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빛나는 영광들은 이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로 인해 다시금 각광받는 선덕여왕의 동생 진덕여왕시대인 651년에 창건된 불영사는 천년도 넘는 시절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는 천년 고찰이다.
잉잉대는 겨울 바람도 불영사가 있는 불영계곡을 넘어설 즈음 차츰 잦아들었다. 불영계속은 금강송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축복받은 땅' 같은 기운을 내뿜는다. '금강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는 금강산과 태백산간에서만 자란다는 한국 토종 소나무종이다. 소나무 원시림의 원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소광리 금강송 숲 속에 수령이 족히 2-3백년은 넘는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솔 향이 금방이라도 묻어 나올듯한 숲속을 지나면 불영사가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불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다. 불영사를 에워싼 산들은 마치 그 모습이 서유기로 잘 알려진 천축국에 있는 산과 닮았다고 하여 천축산이라고 불린다.
사실 천축이라는 말자체가 인도를 의미하니 인도의 산과 닮았다는 것보다 부처님의 공덕이 숨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불영사의 중심에는 불영지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지금처럼 얼음이 얼지 않은 때에는 산의 서편에 있는 바위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바위의 모습은 영락없이 부처님이 서서 설법을 하고 제자들이 앉아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바위의 그림자가 항상 연못안에 비추어 불영사(佛影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추는 영험한 절이다 보니 절의 모습 또한 고졸하면서도 정갈하다. 원래 불영사는 구룡사였다고 한다. 불영지에 아홉 마리에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용들에게 부처님이 계실 절을 세울 것이니 다른 곳으로 이주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여덟 마리의 용은 의상대사의 설법에 감복하여 이주하였지만 한 마리의 용만이 끈질기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의상대사는 화(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뜨거운 기운에 못 견뎌 용은 자리를 떴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대청은 고색이 창연하다. 몇 번이나 소실과 중수를 거쳤지만 본연의 아름다움만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