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이 상설전시된 "사유의 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는 입구에 영문 소개글이 이렇게 붙어있더군요.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
교수님은 어떤 글에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사유와 반가사유상의 사유의 차이를 비교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과연 이 영문이 반가 '사유' 를 잘 소개한 것일까요? 국보급 대작을 보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이나 청소년들에게 부처님의 사유 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표현이 아닐지 우려가 되는데요. 교수님의 뜻이 궁금합니다.
답변입니다.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얼마 전부터 반가사유상 특별전시실이 마련되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아래와 같이 반가사유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전시실의 조명, 배치 등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란 점입니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작품에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고 있기에 하나하나의 유물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납니다. 그리고 반가사유상을 전시하는 '사유의 방'을 기획한 것은 기존의 전시 방식을 초월한 참으로 놀라운 발상입니다. 인터넷에서 '사유의 방'에 대해 칭송하는 글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고, 제가 아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의 모 교수님은 틈만 나면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찾아간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께는 사유의 방이 마음을 쉬는 힐링의 공간이랍니다. 아래에서 제가 비판적인 글을 쓰겠지만, 사유의 방 전시를 기획하신 박물관 관계자 분들의 능력과 혜안에 대해서는 입이 닳도록 칭송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질문하시면서 댓글에 올리셨듯이, 이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제가 강의나 칼럼 등에서 우리나라의 국보인 금동 <반가사유상> 또는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는 일본 광륭사(고류지)의 목조 <반가사유상>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이들 작품 모두 '생각하는 모습'을 조형화 하였는데, 로뎅의 작품에서는 <분별적 생각을 쌓으며> 고민하는 모습인 반면, 반가사유상은 <분별적 생각에서 벗어난> 편안한 모습을 빚었다는 점에서, 그 느낌이 상반된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日益爲學 日損爲道(일익위학 일손위도)"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날이 늘어나는 것은 학문이 되고, 나날이 덜어내는 것은 도가 된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전자는 '지식' 후자는 '지혜'에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식'의 세계 속에서 번민하는 모습이고, 반가사유상은 모든 분별이 사라진 '지혜'의 모습입니다. 질문에서 "어떤 글에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사유와 반가사유상의 사유의 차이를 비교해주신 적이 있"다고 쓰셨는데, 이상과 같은 제 생각을 지목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전시실 입구에 적힌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라는 영문 안내문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셨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안내문 위에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적혀 있는데, 영어로 먼저 작문을 하고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 안내문을 먼저 만들고 영어로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의역(意譯)한 것이라고 해도 두 문장의 의미가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은 "방황하는 생각 속에 깊이 들어가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시간" 이라고 직역할 수 있겠습니다. 또는 "깊은 번민 속에서 만나는 망아(忘我)의 시간"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텐데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우리말 문장과 의미가 같지 않습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우리말 문장을 먼저 짓고서 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라면 이는 원문에 그대로 대응하는 번역이 아닐 것 같습니다. 영역자의 생각이 들어간 좀 과도한 의역 같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면서 내거는 표어에 정답은 없습니다. 큐레이터, 또는 기획자의 소신에 따라서 전시실의 표어를 자유롭게 내걸 수 있습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반가사유상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대비하면서 함께 전시하는 게 아니기에,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우리말 표어나, 이를 과도하게 의역한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라는 영문 모두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말 문장과 그 영역문의 의미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역시, 관람객들에게 사유할 시간을 주기에 이 역시 좋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선가(禪家)의 '화두'가 종교적 의문을 불러일으켜서 용맹정진을 하게 하듯이, <사유의 방>의 안내 표어 역시 '화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반가사유상의 고요하면서 잔잔하게 미소띤 표정에서 저도 깊은 환희를 느낍니다
그런데 봥황하는 생각 속에 자신을 잃는다는 표현이
전시기획자의 불교 이해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적 위상을 고려할때 더 염려가 됐는데요
교수님의 너그러운 이해를 통해 저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