삼신의 셋(숫)임을 모르기에 유교에서나 말하는 것이고, 마고지나의 유풍을 그대로 간직한 풍류의 경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고대 마고지나의 유풍과 풍습을 화랑의 모습으로, 무교, 천신사상으로 대웅전 절에 경배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대유풍이라고 합니다. 마치 소도가 조그마한 선황당이나, 서낭단정도로 생각한다면, 대웅전이 있는 절은 모두 우리의 고대 소도이고 그 위에 국가의 솟도에는 제천단을 쌓아 일년에 한번씩 상달에 하늘에 천제를 지내니, 이것이 동맹이고, 무천이고 제천의 기본이라. 오가의 자손들은 각 국읍에 이를 알리고 소도가 없는 별읍에서도 산상웅상을 정하여, 천황단으로 이를 대신케 하라. 그것이 귀신이면, 다시 오는 신이 있다는 것으로 다시 오신 우리님이 바로 웅님이고 숫님이라, 그 분이 임금님이고 재세이화하시고 홍익인간하실 분이다.. 솟부리건, 셋부리건 서불이건 이는 신불이라고 하는 삼신교의 중심지, 수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천제단이 없는 곳을 대통령이 단군신전에 절도 하지 않는 곳이 신블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신블, 서울은 바로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고 이곳이 바로 삼신, 숫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껍데기들이 정치를 위해 만신, 천신, 서양귀신을 우리의 서울에 모시니, 그냥 세우르 하는 것이 영어로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천제단, 천황당, 천황단이 없는 벌거숭이 벌판이 어찌 서울이 될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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