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비온다며 곰살맞게 우산을 받쳐 들고 온 딸에게서 나는 뜻밖의 얘길 듣고 만다.
엄마, 아무래도 엄마 아들이 범인 같아. 그래 놓고선 좀 미안했던지 눈을 내리 깐다.
얘긴 즉슨, 지갑에 고히 모셔 둔 칠천원 중에서 오천원짜리가 없어졌다는 것.
그 사정거리 안에는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물고빠는 천금같이 귀한 그 아들 밖에 없었다는 게 요점.
흠..물증은.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큼은 확실하단다.
갑자기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나도 짚이는 데가 있단 말이지.
바닥에 떨어져 있어 그냥 주워 온 것 뿐이라는 그 괴물 딱지를 손에 잡히고
그 바닥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니, 다름 아닌 절친 언니 아들 방바닥.
절대루 훔친게 아니라 그냥 말만 안하고 가져온 것에 대한
억지 용서를 받아내고 온 것이 바로 바로 엊그제.
이번에야 말로 따끔하게 혼구녕을 내 주리라.
아들아. 너 누나 오천원에 대해 뭐 아는 거 없니.
메이블 레이드 팽일 집어들다 화들짝 놀란다.
발라당 누워 발가락을 까닥대던 남편도 주춤. 아들을 본다.
엄마,아빠,누나가 동시에 아들에게 쏠린다.
아는 게 있을텐데. 안 그래 아들?
기습 공격에 놀랬는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남편이 켜놓은 홈쇼핑에서 닭찜기 김내는 소리만 요란히 들린다.
오홋! 말을 안하시겠다. 누나 오천원 비스무리 한 것도 몰라? 빨리 말 안해?! 딸! 당장 회초리 가져왓!
목소리가 갈라진다.
일촉즉발,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남편이 다짜고짜 베란다로 끌고간다.
기다려줘봐. 그렇게 다그치고 곤장질을 한다고 다가 아니야. 한다.
나참, 지금도 늦었어. 벌써 회초릴 들고도 남았어야 한다고. 쟤 버릇 당신이 다 베려놓았다고.
봐봐, 분명 누나 돈에 손을 대었는데도 시침 뚝 떼고 앉아있는 걸.
잘못을 시인하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뭐, 기다려 주라고오~!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 데 보고만 있으라고? 그건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알기나 해?
쯧. 한심하다는 듯, 집나간 여편네 쳐다보듯 비아냥 거린다.
너! 어릴때 잘못한 적 한번도 없었냐? 그리고 그때마다 매 맞았냐?
그렇탐, 사람이 돼도 벌써 됐어야지 뭐냐, 사람도 아니고.
잘 생각해봐.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발상인지. 부모면 다냐?
자기가 잘못한 것 벌써 다 알고 있는데 자꾸만 매를 들고 겁박하며
이실직고해라, 잘못했다 빌어라..너, 아들 자존심, 그때 다 무너진다.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이 졸지에 조건적 사랑으로 '변모'하는 위험한 순간이라곳!
잠자코 아들녀석 양말을 벗기고 빤스까지 홀라당 벗겨 욕실에 안고 들어간다.
멀뚱멀뚱 올려다 보는 아들 얼굴을 들어 입안 구석구석 양치질을 해 준다.
거품을 한껏 낸 목욕 물에 집어 넣으니, 꺄오~하며 물오리랑 장난질이다.
나참, 방싯거리며 잘도 웃는다. 하지만, 내 머릿 속은 뽀글뽀글 거품이 인다.
덥다해서 침대 맡 창도 열어 주고,
코 고는 소리 들릴 때까지 이야기 해 달래서 피노키오 를 전략적으로 주절주절하다..
저도 나도 남편도 딸도 꺄무룩 잠 들었다.
잠결에 바람결에
아들이 소곤거린다.
.... 미안해 엄마.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는 어느날 시장에서 자신이 아껴 모은 전 재산을 털어 송아지를 사게 된다. 집으로 가는 길 얼마가지 않아 송아지가 넘어지게 되는 데, 그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던 소년의 할아버지가 말한다.
" 네 송아지가 죽었구나."
그 날 저녁을 먹으시던 할아버지가 슬픔에 잠긴 소년을 보며 말한다.
"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너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아이들은 자란다 부모의 기다림 속에.
나는 어쩌자고 겁도 없이 들커덕 부모가 돼버린 것인지.
.아...나도 내가 무섭다....
첫댓글 네 정말 무서울것 같아요.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건 참 어려운 숙제..
결혼할 때도 모르고 아일 임신해서도 모랐는데 아일 낳고나서부턴 무서움이 급 엄습하더라고요. 제가 엄마가 된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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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책은 책일뿐이죠. 오쇼의 <아이들?>책읽고 지혜로운 엄마 한번 해볼까 생각만하곤 책장에 세워놨어요. 잘 지내시죠?
애들을 저맛으로 키우나봐요~ 어른들 잣대로 족치는데 정작 애들은 심각한게 없구 돌아섬 순간에 충실한 장난~미안해 엄마하는데 뭉클 감동 ~ 안이쁠 수가 없겟다ㅎ
후훗 맛은 무슨, 아주 남편과 더불어 웬수다 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