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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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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자료실 스크랩 모음 시 안개 - 기형도/신정숙/박정남/문정희/조병화 외 김광규,신경림, 박제영, 김소월
흐르는 물 추천 0 조회 48 14.03.07 10: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 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이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겁탈당하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거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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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신정숙

 

 

머리 풀어 헤친 여자가 걸어온다
나무를 채근하며
여자가 문을 두드린다
흩어진 가을을 쓸어모아
불지르고 떠난 자리
자식처럼 달고 온
보따리를 풀어헤친다
뜨겁게 죽어간 밤을 찾아
천 년을 건너온 여자
손 비비며
퍼질러 앉아 울다 웃다
육신에 묶인 어둠을 벗겨낸다
잉걸불에 타는 허공이
소리 없이 퍼져 나간다

 

 

 

―시집 『태엽 감기』(문학의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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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박정남

 


나무들의 숲에 안개가 내리면
나무들도 아랫도리가 보인다
나무들이 다 벗지 못한 옷을
안개가 벗기고 있다

 

안개 속에서
나무들이 불을 켜지 않는 것은
꽃들이 젖어 있어서
젖은 꽃들이 이대로는 내어놓고 싶지 않아서
이대로는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좀 더 기대어 울고 가라고

 

벗은 나무가 오래
안개 속에 서 있다

 

 

 

-시집『명자』(한국문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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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문정희

 

 

아침 안개 속에
다소곳이 어깨를 기대고 서 있는
저 지붕들은
아무래도 하나의 물음 같다
대답을 알려고 해서는 안되는
심오한 그 무엇 같다


생이 어찌 안개 뿐이겠는가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처럼
때로 햇살 속에
눈부신 나체로 흔들릴 때


그 장엄한 대답, 그리고
끝내는 사라지는 것들의
짧은 물음 외에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지붕과 지붕 사이
아무것도 아닌
조금 물기 있고
조금 흔들리는 것이
안개가 오늘 또 당도한 것 말고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 있는 것 말고

 

 

 

-시집『시와시학』(200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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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조병화

 

 

안개는 다정스러우나 불안하옵니다
안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옵니다


사랑은 그리운 것이나 허전하옵니다
안을 다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옵니다


아, 안개는 고요하고 다정스러우나 허망하옵니다
안을 보이지 않은 채 개이기 때문이옵니다


사랑도 그와도 같이
사랑은 아름다우나 불안하옵니다
안을 다는 알지 못한 채 이별이 오기 때문이옵니다


아, 안개는 고요하고 다정스러우나 허망하옵니다
안을 보이지 않은 채 개이기 때문이옵니다

 

 

출처

http://cafe410.daum.net/_c21_/bbs_nsread?grpid=Awi&fldid=DRy&contentval=004cj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7777&searchlist_uri=%2F_c21_%2Fbbs_article_search&search_ctx=VnKaQtKZsJZB2Q6rEnyTQNJLYJ1BLByrplu4NN3dD8.YftGOG4QhfT_jBpGTMA99G6sCiiwlETbIr6ZBQXpaLomXKq8YkZWKNrMdx-JWGoxqeUVfYP_kqo6fG1nV2kUV2GX7h3PE9RFFN9Tft6GUeU7vr_kKrmY9aSQ9SAF15-mLztz9JJFkXbiTmfMUUoeQCqrZIWcPmWfqp1Ipy7rGjED_Vt3bnXc2lzBJwuGg36X6yoVO9o.b_XPjFUWsDzIsfWvTa-fBLbehurYr-pPhTjyUl1UZus5FHRBgeghs-uPVem7oA9I5l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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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로 가는 길

-경인 하이웨이에서

 

조병화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긴 내 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말할 수 없는 이 해답
아직 안개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피하며, 피하며
비켜서 온 자리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빈 소유에 떠서


안개로 가는 길
안개에서 오는 길
휙휙
곧은 속도로 엇갈리는 생명
창 밖은
마냥 안개다

 

 

 

-시집『안개로 가는 길』(문학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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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1957년 역부근

 

조병화

 


어디로인지 자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 이파리는 떨어져
나무 가지가지에 가을이 흐트러진 계절의 가장자리
가을 변두리 안개 깊이 흐르는
길을
어디로인지 자꾸만 걷고 있는 것이다

 

나무도 돌도 사람도 사라지는 기억 아득히
모두 홀로 제각기 자기자리
묵묵한 자리
떼지어 흐르는 안개 틈틈이
먼 시간의 기침소리
나는 밀려
어디로인지 자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빈 마음도 이젠 깊이 돌아오지 않고
혼자 남은 생각
무척 그립던 사람도 이젠 마음 다 풀어버리고
혼자 남은 생각

 

어디로인지 자꾸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 이파리는 떨어져
나무 가지가지에 가을이 흐트러진 계절의 가장자리
가을 변두리 안개 깊이 흐르는
낙엽수 사잇길을 뚝뚝
내가 나를 흘리며 나는 떼 놓으며
어디로인지 자꾸만 걷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cafe34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9DvB&fldid=GvFK&datanum=177&contentval=&&search=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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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나라

 

김광규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뭇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 같은 사람들이
안개의 나라에 산다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문학과지성사. 1979)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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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

 

신경림

 

 

사랑을 배우고
미움을 익혔다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그리고 더 많은 원수와 마주쳤다
헛된 만남 거짓 웃음에 길들여지고
헤어짐에 때로
새 힘이 솟기도 했으나


사랑을 가지고 불을 만드는 대신
미움을 가지고 칼을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법석대는 장거리에서
저무는 강가에서


이제 새롭게 외로움을 알고
그 외로움으로
노래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 노래로 칼을 세우는 법을 배우고
그 칼을 가지고
바람을 재우는 법을 배운다
새벽 안개 속에서
다시 강가에서

 

 

 

-시집『신경림 시전집』(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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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의 기원

 

   박제영

 


   춘천 춘천 나지막이 춘천을 부르면 출렁출렁 안개가 새어 나옵니다 아니 정확히 안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춘천이라는 말, 그 말에 한 번이라도 닿은 것들은 마침내 안개가 됩니다 아니 호수에 비친 얼굴이 안개처럼 흐려졌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단지 떠도는 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횃불을 들고
   안개 자욱한 공지천변을 따라 고슴도치 섬까지 걸어갔더랬습니다
   춘천의 정현우 시인이 그랬거든요


   고슴도치 섬에는 안개공장이 있대
   퇴출된 詩노동자들이 섬 밖으로 안개를 나르고 있대*
 

   과연 그러했습니다 늙은 난쟁이들과 맹인들이, 물론 그들은 퇴출된 습지의 시인들입니다, 섬 밖으로 안개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안개의 기원인가요? 아니라고 더 깊은 곳까지 가보라고 자기들도 그곳에서 온 물과 바람과 나무와 풀로, 고양이의 울음과 쥐의 눈물과 도마뱀의 오줌으로 안개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안개 속에서 더 깊은 안개 속으로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갔더랬습니다
   사람도, 나무도, 강물도 안개가 되어버린 그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무 것도 없습디다
   춘천에서 안개의 가장 안쪽을 아주 오래 걸어보았는데
   마침내 아무 것도, 안개도 없습디다

 

 

* 정현우 시인의 「소문」이라는 시다. 본문 전체를 인용한다.

 


 
―계간 『문학마당』 (2009 가을호)
ㅡ웹진 시인광장 선정『2009 올해의 좋은시 300選』(2009, 아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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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안개

 

김소월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맛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醉)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 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 때러라 : 때더라.
▷ 홀목숨 : '혼자 사는 목숨'을 줄인 말로, '혼자 사는 사람'을 뜻한다.
▷ 당치맛귀 : 당(唐)치마의 귀. 당(唐)옷이나 당의(唐衣)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옷으로, 조선시대 여자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던 예복의 하나이다. 일명 당저고리라고도 한다. 당치마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당치맛귀는 당옷의 끝자락에 덧붙인 긴 헝겁조각을 의미하거나, 혹은 당치마(?)의 끝자락에 덧붙인 긴 헝겁조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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