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4대강 재앙이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사업 공정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수록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봄비’조차 견디지 못해 곳곳 사고 빈발
낙동강 유역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인 경남 함안 장포, 대산 지역이 준설공사로 인해 낙동강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논에 물을 대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합천보 일대에는 지하수 역류로 인한 대규모의 침수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댐 수준의 보 공사로 인해 많은 비가 오면 역류현상로 인해 침수 가능성이 매우 높고, 반대로 비가 적게 오면 보와 준설로 늘어난 하류의 저수량때문에 상류지천이 건천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4대강사업은 ‘봄비’조차 견디지 못했습니다. 5월 초 중부지방 호우는 ‘4대강 재앙’이 현실임을 입증했습니다. 문화광장으로 조성된 이포보 우안은 60~90mm 강수로 인해 쓸려내려 갔고, 연천보는 호우로 증가된 강의 유속과 소류력을 견디지 못해 두 번이나 부분 유실되기도 했습니다. 구미 해평취수장 가물막이가 붕괴되면서 구미지역에 5일간 수돗물 공급이 안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달았습니다.
‘속도전’으로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기도 전에 장마가 닥칠 수 있어 보 붕괴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올 장마는 예년 보다 일찍 시작돼 강우량도 평년보다 20%이상 많으며 집중호우가 잦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4대강은 ‘대운하’에서 돌연변이한 ‘기형아’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천과 본류의 합수(合水) 부분에서 ‘역행침식’이 본격화 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천으로 유입되는 모래와 나가는 모래의 양이 비슷해야 하는데(안정하상), 4대강 공사에는 이런 게 전혀 고려돼지 않아 본류와 지천이 평평해 질 때까지 합수지점의 ‘역행침식’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깁니다. ‘역행침식’은 이미 심각한 상태입니다.
<역행침식 - 여주읍 소양천 둑 붕괴>
<역행침식 - 연양천 신진교 붕괴>
작년 가을 4대강공사 현장을 직접 조사했던 독일 하천전문가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는 KBS의 ‘추적60분’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박사는 “강을 준설해서 깊에 만들면 강은 스스로 변형하여 사람이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며 이미 4대강 지류에 ‘역행침식’이 진행되고 있어 장마철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으나 인터뷰 부분은 결방됐고, 대신 ‘사업권회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역행침식과 상류 건천화로 붕괴 직전인 교각>
‘역행침식’은 4대강 지천의 침식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나 다름없습니다.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강기슭과 바닥이 깎이고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원인은 준설로 인해 낮아진 본류의 수위 때문에 발생합니다. 본류와 지천 사이에 낙차가 생겨 지천의 유속은 몇 갑절 빨라지게 됩니다. 빠르고 세차게 흐르는 지천은 본류가 만나는 합수지점부터 지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파괴와 침식을 일으킵니다. 전국적으로 큰 피해가 우려되는 ‘재앙’입니다.
<역행침식이 심각한 여주 남한강 지류 간매천>
역행침식, 재퇴적, 홍수와 물부족, 생태계 파괴... 벌써 시작
‘역행침식’과는 반대로 본류지역에서는 모래가 다시 쌓이는 ‘재퇴적 현상’도 발견됐습니다. 쉴 틈 없이 계속되는 강바닥 준설공사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준설 공정이 막바지라고 하지만 ‘재퇴적현상’으로 인해 말짱 도루묵이 돼가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공사를 100% 국민세금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입니다.
<재퇴적현상이 뚜렷한 낙동강 / 오마이뉴스>
4대강 사업의 목적이 치수(治水)와 이수(利水)에 있지 않다는 건 이제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을 가두는 댐 규모의 대형보가 16개나 되고 강 수심을 6m까지 파낸다는 건 이수와 치수와는 거리가 먼 개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4대강 공사는 대운하 공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지금 4대강 공사를 해두면 나중에 국민이 원할 때 강들을 서로 연결시켜서 대운하를 만들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해 4대강 공사가 사실상 대운하의 전단계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바 있습니다.
정부의 ‘대운하 공사’는 크게 두 가지 공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강바닥을 곧고 깊게 준설해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는 개조된 강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누가 봐도 지금의 4대강사업은 ‘대운하’의 1단계 공정에 해당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모델’로 삼았던 독일은 ‘재자연화(Renaturierung)’ 작업 한창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로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꼽았으나, 4대강 반대운동을 펴고 있는 재독 건축가 임혜지 박사는 “독일 운하는 공사기간만 20년,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100년이 걸린 대사업”이라며 한국정부의 졸속을 비웃었습니다. 또 독일 운하의 경제적 기여도도 “당초 예상치의 1/3도 안돼 운하 유지비의 7%만 통행료로 충당되는 태반 적자인 상태”라며 사업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라인강 홍수 - 운하를 만든 뒤 급격히 빈발하고 있다>
임 박사는 ‘독일 운하’의 재앙으로 먼저 라인강의 홍수피해와 지하수 고갈현상을 꼽았습니다. 반듯하게 다듬은 물길을 타고 빠른 유속으로 내려오는 본류 때문에 지천의 모젤강, 네카강 등 지천의 물이 상류에서 급하게 내려오는 물길로 인해 라인강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합수지역의 범람이 계속되고 있어 이런 이유 때문에 “백년에 한번 일어나던 큰 홍수가 요즘은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건천화 현상>
반면 곧고 반듯하게 그리고 깊게 바닥을 준설하게 되면 수일 걸릴 물 흐름이 하루로 단축될 만큼 유속이 빨라집니다. 빨라진 유속은 강바닥을 깍아 내릴 뿐아니라 강물이 바닥과 강변의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방해해 지하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지하수 고갈은 강 주변의 생태계 뿐만 아니라 농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라인강과 마찬가지로 4대강 주변에서 똑같이 일어날 겁니다.
임 박사는 라인강 유역의 생태계 파괴도 심각해 동식물 서식이 예전의 1/5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독일정부는 얼마 전부터 강 둑을 헐고 강 유역을 넓히는 ‘재자연화(Renaturierung)’ 작업이 한창입니다. 라인강을 인공이 아닌 자연에 돌려주는 공사입니다.
<재자연화 작업이 한창인 독일 아지강>
4대강 사업은 독일 운하 ‘재앙’ 보다 훨씬 심각할 게 분명합니다. 635km 구간에 대한 환경조사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4개월이었고, 공사 기간도 2년밖에 안됩니다. 극히 부실한 조사와 사전 작업, 그리고 가공할 만한 속도전이 빚어낼 ‘재앙’은 국민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부산일보>는 낙동강 구간에 대한 생태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함안보 하류 본포교 부근), 칠곡보 하류 제2왜관교 아래, 낙단보 하류 낙단대교 아래에서는 어류가 눈에 띄게 적게(4~5종) 발견됐으며, 특히 구미보 하류 숭선대교 아래의 낙동강 본류에서는 어종 채집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작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서 함안보 하류에서는 17종, 칠곡보 하류에서는 13종, 낙단보 하류에서는 6종이 발견된 것을 감안한다면, 작년에 비해 1/3 이상 줄어든 셈입니다.
반면 지천과 합류하는 합천 율지교 아래 여울과 웅덩이에서는 11종이나 발견됐고, 삼강교 부근에서는 환경부 지정 1급 보호종인 흰수마자가 채집되기도 했습니다. 지천이나 비준설 지역의 생태계는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멸종위기 1급 '귀이빨대칭이' 집단 폐사/출처: 마산창원진해 환경연합 공식 블로그>
얼마전 마산진해창원 환경연합과 대구환경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낙동강사업 20공구 합천보 상류와 율지교 아래에서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큰 조개 ‘귀이빨대칭이’가 집단 폐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국토부의 환경조사에서는 귀이빨대칭이가 아예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돼있었다는 점입니다. 국제적으로도 지탄을 받을 짓을 한 겁니다.
‘위락형 신도시’? 4대강 참모습 알자 대구경북도 등 돌려
4대강은 이수치수 사업이 아니라 ‘개발사업’입니다. 민주당 김희철 의원은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편법투자한 8조원을 회수하기 위해 남한강 이포보 부근 100만평과 낙동강 구미보 부근 300만평을 작년 연말 날치기 통과된 ‘친수법’을 근거로 해 개발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미 친수구역 개발에 대한 기본구상 용역 결과가 나왔는데도 국회 보고를 미루고 은폐하는 이유는 4대강 완공과 발표시점을 맞춰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기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국민의 생명줄인 남한강과 낙동강에 호텔, 콘도, 카지노, 레저시설 들이 들어서는 사상 초유의 ‘위락형 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얘깁니다.
4대강사업의 참모습을 알아서 일까요? 4대강사업 최대 지지지역이었던 대구경북의 여론이 확 달라졌습니다. <시사저널>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대구경북 주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다음 총선에서 ‘야당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40.3%로 ‘여당후보를 지지’(48.9%)에 비해 적게 나왔으나, 여야 지지율 격차가 크게 좁혀져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구에서는 ‘야당 후보 지지’(48.5%)가 ‘여당후보 지지’(39.9%) 보다 8.6%나 높게 나타나는 이변을 보였으며, ‘4대강 사업’이 대구 민심을 돌아서게 한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향후 선거에 가장 영향을 미칠 이슈’를 묻는 설문에 26.2%가 ‘4대강 사업’을 꼽았고 동남권신공항 백지화(20.3%), 대구경북 홀대(13.1%), 과학벨트 무산(8.9%)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구미지역 단수 사태’로 인한 실망에다가 34만개 일자리 창출과 40조원 생산유발 효과를 주장한 정부의 4대강 효과가 단지 ‘뻥튀기’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4대강사업은 거대한 재앙, 국토의 젖줄에 말뚝 박은 꼴
4대강 재앙을 자초한 이명박 정권은 두고두고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겁니다.
상류는 말라붙어 건천이 되고, 지천 기슭에는 재앙에 가까운 침식이 일어날 겁니다. 지천과 합수지점에는 홍수가 빈발할 테고, 강 주변은 물 부족으로 시달리게 되겠지요.
재퇴적 때문에 매일 본류 바닥을 준설을 해야하고, 물의 낙차와 수압으로 인해 바닥이 겨나가는 16개 보 밑에는 끊임없이 자갈을 부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겁니다.
생태계는 파괴돼 자정능력을 잃게 되고, 댐이나 다름없는 보로 인해 거대한 물웅덩이로 변한 강은 양호한 수질은커녕, 청계천처럼 녹조현상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청계천 녹조현상>
‘토목논리’과 ‘개발논리’가 경제 부양의 만병통치약이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건만, 이명박 정부는 때 늦은 ‘토건논리’라는 말뚝을 일단 훼손되면 회복이 어려운 국토의 젖줄인 4대강의 심장에 깊이 박았습니다.
운하와 제방을 허물고 유역을 넓혀 하천에 자유를 주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도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현정권의 4대강사업은 새로운 것을 거부해 문을 닫아걸었던 쇄국정책 보다 더 퇴행적인 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