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흐르는 선율
음악 문화재(민요, 가야금 산조와 병창,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는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이다. 음악은 연극·무용·공예기술 등과 함께 국가무형문화재의 한 축을 이루는 분야로 종묘제례악, 판소리, 농악, 민요, 정악, 산조 및 병창, 가곡, 가사 등이 이에 속한다. 삶과 선율을 통해 이어 내려온 유산, 음악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보자.
01. 남도민요의 하나인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부녀자들의 집단놀이이다. ⓒ셔터스톡 02.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민요는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드러내며 민족의 삶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있다. ⓒ문화재청
잊혀가는 우리노래 _ 민요
민요는 지은이가 따로 없이 저절로 생겨나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우리 민족의 노래이다. 민중의 생활 감정을 소박하게 드러내며 민족의 삶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경기민요와 남도민요 외에도 황해도와 평안도의 서도민요, 강원도와 함경도의 동부민요, 제주도의 제주민요가 있다. 우리 땅 어디를 가나 지역 특유의 민요가 있는 것이다.
민요에서 지역마다 다른 자연환경과 정서, 생활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이 토리와 창법이다. 토리는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과 소리의 표현 방법을 뜻한다. 밝고 명랑한 정서를 담은 경기민요는 맑은 음을 쓰며, 경쾌하게 소리를 내는 ‘경토리’를 쓴다. 남도민요 가운데 ‘육자배기’는 낮은 음은 흔들어주고, 중간 음은 평으로 내며, 높은 음은 꺾어주는 방법으로 노래한다. 특히 꺾는 대목에서 남도 특유의 멋이 넘치는데 이것을 ‘육자배기토리’라고 한다. 서도민요는 중간 음을 굵게 떠는데, 대표적으로 <수심가>에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서 ‘수심가토리’라고도 한다. 동부민요는 ‘메나리토리’라고 해서, 낮은 음을 조금 흔드는 편이다. 이처럼 독특한 토리 덕분에 노래만 듣고도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다.
대표적 경기민요인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긴잡가는 민요, 판소리, 시조, 가사 등 잡다한 내용을 받아들여 노랫말이 길어진 경기민요라는 뜻이다. 그중 ‘경기 12잡가’는 판소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경기 12잡가 중 제일로 치는 <유산가>의 첫 부분과 전라도에서 판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틔우려고 부르는 <만고강산>과 <죽장망혜>의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라도에서 불리는 남도들노래는 급하지 않고 느릿하면서도 구성진 맛이 특징이다. 드넓은 평야가 주는 여유와 풍요 덕분에 소리도 기름지다. 특히 진도는 섬인데도 들판이 많아서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가 구수하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전해오는 들노래는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는데, 다른 지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토속적인 민요 가락을 지키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노래를 부르면 일을 하면 소리에 따라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게 되어 한결 쉽고 흥겹게 일을 끝낼 수 있다. 남도들놀이처럼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농요라고 하는데 협동을 통해 일의 능률을 높이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흥겨운 우리장단 _ 가야금 산조와 병창
가야금 산조와 병창은 특별한 재주와 재능이 있어야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민요와는 사뭇 다르다.
가야금 산조는 정해진 악보 없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산조의 바탕이 되는 시나위는 굿판에서 무당이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음악이다. 악사 여러 명이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지고 그때그때 흥과 분위기에 따라 연주한다. 가락이 예측할 수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도 음악에 한껏 취할 수 있다. 산조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이 시나위 가락을 장단이라는 틀에 넣어 연주하는 음악이다. 가야금 산조는 가장 느린 진양조로 시작해 서서히 빨라지는 중모리, 좀 더 빠른 중중모리로 흥취를 한껏 돋우고, 숨 가쁜 자진모리로 신명을 끌어올린 다음, 가장 빠르고 강렬한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면서 끝을 맺는다. 이처럼 산조는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면서 집중하도록 만들고 신명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즉, 단가나 판소리 가운데서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 반주와 함께 부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판소리와 가야금 특유의 음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신명을 자아낸다.
가야금은 음색이 아주 영롱한 것이 특징이다. 줄을 하나하나 뜯으며 섬세하게 음을 흔들어서 표현한다. 또 가야금 산조나 병창을 듣다 보면 곡의 빠르기가 계속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장단이 바뀌기 때문이다.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며,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며, 휘모리는 강렬하고 급한 느낌이 있다. 이런 장단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우리 음악이 주는 감동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03.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는 정해진 악보 없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산조의 바탕이 되는 시나위는 굿판에서 무당이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음악이다. ⓒPixabay 04. 가야금은 가락이 예측할 수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도 음악에 한껏 취할 수 있다. ⓒ이미지투데이 05.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는 이야기가 있는 사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극음악이다. ⓒ셔터스톡
이야기가 있는 음악 _ 판소리
판소리는 이야기가 있는 사설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극음악이다. 부채를 든 소리꾼 한 사람이 북장단에 맞춰 노래(창)와 말(아니리)과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데, 정해진 대본 없이 청중의 호응에 따라 사설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판소리는 서양음악의 고운 소리와는 달리 거칠면서도 힘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놀이판을 이끈다. 소리꾼은 창과 아니리를 번갈아 부른다. 창은 슬픈 계면조, 화평한 평조, 웅장한 우조, 씩씩한 설렁제(드렁조), 경쾌한 경드름(경조) 등을 판소리 내용에 맞춰 골라 쓴다. 아니리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구실을 하는데, 대개 재미있는 대목을 아니리로 꾸민다. 소리꾼은 이렇게 소리를 하면서 이야기에 따라 발림을 섞기도 한다.
고수는 소리꾼의 소리에 장단을 쳐주는 반주자이자 지휘자이다. 판소리의 내용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을 가려 쳐서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소리 도중에 ‘얼씨구, 좋다, 그렇지, 아먼’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게 바로 추임새이다.
마지막으로 판소리에는 청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청중은 관람만 하는 게 아니라 추임새를 섞어가면서 적극적으로 놀이판에 참여한다. 판소리는 소리꾼, 고수, 청중이 한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음악 문화재와 관련된 직업 무형문화재 전수자 Q&A 강효주 경기소리 이수자(국립국악원 민속악단)
● 음악 문화재와 관련된 직업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미니 인터뷰
Q. 무형문화재 이수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A. 언젠가 공연장에서 사회자분이 이수자를 출연자의 성함으로 착각해 ‘무형문화재 경기소리 이수자 씨를 모시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생소하실 텐데요. 이수자는 해당 종목의 보유자 선생님으로부터 사사받은 학습을 교육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Q. 경기민요 이수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혹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어릴 때 스승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경기소리가 너무 좋아 전공으로 마음을 정한 후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고 진학을 하여 자연스럽게 이수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Q. 경기민요 이수자가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A. 전공을 하는 학생으로서 수학 기간을 거치고 어떤 평가를 받는 일은 대회를 비롯하여 많은 자극과 긴장이 공존합니다. 이수평가는 경험했던 대회들과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긴장되고 늘 연습했던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제 실력이 잘 발휘되지 않고 불편함이 계속되는 강박의 연속이라 오직 의지할 수 있는 건 연습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소리꾼’이라는 직업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재미있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A. 저는 평범한 사람인데 소리꾼으로서 무대라는 공간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저를 특별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부르던 곡도 올해의 느낌과 내년의 느낌이 다르고, 제 상황과 감정에 따라 미묘한 표현이 다르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Q. 힘든 점, 포기해야 하는 것 등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A. 온종일 연습에 매진을 해도 성과가 그날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종목이다 보니 스스로 지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달라짐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믿고 자신을 달래며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던 것 같아요.
Q. 어떨 때 보람을 느끼시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제가 지도하고 있는 전공 학생들 실력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독창회를 하면서 하나하나 소리 고개를 넘을 때가 생각나네요.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요?
A. 소리는 듣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소리를 즐기며 하고 있고 앞으로도 제가 먼저 즐겨야 보시는 분들, 듣는 분들도 즐기실 수 있겠죠. 건강하게 함께 즐기며 오롯이 소리를 좋아하는 분들과 많은 시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글. 성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