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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단순한 기록물, 그 이상의 가치 『난중일기』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141 14.08.29 22: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유년 9월 15~16일(명량해전일) 일기 충무공 친필 초고본 ⓒ현충사관리소

 


 

안녕하십니까? 제6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황이새입니다.

 

이번 달에는 2014년 여름, 가장 ‘핫’한 영화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핫’한 영화란 바로 ‘명량’(김한민 감독, (주)빅스톤픽쳐스)입니다.



△영화 '명량' 메인포스터  ⓒ명량 : 네이버 영화

 

 

기사를 쓰고 있는 2014년 8월 12일 기준으로 현재 명량을 관람한 관객 수가 1,130만 명을 넘었습니다. 1,000만이라는 숫자를 넘어선 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더욱 대단한 것은 영화 ‘명량’이 남긴 기록입니다. 명량은 각종 역대 최고 관객 스코어(최고 평일 스코어, 최고 일일 스코어), 최단 시간 관객 돌파(100만·200만·300만·400만·500만·600만·700만·800만·900만·1000만·1100만 돌파) 등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8월 27일까지 누적관객수 : 1,653만 명)

 

저도 1,130만 명 중 1명으로서 영화 ‘명량’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영화를 보러 출발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영화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무거웠습니다.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영화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영웅성, 최민식 등 배우들의 열연, 실제 사실이라 믿기지 않는 스토리, 사실감 넘치는 전투 장면 등등이 결합된 걸작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영화 속 충무공 이순신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자세를 보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닥치는 어려움들을 겁내지 말고 용기로서 맞서야겠다는 교훈도 얻게 되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영화 ‘명량’. 이 ‘명량’이라는 영화의 스토리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도와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누군가에게 소개하거나 설명하기에는 어렵고, 그래서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기록유산인 『난중일기』(국보 제76호, 2013년 세계기록유산 등재)입니다.



△난중일기  ⓒ문화재청

 

 

『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임진왜란(1592~1598) 기간 중 진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입니다. 모두 8권의 책(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현재 없음],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무술일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발발(1592년 1월) 이후부터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2,539일 7년의 기간을 망라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기를 기록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모습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캡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방학 때마다 가장 스스로를 괴롭히던 숙제가 무엇이었나요. 

저는 단언컨대 ‘일기 쓰기’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쓰다가 개학 일주일 전에서야 방학동안의 날씨와 각종 사건들을 떠올리며 몰아서 썼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납니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전쟁을 지휘하는 중에도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마음이 들고 심지어 경외심마저 듭니다.



△『이충무공전서 수록 난중일기』  ⓒ황이새

 

 

‘난중일기’라는 이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 직접 지은 책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난중일기』는 원래 특별한 이름이 없었으나 정조 연간(1795년)에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이충무공전서』 제5권부터 제8권에 ‘임진일기’ 등 충무공의 일기를 실으면서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난중일기 초고본』  ⓒ현충사관리소 홈페이지

 

 

충무공 이순신이 직접 쓴 일기 중 남아 있는 부분을 '초고본草稿本'이라 하는데 현재 많이 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년 1월 1일부터 4월말까지 등 여러 부분이 없고, 특히 을미년(1595) 일기는 아예 1책 전체가 없습니다.

 

?반면 『이충무공전서』 권5부터 권8까지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전서본'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임진년 1월부터 4월까지를 비롯해 을미년 일기까지 초고본에 없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이를 통해 『난중일기』의 전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순신 종가에서 대대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초고본은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한 이후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 『난중일기』는 친필 초고본과 전서본에 수록된 것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정자로 베껴 판각을 하였는데 이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난중일기』를 연구하고 번역할 때는 친필 초고본을 표준으로 삼고, 초고에 없는 부분을 전서에서 보충·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작업을 거쳐 우리는 최대한 초고본과 가까운 『난중일기』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난중일기』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는데요, 책의 내용이 어떠한지 또한 궁금해집니다. 내용이 왠지 딱딱하고 어려울 것만 같다고요? 하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 아주 사적인 ‘일기’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편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영화 ‘명량’과 관련된 정유년(1578년)의 일기 기록을 통해 『난중일기』를 읽어 보고자 합니다! 영화 '명량' 등장 인물과 배경 사진들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면 쉬울 것 같아 사진도 첨부하였습니다.(내용은 '김경수역, 『난중일기』, 돋을새김, 2011년'에서 발췌)



△명량해전도  ⓒ네이버블로그(http://blog.naver.com/obiwankenovi/120034528635)

 

 


정유년 9월 14일(명량해전 이틀 전)



△영화 '명량' 속 임준영(진구 분)과 김중걸(김태훈 분)  ⓒ명량 : 네이버 영화

 

 

맑음. 북풍이 크게 불었다. 벽파정 맞은편에서 연기가 오르기에 배를 보내서 싣고 오니 바로 임준영이었다. 그가 정탐한 결과를 보고하기를 “적선 200여 척 가운데 55척이 먼저 어란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 온 김중걸이 전하는데, 중걸이 ‘이달 6일 달야의산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왜선에 실렸는데, 다행히 임진년에 포로가 된 김해 사람을 만나 왜장에게 빌어서 결박을 풀고 같은 배에서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왜놈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그 김해 사람이 귀에다 대고 은밀히 이야기하기를 “왜놈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말들이 ’조선 수군 10여 척이 우리 배를 추격해서 혹은 쏘아 죽이고 또 배를 불태웠으니 극히 통분한 일이다. 각처의 배를 불러 모아 합세해서 조선 수군을 섬멸해야 한다. 그런 뒤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으나, 그러지 않을 수도 없어 곧 전령선을 보내 피란민들을 타일러 육지로 올라가도록 했다.

 

 

정유년 9월 15일 (명량해전 하루 전)


△영화 '명량'에서 전투를 준비하는 조선 진영  ⓒ명량 : 네이버 영화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적은 수의 수군으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하였고, 또 이르되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고 엄격히 말했다. 이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했다.
 


정유년 9월 16일 (명량해전 당일)


△영화 '명량' 속 330여 척의 왜선  ⓒ명량 : 네이버 영화

 

 

맑음. 이른 아침에 특별 정찰 부대가 보고하기를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선이 명량을 거쳐 곧장 우리가 진 치고 있는 곳을 향해 들어온다”고 했다.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330여 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적하는 것이라 스스로 낙심하고 모두 도망할 꾀만 내는데,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2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내가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지자, 현자 등 각종 총통을 마구 쏘니 탄환이 마치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군관들이 배 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했다. 그러나 우리 배가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서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으므로, 온 배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다보며 안색이 질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되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니,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하고 명하였다.



△영화 '명량' 속 안위(이승준 분)  ⓒ명량 : 네이버 영화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먼 바다로 물러가 있고,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고 하니 적들이 더 대들 것 같아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中軍)에게 군령을 내리는 기(旗)를 세우라 지시하고 또 초요기(招搖旗)를 세웠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점점 내 배 가까이 다가왔는데 거제 현령 안위의 배는 그보다 먼저 다가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친히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고 꾸짖었다.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서 “너는 중군이면서도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지금은 적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고 꾸짖었다.



△영화 '명량' 속 백병전에 돌입하는 상황  ⓒ명량 : 네이버 영화

 

 

그래서 두 배가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자 적장이 탄 배가 휘하의 배 2척에 지령하여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가 붙듯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니, 안위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사력을 다해서 혹은 모난 몽둥이로, 혹은 긴 창으로, 혹은 수마석 덩어리로 막았다. 배 위의 군사가 지쳐서 기진맥진하므로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 댔다. 적선 3척이 거의 다 엎어지고 자빠졌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리장수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 와서 협력하여, 적은 한 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영화 '명량' 속 준사(오타니 료헤이 분)와 구루지마(류승룡 분)  ⓒ명량 : 네이버 영화

 

 

투항한 왜인 준사는 안골에 있는 적진으로부터 항복해 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에 빠져 있는 적을 굽어보더니 그림 무늬 놓은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에 있던 적장 마다시(구루지마로 유력하게 추정됨)라고 말했다. 내가 무상(물 긷는 군사)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낚아 올린즉, 준사가 좋아 날뛰면서 “그래, 마다시다”하고 말했다. 곧 명령하여 마다시의 시체를 토막 내 적에게 보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였다. 적이 다시 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우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쫓아 들어가 지자, 현자 총통을 쏘니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적선 31척을 깨드리자 적선이 퇴각하고 다시는 우리 수군 가까이에 오지 못했다. 싸움하던 바다에서 그대로 정박하고 싶었지만 물결도 몹시 험하고 바람도 역풍이라 형세 도한 위태롭고 외로워, 당사도로 옮겨서 밤을 지냈다. 이번 싸움은 참으로 천행이었다.

 

 

자, 지금까지 『난중일기』 속 명량해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영화 ‘명량’을 보신 분들은 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쉽게 이해하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에 사실과는 다른 픽션이 가미되었구나!’하는 것도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어떤 부분이 픽션이었는가를 언급을 하게 되면 제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삼가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난중일기』와 영화 ‘명량’ 속 차이들을 찾는 도중 영화가 명량해전의 100% 구현해냈건, 구현하지 못했건, 사실 이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난중일기』 존재의 의의라는 것을 알았다고 할까요.

 

만약 충무공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명량해전을 지금처럼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전투 후 장계(보고서)에 의해서 간략하게 명량해전(이밖에 옥포해전 등 다른 해전들을 포함)을 이해하지 않았을까요. 생생함 없이 말이지요.

 

또한 『난중일기』에는 각종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유비무환의 진중생활, 인간 이순신의 적나라한 모습과 생각,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 부하에 대한 사심 없는 상벌의 원칙, 국정에 대한 솔직한 간언, 군사행동에 있어서의 비밀 엄수, 가족·친지·부하장졸·내외 요인들의 내왕 관계, 정치·군사에 관한 서신교환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구절  

ⓒKBS뉴스 캡쳐(http://blog.naver.com/sssun365/150170297434)

 

 


이를 통해 『난중일기』가 가진 의의(가치)는 단순한 기록물이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임을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난중일기』는 생사를 걸고 싸우던 당시의 진중일기(陣中日記)로서 그 생생함이 더욱 돋보인다는 가치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정치·경제·사회·군사 등 여러 부문에 걸친 측면사와, 특히 수군(水軍)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충무공의 꾸밈없는 충(忠)·효(孝)·의(義)·신(信)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후세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밖에 당시의 기후나 지형, 일반 서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전하고 있어 과거의 자연지형 및 환경, 서민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가치도 있습니다.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연합뉴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은 『난중일기』는 1962년 12월 20일, 서간첩·임진장초와 함께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로 국보 제76호에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2013년 6월에는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6.18-21, 대한민국 광주)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내 비어있는 『난중일기 초고본』의 자리   ⓒ황이새

 

 

이는 국가의 보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로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원래 『난중일기 초고본』은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서 전시되고 있었지만 현재 보존처리 및 복제본 제작 작업으로 인하여 잠시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잠시 자리를 옮긴 상태입니다. 이는 영구보존을 위하여 가급적 원본 전시를 자제하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위원회의 권고사항에 따른 것이라고 하고요. 단순한 기록물, 그 이상의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유산인 만큼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더욱 더 열심히 보존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난중일기』 보존 및 복원하는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페이스북

  

 

현재 저도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세계유산지킴이’에서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난중일기』에 대한 실질적인 지킴이 활동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저는 같은 팀 팀원들과 함께 ‘난중일기의 내용과 가치 알리기’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난중일기』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예상됨에도 많은 국민들이 세계인에게 난중일기를 적절히 소개할 만큼 난중일기의 내용과 가치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블로그 : http://blog.naver.com/asd_2014 ,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aspecialdiary)

 

영화 ‘명량’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이 시점. 우리가 먼저 『난중일기』에 대해 알게 된 만큼,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친구·동료들에게 『난중일기』의 내용과 가치에 대해 소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를 통해 일어나는 『난중일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난중일기』를 지켜나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6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황이새 기자(dlto0909@naver.com)

 


[참고 자료]

*문헌

     김경수역, 『난중일기』, 돋을새김, 2011년

     '난중일기 - 전장의 기록에서 세계의 기록으로' 전시도록

 

*인터넷

    문화재청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홈페이지

    네이버 영화 :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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