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말이지. 승자들에 의해서 쓰여 지는 거야.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역사책 몇 권을 정사라 하여 그것만을 근거로 한단고기를 쓰레기 취급들 하는데 한단고기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을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몇 권의 역사서로 판단하는 건 그 자체가 모순이다 이거야. “오로지 이것만이 우리의 정사서이다” 라는 판단은 일제시대에 쪽발이들로부터 강요당한 식민사관의 일부거든. 우리의 진짜 역사서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중국사대주의에 빠진,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역적, 이씨왕조의 책임이 가장 막중해. 우리 고서들을 싹
수거해서 모조리 불살라 버렸거든(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음). 그 후 왜놈들이 침략해서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우리 역사서들을 지네 나라로 가져간 거지. 그런데 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같은 반도사관으로 투철한 역사서들은 아직도 존재하는 걸까? 그토록 많은 사서들을 모조리 회수해 갔는데 왜 이 두 권의 역사서들은 없애지 않은 걸까?
역사란 말이야. 위에서도 언급한 바대로 승자들의 기록이야. 자기들한테 불리한 기록은 절대 하지 않거든.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불태우고 거짓 역사서를 꾸며 남겨 두어도 역사는 죽지 않아.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서 숨 쉬는 게 역사라고. 그런데 왜 너희 식민사관론자들은 그걸 보지 못하는 거야? 머리의 용도를 장식품이나 망치대용으로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거냐구. 기껏 해봐야 2.0도 안 되는 동태눈깔 굴리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네 옆에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돌아봐. 숭고하고 유구했던 우리 선조님들의 위대한 역사를 말이야. 바로 니 옆에 있잖아. 고개 돌리지 말고, 멍청아 마음으로 보라니깐. 에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단디 들어. 내가 한단고기를 접한 지 딱 한 달 됐는데 그 동안 추적하고 내린 결론이야. 내가 이 결론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친 사료들은 지금 언급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다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원한다면 훗날에 언제든지 올려 줄게.
진정한 우리 선조님들의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기존의 역사서들은 다 잊어버려야 돼. 앞서도 말했지만 그것들은 승자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남겨져 있는, 혹은 위조되어 있는 역사서들이거든.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는 역사서들도 자기들에게 불리한 부분은 누락시켰던가 새로 만들었다고 봐야 해. 그 증거를 제시해 볼까?
대동여지도는 1861년 김정호에 의해 완성됐다고 알려져 있어. 그런데 거기에는 간도가 없어. 일제치하 때 왜놈들이 중국에 대한 개발권을 얻기 위해 우리의 간도를 뙈놈들에게 넘겨줬는데 대동여지도에는 간도가 없다는 말이야. 간도협약이 체결된 건 1909년, 그 당시 동간도에만 조선인이 9만 명 이상 살고 있었어. 그런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지도가 없음을 통탄하며 제 발로 전국을 돌아 만들었다는 대동여지도에는 왜 간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걸까?
대동여지도가 세상에 그 자취를 드러낸 건 왜놈들이 이 땅을 점령하고 있을 때였어. 그 전까지 김정호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었지. 1925년 10월 초순, 동아일보는 김정호에 대한 전설 같은 기사들을 마구 연재하기 시작했어. 생판 듣도 보도 못한 김정호가 우리 민족의 우상이 된 건 일제치하 때였다는 얘기야. 이해가 돼? 왜 왜놈들이 남겨둔 사서를 믿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대전에 대해 딱 한 마디만 언급하고 있어. 수나라가 대군을 몰고 쳐들어 왔다가 폭우, 질병 등의 천재지변으로 인해 후퇴했는데 살아 돌아간 수가 열에 한둘 밖에 안 된다고. 어케 폭우와 질병 따위에 열에 여덟 아홉이 뒈지나?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중국 쪽 기록에 보면 고수전쟁은 고구려가 먼저 말갈군 1만을 보내, 지나 놈들을 공격했기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수십만의 대군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어. 하지만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자연재해 때문에 후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 결국 삼국사기와 일치해. 하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이 기록한 조선상고사에 보면 뙈놈들이 몰려 왔다가 고구려 강이식 장군에 의해 다 뒈지고 열에 한둘만 살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상고사의 내용이 진실이라는 걸 어케 입증할 수 있냐구?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고수전쟁의 시발에 대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야.
고수전쟁의 시발은 뙈놈들 왕이 아주 건방진 국서를 보내왔기 때문에 시작됐어. 하긴 400년 만에 중국대륙을 통일한 왕조로 등극했으니 얼마나 거만했겠어. 그 거만한 수나라의 왕이란 놈이 감히 고구려에게 신하국으로 편입될 것을 강요하는 그런 문서를 보내온 거야. ㅋㅋ 수나라의 왕이라는 놈은 완전 똘아이였던 거야. 그래서 고구려가 말갈군 1만을 시켜 놈을 자극한 거지. 하지만 그건 미끼였어. 똘아이 수왕은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수십만의 군사를 전멸시키고 말았고 몇 년 뒤 뒈졌어. 그러면서 지 아들한테 유언을 남겼는데, “절대로 고구려와는 싸우지 마라” 였어. ㅋㅋ 웃기지?
암튼, 중국에는 당시 수왕이 고구려에 보냈던 국서에 대한 자료가 남겨져 있어. 그런데 우리 삼국사기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 조선상고사에는 쓰여져 있단 말이야. 그러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믿지 말라는 거야. 그건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은 역사서거든(믿기지 않으면 프루나에서「KBS 역사스페셜 182회 추적! 고구려, 수나라 전쟁의 미스터리」를 다운받아서 봐. 다 나와 이쓰).
자, 지금부터 본론에 들어가 볼까? 중국 서안과 함양에 수백기의 피라밋이 발견됐어. 처음 발견된 건 1945년이야. 하지만 그 실체가 공개된 건 얼마 안 됐어. 위성이 피라밋을 포착하고 난 후였지. 그 전까지 뙈놈들은 절대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어.
몇몇 외국의 고고학자들이 중국에 공동발굴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저 산을 잘못 본 것 뿐이다" 라는 말도 안 돼는 핑계로 무려 반세기를 버텨왔어. 도대체 왜 그래야만 했던 걸까? 그게 화하문명의 유물이라면 벌써 전 세계 방방곡곡에 자기 조상들의 화려했던 역사를 자랑하느라 지롤발광을 다 떨었을 텐데 왜 그들은 개소리만 늘어놓는 걸까?
아직까지 그 피라밋의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가 없어. 뙈놈들이 일체 조동이에 자크를 채우고 있으니까 알 턱이 있나? 그 형태는 티벳과 스페인, 이집트, 남미 등지에서 발견된 것과 똑 같아. 석재 들여쌓기 공법으로 위로 올라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형태지. 최상단부는 제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지어져 있고 제일 큰 건 밑변의 길이가 270m 쯤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데(대게 이집트 피라밋은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 피라밋은 뾰족한 뿔 모양이 아닌, 위와 같은 형태였어).
근데 재밌는 건 위성에서 바라본 피라밋들의 위치가 오리온좌 별자리 각도와 일치한다는 점이야.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피라밋 군도 같은 각도로 배치되어 있지. 결론은 서안, 함양의 피라밋 군을 만든 장본인들과 티벳, 스페인, 이집트, 마야문명에서 발견된 피라밋의 주인들이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야. 그게 아니고서는 똑 같은 모양의 피라밋들이 똑 같은 각도로 배치되어 있는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잖아.(www.coo2.net 에 들어가면 사진이랑 다 나와 있슴)
그런데 동방의 피라밋이라 불리는 우리의 장군총도 이것과 똑같은 형태로 지어져 있어. 뙈놈들은 무덤을 흙으로 쌓았어. 거대한 산처럼 말이야. 장군총은 발견 이전에 도굴을 당해버려서 정확히 누구 것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아. 단지 왜놈들은 광개토태왕, 뙈놈들은 장수왕의 무덤이라고들 하지. 암튼 우리 선조들의 무덤인 것만은 분명해. 그런데 서안과 함양에서 발견된 피라밋들의 형태가 이것과 똑 같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피라밋들은 몇 가지 법칙을 따르고 있어. 석재로 들여쌓기 공법으로 지어졌고 최상단은 평평하게 다져 그 위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으며 관을 매장하는 석실을 피라밋의 상단부에 만들어 둔 것,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피라밋들의 위치가 오리온 성좌와 일치한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야. 우리의 장군총 또한 이러한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단지 피라밋 군이 아닌 홀로 존재하고 있기에 맨 마지막 법칙은 적용되지 않지만 말이야. 이것은 고구려가 서안, 함양, 티벳, 이집트, 남미의 피라밋의 주인들과 같은 뿌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어.
자, 여기서 한 가지 정말 안타까운 사실. 우리는 각 피라밋의 연대를 측정해보면 최초 인류의 뿌리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간단하게 알 수 있어. 예를 들어 서안 피라밋이 건립연대가 가장 빠르다면 과거 서안을 장악하고 있던 고대문명의 후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문명을 전파했다는 얘기가 되지. 마찬가지로 남미의 피라밋이 건축연대가 가장 이르다면 그 반대가 되는 거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과학으로는 정확한 건축연대를 알아낼 수가 없어. 스핑크스는 대략 4,000년 전에 만들어 진 걸로 알려져 있지만 얼마 전에는 만 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주장도 제기됐어. 그 정도로 현대 과학에 의한 연대측정은 신뢰성이 떨어져. 그래서 우린 또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야 돼.
암튼 우린 피라밋을 통해서 전 세계 문명이 하나의 문명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어. 이 결론을 끝으로 피라밋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 가자구.
이번엔 문자에 대한 얘기야. 뙈놈들은 자기들의 문자인 한자의 기원을 몰라. 1899년 중국 하남성에서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 중국 최고의 문자학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은 후한(後漢 A.D 25~ 220)의 허신(許愼)조차도 갑골문이 뭔지 몰랐을 정도야. 또한 뙈놈들은 자기 역사도 잘 몰라. 아직까지 삼황오제가 누구인지조차 의견이 분분해.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 뙈놈들은 은나라를 그냥 상상속의 국가라고 치부해 왔어.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은나라 왕조는 동이민족에 기원을 둔다고 기록해 놨거든. 그러니 한족들한테 은왕조의 역사는 완전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그런데 한자의 기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갑골문자들이 은나라의 옛 땅에서 발견된 거야. 그러니 어쩌나? 분명히 지들 역사서에 은나라는 동이(東夷)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은나라를 자기들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킬 수밖에. 안 그러면 그동안 대륙의 역사를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기울여 왔던 모든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 버리고 말거든.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 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라는 기록도 있어. 즉 앞의 기록과 조합해 보면 중국의 고대사는 모두 다 동이민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얘기야. 웃기지? 재밌지? 니들이 위서라고 내팽게쳐 버린 한단고기랑 똑같잖아?
1999년 9월 중국 허베이(河北)성 정저우(鄭州)에서 <갑골문 발견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 세미나>가 열렸어. 이 자리에서 중국과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용하던 인디언 문자가 3000년 전 중국의 갑골문과 같은 뿌리라고 주장했다고 홍콩의 문화보가 전했어.
중국계 미국 고고학자 쉬후이 박사 왈
“아메리카 원주민이 남긴 옥그릇, 조각, 도자기, 암각화 등에 나타난 인디언 고문자는
갑골문과 아주 비슷하며 결국 뿌리가 같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비, 물, 곡식, 논, 나무, 해 등 자연과 농경관련 문자는 서로 비슷하며, 제사나 무속 관련 문자, 방향어 등은 모양과 용법이 거의 일치한다”
난징(南京)대학 역사학과의 판위저우 교수 왈
"고대 중국과 아메리카대륙은 깊은 연관이 있다. 은(殷)나라 주(紂)왕의 아들이 나라가 망하기 전 북쪽으로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제일 먼저 언급했던 피라밋 얘기랑 이 얘기를 접목시켜 봐. 희뿌연 안개 너머 저편에 손짓하고 있는 환웅천왕님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보일 거야. 뭐? 안 보인다구? 이런 딩시나, 썩어 빠진 동태눈으로 보지 말고 심안(心眼)으로 보라 그랬잖아.
좋았어. 그래도 대그빡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해줄게. 이래도 바로 네 옆에 숨 쉬고 있는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도저히 못 믿겠다면 넌 분명히 뙈놈이나 왜놈 피가 섞였을 거야.
천부경이라고 들어 봤을 거야. 니들은 그게 대종교로부터 분파된 사이비 비슷한 종교단체의 기도문 정도로 알고 있겠지? 배달국 환웅천황이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 神誌文字)을 창제하였고 그 녹도문으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했다는 한단고기의 내용을 개 똥 밟는 소리라고 치부하겠지?
고려 충신 중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수은 김충한과 함께 6은으로 불렸던 농은 민안부(農隱 閔安富) 선생이라는 분이 계셔. 그 분의 아득한 후손인 민홍규씨가 농은 선생의 유품에서 듣도 보도 못한 문자로 쓰여진 서지를 발견하고는 그 정체를 알기 위해 2000년 송호수 박사를 찾아가셨지. 그게 모였게? 갑골문으로 쓰여진 천부경이었어. 안 믿겨지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 어렵지 않게 그 당시 기사를 스크랩한 글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천부경이 얼마나 오묘한 뜻을 품고 있는지는 그것을 해석한 책들이 수 십 종류나 대형서점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다들 자기 해석이 진짜라고 떠들면서 책 팔아먹고 있지만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결론은, 2000년도 이전에 출판된 책의 해석은 다 틀렸다는 거야. 왜냐면 우리에게 알려져 있던 천부경 한자본이 몇 글자 잘못 기록되어 있었거든.
천부경은 우리 민족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성스러운 경전이야. 그런데 이 빌어먹을 이씨조선이 유교를 숭상하기 시작하면서 전멸시켜 버리고 말았지. 하지만 최치원이 태백산 바위에 새겨진 희귀문자를 해독해 한자로 풀어써 세상에 다시 전했지만 니들 식민사관론자들은 그 원문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마저도 위서라고 치부했지. 하지만 규원사화가 그것에 대해 진술하고 있어.
지구상에 천부경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이 유일하다는 데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그런 천부경이 한자의 기원이 된 갑골문으로 기록된 서지가 농은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됐다는 건 우리 민족 역사의 문을 여는 열쇠를 되찾은 거나 마찬가지야. 정말 민족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사건이지. 이 대목에서 또 안티 거는 잡것들이 있을 런지도 몰라. 농은 선생께서 한자를 흉내 내어 갑골문자처럼 위장해서 기록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신발! 농은 선생은 고려 말기 분이라 그랬잖아. 중국에서 갑골문이 발견된 건 1899년이고. 그 전까지 뙈놈들은 한자의 근원이 몬지도 몰랐고 은나라를 지네 역사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위에서 언급했잖아. 점심 때 똥 먹었냐? 입에서 똥냄새 나니까 닥치고 있어라?
조선시대 이맥이 쓴 '태백일사'에는 “세상에 전하는 바 목은 이색, 범세동은 모두 천부경을 주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앞서도 말한바 대로 목은은 농은과 절친한 사이였지. 천부경이 왜 위서일 수가 없는지 증명됐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 一積十鉅無 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大三合六生七八九運(대삼합육생칠팔구운) 三四成環五七一妙衍(삼사성환오칠일묘연) 萬往萬來用變不動本(만왕만래용변부동본) 本心本太陽(심본태양) 昻明人中天地一(앙명인중천지일)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가림토 문자라고 들어봤을 거야. 가림토 문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당장 인터넷에서 검색해봐.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과 똑같은데 10글자가 더 있어. 거기 보면 알파벳의 O, E, X, U, I, P, M과 똑같은 글자들이 있어. 웃기지? 재밌지?
인도 대륙 서쪽 해변인 구자라트 지역에는 우리의 가림토와 흡사한 문자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 남미의 볼리비아에도 가림토와 흡사한 문자들이 현재까지 쓰여 지고 있지. 일본 에도 가림토 문자 비슷한 아히루 문자가 발견됐어. 오향청언(고쿄 기요히코)이라는 일본 학자가 수년간 연구한 끝에 고조선에서 만들어진 원시 한글이 일본에도 보급되어 아히루 문자가 되었는데 그 원천이 바로 가림토였다는 결론을 내렸지.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이 아주 가관이야.
"사마천의 사기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벌인 것이다. 漢나라의 漢이라는 국호자체도 옛날 삼한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간 것에 불과하다."
무용총에 그려져 있는 수박도라는 그림이 있어. 빨리 잇터넷으로 찾아서 함 봐봐. 그들의 머리 형태와 복장이 어떤 지를. 지금의 스모와 너무 똑같지 않아?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무술을 사용하는 두 민족? 두 민족이 아니라 한 민족이지. 일본 천왕도 천왕가에 백제 황제의 피가 섞여 있다고 밝힌 바 있잖아? 쪽발이들이 일제침략기에 모든 전력을 전쟁에 다 쏟아 부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왜 우리 역사서를 수거하는데 그렇게 혈안이 되었어야 했을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자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순간이야. 천부경의 진리를 탐구하는 전 세계 유일의 민족. 그 민족은 중국 서안과 함양을 일대에 뿌리를 내린 후 수많은 이합집산을 거치며 티벳을 경유해 유럽으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흘러 들어가 문명을 세웠어. 비록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흘러 서로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지만 세상의 모든 인류는 그들로부터 시작된 거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순수혈통을 이어받은 민족은 아시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한반도에서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어. 조상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방계혈통에 의해 수많은 침략을 당한 끝에 자신들의 화려했던 역사를 모두 잃어버린 채. 하지만 그 기억을 되찾게 되는 그 순간, 그들은 다시 선조들의 위대한 전철을 밟아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전 세계의 중심이 될 거야. 자신의 유전자에 기록된 정보를 회상하기 시작한 전 인류는 한민족이 자신들의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순수혈통임을 깨닫고 숭배하게 될 거야. 머지않은 시일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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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째 생업도 중단하고「파티마의 제 3 예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설에 필요한 자료를 찾던 중 한단고기를 접하게 됐고 약 한 달간 인터넷을 뒤져 이런 저런 자료들을 모았고 그것들을 조합해본 결과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윗글에서 반말과 이런 저런 욕설을 사용한 것은 문자로 이루어진 글을 구어체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괘념치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 분들께 한 가지 당부드릴 것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직선적, 평면적인 사관에 얽매이지 마시고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사고로 생각하다 보면 진실에 대한 심안이 활짝 눈을 뜨게 될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여 제게 묻고 싶은 점이나 토론을 나누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음 메신저 터치로 접속하셔서 "judicare"라는 아이디를 찾아 대화신청을 하시거나 judicare@daum.net으로 메일을 보내 주십시오.
아래 글은 어디선가 퍼온 글인데 참고 삼아 읽어 보십시오.
①일본학자 오향청언(고쿄 기요히코)는 "사마천의 사기 25권은 단군조선이 중원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벌인 것이다. 漢나라의 漢이라는 국호자체도 옛날 삼한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간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②대만대학의 서량지 교수는 역법, 춤추는 법, 활 쏘는 법, 만드는 법 등을 동이족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③위서魏書(북제北齊때의 역사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이는 요堯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라고 하였다.
④진서晉書(당 태종때 편찬한 동진과 서진의 사서)에 이르기를 "비리국裨離國은 숙신肅愼의 서북쪽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을 가야한다. 양운국養雲國은 비리국에서 말을 타고 또 50일을 가야 한다. 구막한국寇莫汗國은 양운국에서 또 100일을 가야 하며, 일군국一群國은 구막한국에서 또 150일을 가야 하는데, 이를 계산해 보니 숙신에서 5만여 리를 가야 한다" 라고 하였다.
⑤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동방을 동이東夷라고 하는데, 이夷는 근본을 말한다. 말하기를, 인자하여 만물이 생生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근본은 땅에서 나온다. 때문에 천성이 유순하며 도로써 제어하며,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에 이르렀다." 라고 하였다.
⑥논어의 자한子罕편에 공자가 구이九夷의 땅에 가서 살고자 하니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누추할텐데 어떡하시겠습니까?" 공자 왈 "군자가 거처하는 곳인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⑦후한서의 동이전東夷傳에 이르기를 "이른 바 중국에서 예禮를 잃었을 때에는 사방의 동이東夷에게서 구하였다." 라고 하였다.
⑧고사변古史辯(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사서)에 이르기를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제준(은나라에서 섬기던 동방의 상제), 제곡(제곡고신.五帝의 한사람), 제순(순임금), 소호(소호금천.五帝의 한사람), 그리고 설(은나라 탕왕의 조상)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라고 하였다.
⑨사기史記에 이르기를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 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라고 하였다.
⑩중국의 서량지徐亮之 교수는 <중국사전사화>에서 "역법易法(주역)은 사실 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소호금천. 五帝중의 한사람)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三皇중의 한사람)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라고 하였다.
⑪한서漢書의 지리지地理志에 이르기를 "치우 천왕의 능이 산동성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에 있다" 라고 하였다. <사기>의 집해集解에는 "치우의 무덤은 동평군 수장현 함향성 안에 있다. 그 높이는 7장丈으로 백성들이 늘 10월에 제를 올린다." 라고 하였다.
⑫포박자抱朴子에서 치우천왕의 청구국과 관련하여 이르기를 "옛날에 황제黃帝가 동쪽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紫府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으며 이로써 만신萬神과 어울렸다." 라고 하였다.
⑬後漢의 채옹은 <독단獨斷>이라는 문헌에서 "천자天子라는 호칭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생각했기 때문에 천자라고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첫댓글 안타까운건 실제 역사와 가까워질려면 여기서 더 나가야합니다.
저는 읽어보니까 그냥 그런데요.
더 나가야 하는데 이병도 제자들이 만만하지 않타는 사실...
꼭 우리친할아버지의 생애사를 보는거 같에요..(거기에대해 저는 어릴때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