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노인을 위한 나라도, 지역도 없다
황민호 주간영동 발행인
황민호 주간영동 발행인
지난 코로나19시기 자영업자 지원금을 받으려는 어머니 대신 회원가입을 하고 인증번호 전송을 했는데 인증번호가 발송된 문자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매는 것을 봤다. 전화로 계속 설명을 해주다 나도 모르게 약간 언성이 높아졌다. 끝내 어머니는 주변의 다른 젊은 이웃상가에 물어물어 간신히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주말에 가서 어머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스팸 문자 포함해서 수백여건의 문자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었다. 휴대폰의 문자를 들여다보는 것을 아예 하시지 몰랐다. 그 수많은 메뉴 중에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를 모르셨던 거다. 전화는 울리면 받으면 되는데 도통 그 수많은 메뉴는 어디에 쓰이는 지 전혀 몰랐으니 안다고 생각하고 계속 말을 했던 내가 외려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카카오톡이나 사진 전송 뿐 아니라 간혹 당근도 손쉽게 사용할 줄 아는 노인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배우고 배워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내신 성과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디지털 문맹이다. 까막눈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고, 여기저기 울려대는 메시지에 적잖이 놀라고, 보이스피싱에 수도 없이 당하여 피 같은 돈을 잃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노인들은 이제 가만히 있어도 소식이 들린다.
정말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고. 보이스 피싱 문자나 전화가 나에게도 수시로 오고 비교적 젊은 나도 깜박 속아넘어가곤 한다. 갑자기 본인명의로 카드발급이 되었다거나, 저렴한 대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화는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좋은 미끼상품이다. 아무리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더라도 한순간의 빈틈을 노려 훅하고 쏙 빼어가는 것이다. 개인정보는 술술 그렇게 새어나간다.
지난주 한 70대 노인이 제보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관리하는데, 지난 11월까지 나온 고지서가 명의를 바꾼 후에 갑자기 모바일로 변환되어 문자로 온다는 것이다. 문자로 신청한 적이 없는데 아무런 동의 없이 매달 문자로 와서 미처 못 챙겼다는 것이다. 한전에서 왜 이리 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푸념을 했다. 그래서 전기세가 얼마나 나갔는지 당최 알 수도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전에 찾아가 보았다. 고객지원팀장한테 물어보았더니 지난해부터 한전 요금납부 지침이 바뀌어서 별다른 동의절차 없이 기본값으로 모바일로 보낸다는 답변을 들었다. ‘제57조 요금의 납부의무 및 납기일’ 항목 4항의 문구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한전은 고객이 납기일까지 요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요금청구서를 납기일 7일 전까지 인편, 우편, 또는 전자고지(전자우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의 방법으로 교부하여야 하며, 전자고지의 방법을 우선으로 적용할 수 있다. 다만, 고객이 요금청구서의 우편 교부를 요청할 경우 이에 응해야 하며’ 라고 되어 있다.
나름 품위있는 말투로 격식있게 쓰려고 했지만, 내용인 즉슨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기본값으로 보내겠다는 디지털 문맹자에게 대놓고 ‘문자폭력’을 시전한 것이다. 더구다 고령화 된 농촌 사회에서 지역의 40%에 육박하는 노인들이 사는 지역 농촌도 예외없이 이 지침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사전 고지나 동의절차 없이 바로 그냥 문자메시지를 살포한 것이다. 이의신청을 하려면 전화를 하라는데 한전 지점의 전화번호는 당최 알 수 없고, 무조건 국번없이 123을 눌러야 하며 통화요금이 부과되는 고객센터를 눌러보면 한참 나레이션이 나오고 또 기다리고 기다려야 번호를 누르고 다시 번호를 눌러야 연결이 될까말까 하는 것을 노인들이 과연 해낼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놈의 나라는 혁신이니 뭐니 하면서 공기업, 공공기관 다 할 것 없이 번호를 통합하고 앱을 만들고 하더니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을 과감히 소외시켜 버렸다. 예전에는 한전 직원이나 코레일 직원이나, 건강보험 공단 직원들과도 이물없이 지냈다고 했다. 바로 기차 시간도 물어볼 수 있고, 전기요금이나, 보험요금도 물어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체계 시스템의 감옥에 갇혀 있다. 그 감옥에 갇혀서 도무지 나올 줄을 모른다. 그러는 사이에 개인정보를 훌훌 털려 돈을 빼앗기고 저 세상으로 하직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혁신을 빙자하여 고령 노인, 사회적 약자를 더 소외시켜 버리는 기술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보한다고 하면서 걸구적거리는 생명들을 떨궈내며 그 희생이란 말은 쓰지 않겠다. 폭력과 린치 위에 쌓아놓은 혁신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세대가 단절되며 많은 뉴스가 돈이 되는 사람들 위주로 재생산되고 그들은 더더욱 고립되며 뒤안길로 들어 앉은지 오래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고로 노인을 위한 지역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지사다.
첫댓글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어르신들도 의무 기본학력이 있으면
시대에 맞춰 배워야 합니다. 배우세요!
요즘,무료교육 많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