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대중(大衆)이 무가애(無罣礙)를 얻다
❙ 원문
爾時, 阿難及諸大衆蒙佛如來微妙開示, 身心蕩然得無罣礙. 是諸大衆, 各各自知心遍十方, 見十方空如觀手中所持葉物, 一切世間諸所有物皆即菩提妙明元心. 心精遍圓含裹十方, 反觀父母所生之身, 猶彼十方虛空之中吹一微塵, 若存若亡, 如湛巨海流一浮漚, 起滅無從. 了然自知獲本妙心常住不滅. 禮佛合掌得未曾有, 於如來前說偈讚佛:
「妙湛總持不動尊, 首楞嚴王世希有.
銷我億劫顚倒想, 不歷僧祇獲法身.
願今得果成寶王, 還度如是恒沙衆.
將此深心奉塵剎, 是則名為報佛恩.
伏請世尊為證明, 五濁惡世誓先入,
如一衆生未成佛, 終不於此取泥洹.
大雄大力大慈悲, 希更審除微細惑,
令我早登無上覺, 於十方界坐道場.
舜若多性可銷亡, 爍迦囉心無動轉.」
이시, 아난급제대중몽불여래미묘개시, 신심탕연득무가애. 시제대중, 각각자지심변시방, 견시방공여관수중소지엽물, 일체세간제소유물개즉보리묘명원심. 심정변원함과시방, 반관부모소생지신, 유피시방허공지중취일미진, 약존약망, 여담거해유일부구, 기멸무종. 요연자지획본묘심상주불멸. 예불합장득미증유, 어여래전설게찬불:
「묘담총지부동존, 수능엄왕세희유.
소아억겁전도상, 불력승기획법신.
원금득과성보왕, 환도여시항사중.
장차심심봉진찰, 시즉명위보불은.
복청세존위증명, 오탁악세서선입,
여일중생미성불, 종불어차취니원.
대웅대력대자비, 희갱심제미세혹,
영아조등무상각, 어시방계좌도량.
순야다성가소망, 삭가라심무동전.」
❙ 해설
그때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 여래의 미묘한 가르침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텅 비어 막힘이나 걸림이 없었다. 모든 대중들은 각각 마음이 시방에 가득하고, 시방의 허공을 보는 것이 마치 손에 쥐고 있는 나뭇잎을 보는 듯하며, 모든 세상의 온갖 사물들이 모두 보리(菩提)의 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마음이 두루 원만하여 시방세계를 머금고 감싸고 있어서,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돌이켜 보니, 다만 저 시방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하나의 작은 먼지와 같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며, 마치 맑고 큰 바다에 물거품 하나가 떠다니면서 그 물거품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흔적이 없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본래의 묘한 마음이 항상 머무르며 사라지지 않은 것임을 깨달아 분명하게 알았다. 아난과 대중들이 일찍이 없었던 깨달음을 얻고는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합장하고서,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읊으면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묘하고 맑은 덕을 지니신 흔들림 없는 세존이시여
수능엄왕이시며 세상에 희유하십니다.
저희들의 억겁동안 뒤바뀐 망상을 없애주셔서
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원하건데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부처가 되어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모든 세계의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엎드려 청하오니 세존께서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악세에 먼저 들어가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습니다.
위대하시고 큰 힘을 가지시고 대자비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살펴서 끊어 주시고
저희들이 하루바삐 위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공성(空性)의 성품은 상(相)을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보충
대중들이 진심(眞心)을 이론적으로 알아차렸다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마음(진심 vs 망심)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보는 견(見.시각현상)을 통하여 진심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밝히는 변견지심(辯見指心) 법문이 있었다. 보는 것은 눈이 아니고 마음이라고 하셨다.
그 다음에 마음을 제외한 바깥의 삼라만상에 대하여 설명하셨다. 즉, 세상만사의 진상(眞相) 또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밝히셨다. 오온 육입 십이처 십팔계 칠대의 실상을 밝히셨다. 즉, 만법이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한 법문이 있었다.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하여 만법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며, 여래장 묘진여성인 진심에서 나왔다고 하셨다.
여기까지의 법문이 끝난 후 대중들이 식심(識心)을 하였다. 즉, 자기 마음을 알아서 소위 한소식을 하였다. 이는 이치를 깨달아 아는 해오(解悟)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십우도의 견우(見牛)에 해당하며, 초견성(初見性)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직접 체득한 견성(見性) 과는 다르다.
대중들이 진심을 이론적으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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