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으로 출근한다 / 조미숙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이미 나가고 없다. 내 기척에 깬 보물이(반려견)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꺼낸 것들로 아침을 때우면서 텔레비전을 본다. 뉴스를 보거나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다 걸리는 프로그램에 눈이 꽂힌다. 느긋한 아침 시간은 게으름으로 가득 채운다. 남들보다 늦은 시간에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6년이 넘도록 난 숲으로 출근한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목포에 있는 근린 숲이 이 계절엔 어떤지 알 수 있다. 일하기 싫은 날은 '오늘은 비가 안 오나 ?'며 괜히 일기예보를 살피거나 취소 문자가 오지 않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아이들과 만나면 어느새 그런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숲을 내 집 앞마당처럼 씩씩하게 휘젓고 돌아다닌다.
숲 해설가나 유아 숲 체험 지도사는 별명이 필요하다. 대상자가 기억하고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어린 시절 내 고향 뒷산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동백나무는 내 놀이터여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다 놀았다. 그러다 다치기도 했다. 또 비가 온 다음에 동백꽃에 요구르트 빨대를 꽂아 빨면 달콤한 꿀이 쭉 올라온다. 그 추억으로 숲에서 부르는 이름을 동백나무로 정했다.
노란 버스가 오고 아이들이 내린다. 아쉽게도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이들은 너무 낯설다. 어쩌다 오지 않는 달까지 합하면 두 달이나 세 달 만에 만나기도 한다. 그 전에 시청 소속으로 있을 때는 한 달에 두 번 만나 친숙했는데 아쉽다. 시청소속 선생님은 6명으로 관내 유아교육 기관의 7세 반을, 우리 전문업체 선생님 세 사람이 5~6세 반을 맡기에 그렇다.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알아보고 “동백나무 선생님!”하며 뛰어와 안긴다. 어느덧 올해 마지막 차시 수업이다.
이번 달 숲 체험 주제는 ‘낙엽’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대부분 5세이다. 간단하게 몸 풀기 체조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나뭇잎 색깔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들 노랗다고 답한다. 때마침 백합나무 노란 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이들에게 왜 노랗게 물들었냐고 물어보면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들은 가을이니까 그런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나무도 추운 겨울을 이겨 내야 하니까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러면서 “우리 지난번에 나무는 무얼 먹고 산다고 배웠는지 기억나는 친구?” 했더니 “햇빛, 물, 공기.”라고 답하는 똑똑한 아이가 몇 명 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며 칭찬을 듬뿍 해 주면서 그와 연관되게 부연 설명을 하고 숲으로 들어간다. 노랗게 쌓인 은행잎을 주워 꽃송이를 만들어 여자애의 머리에 꽂아 주니 남자애가 저도 해달라고 한다. 마스크 끈으로 고정시켜 몇 개 꽂으니 멋지다.
여러 가지 모양과 색으로 물든 예쁜 단풍잎을 모으자고 했더니 어떤 아이들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찢겨 색이 바랜 나뭇잎을 가져온다. 그래도 아무 말 안하고 예쁘다며 주머니에 넣는다. 알록달록한 단풍잎으로 나뭇잎 커튼도 만들고 보자기로 튕기는 놀이도 한다. 아이들은 무조건 보자기만 잡으면 튕기려 든다. 나뭇잎이 높이 솟았다가 떨어지는 모양이 한 송이 꽃이 된다. 낙엽이 잘 마르고 수북이 쌓인 곳에서는 낙엽 이불을 덮고 누워 보게 한다. 이 낙엽들은 썩어서 거름이 되어 나무가 잘 자라게도 하지만 겨울에 작은 생물들의 포근한 잠자리가 되어 준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진드기 걱정도 되지만 미리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고, 놀고 난 다음에는 잘 털도록 알려 준다. 가을이 한창인 숲에서 아이들 또한 또 다른 색으로 물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마저 알록달록해진다.
6월에 일이 시작해 여섯 번을 만나고 이제는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던 유달산에서 마지막 숲 체험을 했다. 첫날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여기서 무얼 했다고 조잘거린다. 그때를 기억해 돌아오는 길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든가 ‘경찰 놀이’를 하기도 한다. 둘 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다. 처음보다 훌쩍 커 버린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한 명씩 안아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이나 가을까지 설치는 모기떼에 시달리거나 몸이 아플 때는 정말 출근하기 싫다. 그래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친구들과 한 덩어리로 뭉쳐 논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숲에 가득 차면 나도 힘이 솟는다. 가끔은 투정을 부리거나 내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애들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담임선생님이 있어 화가 치밀기도 한다. 맞장구를 쳐 줘야 수업이 훨씬 매끄럽게 진행되는데 그냥 사진 찍기 바쁘거나 무덤덤한 선생님은 힘을 빠지게 만든다. 그래도 ‘정말 수고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줘 고맙다’고 인사하는 선생님과 생글생글 웃음꽃 피워내는 아이들을 만나는 내 직업에 보람을 느낀다. 숲과 아이들은 내게 좋은 친구이다.
쌀쌀한 초겨울 아침, 아이들과 맞잡은 손에 그들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온다. 얘들아, 내년에 또 만나자!